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무총리가 거주하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지난 3월 22일 오후 2시부터 3시간 동안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뢰사건 재판의 현장검증이 열렸다. 총리의 거주 및 집무 공간인 공관에서 벌어진 초유의 일로 법원과 검찰·변호인, 언론 앞에서 뇌물이 오가는 장소로 활용됐는지를 공개 검증 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이날 현장검증은 총리 비서진과 경호원, 의전요원 등이 붐비는 총리 공관에서 이들의 눈을 피해 과연 뇌물이 오가는 ‘검은 거래’가 가능한지가 집중 검증 대상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 주관으로 진행된 현장검증은 정운찬 현 총리가 거주하는 본관 건물 1층에서 이뤄졌다. 사건이 벌어진 2006년 12월 한 전 총리와 정세균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그리고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과의 식사 자리가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현재 정 총리의 집무실로 쓰여 현장검증은 검찰 요청에 따라 정 총리가 사용하는 집기를 모두 치우고 원형탁자와 의자를 배치해 오찬 당시의 모습을 복원한 채 이뤄졌다.

지난 3월 22일 현장검증이 열린 날 총리공관 본관 앞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photo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월 22일 현장검증이 열린 날 총리공관 본관 앞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photo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갤러리와 카페가 많이 들어서 유명해진 삼청동길의 가운데쯤에 위치한 총리 공관은 총 대지가 1만4999㎡(약 4534평)로 본관 건물을 비롯해 한옥으로 지어진 삼청당, 차고와 경비실로 쓰이는 건물 등 크게 3동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본관은 2층 양옥의 석재 건물로, 1층(482㎡)은 총리 집무실로 쓰이고 2층(330㎡)은 총리의 침실과 회의실이 있다. 원래 일본식 목조 건물이었으나 노신영 총리 재임 때(1985년) 원래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다. 정 총리는 현재 부인과 미혼인 2명의 자녀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본관이 정 총리의 주거와 집무 공간으로 주로 쓰인다면 공식 의전 일정은 주로 본관에서 20~30미터 떨어진 삼청당에서 열린다. 전통 한옥 형식의 삼청당은 485㎡ 규모의 단층 건물로 목조 단청 형식으로 지어졌고 연회실과 회의실로 구성돼 있다. 기존 한옥을 1979년 증·개축했고 ‘삼청당(三淸堂)’이란 현액(縣額)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증·개축은 대목장 신응수씨가 맡았으며 신씨에 따르면 원래 있던 한옥은 지방에 있던 건물을 옮겨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외국 귀빈 응대나 고위 당정회의, 총리 주최 각종 리셉션 일정이 이곳에서 주로 열린다.

연회실·회의실이 있는 삼청당.
연회실·회의실이 있는 삼청당.

총리 공관 터는 조선조 중엽 왕자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태화궁(太和宮)이 있었던 자리로 전해진다. 이후 고종황제가 매부, 즉 부친인 흥선대원군의 사위 이윤용(李允用·매국노 이완용의 형·1854~ 1939)에게 이 대지(垈地)를 하사했는데 이윤용이 다시 휘문의숙을 설립한 민영휘(閔泳徽)의 아들 민규식(閔奎植)에게 매각했다. 민규식은 다시 이 대지를 경성전기주식회사에 팔아 1945년 광복 전까지 경성전기주식회사의 관사로 사용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광복 후 국가로 귀속되었다가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인수했고 1948~1961년에는 국회의장 공관으로 사용되다 1961년 5월부터 총리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때까지는 마땅한 총리 관저(官邸)가 없어 내각책임제였던 제2공화국 내각 수반이었던 장면(張勉) 총리는 반도호텔을 임시 관저로 사용하기도 했고 1961년 1월엔 조선호텔을 총리 관저로 사용키로 해 ‘총리의 위신을 위해 외화벌이를 포기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총리 공관 경내는 5000여주에 달하는 다양한 수목들이 들어차 있다. 정원수 중 등나무와 측백나무는 각각 천연기념물 제254호와 255호로 지정돼 있다. 등나무의 수령(樹齡)은 약 900년, 측백나무는 약 3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키가 11미터나 되는 측백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측백나무로 같은 수종 중에선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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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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