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군민들이 지난 여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는 모습. ⓒphoto 성주군청
성주 군민들이 지난 여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는 모습. ⓒphoto 성주군청

2016년의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기자는 원래 무더운 여름날 휴가를 잘 안 가는 편이지만 모처럼 가족과 함께하기로 계획되었던 올여름 휴가는 사드와 함께 보내야만 했다.

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7월 13일, 한·미 국방장관은 사드 성주 지역 배치 건의안을 최종 승인하고 이날 오후 3시 공식 발표했다. 앞서 7월 11~12일 성주 지역사회는 “사드배치 성주 결정은 중앙정부의 일방적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반대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어 비상대책위원회 발족, 촛불집회 시작, 김항곤 성주군수·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이재복 비상대책위원장의 단식 등을 통해 반대에 나섰으나 사드배치 결정을 막지는 못했다.

7월 13일 오전, 국방부의 성주 지역 사드배치 확실이라는 보도가 있던 날 성주 성밖숲 광장에는 성난 군민 4000여명이 궐기대회를 위해 모여들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발표에 모두들 넋이 나가 있는 듯했다. 분노하며 타들어가는 듯한 속마음을 이렇게나마 해소하지 않으면 화병에 모두들 쓰러질 듯한 분위기였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의 불안감은 심각했다.

이날 궐기대회를 마치고 국방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무언가에 홀린 듯 모두들 말이 없었다. 김 군수를 비롯한 대책위원들은 5대의 버스에 군민 대표단 230여명을 태우고 국방부로 향했다. 모두들 버스 안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사드 관련 소식에 온갖 신경이 집중돼 있는 듯했다. 국방부 차관 일행이 성주를 방문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김 군수는 이를 거부했다.

오후 3시가 되면서 국방부가 사드배치 지역을 성주로 공식 발표했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깡그리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오후 4시경 국방부에 도착한 군민들은 ‘청정지역 사드배치 결사반대’ ‘일방적인 사드배치 국방부는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군민들을 마중 나온 이완영 의원(고령·성주·칠곡)은 국방부가 마련해준 설명회장 안에서 질타를 당해야만 했다. “국회의원이 도대체 뭐 했느냐”고 따지듯 물어오는 군민들 앞에서 이 의원은 “사전에 자신도 정말 알지 못했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드를 찬성하는 새누리당과 사드를 반대하는 군민들 사이에서 처신하기가 가장 힘들었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아닐까 싶었다. 향후 이 의원은 일부 군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사드 정국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 성주 군민들은 사드배치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혈서와 반대 서명서를 국방부에 전했다. 국방부가 저녁 식사를 준비했지만 누구도 손을 대진 않았다. 군민들은 한민구 국방장관과의 직접 대면을 원했고 국회 대정부 관련 질문을 마친 한 장관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성주 군민들과 만날 수 있었다. 국방장관과의 첫 면담에서는 3시간여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자정이 넘은 시각 한민구 국방장관의 성주 방문을 약속받은 군민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다음날 비상대책위원회에 정영길 경북도의원과 백철현 성주군의원이 찾아왔다. 이들은 “사드배치가 확정됨에 따라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이 문제를 대응해 나가야 한다”라며 조직을 확대 개편할 것을 요청해 왔다.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이재복 비대위원장은 ‘성주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로 명칭을 변경하고 자신은 대표위원장을, 정영길·백철현·김안수(농민대표) 공동위원장이 투쟁위의 사령탑을 맡게 됐다. 이재복 대표 위원장은 공무원 출신으로 초대 성주군 의장을 역임하고 현재 성주군 노인회장, 성주군 사회단체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투쟁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감당했다.

7월 15일, 황교안 국무총리 일행이 사드배치 주민 설명회를 위해 성주를 찾았다. 하지만 예상됐듯 이날 설명회는 파행으로 치닫고 말았다. 총리실은 삭발·촛불집회 등으로 사드배치에 강력 반발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전날 밤 늦게 성주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성주 군민의 반발은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설명회가 채 시작도 되기 전부터 욕설과 고성이 쏟아졌고 성난 군민은 황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를 둘러싸고 6시간 넘게 격렬한 대치를 이어갔다.

총리 일행 탈출 작전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날 경찰은 14개 중대 1200여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했다. 성주 지역에서의 사드 반대운동은 생각보다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투쟁위 각 분과에서는 사드배치 철회를 위해 업무분장을 하고 정부의 일방적 사드배치 발표에 항의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당시 투쟁위는 성산포대 사드배치에 대한 부당함과 성주 군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기 위해 투쟁기조를 ‘성주 사드배치 반대’로 정했다. 하지만 투쟁위의 기조는 어느 순간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로 확대되고 말았다. 성주군청 마당에는 매일 저녁 촛불문화제가 열렸으며 ‘사드배치 반대 백악관 10만 서명운동’도 전개됐다.

