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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62호] 2019.06.17

태영호가 말하는 북한의 재스민혁명

▲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문득 궁금해졌다. 김정은도 읽었을까. 이 책,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쓴 ‘3층 서기실의 암호’ 말이다. 지난 6월 4일 광화문에서 만난 태 전 공사의 답은 단호했다. “당연히 읽었다. 북한이 이 책 많이 사갔다. 외국에서 인터넷 통해 주문이 꽤 들어왔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특정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해외에서 북한 인사들에게 이 책을 전해줬다는 얘기도 들었다. 안 보겠다고 거절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단다.”
   
   지난 5월 22일 엔케이뉴스(NKNews)라는 북한 관련 매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영국의 한 청년이 친북단체(조선친선협회·KFA)에서 추방됐다는 얘기였다. 알렉산더 미즈라는 이 청년을 방출한 영국 KFA의 회장은 더모트 허드슨이라는 이다. 영국 친북인사의 대표 격인 인물이다. 태 전 공사의 책엔 이 허드슨과의 인연이 자세히 쓰여 있다. 친북활동을 하는 영국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태 전 공사의 설명이다.
   
   “책이나 영상물을 보고 친북단체나 북한대사관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북한의 실상은 다 감추고 사회주의 지상낙원인 것처럼 얘기해준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는가 하면, 영국에서 최하층민들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사회 불만 세력. 사회주의에서의 삶은 어떨까 상상해보는 거다. 그러다 북한의 선전도서를 보고 매혹된다. ‘북한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북한에 보내준다. 영국에선 최하층민인데 북한에 가니 벤츠가 데리러 나온다. 초대소나 호텔에 묵게 한 다음 잘 대우해주면서 평양의 화려한 모습만 보여준다. 세뇌하는 거다. 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는가 하면 ‘아 내가 지금 영국에서 화장실 청소하며 사는데 그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영국의 제도 탓이었구나. 영국에도 북한 같은 시스템을 세운다면 나도 북한 정치국 위원처럼 살겠구나’ 한다. 종교 광신자가 되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남한의 고정간첩들도 같은 사고를 갖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북한이 보낸 간첩을 가정해 생각해보자. 이들은 현재 경제적 하층민으로 생활하고 있을 거다. 북한은 이들에게 ‘당신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다’ ‘정치국 후보다’라면서 직위를 준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힘들게 살고 있지만 통일이 되면 난 단번에 당중앙위원회 위원이다.’”
   
   친북 청년 알렉산더 미즈도 사실 태 전 공사의 작품이었다. “내가 세뇌했다. 내 말을 듣고 북에 가서 매혹됐다. 북한 광신자가 되더라. 북에 여러 번 보냈다. 가보니 좋으니까 두 번 가고 세 번 갔는데 자꾸 가니 현실이 보인 거다. ‘주민들과 자유롭게 접촉하고 싶은데 왜 못 하게 할까, 왜 안내원이 옆에 계속 따라다닐까, 왜 지방 도시에 못 가게 할까.’ 젊은 대학생이니까 의문을 못 감춘 거다. 그래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런 질문도 한 거다. ‘나는 김정은이 지하철에서 담배 피는 영상이 있길래 지하철에서 담배 피울 수 있는 줄 알았다. 김정은은 피는데 왜 나는 못 피게 하냐.’ 북한 광신자에서 의심스러운 인물로 바뀐 거다. 결국 영국 KFA에서 추방됐다.” 알렉산더 미즈는 실제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회의감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평양에 있는 박물관에 가니 연필, 의자, 잡다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더라. 김정은이 썼거나 한 번 만졌다는 이유로 전시해놓은 거다. 정말 이상했다.”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읽고 진작부터 궁금했던 대목이 있었다. ‘김영남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지난해 2월 평창올림픽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었던 김영남은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눈물을 흘렸다. 태 전 공사는 눈물의 의미를 알 것 같다고 썼다. 그의 부연설명이다. “김영남은 이념에 철저히 충실한 원칙주의자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공산주의 정통파다. 나 같은 사람은 교육을 통해 사회주의, 공산주의, 주체사상을 하향식으로 주입받았다. 김영남은 일제강점기에 공산주의 이론을 접한 후 북한에서 처음 막스 레닌 학원이 생겼을 때 이론 강의를 했다. 후에 모스크바에 들어가서 공산주의 이론을 배웠다. 그때 배운 공산주의 이론엔 세습통치라는 게 없었다. 그런 그가 북한에서 세습통치 구조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남한을 찾았다. 첫 남한 방문이었다. 와서 보니 자신이 일신을 바친 북한의 제도, 현실과 한국의 현실이 너무 대조적인 거다. 자기가 일생을 허튼 길에서 몰입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인생이 좀 서글프지 않았겠나. 그 사람은 대단히 냉철한 사람이다. 절대 쉽게 눈물을 흘릴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움직인 건 어느 한 현상 때문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현실을 보면서 쌓인 결과다. ‘왜 북한은 이렇게 발전하지 못하고 아직도 낙후할까’, 이런 회한이다.”
   
