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1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제27대 서울대 총장 예비후보자 정책토론회에 5명의 예비후보들이 참석해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0월 31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제27대 서울대 총장 예비후보자 정책토론회에 5명의 예비후보들이 참석해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제가 비슷한 질문을 그저께 학생토론회에서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억울하고 심지어 화까지 납니다.”

지난 10월 3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제27대 서울대 총장 예비후보자 5인을 대상으로 한 정책토론회. 이날 이곳에서 주최 측으로부터 “후보자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IBS(기초과학연구원) 원장 등 임기를 채우지 않고 중도하차한 자리가 많다. 서울대 총장이 되어서도 더 높은 자리 제안이 오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을 받은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서울대 교수협의회(교협)가 연 이날 정책토론회에는 오 교수와 함께 강태진 재료공학부 명예교수, 남익현 경영학과 교수, 이우일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정근식 사회학과 교수 등 총장 예비후보자 5명이 모두 참석했다.

이날 화제의 중심은 단연 오세정 교수였다. 2016년 당시 국민의당 소속 비례대표로 제20대 국회에 입성했다가 지난 10월 1일 바른미래당 국회의원(비례대표) 자리를 던지고 서울대 총장 선거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대입예비고사 전국 수석 출신이다. 1971년 경기고를 수석졸업하고 서울대 입학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돼 자연대 학장을 지냈고 2014년 제26대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과 함께 후보 3인으로 이사회에 추천됐다. 당시 이사회는 성 전 총장을 선출했지만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로부터는 오 교수가 1순위로 지명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선 총장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낸 데다가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흔치 않은 경력을 지닌 후보자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언론과 외부의 관심이 오 교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교수들이 오 교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오 교수가 그간 지나치게 자리에 연연하는 행보를 보여왔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실제로 오 교수에게는 ‘중도하차의 명수’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기초과학연구원장을 하기 위해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직을 11개월 만에 그만뒀고, 기초과학연구재단 이사장직도 제26대 서울대 총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 중도하차했다. 그가 서울대 총장에 당선되더라도 교육부총리 자리에 대한 제안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 갈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들리는 이유다. 서울대 학장급 한 교수는 기자와 만나 “오세정 선생님이 나올 정도가 되면 학내·외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그렇지도 않다”며 “(교수들 사이에서는) ‘왜 나오냐’는 시각이 더 강하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의 경우 예전에는 정부의 부름을 받으면 관례상 교수직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교수들 사이에서는 ‘너무 철새 아니냐’는 시각이 오히려 더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기업 사외이사 3곳 겸직한 후보도

현재 서울대 총장 선거를 둘러싼 외부의 관심도는 급격히 떨어진 상태다. 국내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가 법인으로 전환한 뒤 두 번째로 치르는 총장 선거지만 젊고 개혁적인 성향으로 기대를 모은 강대희 의과대학 교수가 예상치 못한 변수로 낙마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서울대는 올해만 총장 선거를 두 번 치르고 있다. 지난 7월 총장 최종후보자로 선출된 강대희 교수가 후보자 자리를 사퇴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K-S(경기고-서울대)가 대부분인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비경기고 출신인 데다 50대로 상대적으로 젊어 많은 교수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최종후보자로 선출된 이후 예상치 못한 동료 교수 성희롱 논란으로 중도사퇴했다.

이번 서울대 총장 선거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난 선거에 비해 ‘흥행 카드’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50대 후보는 올해 55세인 남익현 경영대 교수 단 한 명뿐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대기업 세 곳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면서 약 85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2017년도 사외이사 겸직 전임교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남 교수는 지난해 3월 22일까지 ㈜태광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3월 31일부터는 두산중공업의 사외이사로 근무하면서 지난해 두 군데 회사에서 약 497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또 다른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는 현대위아로부터도 지난해 약 3556만원을 받았다. 김해영 의원실의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서울대 내규상 사외이사를 동시에 두 곳까지 겸직할 수 있기 때문에 태광산업의 사외이사를 그만두고 두산중공업의 사외이사 자리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도 보도자료를 낸 이후 해당 사실을 접했기 때문에 총장 예비후보자가 사외이사를 세 곳 겸직했다는 사실을 보도자료에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수가 사외이사를 겸직한다는 것이 법에 저촉되거나 내규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대의 경우 총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사외이사를 포함한 대외활동 시간을 주당 8시간 이내에서만 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대외활동이 지나칠 경우 연구·교육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교직원들을 제외한 서울대 학생 사이에서는 예비후보자 5인 중 정근식 사회학과 교수의 인기가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전평이다. 서울대 교협에 따르면 정 교수는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교직원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선거에서 후보 3인에 들지 못했다. 학생들은 11월 9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모바일 투표로 정책평가에 참여한다. 학생 평가는 337명인 교원정책평가단 인원의 9.5%로 환산되기 때문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한편 앞선 선거에서 최종후보자로 선출된 이가 예상치 못한 성추문으로 사퇴했다는 점에서 후보자를 사전 검증하지 못한 총추위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서울대 총장 선거는 총추위가 후보자를 3명까지 압축하면 이사회가 최종 표결해 최종후보자를 선출하는 구조다. 총추위 위원들은 외부인사 10명을 포함한 30명으로 구성된다. 총추위 정책평가는 후보자 3인을 뽑을 때 25%가 반영된다.

이날 정책발표회에 참가한 예비후보 5명은 11월 14일 후보자 3명으로 압축된다. 이후 이사회 표결을 거쳐 최종후보가 확정된다. 이사회의 총장 후보 선출 투표는 이사 1인 1표로 진행되는데,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이다. 후보 3인 중에서 재적이사 과반수 득표자를 최종후보로 선출한다.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