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95호]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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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3] 액션건축가 이슬기

실행의 神… 생각을 현실로

김민희  차장대우 minikim@chosun.com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저는 액션건축가입니다.”
   
   액션을 건축한다고? 맞다. 그녀의 직업은 행동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그가 무언가를 벌이면 사람들이 모였고, 대부분은 현실화됐다. 사람들은 그를 ‘실행의 신’ ‘액션가’로 불렀다.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데 귀재다.
   
   이슬기. 서른넷밖에 안 된 여성이다. 대학 졸업 후 고작 8년. 그중 절반인 5년은 삼성카드 마케팅부서 직원으로 일했다. 이후 그가 벌이고 실행한 일들은 많아도 너무 많다. 열거만 해도 한 장 꽉 찰 듯하다. 몇 가지만 보자. 셰어하우스 We.R설립 및 대표, 출판사 FUNZIP 대표, 그룹 ‘일기예보’의 나들 뮤직비디오 감독, 아빠와 200일간 세계 여행, 책 3권 집필, 자칭 ‘우주최강미녀삼총사’와 팟캐스트 ‘내-일은 가볍게’ 운영, 한국의 스티브 잡스 양성소 ‘건명원’ 원생, 퇴사학교 교사, 그리고 ‘가슴 뛰는 삶’을 도와주는 콘텐츠 제작 및 프로그램 운영.
   
   삼성 직원으로서도 일을 많이 벌였다. TEDx삼성 컨퍼런스 기획·연출·사회를 맡았고, 삼성그룹 메디치 창의스쿨 파티, 직장인을 위한 ‘한낮의 파티’, 대학생 멘토링 ‘옆집선배’를 기획했다. 이 모든 것은 ‘가슴 뛰는 삶’으로 수렴된다. 그녀의 홈페이지 ‘액션 랩’의 첫 화면도 ‘가슴 뛰는 일의 시작’이다.
   
   지난 2월 초 서울 신문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복장부터 파격이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빵모자를 눌러쓰고, 알록달록한 스파이더맨 무늬의 백팩을 메고 나타났다. 한파만 아니었다면 스쿠터를 타고 왔을 것이라 한다. 대뜸 물었다. “왜 그렇게 가슴 뛰는 삶에 천착하느냐’고. 그는 활짝 웃으며 “그 일이 제 가슴을 뛰게 하니까요”라고 답하더니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해진다.
   
   “사실 저도 비슷했어요. 학교에서는 높은 등수, 전문직이 될 수 있는 학과, 그리고 이름 있는 회사. 저 역시 남들이 가는 길 위에서 조금이라도 앞서 걷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고, 운이 따라주어 고액 연봉을 받는 이름 있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생이 시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왔어요. 점점 강하게요. 서서히 퇴사를 준비했습니다.”
   
   퇴사 준비 기간은 1824일. 회사를 나가고 싶은 이유가 생길 때마다 그는 바를 정(正) 자를 그려 나갔다. 100개가 넘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하면서. 며칠 되지 않아 바를 정 자 100개를 채웠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고, 회사를 그만둘 경우 바깥세상이 무서웠다. 스트레스는 몸의 징후로 왔다. 두통과 불면증이 떠나지 않았고 소화불량으로 변기를 붙잡고 사는 날이 많았다.
   
   “하루는 술에 취해 친구를 찾아가서 힘들다고 펑펑 울었더니 친구가 읽던 책을 건넸어요.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는 법정 스님의 책. 보면서 ‘내가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도피를 위해 대안을 찾았지만 제 선택지는 많지 않았어요. 세상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직업이 있을 텐데 그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죠.”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리면 늦다
   
퇴사를 마음먹으면서 회사에서 재미를 찾기 시작하자 오히려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가 돼 갔다. 그가 벌이는 기발한 일들이 소문나면서 본사로 발령이 났고, 이런저런 일을 벌이면서 퇴사 때까지 신나게 일했다.
   
   바깥세상이 전쟁터 같았다면서 왜 굳이 퇴사를 결심했을까. “무서웠어요.”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되는 것이 무서웠어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평생이 바람처럼 지나갈까봐 무서웠고, 하고 싶은지 알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을까봐 무서웠어요.”
   
   퇴사 직후 쓴 전자책 ‘퇴직보고서’는 에세이 부문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랐다. 그를 바꾼 것은 여행이었다. 의외성으로 꽉 찬 여행지에서 그는 진짜 자신을 들여다봤다.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를 알게 됐다. 아빠와 단둘이 200일 동안 15개국 11개 도시를 여행한 후 쓴 ‘댄싱 위드 파파’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리면 늦다.”
   
   이후 그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거침없이 실행에 옮겨나갔다.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밀어붙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런 답을 내놓는다. “어떤 일을 바라볼 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지’와 ‘그것을 해내는 시간’이 문제인 것이죠. 보통 안 될 것처럼 보여도 막상 부딪혀 보면 되는 일들이 많거든요.”
   
   거침없는 돌파력은 건명원 교육의 힘이 크다. 그는 2017년 건명원 3기로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하고 꿈꾸었다. “건명원 교육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높은 벽이 무너지거나 낮아졌어요. 유무형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갈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도, 미래에도, 세상에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요.”
   
   그는 최근 ‘교육’에 꽂혀 있다. 교육 대상은 다양하다. 미취학아동부터 80대까지. 군포시 평생학습원에서는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인생 글쓰기’ ‘삶이 예술이 되는 인문여행’을 진행했고, 서울시 ‘무중력지대’에서는 청년들과 ‘무중력실험실’을, 성북문화재단에서는 ‘네 멋대로 써라’를 이끌었다. 그중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아이들의 창의력’이다. 박제된 교육이 아니라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실험실 같은 교육현장을 꿈꾼다. 그의 프로그램은 대상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몇 번 만나보면서 그에게는 신기한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묵혀둔 꿈을 술술 불게 하고, 그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힘.
   
   그에게는 반전의 면면이 많다. 용감무쌍할 듯했지만 알고 보니 겁쟁이였고, 즉흥적일 듯했지만 알고 보니 신중한 사람이었다. “하하. 제가 겁이 많아요. 그래서 일을 신중하게 지르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혹시나’라는 생각으로 수만 가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 돌려 봐요. 게다가 소심하기까지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수백 번, 수천 번 곱씹고요. 고민을 많이 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일단 시작하면 하는 일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죠.”
   
   치밀하고 진중한 사색은 묵직한 질문으로 탄생한다. “매년 제 삶에 새로운 질문을 던져요. 2014년에는 ‘세상에 정답이 있는가’, 2015년에는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을 할 수 있는가’, 2016년에는 ‘내 두 발로 세상의 중력을 거슬러 일어설 수 있는가’, 2017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가’였죠.”
   
   올해 이슬기씨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평범한 사람의 행복한 삶은 가능한가”이다. 그 질문이 어떤 행동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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