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했다. 그렇게 공동의 기억을 구축하면서 문화를 만들어왔다. 한곳에 정착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불편함을 제거하기 위해 기원전 1만년경 농업을 발견하고 편의상 계급을 만들어 리더를 선출하였다. 리더는 정교한 행정체계라는 ‘도시’를 만들어 문명을 구축하였다. 기원전 4만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당시 유럽과 중동에서 그전에 이미 정착하고 있었던 네안데르탈인들과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신체적으로 호모사피엔스보다 훨씬 우세했다. 오늘날 격투
기원전 4세기 전까지 인류문화는 문명발상지를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중국의 갑골문명, 인도의 모헨조다로-하라파문명, 이란의 아베스타문명, 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문명, 나일강의 이집트문명, 그리고 지중해의 크레타문명과 미노스문명이 그 예들이다. 이 문명들은 기원전 9000년경, 지금의 유럽에서 빙하기가 끝날 무렵 시작됐다. 개선된 기후와 토양 덕택으로 우연히 ‘발견한’ 농경을 기반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하며 각 지역에서 발전한 개별 문명들이다.이 문명권들 간의 문화적 교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되었고 광범위했다. 그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원칙은 ‘시간’이다. 시간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이 변화를 생성과 소멸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4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 역사의 중심은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로 옮겨졌다. 기원전 5세기 초,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가 페르시아제국을 물리치면서 역사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스파르타와의 30년 내전으로 국력을 소진하여 기원전 4세기 초에는 그 중심축이 무너졌다. 그리스에서는 국가나 도시공동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자 철학자들이 개인의 삶이 공적인 삶보다
세계 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왕은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대왕(기원전 550~486년)이 인류 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왕이다. 그는 기원전 550년경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파르티아 통치자 히스타스페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세 번째 왕으로, 기원전 522년부터 기원전 486년까지 36년간 통치하였다. 그는 서쪽에서 새롭게 등장한 아테네와 기원전 490년 마라톤전쟁을 치렀던 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리우스 대왕은 제국에 필요한 경제구조, 도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을 평가하는 두 가지 덕목을 구분한다. 한 가지 덕목은 생전에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등장하는 ‘나’다. 내가 이력서에 나열하는 목록들은 남들과 견주어 손색이 없고 오히려 돋보이게 하려는 상대적이며 객관적인 업적들이다. 내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목록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 이력서의 성공은 상대방의 평가에 달려 있다. 이런 의미에서 브룩스는 다른 덕목을 소개한다. 그는 이 덕목을 한 사람이 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조사(弔辭) 이력서’라고 부른다. 내가 이 세
자신이 오감(五感)으로 인식하는 세계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당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사실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소피스트들의 시조였던 이탈리아 시실리아 출신 고르기아스(Gorgias)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전에 철학과 수사학을 통합하여 ‘소피즘(sophism)’이란 학문 분야를 개척하였다. 그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덕(德)’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소피즘’은 동양에서 어색하게도 ‘궤변학’으로 번역되었다. 그는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위대한 리더는 위대한 사상을 소유한 자다. 그러한 사상을 묵상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수련하는 과정에서 위대한 리더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자질인 카리스마가 생기기 시작한다. 위대한 사상을 접해 본 적이 없고 실천해 본 적이 없는 지도자는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그런 리더를 양육할 교육 체계도 없고, 설령 그런 리더가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직도 대중을 희망으로 인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가 없다.
이 연재 첫머리에서 강조했지만 리더는 ‘앞서가는 사람’이다. 그는 남들이 가본 적이 없는 길을 발견하여 첫발을 내딛는 사람이다. 그는 갈 길을 몰라 실의에 빠져 있는 대중의 고통을 직시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최선 혹은 차선의 길이라고 이성적으로 감동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다.리더는 대중이 원하는 길에 영합하는 자가 아니다. 그들보다 탁월한 안목으로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길을 제시하는 자가 영웅이다. 그는 자신의 비전이 담긴 말로써 대중의 마음에 신뢰의 씨앗을 심어놓는 농부다. 이 씨앗은 대중의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1949년 펴낸 ‘역사의 기원과 목적(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이란 책에서 현대문명을 지탱하고 있는 사상의 뿌리를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소위 ‘축의 시대’에서 찾았다. 그 무렵 꽃피우기 시작한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혁명에서 현대문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인도, 페르시아, 팔레스타인, 그리고 그리스-로마에 등장하는 사상이 그 후 등장하는 종교와 철학사상의 바탕이 되었다고 했다. 예컨대 공자, 노자로 시작된 중국 사상은 그
