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 일로읍에 큰 연못이 있다. 33만㎡(10만평)쯤 된다. 일제강점기 때 주민들이 평야에 삽으로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였다. 지금은 연꽃이 산다. 백련(白蓮)이 산다. 회산지라고도 하고 백련지라고도 한다. 더 이상 저수지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용도 변경은 1952년에 조짐이 보였다.

그해 여름 저수지 옆 덕애부락 주민 정수동이 꿈을 꾸었다. 꿈에 학을 보았다. 열두 마리가 날아와 못가에 내려앉는 형색이 꼭 커다랗고 하얀 꽃동산이 열리는 것 같더라고 했다. 이상도 해라, 다음날 아들 정성조와 동생들이 못가에서 커다란 연이파리 열두 개를 주웠다. 아비에게 들고 가서 물었다. “아버지 이게 머요?” “연(蓮)이다. 이게 어디가 있대?” 아이들이 연잎을 주워온 못가 진흙더미를 뒤지니 연 뿌리 열두 개가 나왔다. 정수동은 주변에 줄을 쳐서 사람들 손길을 막고 고기도 못 잡게 하면서 연을 키웠다.

세월이 흘러 1979년 정수동은 하늘로 갔다. 그런데 문득 보니 어느 틈에 33만㎡ 저수지가 온통 연꽃 바다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 무렵 영산강 하구언 개발로 농업용수는 부족함을 벗어나고, 못을 에워싼 산 이름을 따서 회산지(回山池)라 부르던 연못은 백련지(白蓮池)로 이름을 하나 더 가지게 되었다.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연못으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 ‘연꽃’이라는 큰 글자와 화살표가 생겨났다. 연못 입구 비석에는 이런 내력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8월 말이면 너른 연잎 사이사이로 백련이 벙글벙글 피어난다. 비바람이 불면 연잎과 연꽃은 타악기 1만대를 두드리는 소리를 내며 춤을 춰댄다. 바람이 숨을 멈춘 날 연잎들은 꼭 수도승 무리처럼 꼿꼿하게 서 있다. 렌즈=캐논 EF 70-200mm, 셔터스피드=1/160초 조리개=f13, 감도=ISO100, 2014년 7월 촬영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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