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시니어 일자리 한마당’ 행사 무대에 선 청춘합창단 단원들. 오른쪽 두 번째가 권대욱 단장.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시니어 일자리 한마당’ 행사 무대에 선 청춘합창단 단원들. 오른쪽 두 번째가 권대욱 단장.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난 6월 2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 전시장. 합창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무대에서 한창 리허설 중이었다. 소리의 주인공은 평균나이 66.5세의 ‘청춘합창단’.

“지금처럼 소리를 모아야 해요.”

“시작할 때 소리 크게. 메조포르테로.”

김상경 지휘자(55·서울하늘빚은교회 음악목사)의 주문이 이어졌다. 이른 아침 모인 터라 목소리들이 아직 정상 컨디션을 찾지 못한 듯했다. 경남 김해, 강원도 춘천 등지에서 먼 걸음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뒤늦게 도착한 합창단원 한 명이 가방을 던져놓고 무대 위 제자리를 찾아 섰다. 40여명의 목소리가 곧 하나로 모아졌다.

2011년 방영된 KBS ‘남자의 자격’ 오디션을 통해 결성된 ‘청춘합창단’을 기억하는지. 노래에 대한 열정 하나로 오디션에 도전한 이들의 모습은 온 국민을 울렸다. 이들에게 노래는 생활에 치여, 책임의 무게에 눌려 가슴 깊이 묻어둔 꿈이고 한이었다. 오디션에 참가한 당시 84세 노강진씨의 떨리는 목소리는 어떤 성악가의 노래보다 감동이었다. 전국합창대회 은상 수상으로 미션을 완수하고 화려하게 방송 뒤편으로 사라진 ‘청춘합창단’의 도전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날 청춘합창단은 ‘2017 60+ 시니어 일자리 한마당’ 행사에 초대됐다. 흰색 턱시도와 진홍빛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 입은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이날 부른 노래는 ‘인생은 칠십부터’ 등 3곡.

‘칠십이 안 됐으니 인생 모른다 /

칠십을 넘고 보니 세상 보인다 /

차랏차랏차랏~ /

일어나 시작해 봐 일어나 노래해 봐 /

인생은 인생은 인생은 칠십부터야’.

율동을 곁들인 신나는 하모니에 일자리를 찾아 행사장에 나온 객석의 시니어들도 어깨가 들썩거렸다. ‘헤이!’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힘찬 구호로 노래를 끝낸 ‘은발의 청춘’들이 활짝 웃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2011년 10월, ‘청춘합창단’의 마지막 방송은 눈물로 끝났다. 그들도 울었고 시청자도 울었다.

평범한 그들이 전한 감동이 특별했던 것은 절실함이었다. 기자도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러 번 울컥했었다. 노래의 힘은 놀라웠다. 방송을 하는 동안 그들은 주인공이었다. 대부분 처음 받아 본 스포트라이트였을 것이다. 불이 꺼진 후 상실감을 견딜 수 있을까. 단원 중 한 명인 최규용 박사(강북삼성병원 암센터장)가 걱정을 했다.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 다시 해보자!” 모두 한마음이었다. 창단식을 했다. ‘청춘합창단’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생업 때문에 포기한 몇 명을 제외하고 35명이 함께했다. 과천시민회관 공간을 연습실로 빌려 매주 화요일 3시간씩 연습을 했다. 부산, 김해, 춘천에 사는 단원들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얼마나 가겠어?” “몇 달 하다 흐지부지되겠지.” 창단을 바라보는 주변의 예측은 빗나갔다. 6년 동안 더해진 나이만큼 노래는 깊어졌다. 방송 멤버 중에 남은 인원은 20여명, 건강 문제 등으로 그만두고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추가로 뽑아 현재 인원은 지휘, 반주자 포함 50명이다. 전북 완주에서 여섯 번씩 차를 갈아타고 매주 빠짐없이 출석하던 양송자씨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제 90세가 된 노강진씨는 현재 요양병원에 있다.

