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일본인의 혐한(嫌韓) 테러’가 이슈화됐습니다. 일본 여행 중 “와사비 테러를 당했다” “음료수 벌레 테러를 당했다”는 증언이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올라왔습니다. 한국 관광객이 지나가면 키득거리면서 뒤통수를 후끈하게 만든다는 경험담도 들려왔고요. 그때만 해도 일본 내 극히 일부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어디든 인종차별주의자가 있게 마련이니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극소수라고 치부해버리는 분위기였죠.

지난주 주간조선이 커버스토리로 보도한 ‘文 정부 출범 후 2차 혐한 시작됐다’ 기사를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재일학자가 10년간 일본에서 출간된 서적 및 언론보도를 샅샅이 뒤져서 연구한 ‘일본 출판 미디어의 혐한의 현황과 비판적 고찰’에 의하면 혐한의 실상이 보입니다.

먼저 숫자를 볼까요? 일본 국민의 13%가 혐한 콘텐츠 경험, 2005년부터 10년간 혐한 서적 205종 출간, 혐한 서적의 80% 이상이 2002년 이후에 출간, 혐한 서적을 낸 출판사 55개사, 혐한 서적을 낸 출판사는 대부분 매출 상위 100위의 메이저 출판사. 개중에는 충격적인 숫자도 꽤 보입니다. 혐한 서적 중에는 4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도 있고, 혐한 시위에 참가한 연령대를 보면 20~30대가 50~60대의 3배에 이릅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혐한이 일본 내 넷우익과 내셔널리스트 중 극히 일부의 목소리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보고서를 낸 이홍천 도쿄도시대학 미디어전공학부 교수는 연구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일본 내 혐한 현상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기 위해 일본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한 유명 온라인 조사회사에서 의뢰를 거절했답니다. 패널의 기분이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어 항의가 예상된다는 이유였죠. 이 교수는 “혐한이 민감한 테마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응답자의 크레임을 이유로 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다행히도 일본 엘리트층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슬슬 나오고 있습니다. 혐한 현상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다며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수수방관하는 듯한 무드는 저만의 착각일까요. 혐한 무드를 단순히 봐선 안 됩니다. 복잡한 국제관계의 구조적 변동을 알리는 신호로 봐야 합니다. 게다가 혐한 시위에 적극적인 연령대가 젊은층이라는 부분에 확대경을 들이댈 필요가 있습니다. 혐한이 장기화되는 분위기를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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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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