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틀딱’.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신조어다. 단어만 놓고 보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틀니를 딱딱거린다’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렴풋이 뜻을 짐작할 만하다. 얼마 전까지는 ‘노슬아치(노인과 벼슬아치의 합성어)’ 등으로 불리던 노인 비하 표현의 일종이다. 보통 “틀딱들 ‘개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이다”라는 식으로 쓰인다.

‘틀딱’이라 불리는 일부 노인들에게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 달리 보수적 시각을 가졌다. 이들은 나이가 많다는 점을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앞세운다. 대체로 젊은 세대의 ‘에티켓’을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과 대화를 잘 하지도 않지만, 하더라도 소통이 잘 안 돼 끝내 언성을 높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틀딱체’라고 말하는 말투를 주로 구사한다. ‘틀딱체’에는 느낌표와 마침표가 많이 사용되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틀딱’이라는 단어는 비하의 의미가 매우 강한 만큼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틀딱’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청년층이라고 해도 그 뜻을 설명하면 공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월 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앞,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그렇다.

무례하고 무력한 ‘틀딱’세대

대학원생 박은경씨는 대학 생활 6년 만에 “노인에 대한 혐오감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박씨가 매일 등교하는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는 관악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술 마시고 산 타고 내려온 노인들이 등산 스틱 들고 버스 안에서 자리 안 비켜준다고 다리 찌르는 일은 굉장히 빈번해요.” 지난 가을에는 황당한 일도 당했다. “어떤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제 앞에 서서 ‘여기 자리 있는데 안 비켜줘’라고 큰소리로 일행한테 얘기하더라고요. 황당해서 일어나 자리를 비켜줬는데 ‘늦게 비켜줬다’며 ‘젊은 것이’라면서 나무라더라고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23살 대학생 김경승씨는 “저는 노인을 혐오해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나이 들면 다 그런가요? 무단횡단하고, 새치기하고,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소리 지르고.” 그는 ‘틀딱’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방의 한 축제 행사장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공짜로 사은품을 나눠주는 행사장에 서 있었는데, 노인들이 몰려와 아수라장이 됐어요. 10개 넘게 받아가 놓고는 ‘사람이 많이 몰려 무릎이 아프다’고 병원비를 요구한 노인이 있어서 쩔쩔맨 적이 있어요.” 그 후로 김씨는 노인들을 ‘떼쓰는 존재’로 인식한다고 했다. “아닌 사람도 많겠지만, 최소한 제가 만난 사람들은 다 그래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정미경(가명)씨는 “문 앞에도 노인 금지라고 붙여 놓고 싶다”고 말했다. “5~6명이 들어와 커피 한 잔 시키고 빈 컵 달라고 해서 5~6잔으로 나누는 사람들이 정말 있더군요. 공통점은 모두 환갑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었어요.” 화장실에 있는 휴지도 집으로 들고 가는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정씨의 카페에 앉아 있던 고등학교 2·3학년생 김예솔·정윤서 학생은 ‘틀딱’이라는 표현을 써본 적도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노약자석에 앉은 할아버지 두 분이 빨갱이라는 단어를 써 가며 젊은 사람들 욕을 하더라고요. 친구 중 누군가가 ‘틀딱이네’라고 말했고, 저희는 ‘맞네, 맞아’라고 동의했어요.”

‘틀딱’은 얼마 전까지 널리 사용되던 속어인 ‘꼰대’와는 조금 다르다. 꼰대는 권위적이다. 그러나 ‘틀딱’은 꼰대보다 무력하다. 충남 예산과 부산에 조부모가 있어 명절 때만 겨우 만난다는 정예솔 학생은 ‘틀딱’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힘도 없는데 바락바락 고집 부리고, 돈 없어서 공짜로 지하철 타면서 진상 부리는 것 같다.”

‘연령주의’ 혹은 ‘연령차별주의(Ageism)’라는 말이 있다. 1969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버틀러가 처음 사용한 이 말은 나이 듦(연령)을 이유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차별을 일컫는 말이다. 세대갈등이 서로 다른 세대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라면 연령차별주의는 그보다 노인들에 대한 차별 의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대개 연령차별주의를 얘기할 때는 노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련된 논의가 주가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8.6%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증가 속도도 빨라 4년 만에 4% 상승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의 노인빈곤율이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인 노동자 중 53.8%는 비정규직이다. 노인의 52.4%가 일을 하고 있지만 그중 42.2%가 저임금 노동자다. 이 상황에서 연령차별주의는 노인들에게 경제적 자원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는 연령차별주의는 문화적인 부분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꼰대’ ‘노슬아치’에 이어 ‘틀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데는 노인 세대의 어떠한 특성이 젊은층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복지 전문가인 초의수 부산복지개발원장은 “연령차별주의와 노인복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젊은이들이 표면적으로 노인에 대해 느끼는 느낌을 공감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연장자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지속돼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연장자만이 대우받는 사회가 아니지요. 하지만 지금의 노인들은 연장자 중심의 사회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오는 괴리 같은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세대갈등은 어느 시대나 존재해온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의 하나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6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투표 이후 주로 브렉시트에 찬성한 노인들에 대한 반발로 “노인의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세대갈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 사회 세대갈등은 선진국의 경우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다. 우선 한국에서 노인은 ‘짐’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홍영란 한국교육개발원 고등·평생교육연구실 실장은 “노인 세대가 사회적 약자로 전락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홍 실장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인 관련 정책은 노인을 도움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면서 “젊은이에게 노인은 비용이 들어가는 ‘짐’이 됐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자신들의 빈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을 견인했다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평생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자신들의 모습에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합리화를 위해서는 변화된 가치보다 자신들이 쌓아온 가치를 더욱 옹호하는,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이 쉽게 소통할 수 없고 꽉 막힌 이른바 ‘틀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들의 말과 행동이 종종 젊은이들의 손가락질 대상이 되곤 한다. “여자가 말이야”라거나 “내가 너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데”라는 호통은 나이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개별적인 존재로 자라온 젊은 세대에게 낡은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무력한 노인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급격한 사회변동과 급속한 고령화는 세대를 아우를 새도 없이 진행됐다. 초의수 부산복지개발원장은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도, 누리는 문화적 환경도, 경제적 배경도 다 다른데 그걸 이해할 시간도 없이 사회가 변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격은 차별적 인식으로 이어진다. “젊은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불편하게 생각하는 노인들의 행동에는 노인 세대 전체의 문화적인 배경이 깔려 있는데 그걸 이해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었다”는 게 초의수 원장의 설명이다.