2015년 6월 기적이 일어났다, 미국 뉴욕의 UN 본부, 각국 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청춘합창단의 ‘그리운 금강산’이 울려퍼졌다. 지난해에는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섰다. 10대 CBS 어린이합창단, 20대 서울대합창단과 함께 3대가 함께한 공연이었다. 이들의 도전은 다큐 영화 ‘청춘합창단-또 하나의 꿈’으로 만들어져 지난 6월 15일 개봉됐다. 영화 제목처럼 이들은 또 하나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경 지휘자, 박찬열·조석영 부부. 김삼순씨, 총무 이만덕씨, 윤학수 부단장.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왼쪽부터 김상경 지휘자, 박찬열·조석영 부부. 김삼순씨, 총무 이만덕씨, 윤학수 부단장.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단장 권대욱의 도전

‘남자의 자격’ 오디션에서 유일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나온 지원자가 있었다. ‘노래하는 CEO’로 유명해진 권대욱(66) 아코르앰배서더코리아 사장이다. 청춘합창단 단장으로 합창단의 오늘을 만든 사람이다. “내 삶을 찾기 위해 나왔다. 사장으로 살아왔지만 사장이 내 삶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가 오디션에서 했던 말이다.

지난 6월 26일 서울 중구 장충동 앰배서더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합창에 노래를 얹으면 연주가 되고, 합창에 꿈을 얹으면 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고 있다. 경영 일선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그에게 합창은 새로운 꿈을 주고 청춘을 돌려줬다. “새벽 3~4시면 일어납니다. 그 시간에 양재천에 나가면 아무도 없어요. 큰 소리로 노래 연습을 합니다. 세상이 전부 내 무대 같아요.” 그는 악보를 볼 줄 몰라 단원이 만들어준 녹음파일을 휴대폰, 차 오디오에 저장해놓고 틈날 때마다 연습한다.

그는 35세 때 한보건설 사장이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36세에 현대건설 사장이 됐으니 그보다 이른 나이다. 이후 유원건설, 극동건설 사장까지 평생 사장으로 살 줄 알다 IMF 때 극동건설이 부도가 나면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명함’이 없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마침 닷컴 열풍이 불었다. 건설에 디지털을 입히는 사업을 구상하고 펀딩을 했다.

“이틀 만에 12억원을 모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죠. 한발 앞선 사업은 성공하지만 두 발 앞서면 망하게 돼 있습니다. 너무 서둘렀고 욕심이 앞섰어요.”

사업을 접고 강원도 문막에 있는 산막으로 들어갔다. 바쁠 땐 보지 못한 자연에 눈을 떴다.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2년여 만에 호텔 사장직 제의를 받고 못 이기는 척 속세로 컴백했다. 그때 살았던 곳은 현재 ‘산막스쿨’로 운영하고 있다. 산막스쿨은 오픈돼 있다. 모임을 하든, 하룻밤 힐링을 하고 가든, 원하는 사람은 모두 웰컴이다. 그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 숙식 무료이다. “하룻밤 자고 돌아가는 길에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간다면 그것으로 산막스쿨의 목표는 달성한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SNS 소통을 즐기는 그의 페이스북 친구들을 비롯해 지금까지 1000여명이 산막스쿨을 다녀갔다.

그는 ‘아코르앰배서더호텔’ 그룹을 10여년 만에 국내 1위 규모로 키웠다. 우리나라 비즈니스 호텔 붐을 이끈 이비스를 비롯해 전국에 19곳이 있다. 용산 드래곤시티 서울 4곳을 포함해 현재 짓고 있는 호텔이 8곳이다. 성공한 CEO에게 청춘합창단은 뜻밖의 도전이었다. 오디션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대학 입시 발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노래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는 홀어머니의 외아들이다. 일찍 혼자 된 어머니는 삯바느질과 하숙집을 하며 아들과 시댁 식구들을 건사했다. 어머니가 재봉틀 돌리며 부르던 유행가를 어린 아들도 흥얼거리고 다녔다.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하숙생들 앞에서 뜻도 모르는 유행가를 부르던 것이 노래에 대한 기억이다. TV에서 박칼린이 지휘한 ‘남자의 자격’ 합창단 시즌 1을 보고 “나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제각각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합창의 매력에 푹 빠졌다.

