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여름, 우리 동네 주유소 한편엔 개 세 마리가 묶여 있었다. 개들의 밥그릇엔 밥 대신 개미 떼가 꼬여 있었고, 물은 더러웠다. 개들은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뙤약볕에 방치된 채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 개들이 불법 농장에 팔려갈 운명이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주유소 사장의 친구가 불법 개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종종 나타나 성견이 된 개들을 어디론가 데려갔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언니와 나는 주유소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개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얼음으로 버무린 캔사료와 시원한 물을 놔주고, 오래 씹을 거리들을 사다 주었다. 개들 머리 위로 커다란 그늘막을 설치하고 온 날은 오랜만에 두 발을 쭉 뻗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다.

개들마저 해외 입양 보내는 나라

일은 말복 즈음 터졌다. 묶여 있던 개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언니와 나는 주유소 사무실을 찾아가 개들의 행방을 물었고, 수소문 끝에 주유소 사장과 농장주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리고 팔려갔던 아이들을 값을 치르고 ‘사 올’ 수 있었다.

어렵게 개들의 안전을 확보했지만, 국내에서 대형견의 가족을 찾아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일한 선택지는 해외 입양이었다. 우리가 구조한 개들은 사회화 교육을 받고, 비행기에 타는 연습까지 모두 마친 후, 새로운 가족을 만나러 캐나다로 떠났다. 사람으로도 모자라 개들마저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 이것이 그해 내가 경험한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가 다큐멘터리영화 ‘누렁이’를 만들어 유튜브에 무료 공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생각했다. ‘그래, 우리나라 개들이 처한 상황이 좀 더 알려질 필요가 있다. 부디 이 영화가 그 시작이 되기를.’

그런데 정작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먼저 본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해 물었더니, 잔인한 전기도살 장면과 개들의 처참한 생활 모습이 여과 없이 나온다고 했다. 또 영화가 육견업계 관계자나 불법 도살을 일삼는 업자들에게 비판적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말처럼, ‘누렁이’는 얼핏 가치중립적인 영화로 보였다. 영화는 먹고살 수단이 필요했던 과거의 현실이 육견업계 종사자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다고 말한다.(이는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또 불법 개농장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농장주들을 회유해 촬영에 임하도록 하는데, 이때 감독은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개들의 참혹한 모습 위로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올 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외피를 걷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감독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던 것 같다.

온몸이 피부병으로 뒤덮인 개와 뜬장 밑으로 가득한 변. 다 썩은 음식물쓰레기를 먹고 있는 개들과, 그런 개들을 틀에 가둔 채 전기로 지져 도살하는 업자들의 모습(전기도살은 현행법상 동물학대에 해당하며 불법이다)은 감독의 추가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말없이 그 장면을 찍는 카메라의 존재가 그 자체로 비판이며, 고발인 셈이다.

개를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묻는다. 개 식용을 정당화하며 그들이 내세우는 ‘반려견과 식용견은 다르다’는 논리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려견과 식용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몸의 크기? 피부색?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고민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한다.

영화는 개고기가 건강에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반박한다. 개농장에서는 인간의 몸에 치명적인 이콜라이균이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데, 이 세균이 소와 돼지에게서 발견되는 경우에는 즉시 ‘식용 부적합’ 판정이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에는 전국에 유통되는 개고기를 검사한 결과 전체의 65%에서 항생제가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검출량은 소고기의 147배, 닭고기의 496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그러나 꼭 수치를 따져보지 않아도, 평생을 배설물 속에 갇힌 채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살다가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 속에서 잔인하게 도살되는 개를 먹는 것이 과연 몸에 좋을지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고통의 총량’을 줄이자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합법화하면 되지 않느냐고. 소와 돼지, 닭은 먹어도 되고, 개는 왜 안 되냐고. 그러나 우리가 모든 동물에게 공평하게 가혹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내게 이 말은 ‘고통의 총량’을 늘리자는 주장으로 들린다.

소설가 하재영은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전제한 뒤 이 세상에는 ‘더 고통받는 동물’과 ‘덜 고통받는 동물’이 있다고, 그러므로 모든 동물을 ‘더 고통받는 동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평등은 아무 가치도 없다.” 더욱이 개는, 비단 서양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반려동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지 오래다.

동물권행동 카라가 지난 1년간 경기도 개농장 916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농장주의 55% 이상이 폐업을 원한다고 한다. 농장주 역시 업종 전환만 보장된다면 이 사업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경기도민 10명 중 6명이 ‘개 식용 금지 법안’ 마련에 찬성한다고 밝힌 것은 고무적이다. 경기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개 식용 금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무려 638명(64%)이었다. 파는 사람도 원치 않고, 사는 사람도 없다면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을 논하는 기사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며칠 전에는 유엔 무역개발회의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명실공히 선진국에 속하는 한국에서 여전히 개 식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럽다. 동물보호단체들은 2019년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헌법 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헌재의 전향적인 판단을 기다린다.

개봉 2020년

감독 케빈 S. 브라이트

등급 전체관람가

장르 다큐멘터리

국가 미국

러닝타임 72분

박수영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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