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상하이 모터쇼가 열린 상하이 국가회전중심(NECC).
지난 4월 16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상하이 모터쇼가 열린 상하이 국가회전중심(NECC).

“2030년까지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꿀 것입니다.”

지난 4월 16일, 중국 상하이 모터쇼에서 왕촨푸(王傳福) 비야디(BYD) 회장이 던진 일성에 환호성이 터졌다.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비야디는 전 세계 1위 전기차 기업이다. 현재 선전의 버스, 택시, 트럭을 속속 전기차로 바꾸고 있는데 이를 전 중국으로 확대해 오는 2030년까지 모든 차를 전기차로 바꾼다는 당찬 포부였다. 중국에서 ‘배터리 대왕’이라고 불리는 왕촨푸 회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은 비야디는 이날 상하이 모터쇼장 같은 전시관에 자리한 도요타, 혼다, 포드의 전시면적을 능가하는 대형 부스를 꾸렸다.

비야디 왕촨푸 회장의 포부

마침 비야디 전시관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업체는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 현재 상하이 푸둥(浦東)에 중국 현지 생산공장을 짓고 있는 테슬라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예정인 보급형 전기차 ‘모델3’를 비롯해 기존의 ‘모델S’ ‘모델X’ 3종류 4대의 차량으로 단출한 부스를 꾸렸다. 바로 옆 비야디는 중국 역대 왕조의 이름을 붙인 진(秦), 당(唐), 송(宋), 원(元) 시리즈를 비롯해 차량만 16대를 늘어놓는 물량공세로 테슬라를 압도했다.

앞서 왕촨푸 회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는다는 말에 참석자가 몰리면서 당초 이날 오전 11시20분으로 예정된 미디어 발표회가 약 5분가량 늦어지기도 했다. 축구장 48개 크기의 전시회장을 뛰어다녀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속이 탈 노릇이었다. 일단 발표회가 시작되자 왕촨푸 회장을 비롯한 비야디의 최고경영진은 무려 40분 가까이 약장사가 약을 팔듯 자사 전기차를 홍보했다. 바로 옆 테슬라 관계자들이 압도돼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테슬라가 비록 상하이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중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 해도 터줏대감인 비야디의 응전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었다.

상하이 모터쇼(오토 상하이)가 지난 4월 16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개혁개방 초창기인 1985년 처음 시작해 올해로 18회째를 맞이하는 상하이 모터쇼는 중국 최고(最古), 최대(最大) 규모의 모터쇼다. 1990년부터는 베이징 모터쇼(오토 차이나)와 격년 단위로 번갈아 열리는데, 2015년 행사장을 상하이 동쪽의 신국제박람중심에서 서쪽의 국가회전중심(NECC)으로 바꾼 후부터는 규모 면에서 베이징을 압도했다. 상하이 국가회전중심은 독일 하노버 메세전시장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전시장이다. 이번 상하이 모터쇼는 4월 25일 폐막 예정이다.

참가기업이나 참관객 수에서는 바로 직전인 3월 말에 열린 서울모터쇼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아시아 최대 규모의 모터쇼가 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후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모터걸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면서 불필요한 참관객들이 걸러졌다. BMW의 경우 모터걸 대신 예쁘장하게 생긴 ‘꽃미남’들을 곳곳에 배치했는데 오히려 호평을 받았다. 프레스데이 때 음성적으로 표를 판매하던 암표상을 대대적으로 단속해 참관객들의 관람 수준 역시 몰라보게 올라갔다는 평가다.

훙치와 고궁박물원이 개발한 SUV.
훙치와 고궁박물원이 개발한 SUV.

몰라보게 세련된 디자인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 역시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도 최대 자동차 소비시장인 상하이를 직접 겨냥해 최신 차들을 상하이 모터쇼에 총집결시켰다. 한국 완성차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상하이 모터쇼에 참가했다. 이날 모터쇼에 참석한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는 중국 토종 자동차들의 경이적인 성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는 것이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중국 토종자동차 브랜드 중에서도 그간 거둔 성과에 따라 우열이 가려지는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세계 전기차 1위 비야디를 비롯해, 중국 토종자동차 1위 지리(吉利), 중국 SUV 1위 하발(HAVAL·창청(長城)차) 등이 대규모 자체 부스를 꾸렸다. 상하이차(상치)를 비롯해 제일차(이치), 광저우차(광치), 둥펑차, 창안(長安)차, 베이징차 등 국유 자동차 기업들도 각각 합자(合資) 또는 합작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외산차 옆에 별도의 자체 부스를 꾸렸다. 과거에는 합자 회사 부스가 압도했는데, 지금은 자체 부스 역시 만만치 않게 참관객들을 끌어모았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세련되어진 차체 디자인이었다. 비야디나 지리, 창안 같은 중국 현지 업체는 차량 디자인 담당으로 외국인 디자이너를 영입해 아예 이날 모터쇼에서 디자인 발표까지 맡겼다. 이날 비야디가 최초 공개한 ‘이시드GT’라는 콘셉트카는 앞뒤 문짝이 통째로 갈매기 날개처럼 위로 들어올려지는 ‘걸윙도어’가 인상적이었다. 앞좌석과 뒷좌석의 경계인 B필러를 없애 시원하게 만든 점도 돋보였다. 뒷좌석 ‘걸윙도어’로 중국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테슬라의 ‘모델X’를 겨냥한 게 분명해 보였다. “중국 토종차의 문짝을 열었다 닫았더니 문짝이 떨어졌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어 있었다.