청춘합창단이 하나로 되기까지 쉽진 않았다. 합창은 자신을 죽이고 하모니를 만들어야 하는 일. 이들을 통솔하려면 뚜렷한 목표가 필요했다.

“무조건 UN에 갑시다!” 권 단장이 처음에 이 말을 꺼냈을 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 세계 대사들이 모인 앞에서 분단국의 아픔과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로 호소하자.” 이 명분 하나로 1년 넘게 매달렸다. 수많은 벽을 넘었다. 그 과정을 말하자면 책 한 권 분량이다. 어렵게 UN행이 성사된 후에는 경비가 문제였다. 3억여원이 필요했다. 단원들에게 비용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권 단장은 백방으로 뛰었다. 수많은 기업을 두드리고 인맥을 총동원했다. 믿었던 지인들은 무슨 급한 약속들이 그렇게 많이 생기는지. 문전박대도 수없이 당했다.

“도와줄 것 같은 사람들은 외면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도와주고,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배웠습니다. 도전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실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요. 비행기 타는 순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2015년 6월 15일 ‘세계노인학대인식의 날’, UN 무대에 선 청춘합창단은 또 한 번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단원 한 명 한 명이 그 드라마의 주연이다.

지난 6월 2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청춘합창단.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2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청춘합창단.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청춘합창단의 스타들

청춘합창단의 대표 스타는 김삼순(63)씨다. UN에 다녀온 후 방영된 KBS 인간극장 ‘청춘합창단 삼순씨 뉴욕 가다’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졌다. 지난 6월 27일 킨텍스 공연이 끝나고 만난 삼순씨는 소녀 같았다. 그는 집이 경남 김해이다. 연습, 공연 때마다 김해에서 올라온다. 이날도 새벽 1시 심야버스표를 예매해놓았다가 무리한 일정으로 노래에 지장이 있을까 봐 전날 올라왔다고 했다. 남한산성 근처에 사는 딸 집에서 자고 나오느라 새벽 5시에 나섰다고 했다. 연습 때마다 왕복 12시간을 오가지만 합창이 즐거워 힘든 줄 모른단다. 그는 이름 덕을 톡톡히 봤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나온 후였다. ‘남자의 자격’ 오디션 때 “저도 좀 유명해요” 이 말 때문에 합격했단다.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오디션 보러 나온 이만덕(61)씨도 당시 화제를 불렀다. 그는 간과 신장이식을 한 후 후유증으로 입원한 상태였다. 치료로 초죽음이 된 상태에서 3일 후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 사정 이야기를 하고 겨우 퇴원했다. 목소리도 내기 힘든 상태에서 딸 손에 이끌려 방송국으로 갔다. 현재 그는 건강을 되찾고 청춘합창단 총무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날도 무대 밖에서 단원 식사 등 진행을 챙기고 있었다. 없는 살림에 합창단을 꾸리려니 힘들지만 노래가 있어 즐겁다고 했다. 합창단은 현재 단원들이 내는 월회비 3만원과 행사 출연료로 겨우 운영되고 있다. 회비는 연습실 대여료와 지휘, 반주 비용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합창단 일에 매달리느라 사업도 뒷전이라고 말했다.

