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서울 A사립학교 과학담당 김모교사는 학생 사이에서 ‘천재쌤’으로 통한다. 학생들이 아무리 엉뚱한 질문을 해도 일일이 답해주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학 관련 행사를 자주 기획한다.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재미있게 이끌까’를 고민하는 김 교사는 온갖 도구와 동영상을 수업시간에 활용한다. 김 교사의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과학이 쉬워졌어요”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공부 자체의 재미를 찾은 학생도 있다. 하지만 김 교사의 교원평가등급은 B등급. 최하위다.

같은 학교 영어담당 박모 교사의 별명은 ‘이사도라’다. 24시간 돌아다니면서 학생을 감시, 복장불량을 기막히게 집어낸다. 정년퇴임을 앞둔 박 교사는 수업시간의 상당 시간이 ‘자습’이다. 교무부장이라 행정업무가 많기 때문에 수업연구는 뒷전이다.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박 교사는 ‘기피대상 1호’다. 학생들을 함부로 대해 학부모 항의전화를 자주 받는다. 박 교사가 담임이 되면 “무조건 전학가겠다”는 학생도 있다. 박 교사의 교원평가등급은 S등급. 최상위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학부모와 일반인들은 의아해하지만, 평가기준을 아는 교사들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교원성과급제’라고 하면 수업 잘하는 열정적인 교사는 성과급을 많이 받고, 시간만 때우는 무능한 교사는 성과급을 적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열정적 교사’보다 ‘행정의 달인’들이 성과급을 많이 받는 경향이 강하다. 교원성과급제는 엄밀히 말하면 업무수당에 가까운 개념인 셈이다.

이 학교의 평가지표를 보자. 평가지표는 크게 네 분야다. 학습지도 30%, 생활지도 30%, 담당업무 30%, 나머지 10%는 전문성 개발이다. 천재쌤 김 교사의 활동내용은 평가지표에 없다. 열정적인 수업 연구와 과학 관련 행사는 점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학습지도 분야가 있긴 하지만, 이는 수업시간, 담당과목 수, 수업공개 등을 기준으로 한 정량평가다. ‘얼마나 채웠냐’가 중요하지, ‘얼마나 잘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수업의 질이 우수해서 교육청으로부터 ‘우수교사상’을 받는다 해도 고작 가산점 1점에 불과하다. 반면 이사도라 박 교사의 활동은 평가지표에서 비중이 높다. 교무부장은 가산점 10점, 부장단 기획과 총괄업무는 5점이 추가된다. 집이 가까워 수시로 야간자율학습 감독으로 점수를 얻는다. 한 번 감독 시 0.4점이다. 학교행사를 수시로 기획해 학생생활지도와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할 시간이 없는 박 교사는 점수가 낮다. 학교마다 평가지표는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폐지 요청

교원성과급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11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교원성과급 폐지를 강력히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6일 후인 11월 30일 현재 5만여명이 서명했다. 서명마감은 아직 23일 남았다. 이 속도라면 청와대가 공식답변을 내놓는 유효서명 숫자인 20만명 서명도 가능해 보인다.

청원 글에서는 교원성과급제에 대해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교사들의 교육관을 흔들리게 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학생과의 수업,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교원성과급제도는 이러한 본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제도”이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는데 1년의 성과를 단순히 공문의 수, 맡은 업무, 학생 수 등으로 평가하는 제도는 지극히 잘못되었다고 본다”는 내용이다. 교사 간 갈등과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교원성과급제는 ‘건전한 경쟁을 통한 교원의 질 제고 및 사기 진작에 기여’를 목적으로 2001년에 도입됐다. 공교육 황폐화를 막기 위해서는 교사의 경쟁력 강화가 먼저라는 절박함 속에서 탄생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교원은 S, A, B의 세 등급으로 상대평가된다. S등급은 상위 30%, A등급은 40%, B등급은 하위 30%의 비중이다. 동일호봉 평교사 기준으로 S등급과 B등급의 성과급은 70% 차등지급일 경우 168만원, 100% 차등지급일 경우 240만원까지 차이 난다.

