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과 인간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함께 거주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서와 관습을 창조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조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이라고 정의했다. 번역하자면, ‘도시 안에서 그 관습과 도덕을 지키면서 거주하는 동물’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문화적인 동물이라는 의미다. 문화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정보를 수용하고 축적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순환구조다. 인간은 문화 안에 존재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발전시킨다. 인간사회에는 다른 동물들, 특히 유인원과 마찬가지로 분명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유인원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우월한 위치를 위해 경쟁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후 거기에 순응하며 산다. 자유 경쟁은 인간을 포함한 유인원들의 유전자 속에 내재한 삶의 기본이다.

이주를 결정한 창조적 소수

리더는 자신이 이끌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 이익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중요한 ‘매개체’를 이용한다. 공동체 전체는 이 매개체를 통해 유기적이며 역동적인 집단이 되어 동질성을 확인한다. 이 동질성은 다른 공동체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기 위한 정체성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이 된다.

우리는 이 매개체를 ‘이야기’라고 부른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인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주위를 흉내 낸다. TV에 등장하는 만화 캐릭터를 따라 말하고 행동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래 친구들을 제2의 자아로 받아들여 우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들이 공유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다. 그 후 그들은 자신의 식구, 부모,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삶의 ‘롤모델’을 찾는다. 일정한 교육을 받은 후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 도시, 국가에 그 단체를 이끄는 리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족, 고향, 도시라는 비교적 근접한 환경에서 벗어나 겉보기에는 자신하고 상관없어 보이는 요원한 인물이나 그 인물의 사상을 흠모하고 흉내 낸다.

리더는 인간이라는 속(屬)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200만년 전부터 등장했다. 당시 인류는 직립원인(直立猿人)이었다. 이들은 주로 사냥·채집으로 활동했다. 20만년 전에 등장한 현생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는 급격히 달라진 기후로 인해 자신의 고향인 아프리카 동부의 케냐, 에티오피아에 더 이상 거주할 수 없었다. 이들은 더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을 거쳐 유럽에 정착했다. 우리의 조상은 최초의 이민자였다. 그 당시 이주한 호모사피엔스는 불과 수천에 불과했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마음과 결심,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은 소수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공동체를 설득했고 그의 결단력으로 현생 인류가 탄생하였다.

리더는 현재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처해 있는 상황을 그냥 보지 않고 깊이 관찰(觀察)하는 자다. 그리고 그 깊은 사유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꿈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다. 호모사피엔스가 유럽에 정착하였지만 그곳은 다른 유인원들, 특히 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 등이 이미 거주하고 있었다.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유사 인종들을 멸종시키거나 흡수해 현생인류의 유일한 조상이 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집단생활을 누릴 줄 알았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위계질서를 수용하였다. 위계질서의 우두머리인 리더는 항상 창조적인 소수다. 그들은 다수로부터 자신의 인격과 아우라, 그리고 복잡하고 지난한 설득의 기술을 통해 신뢰를 얻는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아 공동체를 이끈다. 리더는 공동체를 인도하여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롭고 불안한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길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먼저 경험해 실제적인 지혜를 소유해야 했다.

호모사피엔스는 20만년 전에 등장한 후 거의 19만년을 빙하시대에 살았다. 이들이 오늘날과 같은 도시 안에 문명을 구축하여 살기 시작한 시기는 ‘최근’이다. 지난 19만년 동안 그들의 삶의 방식은 사냥·채집경제였다. 다른 동물들이 먹다 남은 사체를 하이에나와 같은 동물들과 경쟁하며 차지하였다. 그들은 점차로 창과 화살과 같은 무기를 개발하여 얼마되지 않아 최고의 포식자와 사냥꾼으로 군림하였다. 인류는 기원전 1만2000년경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지금의 중동지방이 살기 좋은 낙원이 되었다. 인류는 이곳에서 농업을 발견한다. 이제 인류의 삶은 농경 정착생활로 전환되었다.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인종과 달리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인류학자들은 당시 유럽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네안데르탈인을 호모사피엔스가 정복, 혹은 대치한 이유를 ‘소통’의 능력으로 뽑았다.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주거지나 무덤을 보면 이들은 10명 이상이 함께 거주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10명 이상이 모여 함께 살면서 생기는 갈등을 조절할 소통능력을 지닌 중재자가 없었다. 이들이 무덤을 장식한 것들로 미루어 보면 사후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는 사실은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호모사피엔스는 달랐다. 그들은 10명 이상 30~40명이 함께 거주하며, 전체의 이익을 위해 리더를 선임하여 갈등을 조절하고 소통의 원칙을 세웠다.

