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호 포항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라며 최근 포항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감사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박승호 포항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라며 최근 포항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감사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12월 26일 찾은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포항시청사. 건물 외벽엔 ‘Thankyou 포항’이라는 간판과 함께 노란 스마일마크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이 펄럭였다. 입구에 들어서니 마주하는 사람들이 서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직원들은 모두 가슴에 스마일 배지를 달았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출입구, 화장실, 계단 등 청사 곳곳이 ‘감사’라는 글자로 도배가 돼 있었다. 동해안의 작은 도시 포항에서는 때아닌 ‘감사’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승호(54) 포항시장이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나도 모르게 덩달아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유도 8단의 무도인, 청와대 비서관 등의 이력에 거침없는 추진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박 시장의 평소 이미지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며 어색해했더니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지” 하며 껄껄 웃었다.

9층 시장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1시간여 동안 내내 ‘감사의 미학(美學)’을 풀어놨다. “포항 전체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냐”며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행복해지는 지름길이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포항에서 또 한번 잘살기 운동인 ‘새마음운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뜬금없다는 생각도 든다. ‘감사운동’을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 “2010년 재선에 성공한 뒤 포항이 잘사는 길을 고민했다. 곳곳을 둘러봐도 찌푸린 얼굴들뿐이었다. 생활수준이나 경제력 등이 나쁜 것도 아닌데 모두들 찌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포항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그랬다. OECD 국가들 중 자살률·이혼율·저출산율은 최고이고, 10대 경제대국이라는데 국민의 행복지수는 저개발 국가들보다 낮은 63위에 불과했다. 작년(2011년) 말부터 전국 곳곳에서 학생자살, 학교폭력 등으로 어두운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감사운동은 직접 낸 아이디어인가. “2011년 말 우연히 지역 기업인 포스코ICT(포스코 계열사)에 들렀다가 ‘감사운동’을 접했다. 고장난 기계에도 ‘감사하자’는 스티커를 붙여놓고 일하는 근로자들을 봤다. 허남석 포스코ICT 대표에게 감사운동의 효과, 추진방법 등을 듣고서 ‘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코ICT의 도움을 받아 올(2012년) 3월 포항시청 공무원들에게 감사마인드 교육을 실시했다. 반응이 좋아 점차 시민들에게로 전파해 나갔다.”

- ‘감사운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매일 감사한 일 5가지 쓰기, 감사편지·엽서 쓰기, 전화·메시지(SNS)로 감사한 마음 표현하기 등 크게 3가지다. 참 쉬운데 처음엔 어색하고 어렵다. 포항시는 500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감사한 일을 적을 수 있는 감사수첩을 만들었다. 교육청과 협의해 포항시내 초·중·고교생 7만7000여명에게 나눠줬고 이후 포스텍(옛 포항공대), 해병대, 종교단체 등 각 기관으로 전파했다. 인구 53만명 도시에서 현재 15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감사운동’ 교육을 진행 중이고, 수시로 감사 쓰기 공모전도 열고 있다. 지난 5월엔 ‘감사나눔 범시민운동본부’도 출범했다.”

박 시장은 자신이 쓰고 있는 감사수첩을 꺼내 보여줬다. ‘400년 조상 뼈를 묻은 고향의 시정을 맡겨주신 데 감사합니다’ ‘매일 아내의 얼굴이 밝아 보여서 감사합니다’ 등 감사 메시지가 빼곡했다. “부인(이하옥씨)도 쓰고 있냐”고 물으니 “매일 내 수첩만 훔쳐보고 아직 안 쓰고 있다”며 “절대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참여해서 스스로 바뀌는 것이 이 운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포항시는 시의 기존 캐치프레이즈인 ‘Powerful 포항’도 ‘Thankyou 포항’으로 바꿨고, 시립 청소년수련관 이름도 ‘감사연수원’으로 바꿨다. 호미곶을 비롯해 포항시내 20여곳에 ‘감사 둘레길’을 만들었고, 시청사 내에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걷기운동을 유도하기 위한 ‘감사계단’도 만들었다.

-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거부반응도 만만찮았을 텐데. “내가 기독교인이어서 그런지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때문에 도입 초기 불교·기독교·천주교 등 각 종단 지도자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 지금은 모두가 스스로 참여하고 있다. 또 ‘민생을 챙기는 게 우선이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었는데, 공무원들을 더 독려해 빈틈 없는 시정(市政)을 위해 노력했더니 그런 지적도 많이 사그라졌다. 특히 감사수첩을 나눠주면서 선관위로부터 (기부행위) 지적도 당했는데, 이제는 교육당국과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이 범시민 운동으로 발전시켜서 시가 나서지 않고도 자발적인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나. “우선 학교의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포스코교육재단 소속 학교들은 ‘고맙day’를 운영해 감사한 마음을 나누는 행사를 주기적으로 연다. 재단 측은 ‘아이들의 인성교육으로 감사운동만 한 게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포항여고 등 몇몇 학교는 자체적으로 감사노트를 만들어 학생들의 일과에 포함시켰다.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반성문 대신 ‘감사노트 쓰기’를 도입했다. 학교폭력 등으로 송치된 학생들에게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긍정적인 효과에 따른 자발적 변화다.”

- 7개월 동안 초·중·고교 축구 리그전도 열었다던데. “감사운동을 촉진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말로만 하는 감사보다는 직접 부딪치고 땀 흘리면서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4월부터 7개월 동안 초·중·고 82개 학교가 참가했고, 선수가 아닌 일반 학생들만 뛸 수 있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동문 등 1만5000여명이 운동장을 찾아 하나가 됐다. 대회 이후 학교들로부터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 전국적으로 확산될 움직임은 있는가. “불과 10개월여 동안 무려 100여개의 기관·단체가 벤치마킹을 하러 다녀갔다. 지난 10월엔 전국단위 단체인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 창립하면서 나를 이사로 위촉했다. 이를 계기로 청와대에 초청돼 ‘감사운동’을 소개했는데, 이명박 대통령께서 이 운동에 대한 관심과 확산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미국 국민은 1인당 하루 평균 38번 ‘Thank you’를 말한다고 한다. 감사가 넘치는 나라이니 세계 일류가 안 될 수 있겠나’고 말씀하셨다. 새해부터는 전국 곳곳에서 감사운동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시장) 임기가 끝나고 나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닌가. “포항시는 틀만 제대로 만들어주고, 앞으로는 국민 스스로가 발전시켜 범시민운동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새마을운동도 처음엔 국가가 주도했지만, 결국 좋은 것을 확인한 국민이 스스로 발전시키고 이어나간 운동이다. 감사운동 역시 국민 스스로가 이어나갈 것으로 믿는다. 박근혜 당선인이 강조하는 ‘대화합’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지역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등으로 조각조각 쪼개진 우리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새마음운동’이기 때문이다.

키워드

#인터뷰
최재훈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