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이었다. 제갈공명에 관한 글을 준비하면서 남산의 와룡묘(臥龍廟)에 다녀왔다. 와룡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을 모신 당우(堂宇)로 와룡은 그의 호다. 제갈공명을 모신 당우가 남산에 있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가서 보니 제갈공명뿐만 아니라 관우 장군과 단군을 모신 전각도 있었다. 와룡묘는 국사당(國祀堂)과 함께 무속인들의 기도처로 유명한 곳인 듯 많은 무속인들이 다녀갔다. 그 모습을 보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나라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신사(神祠)다. 조선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것을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 한다. 한마디로 출세하는 것이다. 출세는 유교사회에서 사대부가 도달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었다. 입신양명이란 단어는 ‘효경(孝經)’에 나온다. ‘효경’은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가 쓴 책이다. 비록 증자가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전체 내용은 공자의 가르침이 주를 이룬다. 그러니 ‘효경’의 저자를 제대로 밝히려면 ‘공자 저(著), 증자 편(編)’이라고 쓰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효경’에서 공자님은 입신양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몸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니
내가 본 것은 진실일까? 착각한 것은 아닐까?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것을 외면해버린 편파적인 시각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오래전에 읽은 기사 때문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근태 전 의원(1947~2011)의 얘기다. 김 전 의원이 1994년에 택시를 타게 되었다. 이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여자와 합승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들이 김 전 의원을 흘끔흘끔 쳐다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혹시… 이근안씨 아니세요?” 그녀들은 당시 뉴스와 언론매체를 통해 수시로 접한 ‘김근태
“어디 여자가 정초부터 남자보다 먼저 대문을 들어서? 재수없게!”지난 설날이었다. 시어머니의 동생 부부인 시외삼촌 내외가 세배를 왔다. 운전을 한 시외삼촌은 주차하느라 늦게 들어오고 선물을 든 시외숙모가 먼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가 대뜸 한 소리였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팔순 시누이한테 잔소리를 들은 손아래 올케도 이미 육십 중반이었다. 조카며느리 앞에서 핀잔을 듣는 것도 민망했던지 지지 않고 한마디 했다.“요즘 누가 그런 거를 가려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그러자 시어머니가 버럭 역정을 내셨다.“아무리 시대가 바뀌
조선시대 그림 중 가장 많이 그려진 분야는 산수화다. 우리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것만 봐도 산수화가 발달한 이유가 이해된다. 조선시대 때 도화서(조선시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던 관청)의 화원을 뽑는 시취(試取)에서도 산수화는 대나무 다음으로 중요한 과목이었다. 산수(山水)는 산(山)과 물(水)의 합성어이니 산수화는 ‘산과 물을 그린 그림’이다. ‘산수’에서 물이 산을 앞서지 않는 이유는 산이 있어야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은 또한 계곡물, 시냇물, 강물, 바닷물 등 그 물이 흐르는 장소에 따라 다른 말로 표
‘때려치워 버릴까?’직장인들치고 사표를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수십 번 던지고도 남았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 꾹 참고 넘어가는 것이 우리네 처지다. 그런데 그만두겠다고 마음을 먹자마자 바로 사표를 던진 사람이 있었다. 동진(東晋) 때 살았던 도연명(陶淵明·365~427)이다. 도연명은 민정기의 ‘유몽유도원’ 때 소개했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쓴 시인이다. 405년 11월,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41세의 도연명이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으로 부임한 지 80여일 되는 날이었다. 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종교예술품인 것 같다. 모든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 아름다움의 표현은 봄날의 꽃바람처럼 감미로울 수도 있고, 비 오는 날 맨발로 자갈밭을 걸을 때처럼 불편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아름다움의 세계는 인간의 재주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있다. 종교예술품은 여기에 신심이라는 요소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결과물이다. 신심의 무게는 예술성의 총량에서 아주 미미한 비율을 차지한다. 그 농도는 매우 적어 행여 그 흔적을 찾을라 치면 나비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와 함께 호수 위의 다리(濠梁)에서 노닐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란 거요.” 그러자 혜자가 말했다.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단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그대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줄 어찌 아시오?” 혜자가 말했다. “나는 그대가 아니니 물론 그대를 알지 못하오. 그대는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확실하오.” 그러자 장자가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자, 처음으로 돌