성주 군민들의 사드반대 시위는 철저하게 평화를 추구했다. 좋은 예로 지난 7월 21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상경집회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 2300여명의 군민이 참가한 집회는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외부세력 개입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과의 충돌도 없었고 집회는 2시간여 만에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전문 시위꾼 등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철저히 차단한 덕분이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가슴에 성주 지역 어머니들이 만든 나비 모양의 파란 리본을 달았다. 군민들은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이나 선동적인 빨간색 대신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는 파란 리본을 선택했다. 다만 투쟁위 내부에서 상경한 성주 군민들에게 철저하게 언론과 대응하지 말 것을 주문한 탓에 이날의 집회가 다소 퇴색되는 듯한 아쉬움이 남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서울역광장 집회가 끝나고 김 군수를 비롯한 대표단은 국회와 청와대에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이들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관계자들과 면담을 통해 성주 군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김항곤 성주군수 등이 사드의 제3지역 배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성주군청
김항곤 성주군수 등이 사드의 제3지역 배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성주군청

7월 28일에는 성주 지역 8개 유림단체(연합회장 여상건) 회원 128명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 상소문을 제출했다. 이들은 향후 제3지역 배치를 적극 찬성하며 나라의 안보와 성주 군민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더 앞장서 지역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사드 발표 이후 여·야 국회의원의 방문도 잇따랐다. 하지만 이들을 대하는 성주 군민들의 온도 차는 너무나 컸다. 7월 26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등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가장 먼저 성주를 찾았지만 사드배치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터라 군민들의 반감은 거셌다. 이날 구미 백승주 의원은 “금오산에 사드를 배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가 거센 항의가 쏟아지기도 했다. 8월 1일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당 현역의원 16명도 성주를 찾았다. 정의당 의원 2명은 촛불집회에 참가했으며 더불어 민주당은 김부겸 의원과 초선의원 6명이 성주를 찾았다. 정치인들의 잇따른 방문에 일각에서는 “사드 문제를 두고 정략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 것” 등을 주문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매일 저녁 성주군청 앞마당에서 진행되는 촛불집회는 문화제 형식으로 우천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열려 투쟁의 큰 동력이 됐다. 당시 인원 동원에는 이장상록회(회장 이광희)가 주축이 되어 읍·면·동 단위로 날짜를 지정해 참여토록 유도했다. 하지만 3지역 요청 이후 이장상록회에서도 더 이상의 인원 동원은 하지 않았다. 사드 반대 투쟁은 7월 30일 참외밭 갈아엎기, 8월 15일 908명 대규모 삭발식을 계기로 한 달을 넘기면서 정점을 찍었다. 30여대의 트랙터가 참외밭을 짓이기는 순간, 농민들은 물론 취재진까지도 숙연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투쟁이 장기화되자 지역경제의 피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제3의 장소 대안론이 터져나왔다. 8월 4일, 성주 군민들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성주 성산포대 대신 성주군 내 다른 지역으로 사드배치 지역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지역에서도 여론이 크게 동요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이전 검토 가능성에 대해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재향군인회(회장 김진용)를 비롯한 안보단체 연합회 및 27개 단체로 “국가 안보는 죽고사는 문제”라며 “나라가 안보를 위해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면 이는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성산포대를 제외한 성주군 내보다 민가가 적고 안전한 곳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라며 제3지역 이전론에 물꼬를 텄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다시 성주를 찾은 것은 8월 17일 투쟁위와의 간담회에서였다.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한 장관은 “사드배치 부지 선정 발표에 앞서 군민들께 설명을 드리지 못한 점과 군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사드 성주 배치 검토 및 평가 결과를 설명했다. 특히 제3후보지와 관련해 “지역 의견으로 말씀을 주시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7월 15일 황교안 총리 일행이 처음 성주군을 방문했을 때 가장 강렬하게 반대하던 청년들이 이날은 스스로가 ‘질서유지단’을 구성해 한민구 장관을 보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3지역 이전이 대세가 되는 형국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후 투쟁위는 8월 21일 제3후보지 요청 안건을 상정 후 투표한 결과 찬성 23명, 반대 1명, 기권 9명으로 국방부가 3후보지를 발표할 것을 요청하기로 의결했으며 김항곤 군수는 8월 22일 사드배치 장소로 제3부지를 검토해줄 것을 국방부에 공식 요청했다.

이때부터 사드 문제에 대한 김 군수의 행보는 급반전을 보였다. 큰 결단에 환영의 뜻을 내보이며 지지하는 성명도 잇따랐다. 많은 군민은 김 군수의 결정이 누구보다 더 지역을 위해 고민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사드배치 자체를 반대하는 이들은 김 군수에게 불만을 쏟아내며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9월 30일, 79일 만에 사드배치 지역이 성주읍 성산포대에서 성주군 초전면 롯데 스카이힐 성주CC로 변경됐다. 같은 날 새누리당 경북지역 국회의원 13인은 사드배치 찬성을 성명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최경환·김광림·김종태·이철우·강석호·박명재·이완영·이만희·김정재·김석기·장석주·백승주·최교일이었다. 이 같은 결과와 관련 성주 군민들 대다수는 “군민들의 애국심과 평화적인 저항이 뒷받침됐다. 만약 반대를 위한 반대만 했더라면 아마도 사드는 성산포대에 그대로 배치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혼선을 부른 국방부의 치밀하지 못한 정책 과정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국민 의견을 수용하고 대안을 모색해 나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국민과 소통 없는 국가 주도의 일방적 정책이 더 이상 21세기 통치 패러다임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사드배치 지역이 바뀜으로써 일부에서는 국방부가 여론에 밀려 국가정책을 변경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히 한·미 군 당국 간에 합의된 내용이 번복됨으로써 대외적으로 외교국방 정책의 신뢰성에 흠을 남겼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국방부가 외교·국방적 실례를 무릅쓰고 이 같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성주 군민의 평화적인 저항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성주 군민의 진정성 있는 요청에 국방부가 일방적 방식이 아니라 지역민의 이해를 구하고 함께 풀어나갔다는 점에서는 모범적 선례로 남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본 것이다. 성주 지역 사드배치 문제가 이제 일단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는 상존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군민들은 그동안 사드 정국으로 인해 깊게 파인 갈등의 골이 하루빨리 메워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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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철 영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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