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은퇴는 심리적 사형선고일까, 새 인생의 알림음일까. 은퇴는 끝인 동시에 시작이다. 인생 1막의 마무리인 동시에 인생 2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행복한 인생 2막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돈’을 꼽는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만약 그런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인생 2막에서 인생 1막의 오류를 바로잡기 힘들다. 인생 2막은 ‘나’를 찾는 시기다. 내가 진짜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몰라서, 혹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꾹꾹 눌러온 자신의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주간조선이 발굴한 3인은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연 사람들이다. 집 짓기 숨은 고수인 70대 파워블로거 권태곤씨, 58세에 9급 공무원이 된 권호진씨, 은행지점장 퇴직 후 다도(茶道) 전문가가 된 정명성씨. 권태곤씨는 “70대인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고, 권호진씨는 “한국지사장으로 임명된 날보다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했을 때가 더 행복하다”고 한다. 정명성씨는 “인생 1막에서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단말기 같은 인생을 살았다면, 지금은 진짜 내 인생을 산다”고 말한다.

인류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100세 시대에는 인생의 속도계를 다시 짜야 한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퇴직연령은 52.5세(한국경영자총협회 2014년 조사). 100세 시대에 50대는 전력질주의 시기가 아니다. 속도를 줄이고 차선 변경을 준비할 때다. 차선 변경 후 또 한 번의 질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모두 “취미 삼아 쉬엄쉬엄해서는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열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청춘 시절 불살랐던 열정을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 또 한 번 불태울 준비를 할 시기다.

그야말로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집이다. 멀리서도 한눈에 ‘저 집이다!’ 알겠다. 우툴두툴한 현무암을 하나둘 쌓아지은 돌집은 부부의 공간이고, 붕 띄워 2층 높이에 지은 ‘구름 위의 집’은 다섯 손주들을 위한 공간이다. 1호 돌집은 제주도 느낌이 물씬 나고, 2호 구름 위의 집은 지중해풍이다. 벽에는 새하얀 페인트를 입혔고, 창틀은 새파란 페인트를 칠했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성채 색감인 코발트블루빛이다. 제주도 옥빛 바닷물과 검은 돌, 그 사이에서 부서지는 새하얀 파도를 배경으로 서 있는 집은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였다.

집주인은 다음(Daum)카페 ‘세상에 이런 집이’ 운영자 권태곤(71)씨. ‘세상에 이런 집이’는 국내 전원주택 분야 최다 회원수를 보유한 카페다. 8년 전에 생긴 이 카페는 회원 수가 14만8500여명에 달한다. 2014년, 2015년 연속 ‘다음 우수카페’에 선정됐다. 폭염이 가신 직후인 지난 8월 29일 제주도 애월읍 권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슬리퍼 차림으로 집앞에 마중 나온 그는 편안해 보였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경상도 억양의 담백한 말투가 푸근했다.

2호 집 ‘구름 위의 집’ 내부. 제주도 애월읍 옥빛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2호 집 ‘구름 위의 집’ 내부. 제주도 애월읍 옥빛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전원주택 분야 1위 카페 ‘세상에 이런 집이’

권씨는 전원주택 분야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숨은 고수’다. 은퇴 후 호젓한 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테마공원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명품타운을 지으려는 건설업자 등이 권씨의 조언을 받고 싶어 줄을 선다. 카페에서는 전원주택, 귀농, 캠핑카, 황톳집, 한옥, 통나무집에 대한 각종 정보를 공유한다. 연락을 통해 만난 카페 회원들은 권씨를 보고 여러 번 놀란다. 그 핫한 카페의 운영자가 71세라는 나이에 놀라고, 수더분한 말투와 소박한 옷차림에 또 놀라고, 웬만한 건축학 박사 못지않은 전문적인 지식에 한 번 더 놀란다.

“집이 좀 괜찮아 보입니까? 손님들이 와 보시고 좋아합니다. 제주도에서도 이런 뷰가 나오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특히 손주들이 진짜 좋아합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여기 와서 살겠다고 난리예요. 손주들이 오고 싶어하는 집을 짓고 싶었는데, 꿈을 이뤘습니다.”