게다가 불안정한 경제 상황은 두 세대가 서로 “우리가 더 힘들다”고 푸념하게 만든다. 노인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때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며 지적한다. 젊은 세대는 노인에 대해 “우리보다 덜 풍족했을지 몰라도 기회는 더 많이 갖지 않았느냐” “이 상황을 만든 것이 당신들”이라고 말한다. 급격히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늘어나는 노인인구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당신들이 짐만 얹는다”고 불평한다.

지난해 5월 25일에는 부산에서 70대 노인을 상대로 묻지마 폭행사건이 벌어졌다. 사진은 당시 사건 현장 CCTV. ⓒphoto 뉴시스
지난해 5월 25일에는 부산에서 70대 노인을 상대로 묻지마 폭행사건이 벌어졌다. 사진은 당시 사건 현장 CCTV. ⓒphoto 뉴시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의 불통

결국 우리 사회에서 연령차별주의가 더욱 심화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근간에는 노인빈곤율 같은 경제적 취약점과 급격한 고령화와 같은 사회적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연령차별주의가 이른바 ‘틀딱’같이 행동하는 일부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 세대 전체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책을 쓴 고광애씨는 “우리는 노인을 개별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세대 전체로 뭉뚱그려서 본다”고 말했다. “으레 노인이라면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힘이 빠진 존재로 생각하죠. 이런 노인, 저런 노인, 사람마다 다 다른데 개별적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요.”

즉 노인 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대 간 접점을 찾을 수가 없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는 공간적으로도 분리돼 있다. 명절에만 잠시 만나는 조부모 정도가 아니면 노인과 젊은이들이 접촉할 일이 일상생활에서 거의 없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하니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순둘 교수는 “급격한 고령화와 사회변동의 가장 큰 문제는 세대 간을 단절시켰다는 것”이라며 “지금 일어나는 세대갈등과 연령차별주의의 양상을 보면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즉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세대갈등 대안 ‘메모로’ 운동

전문가들은 연령차별주의, 세대갈등과 관련된 연구에서 ‘세대 간의 긍정적 경험을 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2007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사회활동 ‘메모로(MEMORO)’다. ‘메모로’는 세대 간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활동이다.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찾아가 그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채집하고 5분 내외의 동영상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지금까지 18개국이 참여해 세계 각국에서 노인들의 얘기가 기록되고 있는데, 비영리단체인 ‘메모로 코리아’는 2013년 한 연구자의 힘으로 세워졌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세대갈등에 대해 오래 연구했던 홍영란 실장은 세대갈등에 대한 대안을 찾다가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메모로’ 운동을 발견하고, 한국의 세대갈등을 해결할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세계 어느 곳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 동영상은 일상입니다. 메모로 활동은 우선 부담이 없다는 데서 큰 점수를 얻었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성인들도 메모로 운동에 참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우선 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세대갈등을 보면 중장년층의 연령차별주의보다 청소년층의 연령차별주의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대가 노인 세대를 만나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메모로 대상의 노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들이다. “한 학교에서는 학년 전체가 지역사회 노인정을 찾아가 각자의 얘기를 듣겠다고 나선 적이 있어요. 노인들이 ‘아니, 내 얘기를 왜 들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더군요. 아무도 노인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죠.”

학생들은 교과서에서만 읽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세대를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노인들이 그러잖아요. ‘우리 때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그런데 학생들은 그 ‘얼마나’가 ‘얼마나’인지 몰랐던 거예요. 들으면서 눈물 짓는 학생들도 많고, 정해진 시간을 넘겨 노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도 많아요.”

취재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메모로 활동 같은 ‘세대 간 긍정적인 경험’은 단 한 번만으로도 효과를 본다고 한다. 한 사람의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은 노인 세대를 세대 전체로 뭉뚱그려서 보기보다 ‘고집 센 노인’ ‘친절한 노인’처럼 개별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그러면서 노인 세대 전체에 대한 이해로 넓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 세대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만 골몰해 연령차별주의의 심각성은 물론 극복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었다. 이화여대 정순둘 교수는 “연령차별주의는 사회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물론 사회 전체에 고령화와 노화에 대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여러 논문에서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다른 나라 대학생에 비해 노화와 노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홍영란 실장의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메모로 같은 세대 간 소통 프로그램이 아예 없다시피 해요. 대개는 독거노인 말벗 되어주기, 도시락 전달하기 같은 노인들을 약자로 보는 활동 뿐이죠. 이런 활동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노인을 낮춰 보게 만들고 소통하기 힘든 약자로만 취급하게 합니다.” 노인을 청년과 같이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는 불과 8년 뒤 2025년에 노인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는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한다. 연령차별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노인을 ‘틀딱’이라 조롱하는 연령차별사회가 만연할 수도 있다.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