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크로아티아에서 생활한다고 했을 때 많은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우려섞인 걱정을 했다. “유럽에서 아시아인 인종차별이 심하다던데 괜찮아?”크로아티아에서 한인들이 겪은 인종차별 경험담도 많이 들었다. 자그레브 시내 트램을 탔는데 동양인인 지인의 곁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사람 많은 카페에 들어섰는데 현지인이 코를 막는 시늉을 했다 등의 이야기는 크로아티아로 가기 전부터 나를 많이 위축시켰다. 특히 코로나19 초기, 이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지며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을 땐, 아시아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전쟁이란 결코 정상적일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야. 정말 끔찍했지. 난 운이 좋게도 살아남아 지금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먹고, 주말엔 교외에 나가 바람도 쐴 수 있지. 이런 삶이 내게 주어진 것에 정말로 감사해. 전쟁같은 건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미안하지만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어.“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잠시 머물렀던 숙소의 주인 아주머니는 괴로운 생각이 든듯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순간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던 실내에 차가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기분 좋은 저녁 자리 후 술김에 용기내어 전쟁에 대해 물었던 조금 전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근교에선 일요일 아침마다 벼룩시장이 열린다. 흐옐리치 중고차 시장 옆 널찍한 공터에 열리는 이 시장은 말 그대로 벼룩시장이다. 크로아티아 곳곳에서 차 한가득 물건을 싣고 와 널찍하게 펼쳐놓은 물건들을 구경하노라면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누군가의 손을 탄 물건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다보면 가끔씩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스테인레스글라스를 박아 넣은 스탠드부터 구식 라디오, 꽃 그림 가득한 액자, 누군가의 침대 위에 놓였을 곰인형까지. 그러다 문득 제품 뒷면에 찍힌 ‘메이드 인 유고슬라비아’라는 문구가 내 눈길을
지난 주말 자그레브 옐라치치 광장에서 약 3000여명의 인파가 집결해 정부의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오시예크,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리예카 등 크로아티아 각지에서 모여든 참가자들은 이런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마스크를 벗고, 텔레비전을 끄고, 자유로운 삶을 살자!”곳곳에선 “코로나는 거짓말”이란 다소 과격한 문구도 눈에 띄었다.[image1][image2]시위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구호를 외쳤다. 심지어 부모를 따라 나온 듯한 어린 아이도 ‘노
“포말로(pomalo). 우선 커피부터 한잔하고 생각을 정리해봐. 심각해 보이는 일도 한 발자국 물러나서 보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법이야.”크로아티아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중 ‘말로 포말로(malo pomalo)’란 표현이 있다. 사전에도 정확한 의미가 나와 있지 않는 이 말은 영어로 하면 ‘take it easy’ ‘relax’ ‘slow down’ ‘no worries’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천천히 조금씩, 시간을 갖고 해나가면 된다는 의미다.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 표현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 가령 내가
크로아티아의 어느 시기엔 ‘부라(bura)’라는 강한 바람이 분다. 부라는 주로 봄이나 겨울에 흔하지만 연중 어느 때고 불어온다. 이 바람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달마치야 지역의 프로슈트(prsut) 햄 맛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파그 섬 특산품인 파그치즈 특유의 짭짤한 맛을 강화하는데 보탬이 된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식재료인 생선의 물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해안 지방에 부라가 찾아오는 날이면 생선잡이 배가 바다로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출장차 두브로브니크에 머물던 어느 금요일, 간밤부터
