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김정일이 탑승한 전용열차가 정차한 러시아 연해주의 오케안스카야역. 역 앞에 김정일의 방문을 알리는 기념판이 부착돼 있다. photo 뉴시스
2002년 8월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김정일이 탑승한 전용열차가 정차한 러시아 연해주의 오케안스카야역. 역 앞에 김정일의 방문을 알리는 기념판이 부착돼 있다. photo 뉴시스

북한이 ‘광명성절’로 기념하는 2월 16일은 김정일(1941~2011) 전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생일이다. 북한은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密營)’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부친 김정일은 구(舊)소련 출신자였다. 1940년대 초반에 김정일의 부모인 김일성과 김정숙은 소련에 거주했다. 자연히 이들 부부의 장남 김정일은 소련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소련은 영토가 넓어 김정일이 정확히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1930년대 후반 만주 지역의 항일운동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일본군의 탄압작전 결과 대부분의 빨치산 지휘관들은 항복하거나 피살되거나 만주땅을 떠났다. 1940년 10월 23일, 중국공산당원이자 항일빨치산이었던 김일성 역시 소만(蘇滿)국경선을 넘었다. 김일성의 배우자 김정숙은 당시 김정일을 임신한 상태였다. 소련 지도부는 국경을 넘은 항일빨치산을 ‘북(北)야영’과 ‘남(南)야영’ 두 곳에 분산 배치했다. 이듬해인 1941년 2월 16일 김일성·김정숙 부부의 장남 김정일이 태어났다.

‘뱌츠코예 북야영’ 출생설

현재까지 북한 측 연구에 따르면, 김정일 탄생지에 관해서는 세 가지 주장을 찾을 수 있다. △‘뱌츠코예’ 주변의 북야영설 △‘오케안스카야’ 주변의 남야영설 △‘라즈돌노예’ 주변의 남야영설 세 가지다. 세 가지 가설 중 무엇이 사실일까?

우선 정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북야영과 남야영은 말그대로 ‘밀영(密營)’이었다. 소련의 주민등록기관은 이들 야영에 접근하지 못했다. 비록 김정일이 소련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김정일 탄생에 대한 출생증명서나 다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식기록 외에 출생지를 모친 거주지로 확인할 수 있지만, 평범한 재봉사에 불과했던 김정숙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다.

다만 김정일이 태어난 1941년 2월을 기준으로 김일성의 거주지를 확인하면 김정일의 출생지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김정일이 태어난 지 1년 6개월이 지난 1942년 7월, 소련 당국은 극동전선 ‘제88독립보병여단(88여단)’을 설립했고, 대위로 임관한 김일성은 이 여단의 대대장 중 한 명으로 승진했다.

김정일이 뱌츠코예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의 출처는 88여단에서 번역가로 복무했던 유성철의 증언이다. 유성철은 여러 차례 “김정일이 88여단이 주둔한 뱌츠코예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제는 유성철이 1943년 8월에만 88여단에 파견되었고, 당시 김일성을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유성철은 솔직한 사람이었지만,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 ‘김일성의 만주 항일투쟁’과 관련한 것들을 마치 사실처럼 이야기한 적도 있다.

아울러 유성철의 증언은 저우바오중(周保中)의 기록과도 배치된다. 항일빨치산의 소련 거주 시기에 관한 사료들 중 제일 중요한 기록은 88여단장을 지낸 저우바오중의 일기다. 저우바오중은 이 여단의 대대장으로 복무한 김일성의 상관이기도 했다. 저우바오중의 일기에 따르면, 김일성은 1942년 7월까지 ‘남야영’에 거주했다. 즉 유성철의 주장과 달리 저우바오중의 기록에 따르면 뱌츠코예 근처에 위치한 북야영은 김정일의 고향이 아니다.

2019년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생가’라고 주장하는 양강도 삼지연시의 ‘백두산 밀영’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photo 뉴시스
2019년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생가’라고 주장하는 양강도 삼지연시의 ‘백두산 밀영’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photo 뉴시스

‘오케안스카야 야영학교’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김정일의 고향이 ‘남야영’인 것이 거의 확실하게 보인다. 문제는 남야영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대 중국 자료에 남야영이 보로실로프 근처에 있다는 정보만 찾을 수 있다. 남야영에 대한 소련 자료는 파괴되거나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후반기, 중국이 개방하면서 중국인 항일빨치산들은 회고록을 쓰고 외국매체와 인터뷰도 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기에 김정일의 실제 출생지로 추정되는 남야영에 대해 나온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야영이 하마탕(蛤蟆塘) 또는 얼다오거우(二道溝)라는 소련 마을 근처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둘째, 남야영이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26㎞ 지점에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 남야영 근처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로실로프까지 가는 철도가 있었다는 증언이다.

그렇다면 ‘하마탕’이란 마을은 어디 있었는가? 1937년의 일본 지도를 보면 ‘하마탕’은 곧 ‘라즈돌노예’의 중국 이름이었다고 확인할 수 있다. ‘얼다오거우’의 소련 이름은 ‘볼사야 엘두가’였다. ‘라즈돌노예’나 ‘볼사야 엘두가’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6㎞보다 훨씬 더 멀었다.

