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 미2사단 창설 100주년 콘서트가 열린 경기도 의정부체육관. ⓒphoto 연합
지난 6월 10일 미2사단 창설 100주년 콘서트가 열린 경기도 의정부체육관. ⓒphoto 연합

지난 6월 10일 ‘미2사단 100주년 콘서트’가 열린 경기 의정부체육관. 이날 무대 위에 오른 가수 인순이씨는 마이크를 잡았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오늘 노래를 하려고 왔지만 바깥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생겼다.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 같아서 인사라도 드리려고 나왔다. 노래를 못 하게 돼서 죄송하다.”

인순이씨는 이날 ‘아버지’ ‘거위의 꿈’ 등 3곡을 부르기로 했지만 한 곡도 부르지 못했다. 그는 무대에 서기 전 대기실에서 눈물만 펑펑 쏟았다. 콘서트 당일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가수의 말에 4000명에 달하는 관객들은 아연실색했다.

인순이로 끝이 아니었다. 가수 크라잉넛도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인순이와 크라잉넛 외에도 공연을 약속한 5팀은 아예 콘서트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실망한 관객들은 나머지 공연을 보지도 않은 채 콘서트장을 나가버렸다. 이날 콘서트장인 의정부체육관 입구에서는 민주노총 경기북부지부, 노동당 의정부당원협의회 소속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미2사단 100주년 콘서트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이날 콘서트는 의정부에 본부를 둔 미2사단 창설 100주년을 맞아 의정부시가 미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토머스 밴달 미8군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간부 50여명과 미 장병 400여명, 시민 3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공연을 위해 가수 인순이·크라잉넛·EXID·오마이걸·스윗소로우·산이·문재숙이 출연하기로 돼 있었지만 아예 불참한 가수들도 있었다. 걸그룹 EXID는 팬카페를 통해 콘서트 불참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의정부 시민들과 함께하는 무료 공연 입장 취지에 동의해 출연하기로 했지만 본 행사와 관련해 소속 아티스트의 신변, 정신적 피해 등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돼 출연취소를 하게 됐다.” EXID가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유는 바로 일부 좌파단체의 협박 때문이었다.

지난 6월 10일 미2사단 창설 100주년 콘서트 무대에서 가수 인순이씨가 사과를 하고 있다. ⓒphoto 추계E&M
지난 6월 10일 미2사단 창설 100주년 콘서트 무대에서 가수 인순이씨가 사과를 하고 있다. ⓒphoto 추계E&M

일부 좌파단체들의 협박이 발단

미2사단 콘서트에 출연하기로 한 가수들은 일부 좌파단체들로부터 온갖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가수들이 당한 협박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일부 좌파단체들은 SNS를 통해 지난 5월 1차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 행사에 가수 인순이가 게스트다. 의정부 시민들은 인순이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미군 장갑차에 살해된 아이들을 벌써 잊었나.’ ‘팬카페 탈퇴도 불사하겠다.’

좌파단체들의 협박으로 끝나지 않고 실력행사로 이어졌다. 실제 일부 가수들의 팬카페에서 몇몇 팬들이 탈퇴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여기에 민주노총과 노동당도 미2사단 콘서트 개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미2사단 콘서트가 열리는 날, 출연을 약속한 가수들이 모두 노래를 부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미2사단 콘서트가 파행을 겪은 것에 대해 지난 6월 13일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극단적 좌파 세력의 염치없고 무례한 행동에 어이없고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한·미 동맹의 가치를 위해 민주당 소속 시장이 우정과 송별의 뜻을 담아 개최한 100주년 기념 콘서트가 통합진보당이 섞인 극단적 좌파 시위로 중단된 건 테러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도 “소위 ‘문(文)위병’이라는 분들이 미2사단 공연을 무산시킨 것은 홍위병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좌파에 의해 무산된 미2사단 100주년 콘서트는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미2사단 콘서트 무산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공연을 기획한 업체는 추계 엔터테인먼트사(이하 추계E&M)다. 지난 12월 4일 서울 여의도 추계E&M 사무실에서 이근백 이사를 만나 그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좋은 취지의 공연을 정치적인 논리로 바라보고, 이를 공격하는 일부 극단적인 좌파단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후 미2사단 콘서트 파행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갑질에 다시 한 번 상처받았다. 미2사단 콘서트 파행 사건 이후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더 이상 이런 일들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근백 이사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미2사단 콘서트가 반쪽짜리 공연이 된 이유는 제2부 공연 때문이다. 미2사단 콘서트는 미8군 군악대, 태권도 공연 등으로 구성된 1부 공식기념행사와 가수들이 출연하는 2부 슈퍼콘서트로 구성됐다. 지난 6월 10일 열린 미2사단 콘서트에서 1부 공연은 아무 차질 없이 진행됐다. 문제가 발생한 순서는 2부 슈퍼콘서트였다. 출연을 약속한 가수들이 일부 좌파단체의 협박을 받고 콘서트 당일 출연을 거부했다. 가수 섭외를 비롯한 2부 슈퍼콘서트를 담당한 업체는 추계E&M이 아니라 ‘CJ헬로’이다. 의정부시가 기획한 미2사단의 100주년 콘서트를 맡게 된 업체는 추계E&M으로 선정됐다. 추계E&M은 가수들의 출연자 섭외와 콘서트 방송 송출을 맡길 업체로 CJ헬로를 선정해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근백 이사는 “일부 단체가 미2사단 콘서트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핑계 삼아 CJ헬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콘서트 파행으로 인해 행사 마지막 순서로 계획된 미군 장병과 우리 청소년들이 손잡고 아리랑을 부르는 것도 무산됐다. 이근백 이사는 “미2사단 콘서트의 주제는 치유와 화합이었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주한미군 2사단은 ‘인계철선(引繼鐵線)’이라고 불린다. 한반도에서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미2사단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다. 1917년 창설된 미2사단은 100년 동안 미 본토에서 40년, 유럽에서 4년, 한국에서 56년간 주둔했다. 6·25전쟁 3년간 2만40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한·미동맹의 상징부대다. 이근백 이사는 “콘서트를 기획하게 된 이유도 미2사단 창설 100주년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봤다”면서 “일부 좌파단체의 극단적인 시위, 출연진 섭외 실패의 책임을 지지 않는 CJ헬로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미2사단 콘서트가 파행을 맞은 직후인 지난 6월 14일 H신문은 “시민의식을 못 따라가는 행정을 밀어붙인 안병용 의정부 시장이야말로 콘서트 파행의 원인 제공자”라는 기사를 썼다. CJ헬로도 공연 파행의 책임을 의정부로 떠넘겼다.