권씨가 제주도에 둥지를 튼 건 2014년 1월. 제주도에 여행왔다가 우연히 이 부지를 알게 됐고, 첫눈에 반해 충동구매하듯 덜컥 계약해버렸다고 한다. 계약금이 없어 망설이자 부동산을 운영하는 생면부지의 카페 회원이 돈을 빌려줬다. 그때부터 3년째 집짓기에만 매진하고 있다. 세계 각지 여행을 하면서 봐둔 특이한 집, 골목, 인테리어 등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쏟아부었다.

집 곳곳을 둘러보니 권씨의 세심한 손길이 읽힌다. 높이 1m도 채 되지 않은 낮은 돌담에 이어진 빨간 대문은 철근을 자르고 붙여 만들었고, 나무기둥 문패는 권씨가 자르고 페인트를 칠해 만들었다. 현관 바닥의 도자기 장식은 타일을 불규칙하게 깨서 이리저리 끼워맞췄고, 여기저기 세워진 알록달록한 도자기 역시 권씨가 버려진 색타일을 구해와 잘게 부숴서 하나하나 붙여 만든 것이다. 경기도에 사는 손주들을 위한 ‘구름 위의 집’은 아직 미완성이다. 짓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손주들이 좋아할 만한 자잘한 작업들이 더 남았다. 1호집 지붕으로 모험하듯 옮겨다닐 수 있는 통로도 아직 못 만들었다. 마당에 꽃나무도 덜 심었고, 문패에 이름도 안 썼다. 1호집 현관에 달린 작은 풍경은 경기도 분당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큰손자 태헌이가 만들어온 것이라 한다.

집안 곳곳도 뭐 하나 평범한 게 없다. 1호 현무암 집도 예쁘지만, 2호 ‘구름 위의 집’은 하나하나 스토리가 분명하다. “계단 손잡이 페인트는 지중해 성의 철제대문 느낌을 살렸습니다. 세련된 푸른빛에 금빛이 돌지요? 바닥은 고가품 같지만 별것 아닙니다. 평범한 ‘강마루’에다 화사한 친환경 페인트를 입히니 나무바닥 느낌이 다릅니다. 국내에서는 제가 최초로 바닥에 다양한 색상을 적용한 게 아닌가 싶어요. 창틀에도 제가 좋아하는 지중해풍을 살리느라 새파란 페인트를 입혔습니다. 처음에는 집사람이 촌스럽다고 뭐라 하더니 지금은 집사람이 더 좋아합니다.”

버려진 색타일을 재활용해 만든 항아리 장식. 하나하나 깨서 붙였다.
버려진 색타일을 재활용해 만든 항아리 장식. 하나하나 깨서 붙였다.

창 아래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집무실은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했다. 거친 나뭇결이 매력적인 참죽나무로 만든 큰 테이블 하나에 의자 하나가 전부. 살포시 열린 창문으로 들이치는 비릿한 바닷바람이 기분 좋게 시원했다. 식탁은 재봉틀 몸통을 재활용했다. 천장에 박은 나무와 조명들은 규칙이 없는 듯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 방 하나에 집무실 하나, 거실 겸 식당이 전부인 이 작은 집은 이상하게 새집 같지 않고 편안했다. 오래전부터 그곳에 그렇게 서 있었던 집처럼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렸고 계속 머물고 싶게끔 했다.

권씨의 아내는 이날 둘째 딸 집에 다니러 가고 없었다. 부부는 따로 또 같이 살면서 각자의 삶을 존중한다. 권씨는 제주도에, 아내는 경기도 딸들 집에 머물 때가 더 많다. 아직 손길이 필요한 어린 손주가 다섯인데 두 딸은 직장맘이라 외할머니 손길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2호 집 ‘구름 위의 집’이 비어있을 때가 많아 주변에서는 독채 펜션 운영을 권장한다. “이 입지에, 이 뷰에, 이런 인테리어를 갖춘 독채라면 1박에 50만원은 너끈히 받을 수 있다”고 꼬드기는 사람이 꽤 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친다. “돈이야 좀 더 벌 수 있겠지요. 하지만 뭣하게요? 바다를 좋아해 젊을 때부터 이런 집을 꿈꿨습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노래를 부르면서요. 소박한 꿈을 이뤘습니다. 이대로 이렇게 사는 게 좋습니더.”