남야영이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26㎞ 지점에 있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이 위치에 있는 마을의 이름은 ‘오케안스카야’다. ‘오케안스카야’에 관해서는 1940년대 일본의 자료도 존재한다. 1944년 11월 일본 특별고등경찰의 ‘특고월보’에 김일성이 ‘오케안스카야 야영학교’에 있었다는 보고를 찾을 수 있다. 물론 ‘특고월보’의 보고 또한 의심스럽게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고월보’에 따르면 김일성이 1944년 6월 모스크바에 갔고, 충칭(重慶)과 옌안(延安)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1944년 기준으로는 김일성은 남야영이 아닌 ‘북야영’에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이 오케안스카야에 있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필자는 이 특고월보의 오보에 관한 가설을 세운 바 있다. 197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판한 ‘얼음과 불’(극동도서출판사)이라는 책에 따르면, 1940년 2월 소련 방첩기관들이 오케안스카야에서 야영을 설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일본과 만주국 당국은 ‘이해청’이란 사람을 당수로 하는 ‘지하 공산당’을 위장조직했다. 일본 측 공작원들은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로 위장해 소련에 ‘망명’했고, 소련 현지에서 첩보 수집활동을 벌였다. 소련의 방첩일꾼들도 그들을 믿는 셈치고, 오케안스카야에 장기거주시켰다. 즉 오케안스카야에서 소련 당국이 야영을 운영했다는 주장은 정확한 것이었다. 특별고등경찰 보고의 허위 내용은 이 작전의 결과로 추측할 수 있다.

아울러 “김정일이 오케안스카야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북한에서 소련으로 망명했던 임은(가명, 실명은 허웅배)의 ‘북조선왕조비사’(도쿄·1982)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항일빨치산 출신 조선족 이재덕(李在德)도 그렇게 증언한 바 있다.(‘월간 북한’ 1994년 8월호 참조)

 

‘라즈돌노예’ 남야영 출생설

하지만 2015년부터는 김정일의 생가가 ‘오케안스카야’가 아니라 ‘라즈돌노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동아일보의 황호택 기자는 라즈돌노예를 방문했고, 현지인들이 ‘김정일이 태어난 집’까지 보여주었다고 기사에 썼다. 기사에는 “부대의 지휘관이었던 중국인 저우바오중은 여느 중국인들처럼 ‘8자’를 좋아했고, 부대 안에서 유일한 신생아인 김정일이 라즈돌리네(‘라즈돌노예’의 오기) 마을길 88번지에서 태어난 것을 축복하는 뜻에서 88여단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동아일보 2015년 8월 5일 자 30면)라고 서술돼 있다.

위 기사처럼 김정일의 고향이 라즈돌노예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우선 몇 가지 가설과 맞지 않는 사실이 존재한다. 우선, 88여단의 번호는 여단장이 지어준 것이 아니다. 88여단장 저우바오중에게는 여단명을 붙일 권한 자체가 없었다. 88여단의 번호를 지어준 사람은 소련 국방인민위원 보좌이자 붉은육군 무력 형성·성원 배치 총국장이었던 예핌 샤덴코 1급 군사위원이었다. 즉 88여단이란 이름은 소련군 중앙사령부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당시 소련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있었던 제88독립보병여단이 해산되자, 샤덴코가 비워진 번호를 새로운 부대에 붙인 것이다.

김정일의 출생지가 ‘라즈돌노예’가 아닌 ‘오케안스카야’라고 볼 수 있는 요인은 또 하나 있다. 2002년 8월 김정일이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했을 때다. 김정일은 당시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김정일의 방문행로를 보면 김정일이 마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역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불과 1년 전인 2001년에 하바롭스크를 찾았던 김정일은 이 도시를 다시 찾았다. 하바롭스크 현지에서 김정일은 현지 러시아군 부대가 ‘위대한 전통’이 있다는 친필까지 남겼다. 필자는 김정일이 말한 ‘위대한 전통’이 자기 아버지 김일성의 부대 창설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2002년 8월 23일 김정일이 탑승한 전용열차는 러시아 극동에서 북한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케안스카야역’에 멈추었다. 러시아 기상청과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날은 폭풍우가 왔지만 김정일은 전용열차 밖으로 나갔다. 북한 외교관들은 이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판을 오케안스카야역에 붙였고, 러시아 인터넷에서도 김정일이 찾았던 오케안스카야역에 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역사에 부착된 기념판에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정일 동지께서 2002년 8월 23일 러시아 원동지역 방문 시 오케안스카야역에 머무르시었다’고 새겨져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 김정일의 출생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여러 가설에 앞서 주인공의 행위부터 자세히 보아야 할 것 같다. 김정일은 왜 아무것도 없는 러시아 극동의 철도역에 전용열차를 멈추라는 명령을 하달했을까? 자기 고향을 다시 보고 싶어서라고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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