지난 10월 CJ헬로 측은 이근백 이사에게 “미2사단 콘서트 공연 파행의 법적 책임을 의정부에 함께 따지자”고 제안했다.

미2사단 창설 100주년 콘서트 개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모습. ⓒphoto 연합
미2사단 창설 100주년 콘서트 개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모습. ⓒphoto 연합

“CJ헬로도 공연 파행 책임”

이근백 이사의 설명이다. “CJ헬로의 제안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좋은 취지의 공연을 기획한 의정부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공연을 비난한 일부 시민단체와 가수들의 섭외를 책임지지 못한 CJ헬로도 공연 파행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미2사단 공연 파행 사건 이후 CJ헬로 측에서 이근백 이사에게 사과를 한 사람은 없었다. 이후 추계E&M을 둘러싼 부정적인 루머들이 나돌았다. 미2사단 콘서트 파행 이후 추계E&M에 공연을 맡기고 싶다는 지자체의 문의도 끊겨버렸다. 미2사단 콘서트 파행의 시작은 좌파·반미단체의 반대 시위였다. 이들은 콘서트 출연을 약속한 가수들의 소속사에 전화를 걸거나 SNS로 협박했다. 하지만 CJ헬로는 가수들의 섭외를 책임지고 진행하지 못했다. CJ헬로는추계E&M에 억울하면 민사소송을 하라는 식이다. 현재 추계E&M은 공정거래위원회에 CJ헬로를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서를 접수한 상태다. 이근백 이사의 말이다. “이제라도 미2사단 콘서트 파행에 얽힌 책임관계를 명확히 하고 싶다. 더 이상 순수한 공연에 있어 일부 좌파들의 정치적인 논리,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 등이 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번 기회로 잘못된 점이 바로잡히고 제자리를 찾았으면 한다.”

계약서 조항 준수하지 못한 CJ헬로

주간조선은 지난 6월 미2사단 콘서트를 총괄 기획했던 ‘추계E&M’이 ‘CJ헬로’와 맺은 용역 계약서를 단독 입수했다. 계약서에 어떤 내용들이 적혀 있는지 자세히 살펴봤다. 이 계약서에서 ‘갑’은 추계E&M이고, ‘을’은 CJ헬로이다. 제1조에는 계약의 목적은 “미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콘서트 대행용역”에 따른 업무를 명확히 하는 데 있다고 적혀 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제3조 2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무대 ②조명 및 음향 시스템 ③2부 행사 방송중계(방송 대본 및 큐카드 작성 포함) ④2부 행사 출연자 6개팀 섭외 ⑤1, 2부 진행자 섭외 ⑥오프닝 영상 및 클로징 영상물 3종 제작 ⑦영상제작물 지역방송 송출(CJ헬로 23개 지역)이다.

제3조에 적힌 대로 미2사단 콘서트 기획단계에서 CJ헬로가 맡은 역할은 총 7가지였다. 7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했을 때 CJ헬로가 추계E&M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은 총 2억여원이다. CJ헬로는 가수 섭외와 방송 송출 등의 명목으로 계약금의 70%에 해당하는 1억4000여만원을 받은 상태다. 그런데 CJ헬로는 가장 중요한 출연진 섭외에 실패했다. 제6조는 손해배상 책임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계약서상 CJ헬로는 미2사단 공연 파행에 끼친 손해배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제11조에 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담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갑’이 하도급을 허락한 경우에도 하도급을 이유로 하여 ‘을’은 계약상 책임 및 손해배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계약서 내용을 살펴보면 CJ헬로는 미2사단 콘서트 파행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근백 이사는 “CJ헬로 측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몇천만원을 줄 테니 서로 없던 일로 하자는 황당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억울하면 민사소송을 해보라는 식으로 나오는데 이야말로 대기업의 갑질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CJ헬로 측이 민사소송을 하라고 제안하는 이유가 있다. 민사소송을 하게 되면 법정에서 다투는 기간이 1~2년을 훌쩍 넘어가버린다. 소규모 업체인 추계E&M은 소송기간이 길어질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추계E&M은 공정거래위원회에 CJ헬로를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한 상태다. 추계E&M은 CJ헬로가 계약서 제3조 2의 ③,④,⑥,⑦의 항목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한 CJ헬로 측의 입장이다. “추계E&M과 원만하게 합의하겠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미2사단 콘서트 파행 사건은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벌어지게 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계약서에 나온 대로 공연 무대 설치 등에 들어간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섭외 부분에 물의를 일으킨 부분은 책임을 질 생각이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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