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저녁 경기 수원의 임광문고에 한강 작가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임광문고는 18일 오전이 되어서야 교보문고로부터 한강 작가의 책을 소량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photo 이용규
18일 저녁 경기 수원의 임광문고에 한강 작가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임광문고는 18일 오전이 되어서야 교보문고로부터 한강 작가의 책을 소량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photo 이용규

"오늘 ‘소년이 온다’ 일곱 부가 왔습니다. 오전에 두 권, 오후에 다섯 권. 노벨상 수상 이후 어제까지 교보문고에서 한 권도 받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받은 것입니다. 파주에 있는 모든 인쇄소가 한강 작가의 책을 찍어낸다고 하더군요. 100만 부를 찍어내고, 대형 서점서는 또 그만큼 팔린다는데 그 책이 다 어디로 간 겁니까.”

소설가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타전된 것은 지난 10일(한국시각), 목요일 저녁이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출판업계는 미증유의 일시적 대호황을 맞고 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겠다는 이들이 몰려들며 기존 물량이 순식간에 소진됐고, 이후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쇄소가 돌아가며 책을 찍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열기가 지역의 군소 서점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대형 서점에는 한강의 책이 원활히 공급되지만 지역 서점은 뒷전이라는 것이다.

특히 소매와 공급 총판(도매)를 겸하는 교보문고가 지역 서점에게 물량을 일부러 공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한국서점연합회에 의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경기 수원에서 25년째 ‘임광문고’를 운영하는 조승기(63) 대표는 18일 저녁 기자와 만나 “교보문고가 실수한 사건인 것도 사실이고, 애초 대형 총판에 100% 의존해야 하는 공급망의 구조적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대표는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교보문고 유통서비스를 통해 한강 작가의 책을 발주했다. 당시에는 50부 가량의 주문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10일 목요일 발표 후 11일 금요일부터 인쇄소가 돌아갔을테니, 그 전 물류창고에 쌓여 있던 재고를 선착순으로 받은 셈”이라며 “아마 그 순간 전국의 모든 서점이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교보문고 유통서비스를 통한 발주가 막혔다고 한다. 실제 교보문고는 14일까지 ‘도서 1종당 10부로 주문량을 제한하여 접수를 받겠다’는 공지를 띄우기 전까지 발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임광문고에서 접속할 수 있는 교보문고의 발주 페이지에는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의 재고가 0권으로 표시되어 있다. photo 이용규
임광문고에서 접속할 수 있는 교보문고의 발주 페이지에는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의 재고가 0권으로 표시되어 있다. photo 이용규

조 대표는 15일부터 17일까지 발주를 계속했으나, 18일 오전에서야 소량이 도착했을 뿐이라고 했다. 통상 수도권 지역에서 주문한 도서는 바로 다음날 도착한다. 조 대표는 “오전 ‘회복하는 인간’ 10권, ‘소년이 온다’ 2권을 받았고, 오후엔 ‘채식주의자’ 3권, ‘작별하지 않는다’ 3권, ‘소년이 온다’ 5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기간동안 다른 총판인 웅진북센에서는 소량이나마 한강 작가의 책을 계속 공급받았고, 이날 오후에도 ‘소년이 온다’를 20권이나 받았다고 한다. 교보문고는 10일 밤부터 17일 오후 5시까지 한강 작가의 책 40만2천부를 판매했다.

장서 6만권을 보유한 임광문고에서 11일부터 18일까지 팔린 ‘소년이 온다’는 단 19권이다. 그 가운데 4권은 기존 재고다. 수상 이후 받은 책은 15권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손님이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곳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한다. 금요일이었던 18일까지 아직 한 권도 받지 못한 서점도 있다. 주말에는 도서 공급이 되지 않는다.

조 대표는 전체 책 발주량의 70%를 교보문고와 거래하고 있다고 했다. 도서를 전국에 공급하는 대형 총판은 웅진북센, 한국출판협동조합, 교보문고 등 3~4곳인데, 소매를 겸하는 곳은 교보가 유일하다. 교보문고는 설립 초창기인 1980년대 초반부터 개별 영업점 단위로 서점 납품을 하다, 최근 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국서련)와 의기투합해 ‘지역서점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도매 사업을 넓혔다.

당초 지역 서점들의 반응은 좋았다고 한다. 마진을 적게 남겼고, 판매 시스템 구축 등에도 도움을 줬다고 한다. 조 대표 역시 “교보문고가 가지고 있는 책 데이터를 활용해 검색 시스템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며 “포스(POS) 단말기 등도 교보문고에서 구축해준 것”이라고 언급했다. 3~4개 총판과 거래하던 그는 이런 점을 고려해 교보와 웅진북센 두 곳을 남기고 다른 곳은 정리했다고 한다. 한국서련의 조민지 정보화사업팀 팀장은 “도서 정가의 5%만 가져간다는 약속 탓에 교보문고와 단독거래하는 서점이 많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조 대표는 “완전히 총판 호의에 기대야만 하는 구조”라며 “교보뿐 아니라 공급 총판들이 예스24,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은 물론 쿠팡과 인터파크 같은 커머셜에 대량으로 먼저 공급하느라 우리는 뒷전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도서는 1000부, 2000부 수준의 소량 판매가 대부분이니 책을 가져온 뒤 물량을 배분하는 매뉴얼이 따로 없었을 것”이라며 “교보문고 담당자에게 ‘지역 서점 몫은 별도로 설정해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다”고 덧붙였다. 공급 계약서에도 그런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조 대표는 “공급 총판들이 지역 서점에 책을 내준다고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열 권, 스무 권씩 (조금씩) 주느니… 그러니 교보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서점조합회 소속 지역서점들이 서로 "한강 작가의 책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을 공유하고 있는 메신저 화면. photo 이용규
한국서점조합회 소속 지역서점들이 서로 "한강 작가의 책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을 공유하고 있는 메신저 화면. photo 이용규

조 대표는 “노벨상이 많이 허망하다”며 “이런 대사건은 평생 처음이고 앞으로도 없을텐데 1000부가 들어왔으면 1000부를, 1만부가 들어왔으면 1만 부를 팔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너무나 자랑스러운 사건이었지만, 내가 장사꾼이라는 걸 생각하는 순간 그 여운이 다 날아간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나마 이번에 ‘여기도 서점이 이렇게 큰 게 있었다’는 사람들도 있더라”며 그는 “책은 못 사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야 했지만 홍보는 한 셈”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노벨상 발표 이후 한강의 책 판매 부수는 백만 부를 돌파했다. 시장을 90% 이상 점유하고 있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3사를 합쳐 16일 오전 9시 기준 103만2000부다. 그러나 판매량을 공개하던 대형서점들은 지역 서점들의 항의 이후 판매량을 더 이상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서련은 보도자료를 통해 “18일 오전 교보문고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서한을 국회에 전달했다”며 “다음주 이내로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보문고 지역 물류 담당자는 이에 대해 “주문은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지만, 인쇄소에서 물량을 찍어내는 데 달려있는 문제“라며 “얼마만큼을 공급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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