   
▲ 지난해 2월 방한한 북한의 김영남(왼쪽)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photo 연합

   - 탈북한 지 이제 3년이다. 와보니 남한이 북에 대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건 뭔가. “북한이 선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더라. 한국 같을 거라고 생각한단 얘기다. 북한에 지원을 계속하면 김정은이 마음을 고쳐먹고, 주민들을 먼저 생각하고 핵도 내려놓고 남북 간 교류도 시작할 거라 생각한다. 70년간 남은 북을 선의로 대했는데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남한의 선의를 북한은 악용해왔다. 핵무장을 고도화해 한반도 안보 구조의 판을 서서히 기울게 만들었다.”
   
   - 김정일이 ‘조선(북한)이 없는 지구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적도 있지 않나. “김정일, 김정은 일가는 ‘우리가 없는 한반도, 한민족은 필요 없다’는 대단히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사이비종교다. 그런데 무엇보다 위험한 건 김씨 일가 본인들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2500만 북한 주민을 세뇌하고 있다. 대단히 위험하다. 지난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정권이 전체 국민들을 세뇌해서 위험한 상황까지 몰고 간 예가 두 번 있었다. 나치와 일본이다. 2차대전 때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인류 대참사를 불렀다. 일본도 국민들을 세뇌해 전쟁을 일으켰다. 두 경우를 보면 북한의 세뇌 교육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지 않나. 더구나 그들의 손에는 핵무기가 들려 있다. 북한 주민들은 ‘총폭탄정신’을 교육받는다. 북한 군에서 이런 노래를 부른다더라. ‘장군님은 명사수, 우리는 명중탄’.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총탄이라는 생각을 2500만명에게 주입하고 있는 거다.”
   
   - 3차대전이 일어난다면 북한이 도화선일까. 떠올리기도 싫은 가정이지만. “3차대전까지 가겠나. 김정은이 만일 마지막 순간에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미국이 가만있을까. 북한이란 나라는 완전히 잿가루가 될 거다. 물론 남한도 피해를 볼 거다. 많은 한국인이 북핵에 대해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강의를 다녀보면, 이런 말을 하는 한국인들이 있더라. ‘통일되면 북핵이 우리 소유가 될 텐데 왜 핵무기를 없애려 하냐.’ 지금 이 순간 서울에서 불과 수십㎞ 떨어진 곳에 한순간에 수십만 명을 죽일 수 있는 위험한 핵무기가 있다는 게 어떤 뜻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 ‘북한판 재스민혁명’이 가능할까. “자본주의 국가에선 국가와 국민 개개인 간에 경제가 얽힌 일종의 계약 관계를 맺고 있지 않나. 북한은 이념국가, 신정국가다. 신정국가는 이념으로 유지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줘서 생존을 보장할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론 이념을 도구 삼아 국가를 끌고 나간단 얘기다. 이 이념을 새로운 세대는 더는 안 믿는다. 북한 정권은 지난 시기처럼 주민들의 생존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주민들은 점점 장마당 같은 자본주의 경제에 의존한다. 주민들의 경제적 권리 확대는 종단엔 정치 권리 확대로 이어진다. 이건 지난 역사가 보여주는 진리다. 중동을 봐라. 이집트, 튀니지에서 ‘아랍의 봄’ 혁명이 처음 일어날 때 사람들이 외친 게 자유와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 대학생이 밥벌이였던 손수레를 빼앗겼고, 분신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경제적 권리로 시작해 정치적 권리 요구로 이어졌다. 북한 내부는 벌써 그런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구체적인 예가 있다면. “북한에 돈이 많은 사람들이 생겼다. ‘돈주’다. 돈주들은 재산을 늘리려 식당이나 가게를 낸다. 그런데 당국은 사적 소유권을 인정 안 한다. 그래서 국영기업으로 등록한다. 국가재산이기 때문에 언제든 몰수당할 수 있다. 일단 국가재산으로 등록하고 장사하며 이익을 챙기는 불안한 구조다. 공식적으로 사적 재산을 보장해달라는 요구가 늘어난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해달란 얘기다. 중국이나 베트남 식으로 가려면 북한은 제한된 자유와 제한된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김씨 세습은 더는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온다.”
   
