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타이베이에서 거행된 대만 최대 폭력조직 죽련방 총당주(보스) 천치리의 장례식. ⓒphoto 로이터·연합
2007년 타이베이에서 거행된 대만 최대 폭력조직 죽련방 총당주(보스) 천치리의 장례식. ⓒphoto 로이터·연합

지난 6월 3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회종)는 대만 출신의 화교 장모(47)씨를 구속기소했다. 2009년 6월부터 4차례에 걸쳐 65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200g을 대만에서 국내로 밀반입했다는 죄목이었다. 검찰은 “장씨는 대만 최대 폭력조직인 죽련방(竹聯幇)의 하부조직으로 알려진 ‘뇌당(雷堂)’의 두목급”이라고 밝혔다.

“해외 폭력조직 간부를 처음으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힌 우리 공안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마약 밀반입으로 구속 기소된 장씨가 속한 뇌당의 상부조직인 죽련방은 ‘사해방(四海幇)’ ‘천도맹(天道盟)’과 함께 대만의 3대 폭력조직으로 꼽히는 범죄단체다. 특히 죽련방은 핵심 조직원만 2만명에, 방계조직까지 합치면 조직원만 약 10만명에 달한다. 장씨가 당주로 있는 뇌당은 20여개 분당으로 조직된 죽련방의 행동대 중 하나다.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죽련방은 충·효·인·애·신·의·화·평의 8개 하부조직을 기반으로 후일 천(天)·지(地)·지(至)·존(尊) 4개 조직과 만(萬)·고(高)·장(長)·청(靑)·동·남·서·북·풍·화·뇌·전 등 12개 조직을 추가했다. 각 당의 두목은 당주다. 게다가 장씨가 우리 수사당국에 붙잡힌 것도 지난 5월 17일 대만에서 한국으로 도피하던 와중이다. 장씨는 2010년 6월 범죄단체조직과 불법채권추심 등의 혐의로 대만 법원에서 징역 6년4월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던 와중이었다. 이에 “대만 죽련방이 한국에 근거지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수사당국을 중심으로 나왔다.

총당주 장례식 1만명 운집

중화권에서도 죽련방은 홍콩·마카오에 기반을 둔 삼합회(三合會·트라이어드)에 버금가는 조직으로 본다. 2007년 10월 타이베이에서 열린 죽련방의 총당주(보스) 천치리(陳啓禮)의 장례식 때는 대만 정국이 들썩였다. ‘압패자(鴨覇子·오리 패자)’ 천치리는 죽련방을 ‘천하제일방’으로 키운 인물로 그의 장례식 때는 국내외 조폭 1만명과 정재계 인사들이 운집했다.

죽련방이 결성된 것은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오면서부터다. 죽련방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해 장제스와 함께 대만으로 넘어온 대륙 출신의 외성인(外省人) 청년 위주로 결성됐다.

1949년 이전에 대만에 이주해 있던 본성인(本省人)에 핍박을 당하던 외성인 청년들은 ‘중화방(中和幇)’이란 자위조직을 결성해 이권 보호에 나섰다. 중화방은 이후 자체분열을 거듭해 천치리 등 소장파 주도로 죽련방으로 재탄생했다. 천치리가 총당주 자리에 오른 것은 1968년. 천치리는 총당주에 오른 후 대륙을 제패한 청(淸)나라 팔기군(八旗軍) 제도를 도입해 ‘당주’ ‘부당주’ ‘호법’으로 재편하는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이후 죽련방은 당시 최대 조직이었던 사해방을 누르고 ‘천하제일방(天下第一幇)’이란 명성을 들었다.