1호 집 ‘현무암 집’ 입구. 오른쪽에 첫손자가 만든 작은 ‘풍경’이 보인다. 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1호 집 ‘현무암 집’ 입구. 오른쪽에 첫손자가 만든 작은 ‘풍경’이 보인다. 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70대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퇴직 후 호젓한 곳에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사는 삶. 누구나 꿈꾸는 삶이다. 권씨의 삶이 빛나는 건 그림 같은 집 때문이 아니다. 나이가 무색한 도전정신이 이끈 삶 때문이다. 그는 “70대인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조언을 들으러 먼 곳에서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주로 40~50대가 많지요. 고국에 정착하고픈 해외 동포들이 오기도 하고요. 그 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십여 년은 젊어지는 기분이죠. 지금 삶이 너무 행복합니다. 대단히 보람차고요. 내 주변에 과거에 출세했던 사람들도 많지만 나보다 재밌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성격도 바뀌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말수가 적었지만 요즘은 좌중을 이끌 때가 많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싶은 사람들 아닙니까?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 귀 기울여주고, 호응해주고, 받아적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이 많아졌습니다.”

권씨는 서울시 공무원 출신이다. 1990년대 후반에 명예퇴직한 후 이 길로 오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다. “공무원은 제 체질에 안 맞았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았지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조직의 경직성 때문에 반영하기 쉽지 않았어요. 답답하고 갑갑했습니다.”

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벗어던지지 못했던 공무원이라는 옷. 두 딸이 장성하면서 맞지 않는 공무원을 그만뒀고, 그때부터 그는 날개를 달았다. 당시만 해도 그는 건축과는 전연 상관없는 문외한이었다. 타고난 허약체질인 그는 1997년 취미 겸 건강상 이유로 마라톤에 발을 디뎠다가 마라톤 보급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살고, 달리면 즐겁다’는 슬로건 아래 전국에 백만 달리기 운동을 전개한 주인공이 바로 그다. 지금이야 다양한 마라톤대회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다. ‘아이디어맨’인 그는 각종 마라톤 기획에 뛰어들었다. 중앙일보마라톤대회, 인천마라톤대회, 강화해변마라톤대회, 세브란스국민건강마라톤 등이 대표적. ‘마라톤클럽’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시절, 일산호수마라톤클럽을 창설해 이끌기도 했다.

“마라톤 기획도 참 재밌었습니다. 집중력을 발휘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기획하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랐습니다. 폭발적 인기를 몰고 왔고,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참 보람 있었지요.”

하지만 마라톤에 빠진 지 7~8년 후 한계에 봉착했다. 달리기 붐이 일면서 엇비슷한 마라톤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여기저기 동호회가 만들어지자 도전의지가 꺾였다. 그의 마음은 또다른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기획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놀고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여행에 빠져들었습니다.” 한 달간의 뉴질랜드 북섬 캠핑카여행, 그리스 건축기행을 비롯 유럽·남미대륙·북미대륙 여행 등 젊은 날부터 가슴속에 품어온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하나하나 다니기 시작했다.

권씨의 여행법은 달랐다. 다른 여행객들이 유명 관광지를 보고 ‘인증샷’을 찍을 때 그는 혼자 낯선 골목길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다녔다. 특이한 집, 예쁜 골목, 이색 수영장, 남다른 인테리어 등이 그의 카메라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다른 여행객들은 성당이나 교회, 광장, 박물관을 볼 때 나는 혼자 빠져나왔습니다. 그런 사진은 교과서나 여행서에 널리지 않았습니까? 사진으로 보던 유명 관광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여행은 재미없었습니다. 특이한 집을 보물 찾기 하듯 찾으러 다니는 여행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지요.”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카페 개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그렇게 5년간 찍은 ‘특이한 집’이 수만 장 쌓이자 그 사진들을 앨범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사진이 너무 많아 인화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인터넷 카페다. 그가 카페를 만든 건 60대. 당시 그는 컴맹이었다. 손가락 두 개로 자판을 두드리는 독수리타법으로 독학을 통해 카페를 개설했다.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 중인 권태곤씨.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 중인 권태곤씨.