   - 시장경제를 향한 북한 주민들의 요구가 부글부글 끓다 새나갈 곳이 없어 터질 거란 말인가. “그렇다. 북한 내부에서 벌써 이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비사회주의 현상과 투쟁을 벌이자’는 말이 노동신문에 실린다. 비사회주의가 뭘까. 개인 장사꾼을 말한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치겠단 얘기가 계속 나온다는 건, 극한 상황으로 가고 있단 뜻이다. 비사회주의자들은 적대분자로 규정한다. ‘적대분자들 소탕 처리를 강화하자’는 기사도 실린다. 북한 법 구조에서 적대분자들은 국가보위부가 처리한다. 지금 북에서 보위부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단 얘기다. 공안 독재 권력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그만큼 내부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치고 올라오고 있단 증거이기도 하다.”
   
   - 반북단체 ‘자유조선’의 활동을 어떻게 보나. “북한 정권에 대단히 큰 타격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반북단체들은 한국에든 미국에든 공개적으로 등록하고 평화적으로 반북활동을 했다. 데모를 한다거나 풍선 전단을 보낸다거나. 자유조선은 그 어디에도 등록하지 않고 비밀스럽게 활동한다. 게다가 활동방법이 물리적이다. 북한의 명치를 친다. 많은 반북 활동가들이 ‘왜 우리는 자유조선처럼 못했나’ 얘기하더라. 이제 자유조선을 시작으로 유사한 형태를 가진, 음지에서 활동하는 단체가 늘어날 거다. 자유조선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2030세대 젊은이들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북한과 싸우는 무대에 2030 젊은이들이 더 나설 거다.”
   
   -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김씨 정권의 허구성을 북한 주민에 알리는 데 대단히 큰 힘이 될 거다. 김한솔은커녕 김정남의 존재도 북한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북한의 유일한 백두혈통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져왔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곁가지 김정철도 있고 김정남도 있고 김한솔도 있었다는 게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지면 큰 충격을 받을 거다. 북한 주민들은 김씨 일가를 인간이 아닌 태양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의 태양, 주체의 태양. 그런데 김정은이 태양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이게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하는 첫걸음이 된다.”
   
   - 평양 핵심계층은 김씨 일가의 본모습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않나. “핵심계층 중에서도 해외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나도 알고 있었다.”
   
