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70호] 2017.08.14

실험실 동물의 비극

한 해 288만마리가 버려지고 있다

photo ISWHP
“저는 태어날 때부터 반려견과 함께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동물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픈 동물을 치료하고 동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 싶어 수의대로 진학했어요. 강아지를 데리고 하던 실습날이 기억나네요. 저와 친구, 두 명에 한 마리씩 실습견이 배정됐어요.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고 피 뽑는 실험을 하는데 얌전하게 있더라고요. 친구가 ‘얼마나 익숙하면 신음소리도 안 내네’ 혼잣말을 하더라고요. 제 차례가 됐는데 손이 떨려서 주사를 못 놓았어요. 동물을 아프지 않게 하려고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아프게 하는 건 아닌지, 무척 힘들었어요.”
   
   올해 수의사가 된 김지연(가명)씨의 이야기다. 문제는 김씨가 실습을 마치고 난 다음의 일이다. 김씨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이런 실습용 강아지들은 실습을 마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더라도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다. 애초에 이 강아지는 실습용으로 길러졌다. 전문 사육장에서 길러져 실습실을 떠돌다가 안락사한다.
   
   박재학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4년 전 동물실험을 했다. 포도 종류가 개에게 독성을 유발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보통 동물실험에 쓰이는 견종(犬種)은 비글이다. 이 실험에서도 네 마리의 비글이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 결과 개 네 마리가 모두 포도에 어떤 독성도 나타나지 않았다. 혈액 검사나 장기 검사에서도 정상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실험 이후였다. 안락사를 시키기에는 너무 건강했다. 그렇다고 박 교수가 떠맡거나 마음대로 분양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박 교수는 동물보호단체 등을 통해 분양 공고를 냈다. 개의 건강과 돌봄 상태를 추적한다는 단서를 달아 네 마리 모두 입양보냈다.
   
   이 네 마리 비글과 같은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하는 동물은 수도 없이 많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동물실험에 쓰인 동물은 287만9000마리에 이른다. 2012년 실험동물은 183만마리였는데 2015년에는 250만마리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실험동물은 거의 대부분 안락사한다.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동물실험이 끝난 후 동물이 회복될 수 없거나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을 경우 가능하면 빨리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처리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회복하기 힘든 실험을 겪은 동물의 경우에는 안락사가 정답일 수 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동물실험은 동물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때가 많다. 한 제약회사 연구소에서 보조연구원으로 일했던 정영은씨는 처음 실시한 건강보조식품의 동물실험을 잊지 못한다. “쥐와 토끼를 상대로 한 실험이었어요. 장기 복용 위험성을 실험하는 거라 꽤 오랫동안 곁에 두고 제때 약을 먹이면서 시간을 보냈거든요. 실험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요. 그 결과가 나오자마자 10마리 넘던 동물들은 바로 안락사했습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유럽연합(EU)에서는 실험동물의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공중보건에 해가 없을 때 가정이나 사육기관에서 기를 수 있게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몇몇 주에서는 실험 후 회복된 동물은 가정에 우선 분양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시행 중이다. 박재학 교수도 “감염성 질환 실험에 쓰인 동물은 어쩔 수 없지만 건강상 문제가 없거나 실험 자체가 취소돼 갈 곳 없는 동물도 모두 안락사시키는 것은 문제”라면서 “실험동물 입양을 법제화해서 실험자의 윤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실험동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2009년부터 ‘실험동물법’이 시행 중이다. 실험동물과 동물실험을 관리하고 국제적 기준에 맞는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1000여개의 실험동물시설은 동물실험을 하기 전에 외부 인력이 포함된 위원회를 열어 실험의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실험에 이용하는 동물들을 윤리적으로 처리해야 하며 실험에 참여하는 연구진들은 모두 윤리 교육을 받아야 한다. 법률상으로는 동물실험과 실험동물 관리에 대해 선진적인 관리시스템의 틀을 만들어놓았지만 실제 산업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
   
   
   3R 원칙이 대세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윤리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될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저도 윤리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전문적인 실험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대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더러 외부 인사라고 하지만 결국은 실험시설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 참여해 형식적으로 승인 결정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김길수 경북대 수의대 교수가 2014년에 발표한 보고서 ‘국제수준의 실험동물관리체계 마련을 위한 전략연구’를 보면 2010년 기준으로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서 심사한 동물실험은 총 1만5636건이었는데 미승인된 실험은 698건으로 4%에 불과했다.
   
   실험동물을 생산·공급하는 시설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국내 동물실험시설 사육실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김길수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절반이 33㎡(10평) 이하의 소규모 사육실을 갖추고 있고 시설당 사육실도 1.7개에 불과한데, 사무실로 사용하거나 사용할 예정인 건물을 임의로 용도변경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인수공통전염병의 감염 가능성도 높고 동물이나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줘 실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험동물을 공급하는 업체 역시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농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실험동물법은 실험동물들을 잘 관리하고 동물실험이 효율적이고 윤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3R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Replacement(대체), Reduction(감소), Refinement(고통완화)라는 단어를 묶은 것인데 동물실험을 가급적 줄이고 실험하더라도 동물들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통완화’ 원칙에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지만 대체와 감소 원칙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동물실험을 하는 대표적 분야였던 화장품산업에서는 동물실험이 퇴출되는 추세다. 유럽연합은 2013년부터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수입·유통·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에 맞춰 지난 2월부터 화장품의 동물실험을 막고 있다. 화장품의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동물실험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으로 이뤄져왔다는 것이다. 이형주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다른 동물을 이용하지 않고도 인체에 유해한지를 실험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개발됐다. 관습적인 동물실험을 줄이고 더욱 효과적인 실험 방법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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