컴맹 시절, 독수리타법으로 카페 개설

“집사람이 미쳤다고 합디다. 60대 컴맹이 카페를 개설하겠다고 새벽 2~3시까지 매달려 있으니 그렇게 보일 만도 하지요. 카페 만드는 매뉴얼대로 하니까 신기하게도 카페가 생기대요. 처음엔 그저 혼자 보려고 만들었습니다. 여행하면서 찍은 특이한 집 사진을 정리해둔 사진첩으로요. 만들어놓으니 이쁘대요. 여러 사람이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6개월 만에 공개를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많을 때에는 하루 1000명씩 회원이 들어오더군요.”

초창기에는 카페 운영에만 매달려 살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컴퓨터 전원 켜기였다. 댓글을 달아주고, 회원승인 해주고, 사진을 추가로 올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침 먹고 컴퓨터 하고, 점심 먹고 컴퓨터 하고, 저녁 먹고 컴퓨터 하고, 자기 전까지 컴퓨터를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가족들은 권씨를 ‘컴퓨터 중독’이라며 놀렸다. 열정적으로 운영한 카페는 점점 더 잘됐고, 다음 측에서 메인 화면에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이 왔다. 쉽사리 보기 힘든 사진 한 컷 한 컷이 실린 그의 글에 대한 호응은 대단했다.

‘세상에 이런 집이’ 카페 회원 중에는 어중이떠중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회원가입 시 ‘주5회 정도 메일 쪽지 보냅니다’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소위 ‘눈팅’만 하는 사람들은 섣불리 들어오지 못한다. 40~50대 세컨하우스에 관심 많은 남성 회원 및 부동산, 건설 관련계 종사자들이 대부분. 특이한 소재가 많다 보니 방송계 종사자도 꽤 있다. 그의 카페에서는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미분양된 건설회사 물량에 대한 정보가 15만명의 카페 회원에게 전달된 후 며칠 만에 동나기도 하고, 카페를 통해 회원들이 모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한다.

현재 추진 중인 ‘리틀 미코노스’ 프로젝트가 그 예다. 제주도 애월읍에 생기는 ‘섬 안의 섬’ 콘셉트로 들어서는 마을로, 거주용이나 수익형 펜션으로 기획 중이다. 약 1만3000㎡(4000여평)에 115가구의 타운하우스가 들어서게 된다. 이 프로젝트 역시 ‘아이디어맨’인 권씨가 기획했다. “그리스 섬 기행을 두 번 다녀왔습니다. 산토리니, 미코노스, 낙소스, 파로스, 크레타 등에 갔는데 미코노스가 가장 인상적입디다. 한국인에게는 산토리니가 유명하지만, 산토리니가 남성의 섬이라면 미코노스는 여성의 섬입니다. 아기자기하고 예쁩니다. 제주도에 미코노스처럼 예쁜 마을이 하나 들어서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획했지요.” 그는 마을기획 아이디어와 정보제공 등을 주로 담당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수요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매서운 감시자 역할도 겸한다고 한다.

막강한 네트워크를 갖춘 그에게 사업제안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한다. “사업은 또 다른 영역이에요. 제가 50대만 됐어도 도전해 봤을 겁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시간이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실수하면 큰일납니다. 과유불급이지요. 그저 지금처럼 저를 찾아오는 카페 회원들 반갑게 맞고, 제주도에 와서 살고 싶은 꿈을 꾸는 분들을 도와주면서 살렵니다. 그게 행복이고 보람 아닙니까.”

은퇴 후 성공적인 2막을 열기 위한 조언을 구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은퇴 후 삶이 워낙 길지 않습니까. 대충 시골 가서 살겠다는 계획은 한계가 있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인생 2막의 열쇠가 있습니다. 뭐든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다 보면 그중에서 잘 맞고 잘 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섣불리 남을 따라하기보다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퇴할 당시, 제가 이런 삶을 살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세상 모를 일입니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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