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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th 창간 특집] 나이 50을 넘어 인생의 문을 열고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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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29호] 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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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th 창간 특집]나이 50을 넘어 인생의 문을 열고 나서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 ‘금인명배(金人銘背)’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 1905년, 목판, 29×37㎝, 국학진흥원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로 길이 나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가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랫동안 서서 한쪽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곳으로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이 시를 읽던 고등학교 때만 해도 ‘가지 않은 길’은 설렘과 기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가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가겠다는 다짐을 남겨둔 길이었다.
   
   그런데 나이 50을 넘긴 지금은 정반대다. ‘가지 않은 길’은 미지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다. 낯선 길을 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가지 않은 길’은 더 이상 ‘갈 수 없고’, 솔직히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아는 길만 다니는 나이, 익숙한 길이 아니면 설령 조금 멀게 돌아가더라도 다니던 길을 찾아가는 게 편한 나이, 그 나이가 50이다. 그런데 어쩌랴. 50 앞에 남은 생은 50 이전의 생만큼 길고 멀기만 한 것을. 젊었을 때처럼 뛰어다닐 수도 없으니 더 멀고 지루할 수도 있는 길이 50 앞에 놓여 있다. 남은 생을 포기할 수 없으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 두렵지만 나아가야 하고, 내키지 않지만 발을 내밀어야 하는 앞으로의 길. 나만 이렇게 두려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문득 궁금해져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요즘 들어 부쩍 노후에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게 되고, 인생 후반기에 대한 책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보이느니 암담한 현실이요, 들리느니 우울한 미래다. 나의 노년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요즘 어디를 가든 노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 안에서, 거리에서, 도서관에서, 병원에서. 방송에서는 연일 ‘노년층 증가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청장년층의 사회적 부담이 증가되어…’로 시작하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저출산으로 인해 유소년 인구가 줄어들어 ‘단군 이래 최대의 노인 비율을 경신’했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왠지 마음이 심란해지고 복잡해진다. 얼마 있으면 들이닥칠 노년도 두려운데, 노년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벌써 이 사회에 짐이 된다고 압력을 넣는 것 아닌가.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기분이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50을 전후한 우리 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는 소위 ‘낀 세대’다. 없는 살림에 부모 공양하면서 자식한테 부양받는 것을 포기한 세대다.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 자식까지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한없이 퍼주고 받지는 못하는 세대이다.
   
   물론 우리 이전 세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할 수 있다. 윗세대는 넘치는 것이 시간밖에 없다. 하루 종일 서울에서 충남 천안까지 무료 지하철을 타고 갔다 오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 전남 여수로 부임한 판사에게 들은 얘기다. 그는 재판을 하러 들어가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매번 다른 재판인데, 재판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항상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동네 어르신들이었다. 할 일도 없고 심심한데 재판이나 보러 가자고 해서 시작된 일이란다. 어느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판례집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재판에 관심을 쏟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곳의 어르신들은 얼마나 많은 재판을 지켜봤는지, 처음 부임한 판사의 재판에 한 번만 들어가도 그 판사의 등급을 매길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서울에서 여수까지 재판을 보러 온 사람도 있을 정도다. TV에 나온 판사의 얼굴을 보고 재판이 궁금해서 왔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넘치는 시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가지 않은 길을 가보겠다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다. ‘50+인생학교’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50+인생학교’는 전북 전주시 소속의 전주시평생학습관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이다. ‘인생 후반기 50+플랫폼’이라는 부제를 단 이 프로그램은 1년에 두 번, 모두 10주에 걸쳐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도마 만들기’ 등 체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신체표현’ ‘영화를 통한 자아탐색’ ‘내 삶을 스토리텔링하다’ 등의 워크숍, 그리고 ‘돈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건강한 삶을 위한 몸의 정치학’ 등의 특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프로그램 중반인 6주 차에 수학여행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졸업식 이전 주인 9주 차에는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로 ‘50+인생학교’에 다니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바탕으로 ‘인생 후반기 로드맵’을 발표하게 된다.
   
   
   지금 시작하라 50+인생학교
   
   50대에서 60대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이런 프로그램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비롯해 부산, 광주, 전주, 제주, 부천 등 여러 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 시의 지원을 받거나 그 지역의 평생학습센터에서 진행한다. 중장년층에 대해 인생 재설계 교육을 실시하고 사회공헌과 커뮤니티 활성화 등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운영된다. 필자도 지난 10월 전주의 ‘50+인생학교’에 등록했다. 경기 용인에 사는 필자가 굳이 가까운 서울을 두고 전주를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 재수생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좀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실무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전주로 향하고 있다.
   
   ‘50+인생학교’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석한 사람은 총 35명으로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1972년생(46·여)부터 1955년생(63·남)까지 나이 편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략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내용은 역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1963년생 채미란(가명·여)씨는 “50이 되기 전에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하기 위해 사업도 해보고 보험도 해보고 열심히 살았지만 허둥대다가 지쳐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문을 두드려봤지만 대부분은 나이에서 제쳐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역시 1963년생 조성애(가명·여)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늦지 않았을까 망설여진다”고 하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새로운 자신감을 발견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번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1955년생 강경수(가명·남)씨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 35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집에 있는데 어느날 손주가 학교에 가면서 자기 친구 ‘생파’에 가야 하니까 ‘생선’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강경수씨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파’는 ‘생일파티’, ‘생선’은 ‘생일선물’을 뜻했다. 세대 간에 언어가 다르다 보니 손주와도 친해질 수가 없고, 건강 때문에 술을 끊으니 술친구도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1960년생 박제천(가명·남)씨는 소통을 강조했다. “인생의 전환기에 내 이웃들은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고 싶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를 갖고 싶다”고 했다. 건강이나 이별이 지원동기가 된 경우도 있었다. 1965년생 김정임(가명·여)씨는 “아버님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십견의 고통을 겪었다”면서 “몸이 불편하니 인생을 뒤돌아보고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신청했다”고 했다.
   