부부 단원도 있다. 조석영·박찬열(78) 동갑내기 부부다. ‘남자의 자격’ 출연 때 합창대회에서 아이유의 ‘잔소리’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음악을 전공한 부인 박찬열씨는 뮤지컬 ‘러브’(윤호진 연출)에도 출연했다. 부부는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조석영씨는 요즘도 일을 놓지 않고 있다. 편의점에서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청춘들도 힘든 밤일을 한다. 그는 “나이 들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청춘합창단의 UN행 뒤에는 윤학수(62) 부단장이 있었다. 예비역 중장으로 최근 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에 선임됐다. 윤 부단장은 고교 중창단을 시작으로 교회 성가대 등 50여년간 꾸준히 합창단 활동을 했다. 2012년 전역 후 고교 선배인 권 단장의 권유로 오디션을 거쳐 합창단에 합류해 힘을 보태주고 있다.

“처음에 권 단장이 UN에 가야겠다고 했을 때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권 단장도 저도 시작을 안 했을 겁니다.”

그는 당시 오준 유엔 대사에게 ‘청춘합창단이 왜 UN 무대에 서야 하는지’ A4 4장에 걸쳐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가 결국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역사의 시작이었다. UN 무대는 청춘합창단의 위상도 실력도 확 끌어올렸다.

“처음 합창단 합류했을 때 잘못 온 줄 알았습니다. 오합지졸이었죠. 이제는 세계 최고 실력의 시니어 합창단이 목표입니다.” 3성 장군 출신답게 화통한 윤 부단장은 합창단의 군기반장이다.

청춘합창단은 이제 음악으로 승부한다. 실력이 업그레이드된 데는 김상경 지휘자의 역할이 컸다. 합창계의 거장 윤학원 지휘자의 바톤을 이어 2014년부터 지휘봉을 잡고 무섭게 몰아쳤다.

나이 든 단원들은 자기 주장이 뚜렷했다. 아집도 강했다. 다들 왕년에 한 가닥씩 하던 사람들이었다. UN에 다녀온 후엔 힘든 연습으로 참았던 불만들이 폭발했다. 지휘자, 운영진에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엔 합창의 중심이 음악이라는 것을 대부분 몰랐죠.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정작 마음을 닫고 계셨어요. 이제는 자신을 죽이고 음악을 살리는 합창의 묘미를 알게 됐죠.”

곪은 상처가 터진 자리는 이제 더 단단해졌다. “저는 합창을 만들 테니 단장님은 청춘을 만들어주세요.” 그가 처음 지휘봉을 잡고 권 단장에게 한 말이다.

실현된 꿈은 꿈이 아니다. UN의 꿈을 이룬 후 청춘합창단은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GO! 글로벌, GO! 평양’이다. 청춘합창단이 평양 공연을 하는 날, 남북통일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사실 UN행도 평양행의 전초전으로 생각한 일이었다. 단절된 남북의 물꼬를 트는 것은 체육, 문화의 역할이고, 청춘합창단이야말로 최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단원들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제든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

평양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는 청춘합창단의 발걸음은 바빠지고 있다. 8월엔 예술의전당 한국 가곡의 밤 무대, 9월 롯데월드타워 공연이 예정돼 있고 평창 동계올림픽 초대도 추진되고 있다. 11월에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리는 세계합창경연대회에 초대됐다. 한 가지 걱정은 건강이다. UN 공연 때는 의사, 간호사가 따라붙었는데 오스트리아는 경비 문제 때문에 어렵게 됐다. 경비 마련을 위해 다시 권 단장이 뛰고 있다. 단원들이 경비의 절반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행사 출연료 등으로 충당할 생각인데 턱없이 부족하다. 권 단장은 다큐 영화를 만든 것도 경비에 도움이 될까 생각해서였는데 예상만큼 흥행이 되지 않고 있다고 걱정했다.

‘삶이라는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김태원이 만든 청춘합창단의 주제곡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의 가사다. 55세에서 81세, 노래 가사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꿈을 노래하는 그들은 어떤 청춘보다 빛나는 청춘들이다.

키워드

#피플
황은순 차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