코로나19 확진자 ‘재택치료 의무화’ 발표 다음 날인 지난 11월 30일 서울 은평구보건소 코로나19 재택치료전담반. ⓒphoto 뉴시스
코로나19 확진자 ‘재택치료 의무화’ 발표 다음 날인 지난 11월 30일 서울 은평구보건소 코로나19 재택치료전담반. ⓒphoto 뉴시스

코로나19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일상회복의 ‘후퇴 불가’라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선언해버렸다. 이번에도 역시 ‘모두 합심하자’는 대통령의 순진한 발언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실제로 정부의 방역·의료 포기를 뜻하는 재택치료가 일상회복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없다. 어설픈 공항 방역만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오미크론을 막아낼 수도 없다. 이미 국내에서도 의심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많이 늦어진 부스터샷(백신 3차 접종)에 한 가닥 기대를 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형편이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방역

무엇보다 문제는 보츠와나에서 지난 11월 9일 처음 확인된 ‘오미크론’ 변이의 기세가 대단하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남아공의 보고를 받은 후 이틀 만에 13번째의 새로운 변이를 ‘오미크론(o)’으로 이름 짓고 5번째 ‘우려 변이’로 지정했다. 30여개의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오미크론의 전파력이 엄청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미 20여개국으로 확산된 오미크론이 조만간 델타를 밀어내고 우세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다행히 오미크론의 증상은 비교적 가벼운 모양이다. 맥박이 빨라지고 혈중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미각·후각이 마비되는 델타 변이의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피로감·두통·근육통·목 따가움·기침 등의 비교적 가벼운 증상이 대부분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무작정 공포에 떨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현재 사용 중인 백신이 델타와 달리 오미크론에는 큰 효과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돌파감염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불길한 소식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력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칫하면 3차 접종이 백신의 ‘접종 완료’가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섣부른 기대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바이러스의 변이는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생명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의 미물(微物)인 바이러스는 우리 몸속에서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번식을 한다. 그런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인간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주기 위한 의도적인 시도일 수는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에서는 뚜렷한 규칙성·방향성을 기대할 수 없다. 다만 변이를 통해 바이러스의 전파력은 강해지더라도 독성은 약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언제나 그럴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독성이 더 강해진다는 주장도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우리 몸속의 세포 속에 있는 바이러스가 날씨의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면 코로나19와 같은 호흡기 질환의 감염이 더욱 심각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바이러스의 독성이 강해지기 때문이 아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환기에도 신경을 덜 쓰는 우리 생활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우리의 잘못은 무시하고 무작정 바이러스를 탓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찬가지로 일상회복도 방역 상황에 대한 과학적·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추진해야만 한다. 방역에 대한 전문성과 감염에 대한 모든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질병관리청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뜻이다. 행정적인 지원은 국무총리가 주관하는 중앙방역대책본부만으로 충분하다. 일상회복을 위해 별도의 위원회가 필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더욱이 방역에 대한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는 위원회라면 더욱 그렇다.

코로나19의 방역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일이다. 과학적 지식도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제도적 방역에도 뾰족한 비법(秘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건강하고 합리적인 비판은 최대한 허용되어야만 한다. 방역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은 전문가의 객관적 평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청과 정부도 그런 비판과 대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과학의 탈을 쓴 엉터리 가짜뉴스까지 무한정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4차 확산이 정부의 무분별한 검사 확대에 의한 착시라는 주장은 작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황당한 억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공개적으로 변변치 않은 전문성을 함부로 자랑하는 일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방역정책에 대한 섣부른 평가도 경계해야 한다. 초기에 극단적인 봉쇄 정책으로 국제적인 비웃음을 샀던 중국은 이제 코로나19의 공포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정부가 무책임한 ‘집단방역’을 선택했다고 비난받았던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가장 먼저 백신을 개발하고 접종했던 영국·미국은 아직도 극심한 감염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의 방역정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도 섣부른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일본의 감염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 확진자가 16만명까지 치솟았던 지난 8월의 상황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수준이었다. 인구 100만명당 감염자가 1만3660명으로 우리보다 57%나 더 많다. 일본 정부가 과학적·합리적 방역정책을 시행했던 것도 아니고, 의료체계가 효율적으로 가동되었던 것도 아니다.

백신 접종에 대한 지나친 기대

정부의 일상회복 선언은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뒤늦게 시작한 백신 접종에 대한 정부의 기대가 지나쳤던 것으로 보인다. 접종률 80%를 집단면역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가 분명치 않다. 우리가 접종했던 백신의 효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가 방역 대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방역에 대한 정치적 고려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방역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일상도 절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넘치는 법이다. 대통령이 대책회의를 주재한다고 방역 대책의 실효성이 강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순진한 소망이 방역정책을 바닥부터 뒤흔드는 일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미래의 감염 상황에 대한 섣부른 전망도 경계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강화해야 하는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백신 부작용을 호소하는 국민들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완벽한 확인이 불가능한 ‘과학적 인과성’을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가족들의 아픔을 증폭시키는 ‘선화장·후장례’를 강요하는 정책도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한계에 도달한 의료진의 부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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