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일본]  학교급식 빵·우유로 대체 아이들 입만 열면 “배고프다”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사회/르포
[2160호] 2011.06.13
관련 연재물

[일본]학교급식 빵·우유로 대체 아이들 입만 열면 “배고프다”

3·11 대지진 100일, 센다이에서 온 편지

김숙현  도호쿠대 교수 

복구상황 2.7%… 전력 공급 70% 선, 각국 지원금 피해 주민에 전달 안 돼, 일본 언론들 정부 비판으로 돌아서

센다이 시내 중심은 대부분 일상 복귀
차 타고 10분만 나가면 처참한 현장 ‘후쿠시마 원전’ 남의 나라 일인 듯 생각
▲ 지난 5월 21일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려다본 미야기현 센다이 지역. photo 연합뉴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100일이 다 되어간다. 센다이 시내 중심지는 피해가 컸던 일부 고층 건물이나 호텔이 영업을 재개하지 못하는 것을 빼고는 지진 이전의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생필품 구입에도 제한이 없어졌고, 슈퍼마켓에도 물건이 제대로 구비돼 있다.
   
   그렇지만 차로 10분여를 달려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피해 중심 지역에 가 보면, 3개월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아직 참사의 모습이 생생하다. 반 토막 난 집들, 나뒹굴고 있는 자동차와 철골, 갯벌에서 올라오는 썩은 악취…. 바닷물을 뒤집어썼던 해안가 주변의 공장과 창고들, 항만 시설 등은 이미 벌겋게 녹이 슬기 시작했다. 붕괴된 건물에서 나온 폐자재나 쓰레기 더미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아직도 커다란 숙제인 듯 보인다.
   
   4월 중순 센다이로 돌아오고 나서 네 번에 걸쳐 피해 지역을 둘러보았다. 해안가로 근접할수록 피해 규모는 컸다. 방송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피해 지역과 피해 규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커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지진과 쓰나미의 가공할 힘에 소름이 돋았다.
   
   
   신원 확인 안 된 시신들 가매장
   
   4월 중순 처음 이시노마키(石卷)시를 방문했을 때는 자위대가 긴급 투입되어 만들어 놓은, 그야말로 차 한 대 정도만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을 빼고는 사방이 폐허 그 자체였다. 완파된 가옥은 흔적만 남아 있었고, 반파된 가옥에 나뒹굴던 열린 옷장문 사이로 그 집 가족의 옷들이 삐져나와 있는 게 보였다. 주인 잃은 집 앞에는 졸업장, 사진 앨범이 처연히 놓여 있었다. 바닷가 어귀에 있어야 할 배는 생뚱맞게 민가 옆에 뒤집혀 있었고, 아예 집이 휩쓸려 간 곳에는 토대만이 남아 겨우 집터였다는 흔적만 있었다.
   
   이시노마키 톨게이트를 내려오니 공터에서 굴삭기가 시신을 가매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있었다. 그 옆에는 매장한 시신의 신원 확인을 도와줄 수 있는 물건이나 유품들이 널려 있었다. 일본은 매장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화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신 확인이 어렵거나 시신 안치소의 상황에 따라 가매장을 하고 나중에 화장을 하게 된다. 시신 가매장 현장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찾아와 화장을 하게 된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피해 현장 방문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 5월 이뤄졌다. 이시노마키보다 더 센다이 시내에 가까운 다카조(多賀城)시와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시, 그리고 센다이(仙台)시와 센다이공항을 둘러보았다. 센다이공항은 아직 국내선만 운항을 하고 있었는데, 피해가 심각한 공항 내부공사를 막 진행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여전히 쓰나미로 인해 쓸려간 건물 잔해와 자동차들, 쓰레기 더미가 방치돼 있었다. 2월 말에 들렀던 공항 인근 소바집도 기둥과 지붕만 남아 있었고, 주변에서 렌터카를 운영하던 성실했던 사장님의 집과 일터도 쓰나미에 떠내려가 버렸다. 첫 방문에서 한 달이 지났지만, 쓰나미 이후의 주변 모습은 4월 방문했을 때와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강·하천 시커멓게 오염
   
   히가시마쓰시마는 굴 양식과 농업을 생계 수단으로 삼던 무척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그 이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잊게 할 만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업을 재개한 한 소학교에서는 아직 학교 급식소가 운영되지 않아 매일 빵과 우유, 잼으로 급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프다”는 불평을 입에 달고 있다고 한다. 카레나 햄버거 등 평소 즐겨 먹던 음식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현 상황이 아프리카 빈민국도 아닌, 경제 대국 일본이라는 현실이 엄청난 모순으로 다가왔다.
   
   열흘 정도 지나 다시 피해 지역을 찾았다. 첫 번째 피해 지역을 포함해 미야기(宮城)현 연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4월 중순 때보다는 길이 넓어져 있었고, 주택들도 많이 정리돼 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방대한 양의 잔해는 처리되지 않고 있었고, 작업에 임하는 인부들의 수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조금 더 인력을 투입해 빨리 일을 진척시켜야 할 텐데, 왜 이리 더딘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강이나 하천이 오염되어 시커먼 색으로 변해 있었고, 한번 소금물을 먹었던 나무들은 하나같이 적빛을 띠고 죽어가고 있었다. 일의 진척도와 피해 규모를 가늠해 보면 한두 달, 아니 1~2년 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 보였다.
   
   실제 일본에는 아직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쓰나미 이재민만 10만명이 넘는다. 당장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가설 주택이 지어지고 있지만 수용 규모가 3만명에 불과하다. 전체 복구 상황을 보면 진척도가 2.7%에 불과하다. 전기는 약 70%가 재공급됐다. 철도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재개통됐으나 완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센다이공항만 해도 국제선은 아직 재개통되지 않고 있다.
   