평행하는 두 선은 만날 수 있을까. 사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이념, 성별, 피부색이 다른 두 사람은 영원히 화합할 수 없을까. 이런 고민에 해답을 주는 작품이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명대(明代) 화가 정운붕(丁雲鵬)이 그린 ‘삼교도(三敎圖)’다. 삼교는 동양을 대표하는 종교로 불교·유교·도교를 말한다. 그림에는 불교의 석가, 유교의 공자, 도교의 노자가 사이좋게 앉아 있다. 세 인물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로 높은 분들이라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한데 정반대다. 거만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공손하
몇 해 전에 중국 황산(黃山)을 다녀왔다. 동네 뒷산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저질 체력인 필자가 느닷없이 황산에 오르게 된 계기는 순전히 동양학자 조용헌 선생의 글 때문이었다. 그는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자석(磁石)으로 이 자석 에너지가 많이 흐르는 물질이 돌과 바위’라고 주장했다. 바위에는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우리 인체의 혈액 속에도 광물질이 있어 돌 위에 앉거나 누워 있으면 바위 속에 든 자석 에너지가 혈액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유입된다는 논리였다. 바위 속의 자석 에너지가 우리 몸을 충전시켜 활력을 되찾게 해주는 것도 그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 산숭해심(山崇海深)의 뜻이다. 산해숭심(山海崇深)으로 적기도 한다. 비슷한 단어로 산고수심(山高水深)이 있다. 산이 높아야 바다가 깊고, 바다가 깊으면 물고기가 많다. 그러니 높은 산과 깊은 바다는 수많은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터전이다. 한 사람을 평가하는 제문(祭文)에 ‘그의 덕은 산처럼 높고 물처럼 깊다’고 적으면 더 이상 부연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인품을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되기 때문이다. 산숭해심의 가장 이른 출처는 남송의 학자 팽귀년(彭龜年)의 시 ‘광수(廣壽)’에서 찾아볼 수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면 순식간에 마음이 정처가 없어진다. 들썩거리는 가슴을 잠재우려면 지체하지 말고 무조건 떠나야 한다. 알토란 같은 40대를 그렇게 송두리째 역마살에 갖다 바쳤다. 무엇이 사무쳐 밖으로만 나돌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밖으로 뛰쳐나가 헤매고 다닌 곳이 붓다로드, 박물관, 유적지 등과 같이 나의 전공을 확인하고 심화시켜줄 수 있는 현장이었다는 점이다. 10여년 동안 밖으로만 나돈 시간이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평생을 집 밖에서 살다시피 한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속담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긴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교칠(膠漆)도 같은 뜻이다. 아교(阿膠)와 옻나무의 칠(漆)처럼 나누려 해도 나눌 수 없는 관계가 교칠이다. 아교는 본드(bond)가 나오기 전에 가장 널리 쓰인 천연접착제다. 아교는 갖풀이라고도 부르는데 소나 사슴 등의 동물 가죽, 뼈, 창자 등을 고아서 만든다. 흔히 아교로 알려진 부레풀은 동물 대신 물고기의 부레를 녹여 만든다. 그래서 부레풀을 어교(魚膠)라고 부른다.아교든 어교든 접착제는 접착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라서 옻나무의 칠 속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커피 마시는 시간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서 마시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다. 나 혼자 마시는 커피이니 내 식대로 만든다. 먼저 계량스푼으로 커피 한 스푼을 담아 커피 분쇄기에 넣는다. 예전에는 커피 알갱이가 부서지는 느낌이 좋아 손으로 직접 돌리는 핸드밀을 썼는데 지금은 손목이 아파서 전동 그라인더로 바꿨다. 원두커피를 마실 때는 원두를 약간 굵게, 카푸치노를 마실 때는 조금 곱게 간다. 커피를 가는 동안 방안에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 퍼진다. 텁텁하고 건조한 삶의 공간에 커피향이 내
중국의 진(晋)나라 태원(太元·376~396) 연간의 일이었다. 무릉(武陵)이라는 고을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강에서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 길을 잃었다. 강물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강 양쪽 언덕을 끼고 수백 보에 달하는 복숭아숲이 나왔다. 복숭아숲은 우뚝 솟은 산 앞에서 끝났다. 돌문처럼 생긴 산자락에는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작은 동굴이 보였는데 입구가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정도로 매우 좁았다. 입구를 지나 다시 수십 보를 걸어 들어가자 갑자기 앞이 확 트이면서 넓어지더니 환하게 밝아
중국에는 곳곳에 길 없는 길이 많다.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곳에 만든 길, 그 길이 잔도(棧道)다. 잔도는 벼랑이나 낭떠러지처럼 사람들이 다니기 힘든 가파른 곳에 돌이나 나무를 박아 선반처럼 만든 길이다. 잔도는 진시황 때부터 국책사업으로 시작되었고 지금도 황산(黃山), 태산(太山), 장가계(張家界)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2014년에 중국 정부는 지상 300m 높이의 장가계 대협곡에 430m 길이의 유리잔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높고 길다는 장가계의 유리잔도보다 촉잔도(蜀棧道)가 역사성이 더 깊다. 촉은 ‘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아침 6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을 접속한 뒤 ‘한국고전종합DB’에 들어가 ‘경서성독’을 클릭하고 ‘논어’를 연다. 그리고 성독자의 목소리에 따라 30분 동안 ‘논어’를 따라 읽는다. 성독(聲讀)은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훈장님의 리드미컬한 목소리에 맞춰 합창하듯 읽는 전통 서당 방식이다. 불교 경전을 읽는 독송(讀誦)과도 같은 맥락이다.성독하는 동안 방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한다. 만세의 사표가 되어 가르침을 주는 공자님, 그리고 수천 년 동안 그 앞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