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서울 영등포의 쪽방촌을 찾아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쪽방촌 주민들이 폭염으로 고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매년 혹서기, 혹한기면 으레 나오는 기사였지만 운 좋게 포털 네이버 모바일 메인에 걸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매년 나오는 기사, 기자가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댓글이었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댓글을 쓴 네티즌의 말처럼 올해는 쪽방촌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기사를 쓰려고 했습니다. 가을·겨울에 쪽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
최근 유튜브에서 조회 수 70만을 넘으며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곡이 있습니다. 바로 ‘벌레소년’이라는 한 유저가 올린 ‘평창유감’이라는 랩입니다. 이 곡은 2030세대가 왜 현 정권에 불만을 품게 됐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사에는 문재인 정부와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한 청년의 날 선 비판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 곡을 듣자 서태지의 ‘시대유감’이라는 곡이 떠올랐습니다. 1996년 서태지가 만든 ‘시대유감’은 은유적인 가사를 통해 당시의 기성세대를 비판한 곡입니다. ‘평창유감’이라는 곡은 ‘디스’랩(상대방을 비판하는 랩)답
2016년 경남 거제시는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에 “최저임금을 업종별·단계별로 차등적용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거제는 세계 조선사 ‘빅3’ 중 2곳이 소재한 조선업 메카입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을 필두로 1·2·3차 중소협력업체가 수많은 내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조선업 불황에 고용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최저임금을 사정에 맞게 차등화해 달라는 건의였습니다. 거제시가 이런 입장을 내놓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당장 발끈해 규탄성명을 내놓았습니다.거제도와 진해만(灣)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경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가 작성한 ‘개헌 보고서’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반영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간접 고용 금지’ 등 민감한 사안들이었습니다. 463쪽에 달하는 ‘개헌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행 헌법을 무시하는 듯한 내용은 물론이고, ‘시장질서’보다 ‘정부개입’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지난주 ‘자유민주 삭제한 개헌 특위 자문위원들은 누구?’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
2007년 12월 27일 저녁, 저는 일본 지바현에 있는 마쿠하리 멧세라는 전시장 앞에 서 있었습니다. 동방신기의 일본 팬클럽 ‘Bigeast’의 팬미팅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한국에서 바다 건너 일본 지바현까지 간 참이었습니다. 그 해에만 두 번, 동방신기 공연을 보겠다고 일본을 찾아갔었습니다.공연장 앞에 서서 한국 팬들끼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청소부 아주머니가 슬며시 다가오더군요. “사실 저 욘사마 팬이에요.”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욘사마, 배우 배용준씨의 사진이 붙어 있는 열쇠고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2014년 6월 4일 당선 / 7월 1일 취임 / 7월 31일 선관위, 검찰 고발 / 12월 3일 검찰 기소2015년 3월 16일 법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1심)7월 20일 법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항소심)2016년 8월 26일 대법원, 일부 무죄취지 파기환송2017년 2월 16일 법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파기환송심)11월 14일 대법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확정더불어민주당 소속 권선택 전 대전시장의 재판일지입니다. 주요 내용만 간추렸는데도, 꽤 긴 재판이 진행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짧은 경력이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좋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날것 그대로 듣고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2017년 송년호 커버스토리를 쓰기 위해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와 만났습니다. 이미 여러 미디어가 조명한 인물인 만큼 기존과 다른 시각에서 그를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외상외과 전문의인 그가 초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이 일을 견뎌내는지가 궁금했습니다.외상외과는 험한 진료 분야입니
한때 카톡을 끊은 적이 있습니다. 카톡의 과도한 개방성, 단톡방의 반강제적 속성 때문에 피로감에 시달리다가 과감히 앱을 삭제했습니다. 한동안 좋았습니다. 신세계가 펼쳐지더군요. 나만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마음이 한결 고요해졌습니다. 카톡의 자잘한 대화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응대할까, 말까?’ ‘한다면 언제 어떤 말로?’ 식의 잔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습니다. 머릿속에서 늘 가동하던 방 하나가 삭제된 기분이랄까요.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앱을 깔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깔아야 했습니다.” 주변인들이 다 사용하는데 혼자만 안 하니 민폐
프랑스의 대문호(大文豪) 에밀 졸라가 쓴 ‘나는 고발한다’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내가 취한 행동은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서두르기 위한 혁명적 조치입니다.”‘나는 고발한다’는 드레퓌스 사건 재판의 부당성과 함께 군부·종교계의 거짓을 고발한 명문(名文)입니다. 주간조선 2486호에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 단독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진실’ ‘역사’란 말을 자주한 김은성씨의 폭로도 거짓에 맞선 ‘혁명적 조치’가 아니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에밀 졸라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교류 범위도 넓었지만 김은성씨는 아닙니다.
