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있는 동대문(흥인지문)과 중구에 있는 동대문 의류상가.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종로구에 있는 동대문(흥인지문)과 중구에 있는 동대문 의류상가.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서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왕(王)모씨는 동대문에서 대략 난감한 일을 겪었다. 호텔예약 사이트를 통해 호텔 이름에 ‘동대문’이 들어가는 비즈니스호텔을 잡고 여행을 왔는데, 정작 찾아간 호텔은 동대문 의류상가와 제법 거리가 있었다. 투숙한 호텔에서 왕씨가 방문하려는 동대문 의류상가까지는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까지 두 정거장을 이동한 뒤 환승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다시 한 정거장을 더 가야만 했다. 그런데 왕씨가 받은 이 호텔 명함에는 큰 글자로 ‘서울 동대문구’라고 적혀 있었다. 왕씨는 “원래 호텔에서 걸어서 동대문 야간쇼핑을 하려고 했는데 일정이 꼬여 버렸다”고 했다.

서울 관광의 랜드마크인 ‘동대문’이 정작 동대문구와 분리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옛 한양 도성의 정동(正東) 쪽에 있다 하여 ‘동대문’으로 통칭되는 보물 1호 ‘흥인지문(興仁之門)’을 비롯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대문성곽공원, 동대문 의류상가 등이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와 중구 등지에 흩어져 있어서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때 영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찾았던 동대문 의류상가는 요즘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필수 방문코스가 돼 있는데, 정작 동대문구에 있지 않아 왕씨처럼 혼란을 호소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 동대문 의류상가 상인들 역시 사업상 관할 관청을 찾을 일이 많은데 동대문구청, 종로구청, 중구청을 오가느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동대문으로 불리는 ‘흥인지문’도 실제 주소를 검색하면 서울 종로구 종로5, 6가동에 자리 잡고 있다. 또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비롯해 동대문 대표 의류상가인 두산타워(두타)와 밀리오레, 롯데피트인은 중구 광희동에 있다. 이 밖에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과,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각각 종로구와 중구에 나뉘어 있다. 시민들이 동대문으로 통칭하는 모든 시설이 정작 동대문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동대문구에 제대로 자리 잡은 ‘동대문 우체국’과 ‘동대문 도서관’도 신설동에 있어 동대문과는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다. 청량리에 위치한 ‘동대문 경찰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된 것은 동대문이 있는 종로구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행정편의상 목적으로 동대문구를 이리저리 떼어내면서 발생했다. 서울시가 구(區)제를 최초 실시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43년부터다. 구제를 실시하면서 동대문을 경계로 동대문 안쪽은 경성부(현 서울시) 종로구, 바깥쪽은 경성부 동대문구로 명명한 것이 화근이 됐다. 동대문 바깥에 있던 동대문구는 광복 이후에는 북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의원 시절 지역구 역시 동대문구 갑(甲)이었다.

반면 동대문 안쪽에 있던 종로구는 도심공동화 현상 등으로 인해 상주인구가 줄곧 줄어들었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종로구의 공동화를 마냥 방치할 수 없었다. 종로구는 광복 직후인 1946년 행정구역 정비와 함께 탄생한 서울시내 8개 행정구 가운데 행정건제(建制) 서열 1위였다.

결국 서울시는 1975년 동대문과 바로 접한 창신동과 숭인동을 동대문구에서 뚝 떼어내 종로구로 편입시켰다. 당시는 막무가내식 개발로 ‘황야의 무법자’란 별명으로 불린 포병장교 출신의 구자춘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했을 때였다. 결국 창신동과 숭인동을 동대문에서 떼어내는 행정개편으로 동대문과 동대문구는 지리적으로 단절되면서 연고가 끊어졌다. 1975년 똑같은 이유로 서대문구의 일부 역시 떨어져나가 종로구에 편입됐다. 그나마 서대문(돈의문)은 이미 일제 때 헐린 뒤에 정확한 위치조차 추정할 수 없게 돼 큰 혼란은 생기지 않는다. 반면 동대문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데다, 동대문구와는 완전히 분리된 터라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동대문구는 2007년 동대문과의 옛 연고를 이어간다는 뜻에서 신설동 고가도로를 철거한 자리에 실물의 4분의 1 크기의 ‘미니 동대문’을 건립한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고가도로가 있던 신설동오거리는 1975년 이후 확정된 동대문구와 종로구의 새 경계다. 하지만 ‘짝퉁 동대문’ ‘세금 낭비’라는 구민들의 혹평에 지금은 유야무야됐다. 결국 동대문구는 2009년 구가 기존에 사용해온 동대문을 형상화한 파란색 상징마크에 더해 ‘서울의 문(門)’이란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했다. 동대문구청 산하 동대문구시설관리공단 역시 동대문을 형상화한 상징마크를 그대로 사용 중이다.

역사성 무시한 행정개편이 혼란 초래

개발연대 때 행정 필요에 의해 수시로 바꾼 행정구역은 적지 않은 행정 혼선마저 초래하고 있다. 지금도 종로구 창신동·숭인동을 동대문구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동대문구청의 일선 공무원들 역시 민원인들이 관할 구역과는 전혀 상관없는 민원을 동대문구청에 제기하는 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동대문구청의 김광훈 언론팀장은 “중구에 있는 동대문시장(의류상가) 쪽의 민원이 동대문구에 꾸준히 들어온다”며 “원래 동대문구였던 창신동과 숭인동 쪽 민원도 종로구가 아닌 동대문구 쪽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주소지를 잘못 찾아온 민원들을 종로구나 중구로 다시 안내하느라 행정력을 낭비 중이다.

동대문구를 이리저리 떼어내 종로구에 편입시킨 당초 목적 역시 달성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로구는 동대문구와 서대문구 일부를 떼어내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인구가 줄어들었다. 1984년 27만명에 달하던 종로구의 인구는 올해 들어 15만3000명으로까지 감소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꼴찌에서 한 단계 위인 24위에 불과하다. 종로구 아래로는 인구 12만명의 중구밖에 없다. 종로구와 중구는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가 제시한 36개 시군구 통합 대상 가운데 서울시내 자치구로 올라와 있다. 동대문구 인구는 36만명이다.

이에 지금이라도 실제와 괴리돼 행정 혼선을 초래하는 행정구역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례로 송파구에 있는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의 옛 이름은 성내역이었다. 하지만 정작 성내동은 지하철역이 위치한 송파구가 아닌 강동구에 있어 혼란을 초래했다. 잠실나루역은 이 같은 이유로 2010년 서울시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성내역에서 잠실나루역으로 명칭을 고쳤다. 결국 지금의 종로구 창신동과 숭인동을 다시 동대문구로 원대복귀시키거나, 동대문구에 새 이름을 붙이는 방법만 남는다. 동대문구의 한 관계자는 “인구가 적은 종로구와 중구를 한데 묶고, 원래 동대문구였던 창신동·숭인동을 동대문구로 다시 돌려주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성을 무시한 행정개편이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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