   1963년생 나수연(가명·여)씨는 “암치료를 받은 후 효율성만을 찾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과 이웃 그리고 자연까지도 아끼는 삶을 살고 싶고 또 삶에 대한 가치와 고민을 또래와 공유하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1963년생 박수미(가명·여)씨처럼 “딱 50이 되고 보니,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또한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만들어갈 시간에 쉼표와 마침표를 만드는 방법을 찾고자” 신청했고, “중년 이후의 삶은 헛되지 않고 뜻 깊고 보람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다고 했다. 앞으로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 수 있도록 현재의 시간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겠다는 마음들이 컸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앞으로의 삶에서는 욕심, 화, 원망, 아집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나 체면, 물질적 욕심 등도 내려놓고, 가능하면 자신을 발견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인생 후반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모두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그럴 때 ‘50+인생학교’에서 내세운 ‘뭔가 할 수 있다면 지금 시작하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고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원래 이 글은 괴테가 한 말이다. ‘꿈을 품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라는 문장에서 따온 글귀다. 참석자들이 비록 괴테의 말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을 발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참석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만으로도 50 이후의 인생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공자가 늙은 후배에게 가라사대
   
   이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어른들이 만나다 보니 의견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다툼이 발생하는 것이다. 50대는 의식 밑바닥에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민주적인 유연성을 동시에 품고 사는 세대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아주 사소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자신을 떠나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공자(孔子·BC 551~BC 479)가 떠올랐다. 공자는 가부장제의 낡은 유산을 확립한 ‘적폐’의 원흉으로 손가락질받기도 하지만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알고 보면 그는 굉장히 ‘쿨(cool)’하고 ‘나이스(nice)’한 사람이다. ‘논어’ ‘자한’ 편에는 그가 아주 멋진 ‘캐릭터’임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자절사(子絶四), 무의무필무고무아(毋意毋必毋固毋我).’ 뜻은 이렇다. ‘공자는 네 가지를 단절하였다. 선입견이 없고, 반드시 함이 없고, 고집이 없고, 아집이 없었다.’ 자(子)는 공자다. 절(絶)은 완전히 없앰이고, 무(毋)는 무(無)다. 의(意)는 선입견이고, 필(必)은 기필함, 고(固)는 고루함이고, 아(我)는 아집이다. 공자에게는 나이 든 사람의 필수항목 같은 선입견과, 기필함과, 고루함과 아집이 없었다는 뜻이다. ‘절사(絶四)’는 고준한 경지에 오른 현자(賢者)가 아니고서는 갖추기가 쉽지 않다. 보통 사람은 ‘절사’하는 대신 ‘필사(必四)’를 고집한다. 그래서 ‘유의유필유고유아(有意有必有固有我)’한 사람이 된다. 공자는 이 네 가지를 단절했기 때문에 2500년 동안 부동의 현자 1위에 ‘캐스팅’될 수 있었다. 2500년 전의 젊은 공자가 늙은 후배에게 한 수 가르쳐준다.
   
   이런 현자가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주(周)나라의 태조인 후직(后稷)의 묘당(廟堂)에 들어가게 되었다. 묘당의 우측 계단 앞에는 쇠로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얼굴이 이상하다. 그 입은 세 겹으로 봉해져 있었고, 그 등에 다음과 같이 글이 새겨져 있었다. ‘옛날에 말을 삼가한 사람(愼言人)이다. 경계하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면 낭패가 많으리라. 진실로 삼가할 수 있다면 이는 복의 근원이니라. 그렇게 하면 어찌 입이 화를 입는 문이 되겠는가?’ 이 글을 본 공자가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 말은 실로 옳다. 사정에 맞는 것이 틀림없다. 몸가짐을 이와 같이 하면 어찌 입으로 화를 당하겠느냐?”라고 말하였다. 이 상황을 그린 것이 ‘금인명배(金人銘背)’다. 공자의 일생을 그림으로 엮은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에 나온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신언, 즉 입조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던 모양이다. 어찌 공자 시대뿐이겠는가. 이이(李珥·1537~1584)도 ‘신언구언(愼言懼言·말을 삼가고 두려워하라)’이라는 말을 당부했다. 김홍도(金弘道·1745~1810 이후)는 ‘신언인’을 그림으로 남겼다. 세 치 혀끝에서 당쟁과 동서분당이 발생했고, 그 결과 삼족(三族)이 멸하거나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인간관계에서 입조심은 예나 지금이나 꼭 필요한 덕목이다.
   
   ‘신언’의 교훈을 요즘 말로 해석하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가 될 것이다. 지갑은 굳게 닫고 입만 주야장천 열어대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신언’은 필수조건이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을 기피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지갑은 닫고 입만 열기 때문’이다. 단지 오래 살았다는 ‘짬밥’만으로 바쁜 사람 앉혀놓고 지갑 대신 ‘입 털기’를 융단폭격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을 피해 다닌다. 그런 사정은 무시한 채 어른들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당장에 ‘싹수’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어버리는 행위를 어른들은 얼마나 자주 하고 있는가. 어른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나와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다 해서,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해서 입만 열었다 하면 ‘저주진언’을 퍼붓는 어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역시 ‘신언’이다. 어떤 커뮤니티에 간 목적은 배우기 위해서지 남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 다른 타인의 행동이나 말투, 제스처를 비난하거나 수정하는 대신 인정해주고 받아주기 위해서 간 것이다. 우리 모두 ‘갈 수 없고’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용기를 내어 나선 사람들이 아닌가. 50이라는 나이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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