사고실험과 숭고함

리더는 공동체가 처할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 핵심을 추려낼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처하지도 않은 미래의 상황이나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자신이 그 안으로 들어가 가장 효과적인 대안을 찾는 방안을 사고실험(思考實驗)이라고 부른다. 사고실험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상대성이론을 고안하면서 사용한 과학적인 방법이다. 이 실험은 실제 실험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과학적인 진리에 접근한다. 리더는 현실의 다양한 문제에 부딪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상상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가진 자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철학자들은 자신에게 최선의 삶과, 그것을 넘어서 자신이 속한 도시나 공동체 안에서의 최선의 삶을 구분하였다. 자신에게 유일한 최고의 삶을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내가 아름다운 꽃이나 경치를 보았을 때 경험하는 감정에서 나온다. 그 대상은 나의 관찰 대상이 되어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라는 틀 안에 존재한다. 그 대상은 나에게 오감을 통한 쾌락과 친밀함, 그리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전달해 준다.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이며 자신에게 익숙한 어떤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서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장시키는 어떤 것을 숭고함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오르거나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숭고함은 우리를 우리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경지로 인도하기 때문에 경외, 불안, 감격과 같은 복잡한 반응을 유도한다. 숭고함은 우리가 거대한 자연과 우주 안에 존재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점을 가르쳐주고 그 깨달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전혀 다르다. 아름다움은 개인의 취향이라면 숭고함은 공동체의 취향이다. 아름다움이 개개인의 감정이라면 숭고함은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감동이다. 이와 같은 구별은 과학에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의 삶 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지 논설위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아름다움을 ‘조그만 사랑’으로, 숭고함을 ‘큰 사랑’으로 정의했다. 자신의 자식을 사랑하고 자기 정원을 가꾸고 자기에게 가까운 이들, 자기 식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작은 사랑’이다. 자기 식구에서 원지름을 넓히기 시작하여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와 대한민국, 그리고 자신하고 상관없는 아프리카나 중동의 난민에게까지 연민을 느끼고 이 낯선 자들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마음과 행동은 숭고함이다. 여기엔 용기와 위대함이 필요하다. 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힘들다. 큰 사랑은 조그만 사랑과는 달리 양보, 경쟁, 타협을 동반하는 정치행위를 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정치의 핵심이 바로 리더의 교양과 마음가짐, 그리고 수양이다.

라스코 동굴벽화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고고학자들은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독일에서 4만년 전부터 1만2000년 전까지 호모사피엔스가 제작한 벽화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지상의 편편한 벽이 아니라 굳이 지하 동굴 속으로 깊이 내려가 울퉁불퉁한 천장과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빙하시대에 살면서 지상에서는 사자, 호랑이, 그리고 코뿔소와 경쟁하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살았다.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창조적 소수는 정기적으로 지하 동굴로 내려가 그림을 그렸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들 중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라스코 동굴벽화가 가장 유명하다. 이 동굴벽화는 2만년 전부터 1만2000년 전까지 그린 그림들로 추정된다. 그들은 한때 이 지역에서 살던 동물들을 그렸다. 라스코 동굴벽화는 1940년 이곳에 거주하는 3명의 청소년이 발견하여 1955년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매일 수천 명의 방문자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영구히 문을 닫고 현재는 실제 동굴 옆에 ‘라스코 II’라는 모형 동굴과 벽화를 만들었다.

호모사피엔스는 길이가 22m가 되는 동굴 천장에 동물을 그렸다. 커다란 검은 황소, 세 마리 말, 떨어지는 암소, 도망하는 말, 그리고 사슴, 코뿔소 등이 등장한다. 이 동굴은 호모사피엔스의 ‘시스틴성당’이다.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만2000점의 그림을 그렸듯이, 누군가 구석기시대 예술가가 정기적으로 이곳에 내려와 벽화 600점을 남겼다. 이들 그림 중 당시 유럽지역에 서식하던 큰뿔사슴과에 속하는 메갈로케로스 벽화가 있다. 이 사슴의 키는 거의 2m이고 뿔의 폭은 3m에 달했다. 몸무게는 400~600㎏ 정도여서 호모사피엔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사냥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이 벽화를 보면서 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숭고함으로 인도됐다. 이 그림을 그린 무명의 화가는 지금부터 거의 2만년 전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길래 나에게 이 같은 감동을 주는가.