도입 첫해부터 폐지론이 끊이지 않았던 교원성과급제. 17년간 꾸준히 개선방안을 내놨지만 폐지 여론은 여전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국정과제에 ‘성과제도 개선 등 교원인사제도 개선’ 내용을 포함했다. 여론은 폐지 쪽으로 확실히 기운다. 교사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한다. 지난 6월 22일에는 서울시교육청과 전국교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교원성과급제 폐지를 요구했다. 보수와 진보 교원단체가 특정 사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낸 건 이례적이다.

지난 5월 10일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이 초·중·고교 교사 10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초·중·고 교육 정상화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할 정책’ 1위로 ‘교원성과급제 폐지’가 꼽혔다. 성과급제가 도입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매우 강하다. 교총이 지난해 172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원성과급제가) 건전한 경쟁을 통한 교원의 질 제고 및 사기진작에 기여하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응답이 무려 94%에 달했다.(전혀 그렇지 않다 74%, 그렇지 않다 20%) 응답자의 41%는 평가의 공정성이 결여돼 교사 간 갈등을 야기하는 등 역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려 절반에 가까운 교사들이 ‘평가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이거라도 있어야” vs “차라리 없애라”

교원성과급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두 가지가 겹쳐 있다. “이거라도 있어야 한다”는 온건한 지지론자들과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과격 폐지론자. 강력한 지지론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행 방식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결론은 분명해 보인다.

먼저 온건 지지론자들의 입장을 보자. 경기도 성남 B초등학교 권모 교사는 교원성과급제 지지론자다. “어느 조직이든 잘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칙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교사라고 예외일 수 없다. 열심히 일한 교사에게는 성과급을 많이 주고, 일을 덜 한 교사에게는 성과급을 적게 주는 것은 당연하다. 이거라도 있으니 기피업무라도 맡지, 아예 없어지면 누가 맡으려 하겠나.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해나가면 된다. 겨우 정착해가는 시기에 폐지하면 혼란을 더 가중시킨다.”

학부모 중에는 온건한 지지론자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능력 있는 교사에게는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중학생을 둔 학부모 오모씨는 “솔직히 선생답지 않은 선생들이 얼마나 많나. 이거라도 있어야 설렁설렁 가르치는 교사들이 더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원성과급제의 기준을 알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교원성과급제는 ‘잘 가르치는 교사’ ‘학생과 소통하는 교사’ ‘수업에 열정적인 교사’를 가려내지 못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려는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주고, 공부를 포기한 아이에게 꿈을 심어준 ‘인생의 스승’ 같은 교사에게는 아무런 가산점이 없다. ‘수치화’와 ‘일반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A학교의 경우 생활지도부 계획에 의해 정문 및 중식 지도를 잘하면 무려 15점을 얻는다. 하지만 서울시 주최 이상 연구대회 입상을 하면 고작 1점을 얻는다. 무엇보다 교무·연구·학생부장 등 주요 부서 부장을 맡아야 점수가 높다.

교원성과급제의 평가지표를 알게 된 학부모들은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이다. 공부를 잘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행정업무를 많이 하는 교사들이 성과급을 많이 가져가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상당수 교사들은 “과도한 행정업무를 맡으면 행정에 쫓겨서 수업 연구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수업연구할 시간이 없는 교사들이 성과급을 많이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평가지표에서 ‘수치화’를 내세우다 보니 웃지 못할 사건도 있다. 한 중학교에서는 한때 ‘상벌점제’를 수치화해 교원성과급제 평가지표에 넣었다. 학생들에게 상점이나 벌점을 많이 주는 교사일수록 가산점을 주는 것. 그러다가 상점이 남발된다는 지적에 상점은 없애고 벌점만 살렸다. 결과는 어땠을까. ‘칭찬’은 없애고 ‘지적’만 부추긴 이 제도의 결과는 참담했다. 교사들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학생들 벌점 매기기에 혈안이 됐고 사소한 잘못에 벌점을 남발했다. 아이들은 점점 ‘벌점 부자’가 돼 갔다. 지지와 칭찬이 점점 줄어들고 지적과 훈계가 늘어나면서 학교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얼마 안 가 이 기준을 없앴지만 교원성과급제의 부작용이 드러난 단적인 사례다.

