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등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9월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서울의봄 4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의봄 4법’은 계엄선포 요건 강화, 계엄선포 시 72시간 내 국회 사후 동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등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9월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서울의봄 4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의봄 4법’은 계엄선포 요건 강화, 계엄선포 시 72시간 내 국회 사후 동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영화 ‘서울의봄’이 흥행하자 야권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계엄 가능성’을 주장했다. 당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권이 권력을 사용하는 대범함을 보면 22대 총선에서 조금만 유리한 결과가 나와도 계엄을 선포하고 독재를 강화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단독 과반 ‘계엄저지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9개월여 지난 8월 21일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준비설’을 꺼내들었다.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갑작스럽게 교체하고, 대통령이 ‘반국가세력’ 발언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 9월 1일 여야 대표 회담 모두 발언에서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며 박근혜 정부 시절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법안도 발의… ‘예방’으로 진로 변경? 

야당 당수가 ‘계엄령 준비설’에 힘을 싣자 정치권은 술렁였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 야권 내에서도 “뜬금없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의혹을 주도한 김 최고위원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올해 초 국군방첩사령부를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이 졸업한 충암고등학교 출신 장성들, 일명 ‘충암파’와 비밀리에 회동했다며 정황 근거로 내세웠다. 국방부는 “다수가 참석한 공식 일정이었다”고 반박했지만, 김 최고위원은 지난 9월 20일 ‘서울의봄 4법’(계엄을 빙자한 친위쿠데타 방지4법)을 발의하며 “하나회, 알자회 이후 군내사조직 모임이 발견됐다”며 공세를 이어나갔다. 

김 최고위원의 ‘충암파’ 계엄설 주장은 두 가지 근거에 기대고 있다. 현행 계엄법상 계엄을 건의할 수 있는 행안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두 명 모두 윤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이고, 계엄 선포 시 충암고 출신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 된다는 것. 그러나 ‘충암파’가 군을 장악했다고 하기에는 육·해·공군 장성 370명 가운데 충암고 출신이 4명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또 현행 계엄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 즉시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언급했던 단독 과반 ‘계엄 저지선’을 확보한 여소야대 상황에서 계엄 선포는 무의미한 셈이다. 

무리하게 의혹을 제기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정황적 근거에 따라 우려가 제기되는 데 대한 예방차원’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김우영 민주당 정무조정실장은 지난 9월 1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계엄 의혹 근거를 묻는 질문에 “예방적 선제 조치”라고 답했고, 민주당 내 군사전문가로 꼽히는 부승찬 의원 역시 같은 날 “국회 차원에서 견제 기능이 필요하다. 제도적 법적 장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야당 의원들의 언급처럼 계엄선포 요건 강화를 중심으로 한 법안 발의는 ‘만에 하나’를 위한 견제 조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야권에서 불 지핀 계엄 의혹은 국민적 트라우마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원씨앤아이가 지난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계엄준비 의혹’ 주장에 대한 공감도를 조사한 결과 ‘공감한다’가 51.2%, ‘공감하지 않는다’가 42.9%로 집계됐다. 민주당 지지층의 78.1%는 의혹에 공감했고, 국민의힘 지지층의 78.9%는 의혹에 공감하지 않았다. 

 

‘계엄 괴담’ 팩트체크 해보니…

공포감은 온라인상에서 ‘계엄 괴담’으로 확산됐다. 가장 먼저 제기된 음모론은 국군의날 기념행사를 둘러싼 계엄설이다. 지난 9월 3일 올해 국군의날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고, 시가행진에 전차와 장갑차가 동원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친야 성향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국군의날을 핑계로 계엄령을 선포하려는 것 아니냐’ ‘국군의날 훈련인 척 계엄 준비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10월 1일 국군의날 행사가 종료된 이후에는 이번 행사에 예산 80억원이 투입된 것을 두고 ‘계엄준비와 군에 당근을 던져주는 퍼레이드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주간조선과 통화에서 “정치권에서 제기된 음모론에 대해 국방부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수는 없다”면서도 “계엄이 지금 같은 평시에 시행될 수 없고, 군에서 관련해 준비하거나 회의한 적도 없다. 우리 군이 국민과 소통하고 성원받고 있는 데다, 병사들부터 모두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는데 계엄을 하라고 해서 움직일 만한 제대가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국군의날 기념행사에 대해서는 “국민들께 저희 군의 모습을 보여드려 국민들께서 안심하시고 군을 성원해주시도록 하는 목적, 북한에 우리 군의 전투력과 군사력을 과시해 대북 억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 방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 방산 수출에 도움이 될 목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군이 최근 육·해·공군 주둔지나 훈련장에 설치된 경계용 방범카메라(CCTV) 1300여개를 철거하고 교체 중인 것도 계엄 음모론으로 연결됐다. 지난 9월 11일 CCTV 철거 소식이 보도되자 일부 네티즌은 ‘계엄설이 나오는 상황에 CCTV를 철거한 점이 의심된다’ ‘CCTV 철거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오는 것은 북한에 침공 빌미를 제공하고, 그를 핑계로 계엄을 선포하려는 것 아니냐’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납품업체가 중국산 CCTV를 국산으로 속여 납품했고, 우리 군이 지난 7월 납품된 장비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이를 확인해 보안문제로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다. 앞서의 대변인은 “CCTV에 내장돼 있는 중국산 부품이 중국의 특정 서버에 연결돼 정보 유출 우려가 있어 그를 차단하기 위해 철거했고, 순서에 따라 교체 중”이라고 전했다. 

2022년 11월 9월 입법예고된 후 2023년 5월 공포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은 계엄설의 근거로 제시된 내용 중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입법예고된 직후 시행령 개정안 주요 내용에 ‘(대통령 경호처) 처장은 경호구역에서 경호 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 기관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담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불거진 바 있기 때문이다. 시행령 개정이 국회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나,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이 이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점도 의심의 근거가 됐다. 이에 지난 9월 초부터 일부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 장기집권까지 생각 중인 것 같다’는 주장과 함께 2022년 11월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던 당시 보도된 기사들이 인용됐다.

그러나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은 논란 끝에 보류됐다가, 지난해 5월 ‘지휘·감독’ 문구 대신 ‘관계기관 장과의 협의’로 변경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현행 시행령을 살펴보면 ‘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법 제15조에 따라 경호구역에서의 경호업무를 지원하는 인력·시설·장비 등에 관한 사항을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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