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총선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지역 경선에서 최종 탈락한 박용진 의원. photo 뉴시스
4·10총선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지역 경선에서 최종 탈락한 박용진 의원. photo 뉴시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4·10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의 ‘끝’을 보여준 박 의원은 세 번의 혈투를 벌였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그가 민주당 ‘공천 시스템’상 30%가 감산된 핸디캡을 극복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하위 평가로 인해 감산이 적용된 현역 의원 중 공천장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 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한 조수진 변호사가 강북을 민주당 후보로 낙점됐었지만, 조 변호사는 과거 자신의 '성폭력 피의자 변호' 이력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자진사퇴했다. 이후 당은 한민수 대변인을 전략공천하며 기나긴 강북을 경선을 마무리했다.

서울 강북을 경선이 지독한 ‘답정너 경선’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박 의원이 최종 탈락한 다음 날인 지난 3월 20일 그의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을 찾았다. 그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강북을 출마를 선언한 뒤 현재까지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 지역을 텃밭으로 갈아온 만큼 그의 낙천 소식을 접한 주민들의 아쉬움은 다소 크게 느껴졌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 길거리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박용진 의원이 지역에선 그래도 열심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됐다”면서 “결국 힘 센 놈이 이기는 거지 뭐…”라고 한탄했다.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박용진 의원에 대해 평가를 할 순 없지만 정봉주 후보의 공천이 취소됐는데 차점자였던 박 의원에게 공천을 주지 않은 것은 좀 이상한 것 같다”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중년 남성은 “여기(서울 강북을)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 건데 전국 당원으로 투표한 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라며 “여긴 민주당이 좀 센 지역인데 이번에 이렇게 돼서 어떻게 될지…(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박용진의 완주, 선택지가 없었다”

끝내 고배를 마신 박 의원의 경선 과정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박용진 의원은 선택지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하위 10% 평가를 받은 때부터 박 의원은 당 지도부에 강력히 반발하며 ‘민주당 정신’을 운운했기 때문에 탈당 가능성은 적었다는 것이다. 특히 “창당 초반부터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합당을 목표로 했던 새로운미래 역시 박 의원의 선택지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민주당 공천 과정에 반발하는 비명계들이 잔류를 선택하는 분위기가 강해진 상황에서 박 의원의 이탈은 현실적으로도 무리”라고 했다. 이어 “조국혁신당 입당은 박 의원이 과거 조국 대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해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생각지도 못하는 행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최종 탈락을 무덤덤하고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는 지난 3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난 한 달 가끔 나 몰래 ‘트루먼쇼’를 찍는 중이 아닐까 생각해봤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패배가 뻔한 경선, 결론이 정해진 경선임을 알고 받아들였기에 새삼 다른 감정은 들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대한민국 정치사에, 민주당의 앞날에 다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분열과 갈등은 저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승리를 향한 에너지를 한데 모으자”고 했다.

박 의원으로서는 이번 경선 사태가 확실히 몸집을 키운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고 있다는 여러 비판 속에 박 의원은 끝까지 저항하며 이재명 대표의 대항마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당초 이재명 대표 견제 세력으로는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줄곧 이름을 올려 왔다. 잠재적 대권주자인 이낙연 대표는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 대표와 경합을 벌인 바 있고, 문재인 정부 핵심 참모인 임종석 전 실장은 이번 공천 과정에서 학살당한 친문 세력의 결집을 도모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낙연 대표는 새로운미래가 초반 기대와 달리 비명계 인사들의 합류가 저조한 데다 조국혁신당의 상승세로 인해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친문 선봉장 격인 임종석 전 실장은 공천에서 배제된 뒤 민주당 잔류를 선택하며 일단 이재명 대표와의 대립을 피한 상태다.

 

‘다음’이 가능해진 박용진

반면 “패배가 뻔한 경선, 결론이 정해진 경선임을 알고 받아들였다”는 박 의원은 정치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 안팎에서 공천 과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그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 건 박 의원뿐이다. 그에게는 ‘다음’에도 도전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박용진 의원은 당권이나 대권에 무조건 나갈 것”이라며 박 의원의 다음 도전에 대한 얘기가 벌써부터 회자되고 있다.

이미 박 의원은 당권과 대권에 한 차례씩 도전한 이력이 있다. 2021년 10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완주해 최종 4위에 올랐고, 2022년 8월 치러진 전당대회에선 당대표 후보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박 의원은 지난 3월 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저는 그냥 이번에 바보 하겠다”며 “민주당에 바보 정치인이 하나쯤 성공하는 스토리를 노무현 대통령 이후에 한번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하기도 했다. 지난 3월 19일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하고 똑같은 마음이다. 바보의 길, 바보 정치인의 길 저도 뒤따르고 있다”며 향후 행보에 대한 암묵적 메시지를 던졌다.

 

“싹 자르기”… 바보 노무현 오마주될까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박 의원의 낙천에 대해 “싹 자르기”라고 잘라 말했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 3월 20일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박용진을 자르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는 느낌이 든다”며 “각 단계마다 이상한 방법을 동원해서 박용진 의원을 잘랐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가,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당권이나 대권 도전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싹을 잘라내고 있는 것 같다. 박용진 의원은 대선후보 경선에도 나섰고, 전당대회에서 당권에도 도전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차세대 지도자 중에 한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는 분인데 그런 분을 이렇게 밟아버리는 건 참으로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박용진 의원 같은 경우는 정말 져도 이겼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종로의 현역 의원이 지역구를 던지고 부산에 내려가서 진 경우가 노무현인데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라고 애칭을 얻었다. 그 결과 노사모가 만들어졌고 결국은 그걸 통해서 대통령까지 됐는데 결국은 박용진도 바보의 길을 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다만 다른 것은 있다. 바보 노무현은 다른 정당과 싸워서 바보 노무현이 됐는데 박용진 의원 같은 경우는 자기 정당 내에서 불이익 때문에 바보의 길을 갔다. 때문에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거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 정신과 투지와 용기는 훗날 박용진 의원한테는 큰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강북을 경선은 ‘비명횡사’의 종결판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박 의원은 하위 평가에 따라 감산 30% 핸디캡을 갖고도 3자 대결로 치러진 1차 경선에서 1등을 했지만 정봉주 전 의원과 결선을 치러야 했다. 이 결선에서 패배했지만 2위를 기록했기에 정 전 의원이 공천권을 박탈당했을 때 당연히 차순위 대우를 기대했다. 하지만 당은 조수진 변호사를 급히 투입했다. 박 의원은 조 변호사와의 두 번째 경선에서도 역시 30% 감산을 적용받았다. 조 변호사는 여성 신인 25% 가점을 얻어 둘은 시작부터 투표율 55%의 차이를 갖고 경선을 치른 셈이다. 박 의원이 재경선에서도 30% 감산을 적용한다는 당의 결정에 반발했지만 룰은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서울 강북을 총선 후보자를 뽑는 경선 투표를 국민참여를 배제하고 권리당원 100%(전국 권리당원 투표 70%, 지역 권리당원 투표 30%)로 진행한 것도 지역 민심을 외면한 것이란 비판을 키우고 있다. 지역 후보 경선에 전국 권리당원 70% 반영은 전무후무한 경선룰이었다. 박 의원은 재경선 투표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 3월 18일 광주를 찾아 “호남에서 강북을 후보를 뽑아달라고 호소하는 이 상황이 (스스로도)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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