   
   거리 곳곳에 “힘내라 도호쿠” 플래카드
   
   3월 11일 대지진 이후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은 지원금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와테(岩手)현 일부를 제외하곤 아직 지원금이 제대로 피해자들에게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공평성을 기하기 위해 구청에서 피해 상황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지원금을 나누는 데 시간을 너무 쏟다보니 지원금이 절실한 피해자들이 제때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일본 국회에서는 6월 안으로 ‘복구’ ‘부흥’을 위한 예산안 통과가 예정돼 있다. 지진 발생 이후 ‘부흥위원회’라는 조직도 결성됐다.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명한 작가, 교수,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유명 연예인들, 일부 정치가나 저널리스트들이 피해 지역 어디어디를 다녀왔다며 방송에 나와 어두운 얼굴을 하고 한마디씩 하는데, 피해자들에 대한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비판이 많다.
   
   센다이 시내의 상점가나 피해 지역 구석구석, 더욱이 버스·택시 등에도 요즘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게 눈에 띈다. “がんばれ東北,がんばれ宮城!(힘내라 도호쿠, 힘내라 미야기!)”라는 플래카드다. 그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누구를 향해 던지는 문구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주어도, 목적어도 상실한 틀에 박힌 문구에 정말 힘이 나고 있는지 일본인에게 묻고 싶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힘을 내 복구, 부흥하자라는 의미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쓰나미 이후 3개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고통과 피해는 도호쿠 지방, 일부 동일본의 문제이지 전 일본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원전이나 쓰나미의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의 사람들은 마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 정도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정말 복구, 부흥은 가능한 것일까?
   
   특히 후쿠시마 원전 문제는 일본 현지에서도 정말 오리무중이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마치 국가로부터 버려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외국인의 눈으로도 정말 후쿠시마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 일본인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관서지방과 관동지방의 지역색,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지리적 특성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남의 나라 일 보듯 한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원전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이주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떠난다는 것도, 새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하소연에 제대로 귀 기울이는 것 같지 않다.
   
   
   정부 불신 갈수록 팽배
   
▲ 아직 국제선이 개통되지 않은 센다이공항에 마스크를 쓴 승객들이 앉아 있다. photo AP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폭국으로 항상 방사능이나 원자폭탄의 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왔다.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건 때에도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했다. 그러나 정작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야기를 회피하고 있다. 이런 대응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후쿠시마와 그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다. 자신의 아이가 오염된 물과 흙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도 과연 남의 일 보듯 할까 의문이다.
   
   센다이는 후쿠시마 원전 지역에서 100㎞가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다. 3월은 편서풍의 영향과 함께 북서풍이 강했기 때문에 원전 사고 지역으로부터의 영향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정부의 말도 여러 번 바뀌면서 점점 불신감이 팽배해져 가는 상황이다. 필자 또한 센다이에 거주하는 한 사람으로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센다이는 다른 도호쿠 지방도 그랬듯이 청정 지역이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물도 사다 마셔야 한다. 방사능 수치를 확인하고 비가 오면 아예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 위험해서도 아니고 위험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결국은 20년 후에, 혹은 30년 후에 자신에게 문제가 나타날 경우 아무도 책임을 져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은 아직도 잘 불평하지 않는다. 잘 표현도 하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런 태도를 일본인들은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면 적지 않게 답답하다. 심하게 말하자면, 저런 총리와 내각을 왜 일본인들은 가만두고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지난 6월 1일 총리 불신임안이 국회에 회부됐고, 총리가 조만간 사임을 한다는 조건으로 불신임안이 부결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곧 그만둘 총리에게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토양·공기 오염, 여름철 전염병 우려
   
   처음 지진이 발생했을 때와 비교해 일본 언론의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처음 지진이 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그리고 원전 문제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정부가 발표했을 때만 해도 언론은 ‘서로 돕는 일본인’ ‘이재민의 눈물과 고통’을 중점적으로 부각시켰다. 지금은 일본 언론도 정부의 무능함을 앞장서 비판하고 있다.
   
   일본의 여름은 대단히 덥다. 습한 공기를 보면 영락없는 아열대기후다.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데 쓰나미로 밀려온 진흙 더미가 아직 토양을 덮고 있고, 건물 잔해와 기타 부패물들이 갯벌의 먼지와 함께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현지에서 느끼기에는 방사능 수치보다 그 오염이 더 심각하다. 조만간 장마철로 접어들면 습하고 더운 날씨는 전염병이나 기타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 지진 이후 전개되는 상황을 접하며 무엇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결국 지역사회의 힘도, 국가의 도움도 피해 당사자에게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피해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 크고, 피해자들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감수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독신주의를 고수하던 일본 여성들이 지진 이후 결혼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고 있는 현실도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내 핏줄밖에 없다는 본능적인 보호·생존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유명하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통해 체득하고 있다. 이런 교육이 오히려 일본 특유의 개인주의를 키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유독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
   
   만일 일본 대지진 같은 참사가 한국에서 벌어졌다고 상상을 해보자.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당시 보여주었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만 떠올려봐도 일본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됐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원전 문제도 더 많은 관심과 의견들이 표명됐을 것이고, 들끓는 민심을 마주한 정부도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해결을 위해 애썼을 게 틀림없다. 필자는 그 어느 때보다 일본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때로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한국적 방식이 일본에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숙현
   
   1972년생.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 졸업. 2007년 도쿄대 박사(국제관계학). 2000~2008년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 비서. 2008년 도호쿠대 대학원 법학연구과 교수 부임.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