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6일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생일로 기념하는 ‘광명성절’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21년 2월 16일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생일로 기념하는 ‘광명성절’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생일로 기념하는 오는 2월 16일, 이른바 ‘광명성절’을 앞두고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광명성절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의 생일로, 김정은 조부 김일성의 생일로 기념하는 ‘태양절(4월 15일)’과 함께 북한 당국이 경축하는 양대 명절이다. 북한 당국은 매년 2월 광명성절, 4월 태양절에 맞춰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한데 통일부 등 우리 당국이 김정일의 생년이 ‘1942년’이라는 북한 측 주장을 별다른 검증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통일부는 북한 주요 인물들의 신상정보를 담은 북한정보포털 등 공식자료집을 통해 김정일의 생일을 ‘1942년 2월 16일’로 기술하고 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서 김정일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사망 시 조선노동당 총비서’라는 직책과 함께 생일을 ‘1942년 2월 16일생’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생일을 ‘1942년 2월 16일’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북한 당국은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를 통해 김정일이 “1942년 2월 16일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입장에 따라 북한 당국은 지난해 광명성절에는 이른바 ‘백두산 밀영’이 있었다는 양강도 삼지연시에서 김정일 탄생을 경축하는 불꽃놀이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은 ‘김정일 생일 80주년 불꽃놀이’라고 보도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 생일을 경축하는 기념주화도 찍었는데, 주화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탄생 80돐(돌)’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말해 김정일의 생년이 1942년이라는 것이다.

 

1942년생이라면 관련 기록들 서로 불일치

하지만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진짜 출생지가 구소련 연해주 ‘남야영’인데 북한 경내인 양강도 삼지연시의 ‘백두산 밀영’으로 조작된 것처럼 김정일의 생년 역시 1941년에서 1942년생으로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북한 당국의 주장처럼, 김정일의 생일이 1942년 2월 16일이라면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적어도 1941년 5월 18일과 6월 2일 사이에 김일성의 씨를 받아서 김정일을 잉태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구소련 88여단 대위 김일성은 1941년 4월 9일부터 8월 28일까지 김정일의 실제 출생지로 알려진 연해주 ‘남야영’을 떠나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 이 기간 중에 김일성이 소련의 남야영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은 물론, 빨치산 재봉사로 일한 김정숙과 함께 있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김정일의 생일이 1942년 2월 16일보다 1년 앞선 1941년 2월 16일이라고 한다면 김일성, 김정일의 초기 생애와 관련한 모든 기록은 톱니바퀴처럼 들어맞는다.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김일성이 소만(蘇滿) 국경을 넘어서 소련군에 투항한 날짜는 1940년 10월 23일인데, 김일성이 돌연 소련으로 탈출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김정숙과의 혼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숙이 김일성의 아이를 임신했고 종족보존의 본능이 발동해 소련에 넘어갔을 것이란 추측이다.

소련군에 투항한 김일성이 1941년 1월 작성한 수기(手記) 이력서를 발굴해 주간조선에 제공한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김정일이 1941년 2월생이라면 김일성과 김정숙이 임신 중인 1940년 10월 소련으로 탈출해 넉 달 후에 출산한 것이 된다”며 “현재로서는 김정일이 1941년생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단언했다. 이 같은 김정일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한 내용은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이 지난해 6월 펴낸 ‘김일성 전기’에 일부 들어있고, 올해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 출간 예정인 ‘북한과 소련’(가칭)에도 실릴 예정이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에 따르면, 김정일의 생년이 1942년이 아닌 1941년이라는 정황증거는 1980년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를 통해 김정일의 후계지위가 공식 확립된 1980년 초까지만 해도 유력시됐다. 1981년 2월 16일에는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일본사회당(현 사회민주당) 인사들이 주축이 돼 ‘김정일 선생 탄생 40주년을 축하하는 모임’이라는 기념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즉 김정일의 생년이 당시까지 1941년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증거다. 이날 기념파티를 보도한 국내 주요 언론들 역시 “이날 파티로 수수께끼의 인물인 김정일의 생일이 1941년 2월 16일이란 사실도 판명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재일동포 일간지 ‘통일일보’는 1982년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일성이 조총련에 김정일의 41회 생일축하 행사 규모를 축소하도록 지시했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 역시 김정일의 생일이 1941년임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다.

하지만 1982년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을 맞이해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공식 나이를 ‘만 40세’로 공식 발표한 이후부터는 김정일의 생년을 1941년에서 1942년으로 바꿔 표기하는 문건과 기록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1941년생이라면 1982년에 ‘만 41세’가 되는데, 당시 북한 당국이 김정일을 ‘만 40세’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졸지에 1942년생으로 한 살 젊어진 것이다.

김정일로 승계작업이 한창이던 1992년 김일성이 ‘광명성찬가’라는 한시(漢詩)를 직접 지었는데, ‘백두산정 정일봉’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광명성탄 오십주’라는 말도 나온다. 한시의 형식을 차용한 이 시의 한글 번역은 그 아래에 김일성이 직접 달았다. 한글 번역에는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있고…(중략)…광명성(김정일) 탄생하여 어느덧 쉰돐(50주년)인가’라는 구절이 있다. 김정일이 태어난 곳과 생일을 각각 백두산과 1942년으로 직접 못박은 것이다. 북한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김일성이 지은 ‘광명성찬가’를 새긴 높이 3.7m의 송시비는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정일봉 아래 백두산 밀영 앞에 세워져 있다.

 

김일성 생년과 30년 주기 맞추려 조작한 듯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생년을 실제 생일로 추정되는 1941년이 아닌 1942년으로 변경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생년을 1941년에서 1942년으로 변경함으로써 북한에서 ‘주체연호 기원’으로 삼는 김일성의 생년 1912년과 30년 주기로 일치시켰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을 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5년과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 이른바 ‘정주년(整週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상당한 집착을 보여왔다. 김정일의 생년을 1942년으로 변경하면 김일성의 생년인 1912년과 30주년 주기로 경축행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을 감안하면 김정일의 생일 표기는 출생지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표기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출생지가 구소련과 중국에서 발견된 각종 문건과 증언 등을 통해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백두산 밀영이 아닌 구소련 연해주의 남야영이란 사실이 밝혀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정보포털은 노동신문 등에 공개된 정보 표기를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공화국 창건일(9월 9일)과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에도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북한에서 보기 좋게 날짜를 조작하는 것은 비교적 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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