“28쿠나 여기있어요(드바데셋 오쌈쿠나, 이즈볼리테).”“브라보! 브라보!”얼마 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근교의 작은 도시 사모보르(Samobor)로 가는 길이었다. 중년의 버스 기사는 아시아인이 차에 오르자 자연스럽게 영어로 버스비가 얼마인지 알려줬다. 내가 현지어로 대답을 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브라보”를 연신 외쳤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른 뒤 한 번 더 오른 사모보르행 버스에서 이 버스 기사님은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를 해줬다.크로아티아에 짐을 푼 지 올해로 4년차. 어디에서나 해당 국가의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게
코로나19로 엄혹한 중에도 어김없이 바캉스의 계절이 돌아왔다. 내가 본 유럽인들은 보통 한 달씩 휴가를 떠난다. ‘연차가 무제한으로 나오나’ 싶을 정도다. 유럽의 공연장과 국립극장들 가운데엔 7월 초중순을 기점으로 상반기의 일정들을 마무리하고 8월말까지 여름휴가 기간을 갖는 곳들도 많다. 이 시기에는 관공서 업무도 보기 어렵다.처음 이런 여름 바캉스 문화를 경험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일을 하는 건가’ ‘ 이래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나’ 싶었다. 하지만 오후 4시만 돼도 깜깜해지는 유럽의 겨울을 겪어본다면, 유럽 사람들이 왜 그토록
6월, 크로아티아에서 본격적인 여름 휴가시즌이 시작됐다. 6월 들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제로(0)로 유지되는 등 진정국면에 들자, 봉쇄 조치로 굳게 닫혀 있던 국경이 다시 열렸다. 크로아티아 정부가 최근 외국인 관광객 입국을 허용하면서 인근 지역에서 크로아티아 해안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아졌다.위 아래로 길게 뻗은 나라의 서쪽면이 전부 아드리아해와 맞닿아 있는 크로아티아. 바다를 접한 지역이 많고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동유럽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름 휴양지다. 특히 내륙국가인 오스트리아, 체코부터 독일, 슬로베니아까지 인접
크로아티아 부코바르(Vukovar)는 상처를 품은 도시다. ‘ㄱ’자를 좌우로 반전시킨 모양처럼 생긴 크로아티아 땅에서 가장 오른쪽 끝자락에 위치한 이 도시에는, 크로아티아 사람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다.부코바르는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도나우강을 끼고 있어 지금도 크로아티아 최대의 강항(河港)을 보유하고 있는 교역도시로 꼽힌다. 과거 이 강을 따라 물자와 상인들의 이동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도시는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은 이제 성 필립 앤 제임스 성당 등 몇 안 남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스트라 반도 서부 연안에 위치한 로빈(Rovinj)으로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로빈은 북 아드리아해와 맞닿은 작은 해변도시다. 전체 인구수 1만명 남짓한 작은 도시로, 관광업과 수산업이 도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자그레브에서 차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다.[image1]“발칸의 남자라면 라키야(rakija), 담배, 커피 이 세 가지는 필수지!”종일 밖을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온 내게 숙소의 호스트인 이반 할아버지가 라키야 한 잔을 권했다. 라키야는 과일을 발효해 만든 증류주다. 발칸 지역에서 많이 마시는데
“Bok! Dobar dan! Kako ste? Bijela kava?”(안녕, 잘 지냈어요? 비엘라카바로 줄까요?)지난 5월 11일(현지시각)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 폐업했던 카페들이 셧다운 2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 셧다운 이전에 자그레브에서 자주 가던 카페에 들어서니 카페 주인이 날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줬다. 내가 늘 주문하던 메뉴 ‘비엘라카바’도 잊지 않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어로 ‘화이트 커피’, 즉 카페라테다.[image1]지난 5월 11일 크로아티아 전역의 셧다운이 해제되고 카페를 포함한 상점들이 문을 열면서
3월 22일(현지시간) 오전 3시. 넷플릭스로 한국의 좀비드라마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크로아티아 정부가 3월 19일 코로나로 인한 셧다운을 선포한 지 사흘 째다. 이곳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맞는 세번째 3월이기도 하다.잠든 지 얼마나 됐을까.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굉음과 진동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황급히 일어나 시계를 보니 이제 막 오전 6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일어나 방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중심을 잡기 힘들만큼 땅이 흔들렸다. ‘이게 뭐지? 꿈인가?’ 비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