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그의 발 아래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아테네의 유명한 두 제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플라톤과 크세노폰이다. 크세노폰은 플라톤에 비해 유명하지 않지만 ‘르네상스형 인간’이다. 그는 철학자, 군인, 역사가, 용병,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회고록 집필자 등의 다양한 이력을 가졌다. 승마술에서 세금징수까지 실용적인 분야에 관한 책도 남겼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만나 제자가 된 후 나눈 철학적인 대화를 ‘메모랄리아(Memoralia)’라는 책으로 남겼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생생한 인간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정치학’에서 국가의 수준은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 시민이나 지도자들이 얼마나 탁월한 숙고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서양 정치학은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그의 정신적 양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는 태어나 일생을 ‘생각’에 몰두하다가 죽었다.”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다. 이 세 명은 하나의 사슬이 되어 서양철학의 토대를 이룬다. 이들의 사상은 유기적으로 연결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정한 그리스 최고의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496년에 아테네 외곽 콜로누스라는 시골에서 무기와 군장을 만드는 부유한 상인 소필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480년에 살라미스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아테네인들의 합창단을 이끄는 일을 하면서 그리스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비극작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점은 기원전 468년, 디오니시아 축제에서 거행된 비극경연대회. 그는 이 대회에서 당시 최고의 작가였던 아이스킬로스를 꺾고 우승했다. 소포클레스는 443년 페리클레스가 등극하여 아테네 르네상스를 일
우리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다. 2016년은 세계가 터널 안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해였다. 대표적인 예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IS는 무작위 테러를 일삼았고, 영국에선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그 불안한 기운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이 원하는 리더가 아닌, TV 프로그램에 나와 거침없고 상스러운 말을 일삼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 잘난 미국 방송들과 신문들, 그리고 지식인들은 미국 대중의 마음을 잘못
프랑스 정치학자이며 역사가인 토크빌(1805~1859)은 1831년 교도소 실태 조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미국이란 국가를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자세히 묘사하였다. 그는 미국이란 국가를 정의하기 위해 가장 먼저 미국 헌법에 게재된 정치 기관들을 묘사한다. 그 안에 담긴 정신인 권력의 분산, 국가와 주정부의 구별 등을 자세히 다루었다. 그는 국가의 외형적 모습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인의 특징, 도덕, 종교, 다양한 시민단체를 결성하려는 경향,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 등을 세심하게 언
아테네가 기원전 6세기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란 개념을 만들어내고 그 제도를 과감하게 실행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어떤 천재들의 상상력의 결과인가? 이전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정치 형태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과 절차가 필요했나?민주주의라는 고귀한 가치와 제도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높은 수준의 교양이 필수적이다. 민주주의가 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수적이란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인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년)
우리는 지금 흠모할 만한 리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나도 모르는 어리석음을 지적해주고 나에게 최선의 삶을 열정적으로 제시하고 촉구하는 정신적이며 실천적인 스승을 만나고 싶다. 그(녀)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고질적으로 품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할 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이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의 탁월성을 감동적으로 설득한다. 그 대안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간절히 바라는 이상적인 삶이라서 자신들 스스로
인류 역사의 거대한 물결은 위에서 아래로만 정해진 길을 따라 흘러가는가, 혹은 한 위대한 리더에 의해 물꼬를 터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가? 인류 역사의 진보는 대중이 만드는가, 혹은 선각자가 등장하여 대중을 설득하여 이루어지는가? 한 국가나 집단이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기존 체제와 그 안에서 연명했던 인물들이 자신이 경험하여 알고 있던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가?18세기 말 미국이라는 신생국가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미국의 3대 대통령이기도 한 토머스
문명을 구성하는 필요조건들이 있다. 가장 요긴한 두 조건은 문자와 도시다. ‘문자’는 인류 문명과 문화의 유전자인 기억을 표시하는 가시적 기호이자, 그 문명을 공유하는 집단이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한 도구다.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문자는 기원전 3200년, 지금 이라크 지역 남부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수메르어다. 수메르어는 그림문자로 시작하여 점점 음절문자로 발전해 후에 이곳에 들어와 거주한 아카드인의 문자가 되었다. ‘도시’는 공동의 기억을 향유하는 집단이 문자를 기반으로 행정 기반을 구축한 곳이다. 도시는 그들의 공공의 기호
인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문화’라는 독특한 틀을 구축한다. 문화의 내용들은 ‘기억’과, ‘구전’과 ‘문전’이라는 기억 전달의 매개로 보존된다. 자신의 경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간직하는 체계가 ‘기억’이며, 그 기억을 세대를 걸쳐 전달하고 재해석하는 틀이자 마당이 ‘문화’다. 인류는 문자를 발견하기 이전에, 이런 기억을 말과 귀, 그리고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전달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자신이 속한 가족, 공동체, 마을, 더 나아가 도시를 구축하는 근간이 되었다.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는, 그 공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위대한 국가나 기업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는 150개 이상의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페르시아제국의 정치 틀인 ‘왕정’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 형태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경제적인 자유를 찾아 자발적으로 소아시아(터키) 해변으로 건너가 집단거주지를 건설한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기원전 6세기에 이란에 등장한 페르시아제국과 충돌한다. 페르시아제국은 막강한 왕정과 군사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