장제스의 국민당 역시 죽련방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1927년 ‘청방(靑幇)’의 지원으로 상하이쿠데타(4·12사건)를 주도한 장제스는 일찍부터 ‘남의사(藍衣社)’ ‘부흥사(復興社)’ 같은 비밀조직들을 십분 활용해 정치적 기반을 구축해 왔다.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져 대만으로 패주한 장제스는 대만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기반 확보가 절실했다. 더욱이 대륙 출신의 외성인들로 구성된 국민당과 죽련방은 ‘대륙으로 돌아간다’는 같은 신념을 공유했다. 타이베이의 외성인 청년들이 주축이 된 죽련방도 ‘대륙 수복’과 ‘양안 통일’을 주장하며 국민당과 정치적 노선을 함께해왔다. 이에 선거 때 유명 정치인도 죽련방에 적을 두는 등 사실상 국민당의 자금줄이자 표밭 겸 행동대로 기능했다.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 역시 죽련방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죽련방이 세계적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도 장징궈 집권 때인 1984년 ‘장난안(江南案)’이란 정치테러에 연루되면서부터다.

장난안은 ‘장징궈전(蔣經國傳)’이란 책을 펴내 장씨 일가를 비판한 재미 대만 언론인 류장난(劉江南·본명 류이량)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살된 사건이다. 하지만 테러를 자행한 죽련방 배후의 대만 국방부 정보국이 발각되면서 외교문제가 됐다. 암살을 수행한 천치리가 “코드명 730063의 국방부 정보국 비밀요원”이란 얘기도 나왔다. 국방부 정보국은 국민당의 특무기관인 ‘군통(軍統·군사위 조사통계국)’의 후신으로 CC계(천궈푸·천리푸 형제)의 ‘중통(中統·중앙위 조사통계국)’과 함께 요인암살 등 비밀공작을 수행했다.

실제 1970~1980년대 천치리의 주도하에 죽련방이 타이베이를 기반으로 경쟁조직인 사해방을 누르고 세력을 키울 때는 당국의 비호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결국 ‘장난안’의 여파로 왕시링(汪希苓) 국방부 정보국장 등이 줄줄이 체포되며 대만 정국이 요동쳤다. “장징궈의 둘째아들 장샤오우(蔣孝武)가 실제 몸통”이란 얘기도 나왔지만 유야무야됐다.

천지회에서 기원 찾기도

일각에서는 죽련방의 기원을 ‘천지회(天地會)’에서 찾기도 한다. 신필(神筆) 김용(金庸)의 무협소설 ‘녹정기(鹿鼎記)’에 등장하는 천지회는 대만 정성공(鄭成功)의 심복 진영화(陳永華)가 조직한 비밀결사다. 진영화는 ‘진근남(陳近南)’이란 가명의 천지회 총타주(총당주)로, 정성공과 그 아들인 정경(鄭經) 부자를 도와 반청복명(反淸復明) 운동을 이끈 실존 인물이다. 정성공은 만주족 청(淸)나라에 맞서 반청복명 운동을 이끈 ‘대만의 시조’다. 죽련방이 채용한 당과 당주 조직도 천지회에 등장하는 조직구성과 지역기반이 거의 일치하고 ‘대륙 수복’이라는 지상과제도 동일하다.

반면 무협소설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계엄령 해제, 국민당 일당독재 종식, 민진당 집권, 천치리의 사망과 함께 죽련방의 존재는 잊혀져 갔다. 더욱이 김용 소설로 인해 죽련방의 존재가 실제보다 과대평가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죽련방이 왕래가 자유로워진 중국 대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일각에서는 “대만 정보국의 지령을 받은 죽련방이 대륙 요소요소에 침투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죽련방의 ‘백랑(白狼·하얀 늑대)’ 장안르(張安樂)가 대만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귀국 의사를 밝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장안르는 류장난 피살 때 대만 국방부 정보국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최초 폭로한 인물이다. 장안르는 천치리 부재 때 임시 총당주를 맡아 죽련방의 ‘다거(大哥·큰형님)’ 중 하나로 군림했다.

하지만 장안르는 폭로 직후 돌연 ‘마약거래죄’로 체포돼 미국에서 10년간 옥살이를 했다. 장안르는 대만의 시보주간(時報周刊)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죄가 없는데 모친 곁을 지키느라 그간 귀국하지 못했다”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잡혀가더라도 중추절(추석) 전에 대만으로 돌아갈 계획으로 마잉주 총통에게 탄원서도 제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키워드

#뉴스 인 뉴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