최근 극장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총 13명의 승객이 용의선상에 오릅니다. 그리고 콧수염이 매력적인 사설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나타나서 기가 막힌 추리 실력으로 진범을 찾아냅니다.영화 속에서 멋진 활약을 펼친 에르큘 포와로와 같은 탐정은 아쉽게도 한국에서 활동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사설
“우리 땐 다 맞고 컸어. 뺨도 맞고, ‘빠따’도 맞았어.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뭐.”이런 추억담(?)은 이제 전설이 될 듯합니다. 학생인권조례에 따르면 체벌이 일절 금지됩니다. 개정 조례안에 따르면 벌점제도 금지입니다. 소지품 검사도 안 되고, 휴대폰을 학생의 의사에 반해 일률적으로 걷어서도 안 되며, 복장규제도 안 됩니다. 요는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일면 환영합니다. 원칙 없는 체벌을 남발하는 교사들, 과도한 권위의식을 내세우는 교사들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글로벌 스탠더드’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 ‘주주행동에 따른 주주 권익 신장’….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주장들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대기업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되고, 기업들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말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화려한 수사(修辭)만으로 판단해선 안 됩니다.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가 대기업 경영에 적극 관여할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대기업이란 특정 집단을 겨냥한 ‘징벌적’ 정책이란 성격이 강합니다. 이런 관점에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이 ‘혁명공약’을 내걸고 5·16쿠데타를 일으킨 5년 후의 일입니다. 중국공산당은 중앙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5·16통지(通知)’란 문건을 통과시킵니다. 마오쩌둥의 정치비서 천보다(陳伯達)가 기초한 문건 하나가 그후 10년간 이어지는 ‘천하대란’의 시작일 줄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5·16통지’로 중국 대륙은 문화대혁명의 아비규환에 빠져들었습니다. 홍위병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습니다. 학생이 선생을 때리고, 자식이 부모를 욕보이는 일이 정당화됐습니다. 홍위병들로부터 고문을 당해 죽거나 불구가
“기사 앞부분 여자 말야, 꼭 나 같아.”친구에게서 문자가 날아들었습니다. 이번주 유독 주변인들에게서 “기사 잘 봤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다들 자신 이야기 같다는 겁니다.지난주 커버스토리에서 ‘자존감 상실의 시대’를 다뤘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40대 초반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죠. 스펙만으로 보자면 남부러울 것 없는데, 스스로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왜 나만 이럴까’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는 여성들입니다.몇 년 전부터 유독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해 출간된 ‘
“혁오는 흑인음악적 요소와 소프트록 등 여러 요소를 융합해 자기만의 음악 스타일을 찾았다. 인디록이 주는 거칠고 투박한 일반적인 느낌이 아니라 젊은층이 공감할 지금 취향의 새로운 느낌이다.”2015년 4인조 밴드 ‘혁오’의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가 ‘혁오’의 음악에 대해 평가한 말입니다. 지난호 커버스토리로 ‘최초 인터뷰- 오혁 24세 꿈과 노래’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오혁은 ‘혁오’의 리더입니다. 오혁을 인터뷰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데뷔 3년 차를 맞이한 그는 올해 월드투어로 인해 연말까지 이미
한 신경외과 의사는 저를 붙잡고 한참을 하소연했습니다. “환자들이 제발 의사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왜 우리 말보다 블로그 글을 더 믿는지 모르겠어요.” 한 사학과 교수는 사람들 만나기가 두렵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본 글, 그럴듯하게 지어낸 야사(野史)를 근거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막상 그 분야를 30년 동안 연구한 제 얘기는 듣지 않아요.”요즘 자주 듣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대중이 똑똑해졌다.’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듣기에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얘기인 것처럼 보입니다. 한때는 서로 협력해 이끌어내는
몇 해 전부터 ‘일본인의 혐한(嫌韓) 테러’가 이슈화됐습니다. 일본 여행 중 “와사비 테러를 당했다” “음료수 벌레 테러를 당했다”는 증언이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올라왔습니다. 한국 관광객이 지나가면 키득거리면서 뒤통수를 후끈하게 만든다는 경험담도 들려왔고요. 그때만 해도 일본 내 극히 일부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어디든 인종차별주의자가 있게 마련이니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극소수라고 치부해버리는 분위기였죠.지난주 주간조선이 커버스토리로 보도한 ‘文 정부 출범 후 2차 혐한 시작됐다’ 기사를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재일
“마약보다 더 심한 중독이 바로 도박이다.”지난주 보도한 ‘도박의 덫에 걸린 청소년들’ 기사에 달린 300개가 넘는 댓글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입니다. 도박의 위험성을 알리는 댓글이 대다수였습니다. 반면 기사에 도박의 종류와 방법이 너무 자세하게 나와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기사를 통해 몰랐던 도박의 종류를 알게 될 청소년들을 걱정하는 목소리였습니다.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도박을 상세하게 다룬 이유가 있습니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이 초기에 벗어나지 못하고 중독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주변의 무관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방탄조끼를 둘러입게 됩니다. 기사 댓글난을 볼 때 말입니다. 아마 ‘기레기’란 신조어가 일상화된 후부터인 듯합니다. 지난호 커버스토리 기사 ‘자폐아 비밀 밝힌 재미 과학자 부부’를 썼습니다. 허준렬, 글로리아 최 교수 부부를 인터뷰해 그들의 연구 성과와 관련 학계의 최신 연구 동향을 소개했습니다. 혹시나 오류에 대한 지적이 있을까 싶어 들여다본 댓글난에서 뜻밖의 일격을 당했습니다. ‘6살까지 반응도 없던 우리 아들 키우며 평생 궁금했습니다. 이 기사 보면 저는 또 죄책감 느끼겠지만, 우리 아들 같은 친구들 더 행복한 인생 살
“미혼여성이 힘들다고 하면 미혼남성은 더 힘든데, 왜 그 얘기는 안 합니까? 미혼여성만 신경 쓰고 미혼남성은 신경 안 쓸 겁니까?”지난주 주간조선 커버스토리 ‘30·40대 미혼여성 138만명의 그늘’을 읽고 한 독자가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종종 장애인, 어린이 같은 우리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그때마다 한 번은 꼭 항의를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힘들다” “너희 힘들다고 내 세금으로 도울 수는 없다”….우리는 각자가 속한 집단 속에서 서로 다른 어려움에 부딪히며 살고 있습니다. 30대 기혼여성으로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