교원성과급제 폐지론자들의 근거는 명확하다. 교육 성과를 평가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교육은 단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가 아니고 객관화·수치화가 불가능하므로 교원의 성과를 등급화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교사의 자질은 교과 전문성이나 학생에 대한 애정인데 이를 측정하기는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첫 단추부터 잘못된 제도라는 얘기다.

애초부터 동상이몽이었다.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는 교원성과급제에 대해 훌륭한 교육자에게는 상을, 교사답지 않은 교사에게는 벌을 내리는 제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공급자들은 다르게 적용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모두가 맡기 싫어하는 기피업무를 맡은 대가로 받아들였다.

교사 등급은 교사의 능력과 거의 무관하다. S등급 교사라고 유능하고, B등급 교사라고 무능한 것이 아니다. 5년 차 한 교사의 말이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 등급은 교사의 경력과 맡은 직책에 의해 좌우된다. 나이 어린 교사, 교과전담 교사는 B등급이 많고, 고학년 담임이나 부장, 행정업무를 쥐고 있는 교사들이 S등급을 가져간다.”

교습법이 뛰어나도 B등급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나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쁨을 주기 위해 수업연구를 매우 열심히 한다. 그러나 B등급을 받았다. 교감이 ‘고생한 거 압니다. 좋은 교사라는 것도 압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더라. 현재의 평가기준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거다. 물론 평가를 받기 위해 수업연구를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B등급을 받으면 맥이 빠지고 의욕이 저하되는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없앴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수치화·객관화하는 정량(定量)평가 방식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교육부는 정성평가 기준을 도입했다. 100% 정량평가이던 기존 방식을 변경, 정성(定性)평가를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정성평가를 20% 반영했다가 올해는 30%로 높였다. 정성평가 기준에는 교육 수요자들이 기대하는 ‘교사로서의 자질’을 반영한다. △교육공무원으로서의 태도 △학습지도 △생활지도 △전문성 개발 △담당업무 등의 지표로 평가한다.

평가 주체는 ‘다면평가관리위원회’로 동료 교원이 대부분이다. 평가 항목에서는 해당 교사가 교육 주체로서 얼마나 열정적이고 바람직한 태도로 임하는가를 본다. ‘수업교재 연구를 충실히 하는가’ ‘학생 수준에 적합한 수업계획을 수립하는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노력하는가’ 등이 그것. 이런 내용까지 동료 교사가 공정하고 예리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결국 객관성을 결여한 인상 평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 힘 없는 ‘학생 만족도 조사’

교육의 3주체는 교사·학생·학부모다. 바람직한 교육이란 이 3주체가 한마음이 되어 같은 방향을 보면서 달리는 경주라고 한다. 그러나 현 교원성과급제에는 학생·학부모가 쏙 빠져 있다. 교사가 잘 가르치는지, 교육공무원으로서 태도를 갖췄는지 여부를 가장 잘 아는 주체는 교육 소비자이자 수용자인 학생이다. 아이들이 먼저 안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교수의 자질을 평가하는 가늠자로서 힘이 크다. 하지만 초·중·고교에서는 ‘학생 만족도 조사’는 아무런 힘이 없다.

매년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지만 이는 교원평가에는 공식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교원의 자기성찰 자료로만 활용하게 돼 있다. 교사의 승진이나 성과급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한 교사는 이에 대해 “혼자 보고 버리는 화투패와 같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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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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