무명의 예술가는 어느 날 자신이 사냥하려던 메갈로케로스를 보고 그만 숨이 멎고 말았다. 이 큰 사슴은 자신이 무기를 가지고 사냥할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 될 정도로 숭고했다. 그는 그 순간에 무아(無我) 상태로 진입했다. 그는 사냥하려는 대상인 큰사슴을 보고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삶과 죽음조차도 넘어선 신비를 경험하였다. 그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신비한 경험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한 손에 횃불을, 다른 한 손엔 검은 숯으로 만든 물감을 들고 암흑과 같은 동굴로 들어갔다. 그는 왜 지하 동굴로 들어갔는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깊은 지하 동굴을 찾아 들어가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릴 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공간인 동굴에서 인류는 자신을 혁신하기 시작하였다.

라스코 동굴벽화의 ‘사슴’(왼쪽)과 ‘새의 가면을 쓴 인간’.
라스코 동굴벽화의 ‘사슴’(왼쪽)과 ‘새의 가면을 쓴 인간’.

관찰과 추상

그는 마치 자신이 태어났던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장소로 다시 돌아가 지상에서 본 큰사슴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큰사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두 가지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는 대상을 깊이 관찰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추상(抽象)의 능력이다.

관찰이란 자신이 응시하려는 대상을 깊이 보는 연습이다. 그 대상이 관찰자를 매료시켜 관찰자는 어느 순간에 자신이 사물을 응시하던 과거 방식에서 탈출한다. 이때 관찰자 자신은 사라지고 정신적으로 자신이 표현하려는 대상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합일(合一)은 숭고를 경험할 때 일어난다. 우리의 뇌와 눈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보려는 것을 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사물 그 자체를 보기 위해서는 자신이 응시하는 대상을 보고 또 볼 수 있는 인내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는 이 관찰 행위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정보란 그 대상만이 가지는 특징을 선별하는 작업의 결과다. 정보는 다른 대상과 연관된 가능성을 제거하는 수련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벽화를 그린 자는 추상의 능력을 지녔다. 추상이란 한 대상을 깊이 관찰한 후에 얻어지는 극도의 단순함이다. 자신이 가진 한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제거하는 행위다. 추상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을 잡아내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현대 추상화를 보면서 흔히 ‘어린아이 그림 같아’ 혹은 ‘나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어’라고 말한다. 이런 반응은 추상화에 대한 오해에서 온다. 추상화의 시작은 오히려 구체적인 실재에 대한 심오한 응시에서 출발한다. 그 구체에서 덜 중요한 부분들을 제거하면 된다. ‘덜 중요한 부분들’이란 그 대상의 본질을 묘사하는 데 생략해도 되는 것들이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스튜디오는 3층으로 되어 있었다. 1층에는 자신이 그리려는 대상, 모델이나 물건이 놓여 있었다. 2층에는 푹신한 의자가 있다. 그는 1층에서 본 대상의 본질을 가려내는 상상의 훈련을 2층 의자에서 했다. 그는 기억과 상상의 과정을 거쳐 대상을 극도로 단순화하여 한 가지 선이나 점 혹은 색을 생각해 낸다. 그런 후 3층으로 간다. 3층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 종이, 그리고 물감과 붓이 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새겨진 단순한 이미지를 3층의 화폭에 옮겼다. 이런 단순화 과정을 거치면 그 대상이 구성하는 구체적인 형태들은 사라지지만 그 대상이 주는 인상, 그 ‘대상다움’은 표현된다.

추상(抽象)이라는 한자는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한자 ‘抽(추)’는 ‘뽑아내다, 빼다, 제거하다, 부수다’라는 의미다. 추는 다시 ‘손 수(手)’와 ‘말미암을 유(由)’로 구성되었다. ‘추상’이란 어떤 대상이 그 대상이 된 ‘까닭, 도리’를 알기 위해 ‘손’으로 거추장스러운 것을 제거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추상을 영어로는 ‘앱스트랙트(abstract)’라고 한다. 이는 교수들의 논문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교수가 되면 일 년에 한두 번씩 자신의 연구 성과를 다른 학자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의례가 있다. 논문 전문뿐만 아니라 그 전체 논문의 핵심을 A4 용지 반 장 정도로 요약해 발표해야 한다. 요약본엔 자신이 주장할 내용의 핵심을 담아야 한다. 이런 요약본을 영어로 ‘앱스트랙트’, 즉 ‘추상’이라고 부른다.

