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즐기는 닭발 튀김. 중국은 세계 최대의 닭발 수입국이다. ⓒphoto 뉴시스
중국인들이 즐기는 닭발 튀김. 중국은 세계 최대의 닭발 수입국이다. ⓒphoto 뉴시스

최근 상하이의 대형마트 허마(盒馬)에서는 미국산 썬키스트 오렌지가 사라졌다. 대신 등장한 것은 미국산보다 알이 조금 작지만 당도는 흡사한 호주산 썬키스트 오렌지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상하이 푸둥(浦東)의 카르푸 롄양점에서는 미국산 오렌지를 대신해 이집트산 오렌지가 매대를 접수했다. 카르푸 정육코너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산 소고기 역시 한편으로 밀려났다. 호주산과 뉴질랜드산 소고기가 대신 자리 잡았다. 이 밖에 미국산 사과는 뉴질랜드산 사과로, 미국산 체리는 칠레산 체리로 대체됐다. 미국산 사과와 체리는 지난해 중국에 각각 2만9000t과 2만7000t이 수입된 대표적인 수입과일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상하이 사람들의 식탁을 바꾸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15일 약 5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정부가 이튿날인 6월 16일 보복관세로 맞대응에 나서면서다. 중국 측은 미국산 대두(大豆)를 비롯한 농산품과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비롯한 축산품 등 약 500억달러 상당의 미국 상품에 25%의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당초 중국 정부는 지난 5월 19일 2차 미·중 무역협상 직후 미국산 농산품에 대한 문호를 확대한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간 합의한 상호 관세 부과 중지를 번복하고 25%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이 곧장 보복에 나서면서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중국 측이 밝힌 보복관세 부과 시점은 오는 7월 6일부터지만 시장이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호주, 뉴질랜드가 최대 수혜국

큰 싸움이 벌어지면 전쟁 특수(特需)를 누리는 쪽도 있게 마련이다. 미·중 무역전쟁에서는 브라질, 호주, 뉴질랜드 같은 농산품 수출국이 수혜주들이다. 대표적인 곳은 남미의 브라질. 브라질은 중국 식탁을 놓고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해온 농업 수출국이다. 브라질은 중국 가금류 수입의 84%, 대두의 52%, 소고기의 30% 정도를 차지해왔다.

대표적인 수혜품목이 브라질산 ‘닭발’이다. 서구에서 닭발은 닭고기 가공과정에서 버려지는 부산품에 불과하다. 반면 중국인들의 닭발 선호는 유별나다. 조리음식은 물론 가공식품으로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가금류 생산과 수출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미국과 브라질은 그간 닭발을 고스란히 중국으로 수출해왔다.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냉동닭발만 14만t가량인데, 이 중 브라질로부터 수입한 닭발이 11만t이다.

중국의 닭발 시장을 놓고 브라질산과 겨루던 미국산 냉동닭발이 관세인상 품목에 포함되면서 브라질산 냉동닭발 수입은 올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의 한 언론은 닭발 수출 호황에 기뻐하는 브라질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닭의 발이 4개였으면 좋겠다”고 보도했다.

브라질산 대두 역시 미국산 대두를 몰아낼 태세다. 아침에 콩국물을 마시고, 식재료를 식용유에 볶고 튀기는 조리법이 대부분인 중국인들의 식문화 덕분에 중국의 대두 소비량은 세계 최고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육류 소비가 늘면서 돼지를 먹이는 사료용 대두 소비도 급격히 증가했다. 중국의 지난해 대두 소비량은 1억1446만t에 달했다. 반면 중국의 자체 대두 생산량은 1400만t에 불과해, 중국은 지난해만 9554만t의 대두를 수입해 충당했다. 이 중 34%에 달하는 3285만t이 미국산 대두였는데, 관세인상으로 가격경쟁력을 상실하면 브라질산 대두에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호주산 소고기도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사실 미국산 소고기는 2003년까지만 해도 중국 수입소고기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해온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2003년 광우병 논란에 중국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하자 브라질·우루과이·호주산 소고기가 중국 수입소고기 시장의 75% 이상을 석권했다. 중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14년 만에 재개하자 미국산 소고기는 중국 식탁 위로 빠르게 침투해왔다. 안전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 동안만 1100t의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됐다. 올 들어 1~2월 두 달간 738t이 팔리는 등 급성장세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관세 인상으로 미국산 소고기의 중국 재상륙은 제동이 걸렸다.

미·중 무역전쟁의 승패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농산품 영역은 답이 확실하다. 중국 해관에 따르면, 미·중 간 농산품 거래량은 318억달러(약 35조5000억원)로, 이 중 미국이 중국에 수출한 것은 241억달러, 중국이 미국에 수출한 것은 77억달러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 농산품 수출시장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캐나다에 이어 미국산 농산품의 두 번째 고객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산 대두의 제1 수입국, 미국산 면화의 제2 수입국 지위를 갖고 있다. 미국이 수출한 대두와 면화의 각각 62%와 14%는 태평양 건너 중국으로 향한다. 중국이 농산품 관세를 올려 담을 쌓으면 그간 흑자를 보던 미국이 시장을 잃는 구조다.

한국과 일본에도 기회

미·중 무역전쟁은 한국 농산품 업계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6월 26일 “오는 7월 1일자로 인도, 한국, 방글라데시, 라오스, 스리랑카 등 5개 국가의 대두 수입관세를 현행 3%에서 0%로 낮추는 것을 비롯해 농산품 관세를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중국 농산품의 경쟁력은 한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나라답게 헤이룽장(黑龍江)의 쌀, 하이난다오(海南島)의 망고, 신장(新疆)의 대추까지 동서남북에서 엄청난 물량이 쏟아진다.

하지만 중국의 중산층 이상에서는 유통과 보관 과정에서 빈발하는 자국산 식품안전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 특히 중국 제1 소비도시인 상하이 사람들의 수입품 선호는 유별나다. ‘베이징사람 애국(愛國), 상하이사람 출국(出國)’이란 말처럼 해외경험이 많아서인지 수입품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수입이라는 뜻의 ‘진커우(進口)’란 딱지가 붙어 있으면 국적 불문하고 프리미엄이 생긴다. ‘청정이미지’를 가진 호주와 뉴질랜드는 상하이 사람들의 식량창고로 변한 지 오래고, 가까운 한국과 일본의 식품들도 ‘진커우’ 딱지를 달고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식품기업들은 이를 겨냥해 일찍부터 중국 식품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메이지(明治)유업은 2011년 상하이와 가까운 쑤저우에 유제품 공장을 두고 유제품을 생산·공급하고 있다. 맥주로 유명한 아사히(朝日)도 2006년 산둥성 라이양(萊陽)에 자체 목장을 확보하고 유제품을 공급한다. 상하이에 양계장을 둔 일본계 난황(蘭皇) 계란과 양조장을 둔 산토리맥주도 상하이 시장을 꽉 잡고 있다. ‘일본산=안전’이란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이들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한국 역시 13억 입을 겨냥한 적극적인 시장진출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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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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