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 있는 브라운대학. / photo 브라운대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 있는 브라운대학. / photo 브라운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2004년 봄, 졸업반 선배들의 대학입시 발표가 한창이었다. 당시 관심은 내신 전교 1등, 만점에 가까운 SAT 성적, 게다가 쿰 라우데 소사이어티(전미 최우수 성적의 고등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클럽) 회원이기까지 한 A군에게 집중돼 있었다. 그의 목표는 하버드대학. 그러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다. 8개 아이비리그 대학에 모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20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최고의 성적을 자랑하던 A군이 최상위권 대학에 모두 불합격한 건 한국인들 입장에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대학, 특히 오랜 기간 입학사정관제가 정착된 상위권 사립대학 입시엔 주관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가 있다.

상위권 사립대학 원서엔 내신성적과 시험 성적표 외에 특별활동 경력, 교사 추천서, 자기 소개 에세이까지 기재해야 한다. 10명 미만의 입학사정관들은 매년 수만 통에 달하는 원서를 몇 번씩 꼼꼼히 읽고 학생의 성적, 성품, 성공 가능성까지 전체적으로 평가한다. A군은 운동 등 특별활동엔 특이점이 없는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성적 외에 다른 점에서 자신을 차별화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실제로 최상위권 성적을 보유한 우등생의 아이비리그 합격률은 20~25% 남짓에 불과하다.

2005년 브라운대학에 지원할 당시 내 고교 성적은 상위권이긴 했지만 결코 완벽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점수 몇 점 올리는 데 목매는 대신 봉사활동과 오케스트라, 기숙사 사감 등 심도있는 특별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 진료소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여름방학 땐 해외 의료봉사팀을 따라갔다. 당시 경험은 자기소개서를 쓸 때 많은 도움이 됐다. ‘브라운의 자유로운 학풍을 잘 살려 학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의학을 공부해 의료 혜택을 못 받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돌보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학생이 자기소개서에 특별활동 관련 내용을 써야 하는 건 아니다. 자기소개서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긴다. 자신을 위해 평생 헌신한 이민자 부모님의 이야기, 늘 자신에게 의지해야 했던 지체장애 친구 이야기도 괜찮다. 내 친구 중엔 고등학생 때 심하게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 기도까지 했던 경험담을 자기소개서에 포함시킨 경우도 있었다.

미국 상위권 대학에 지원할 때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또 하나의 질문은 ‘당신이 어떤 면에서 우리 학교와 잘 맞는가’ 하는 것이다. “하버드 학생들은 세상을 지배하고 브라운 학생들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다. 하버드대는 특권의 상징이며 전통을 중시한다. 반면 브라운대는 역사적으로 종교의 자유·민권운동·반전(反戰)운동의 선두임을 자부해 왔으며 자율적 학풍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위 질문의 답은 학생마다 학교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브라운대는 동문(同門)에게 입시 인터뷰를 전임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나도 지난 몇 달간 인터뷰어(interviewer) 자격으로 브라운대에 지원하려는 한국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자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성적표로 가늠할 수 없는 지원자의 성격과 태도, 그리고 다른 학교가 아닌 ‘브라운’을 지원한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인터뷰하는 사람의 주관이 작용할 수밖에 없지만, 동문이라면 모교에 어울릴 만한 학생을 잘 구별할 것이란 믿음을 바탕으로 설립된 제도다. 내가 인터뷰한 한 학생은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과학영재였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내 느낌은 ‘브라운보다 과학연구에 중점을 두는 대학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합격발표가 나기 전 브라운대에 제출했던 자신의 원서를 철회했다.

미국의 대학입시는 한마디로 예측불허다. 그러나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결코 아니다. 통계적으로 최상위권 대학엔 최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지원하지만 평균 합격률은 매년 10%를 밑돈다. 수만 명의 우수한 지원자 중 성적 하나만으로 10%를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각 학교가 선호하는 학생을 골라내기 위해 입학사정관제가 활용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심혜기 인턴기자·미국 브라운대 졸업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