지하 동굴로 내려온 호모사피엔스 예술가 역시 큰사슴의 핵심을 뽑아내 추상화를 그렸다. 핵심 정보는 바로 폭이 3m나 되는 ‘뿔’이다. 큰사슴은 이 뿔을 지탱하는 것이 힘들어 입을 벌렸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몸도 이 뿔을 지탱하기 위한 윗부분만 그렸다. 네 발은 그리지도 않았다. 하늘을 향해 번개 치듯 솟구치는 뿔을 장대하고 아름답고 숭고하게 표현하였다. 큰사슴 밑에는 검은 직사각형과 점들이 찍혀 있다. 이 신비한 기하학적 표식은 아직 해독할 수 없지만 추상의 최고 단계인 수학적인 표식 같다.

새의 가면을 쓴 인간

라스코 동굴의 맨 안쪽, 숨겨진 공간이 있다. 아마도 이곳은 동굴의 다른 부분과 구별되는 가장 은밀하고 신비한 공간인 애프스(apse)다. 수직 통로 안에 숨겨진 후진(後陣)으로 지성소(至聖所)다. 지성소란 글자 그대로 가장 거룩한 공간이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이 오늘날 교회나 법당이었다면 십자가나 불상이 있을 만한 터부(taboo)의 공간이다. 터부란 영적으로 정결하지 못하면 들어올 수 없는 신비한 장소다.

이곳에서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중 가장 충격적인 그림이 발견되었다.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림을 그린 자기 자신을 표현하였다. 벽화의 오른쪽엔 지금은 거의 멸종된 들소가 자리 잡고 있다. 몸길이 3m, 어깨높이 1.8m, 그리고 몸무게는 무려 1t이다. 거대한 들소가 인간이 던진 창에 찔려 몸에서 내장을 땅에 쏟아내고 있다. 들소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창를 보고 있고 거의 80㎝나 되는 꼬리는 고통으로 놀라 치켜올렸다. 벽화의 왼쪽 아래에는 솟대가 있다. 장대의 끝에 새를 조각하여 단다. 새는 신과 인간의 의사소통을 중재하는 전달자로 삶과 죽임, 신과 인간, 하늘과 땅의 불안한 경계를 표시한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엔 인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라스코 동굴벽화에 등장한 이 인간의 모습은 극히 예외적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들소를 창과 화살로 사냥하기 위해 온 힘을 소진하여 자신도 지쳐 누워 있다. 몸 전체의 구도를 보면 어딘가 이상하고 조화롭지 않다. 우선 두 다리를 보자. 두 다리 길이가 다르다. 두 팔 길이도 다르다. 사지의 길이를 다르게 표현한 이유는 이 사냥꾼이 황홀경에 몰입되어 있다는 표시다. 특히 두 다리는 길이가 다를 뿐만 아니라 뒤틀려 있다. 이 벽화를 그린 사람의 심리 상태는 지상의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이른바 ‘엑스터시(ecstasy)’를 경험하고 있다. 엑스터시는 ‘일상의 상태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의 성기는 발기되어 있다. 자신이 들소와의 대결에서 기진맥진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오히려 새 힘을 얻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였다.

이 사냥꾼의 심리 상태, 아니 이 벽화를 그린 예술가의 의도는 머리에 쓴 새 가면에 숨어 있다. 놀랍게도 이 가면은 솟대의 새 모양과 동일하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지하 동굴의 인간 그림에서 왜 새 가면이 등장했는가. 가면은 자신이 현재 상태가 아니라 다른 상태로 진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가면을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부르는데, 영어에서 ‘사람’에 해당하는 ‘person’이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가면은 후대 그리스로마시대의 비극이나 한·중·일 가면극에도 등장한다. 그는 왜 새 가면을 썼을까?

호모사피엔스가 이 벽화를 그린 이유는 가면에 숨겨져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미래에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점을 쳤다. 고대 로마 사제는 점을 치기 위해 특별한 제단인 ‘템플룸(templum)’에 올라 하늘을 응시한다. 그는 하늘에 날아가고 있는 매의 모습으로 자신과 속한 공동체의 운명,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이런 행위를 ‘콘템플라치오(contemplatio)’, 즉 ‘묵상’이라고 한다. ‘묵상’이란 ‘제단 위에서 하늘을 나는 매와 하나가 되어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연습’이다.

묵상이란 자신의 삶에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한 가지를 찾는 행위인 ‘추상’과 ‘단순함’이다. 인류가 남긴 ‘인간다움’의 최초 작품인 라스코 동굴벽화는 누가 리더인가를 숭고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매일 새로운 경지로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다면, 우리 삶에서 부수적인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추상적 삶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숭고한 삶이 될 것이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