자동차 내외부 곳곳에 인공지능(AI), 음성인식 같은 디지털 요소를 도입한 점도 돋보였다. 비야디의 경우 세단, SUV, 경차를 막론하고 새로 출시된 전 차종에 360도 회전 가능한 큼직한 태블릿을 부착한 것이 눈에 띄었다. 운전석 대시보드에 붙어 있는 복잡한 버튼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큼직하고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 운전자를 겨냥한 설계로 보였다. 비야디의 한 관계자는 “내비게이션을 볼 때는 세로로 보다가, 동영상을 시청할 때는 가로로 돌려서 보면 된다”고 소개했다.

차량 내외부 장치의 디지털화는 비야디뿐만 아니라 중국의 거의 모든 토종차들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보였다. 상하이시의 지원에 힘입어 상하이의 경찰차, 택시, 디디(중국판 우버)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며 불티나게 팔리는 상하이차의 ‘로위’ 역시 차량의 체급을 막론하고 큼직한 터치스크린식 태블릿을 차량에 붙이고 있었다. 이날 모터쇼에서는 아날로그식 속도계와 작은 내비게이션, 버튼식 조작법을 끈질기게 고수하는 독일과 일본의 명차들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둥펑이 전시한 군용지프.
둥펑이 전시한 군용지프.

인공지능과 음성인식 기술 경쟁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 번호판 규제로 인해 순수전기차(EV)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가 이미 보편화된 중국에서 전기차는 더 이상 홍보의 주안점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자동차 판매가 28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한 것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 판매는 전년 대비 61.7%나 성장했다. 이날 모터쇼에 참가한 대부분의 메이커는 녹색번호판을 부착하고 충전기를 옆에 세워둔 친환경차를 기본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날 모터쇼에서는 중국에서 너무나 보편화된 전기차에 더해 인공지능(AI)과 음성인식 기술을 결합한 각종 경로안내, 자동주차, 스마트폰을 활용한 자동차 제어 등이 각 업체가 강조하는 포인트가 됐다.

충칭(重慶)에 본사를 둔 창안차는 주화룽(朱華榮) 회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주화룽 회장 역시 이날 창안의 신차를 소개하면서 ‘텅쉰(텐센트)’과 연합해 만든 차량 내 음성인식, 인공지능 시스템과 자동주차 등을 강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주화룽 창안차 회장은 “2020년에는 100% 인터넷차, 2025년에는 100% 음성인식 차를 내놓을 것”이라며 “손과 발, 두뇌의 해방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토종자동차 회사들의 ‘다(多)브랜드’ 전략도 이번 모터쇼에서 돋보였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브랜드별 판매순위에서 도요타(4위)를 꺾으며 폭스바겐, 혼다에 이어 3위를 기록한 지리차는 대중차 위주로 구성된 지리뿐만 아니라, 각각 스웨덴과 영국에서 인수한 명차 볼보와 로터스(Lotus)의 전시관도 따로 꾸렸다. 요즘 중국에서 국산차 대접을 받는 볼보 후미에는 어김없이 ‘볼보아태(亞太)’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지리와 볼보가 합작해 새로 출범시킨 고급 SUV 전문브랜드 ‘링크’는 체험형 전시관을 꾸려서 참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하발’ 브랜드로 중국 SUV 시장을 평정한 창청차는 급부상하는 여성용 생애 첫차(엔트리카) 시장을 겨냥한 ‘오라’라는 브랜드를 하발과 함께 배치했다. 창청차는 대중형 SUV ‘하발’에 더해 고급 SUV 전문브랜드로 별도 출범시킨 ‘웨이(WEY)’의 전시부스 역시 별도로 꾸렸다. SUV로 톡톡히 재미를 본 창청차가 별도의 SUV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을 더 세분화해 공략하는 셈이다. 이에 뒤질세라 창안차 역시 별도의 SUV 전문브랜드인 ‘오샹’을 새로 만들었다. SUV를 선호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애국 마케팅’에 호소하는 경향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지리는 오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자사 차량이 공식차량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특히 관(官)을 배경으로 하는 국유 자동차 기업들은 중국적 요소를 곳곳에 노출시켰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공산당 간부들이 타는 차량으로 유명한 제일차(이치)의 ‘훙치(紅旗)’는 기존의 세단형 모델에 더해 베이징 자금성의 고궁박물원과 합작으로 만든 대형 SUV를 전시해 이목을 끌었다. 검정색 바탕에 중국적 문양들이 차량 내외부에 가득 채워진 모양의 차량이었다. 베이징차와 둥펑차는 2015년 전승절 천안문 대열병식 때 선보인 국방색의 군용지프를 전시장 제일 앞에 내놓고 시진핑 주석의 열병식 장면을 함께 틀어 참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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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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