   - 김정은은 리비아의 카다피 같은 최후를 맞을까. “김정은은 학창 시절을 서방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런지 김정은의 내면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작은 싹이라도 있지 않을까, 북한을 개조해서 자유사회로 이끌지 않을까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역설적으로 김정은은 서방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지난 시기 독재자들이 어떤 말로를 맞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유엔은 이미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든 인권유린 범죄들을 파악했고 결론을 내렸다. ‘반인륜 범죄’라고. 앞으로 통일이 되든 어쨌든, 김씨 일가는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죄목으로 정의의 심판 앞에 나설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이 모든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세습정치를 지키려고 하는 거다. 포기하는 순간 자기는 물론 온 가문이 결딴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 한국에 막상 와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점이 있나. “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의 힘을 과신하고 있었다. 외국에선 한국의 인지도가 대단히 높다. 영국에 있을 때 전자제품을 사러가면 삼성, 엘지 이런 상품들이 번쩍거리고, 시내에는 현대차, 기아차가 달리지 않나. 한국에 와보니 힘은 있는데 이 힘을 모으지 못하더라. 좌와 우, 보수와 진보가 정치적인 갈등과 대결 프레임에 매몰되어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 북한이 세대교체를 통해서만 변할 수 있듯, 남한도 세대교체를 통해서만 달라질 수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남북한은 특수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 일제로부터 광복과 6·25전쟁, 독재와 민주화, 이 모든 걸 매우 짧은 시간에 겪었다. 한 세대 안에 이 모든 변화가 일어났다. 그걸 겪은 세대는 어느 한편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는 보수, 나는 진보’ 하는 식이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새 세대들이 나와 한국의 힘을 통일을 위해 모으고, 북한에서도 세대 변화가 일어날 때 남과 북이 마주 볼 수 있다. 이때 통일이 된다. 10년은 짧다. 앞으로 20년을 바라본다.”
   
   태 전 공사의 이 말은 희망적인 듯하지만 대단히 냉소적인 발언이다. 북은 물론 남한의 현 정치 주도 세력에도 희망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친북단체 영국 KFA의 더모트 허드슨 회장(앞줄 왼쪽)과 태영호 전 공사. 뒷줄 맨 오른쪽이 영국 KFA에서 추방된 알렉산더 미즈. photo NKnews 캡처

   - 시간은 단기적으론 김정은의 편이지만 장기적으론 자유민주주의의 편이란 뜻인가. “폭압과 압제로 오래간 정권은 지금까지 없었다. 인간의 고유한 권리와 자유를 말살하고 한 가문의 의견을 전 국가적 정책으로 삼는 정권은 곧 한계점에 이른다. 한국은 점점 민주화되고 인간의 권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북한은 점점 더 인간의 권리를 누르고 폭압정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느 한순간 혁명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거다. 전 인류의 역사가 보여준 절대진리다.”
   
   태 전 공사는 지난 5월 말 노르웨이 오슬로 자유포럼을 찾았다. 여기에서 겪은 일을 들려줬다.
   
   “오슬로에서 충격을 받았다. 각 나라에서 온 인권활동가들이 만나서 처음 던지는 질문이 이거였다. ‘문재인 정권 밑에서 살기가 어떠냐, 위험하지 않냐.’ ‘잘 지내고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경호도 받고 있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놀라더라. ‘사실이냐. 당신도 정부에서 너무 압박을 받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진실을 말해달라.’ 이게 그들 눈에 비친 현 정권인 거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하더라. ‘진보 정권이라 주장하는 한국의 현 정권은 북한 인권 단체를 탄압하고 침묵시킨다. 우리도 진보이고 좌익인데 한국의 진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왜 북한 인권 얘기만 나오면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도 겪은 일이다.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 인사들이 휴전선 이북의 인권은 외면한다. 북에 살건 남에 살건 같은 사람이다. 왜 그럴까 연구해보니, 앞서 말했듯 짧은 시기에 너무 많은 변화를 겪은 거다. 본인이 어느 시대에 어디에 속해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에 따라 편을 가르더라.”
   
   - 결국 한국의 진보는 전 세계의 진보와 다른 독자 노선을 타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후 많은 것을 새롭게 하려고 하고 있지 않나. 정권을 쥐고 있을 때 북한 인권 문제에서 김정은의 편을 들고 친북 정권인 것처럼 비친다면, 앞으로 정권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된 후 대단히 힘들어질 수 있다. 지금은 정권을 쥐고 있어서 괜찮겠지만 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진정한 인권 증진을 향해 가는 길이 앞으로 대한민국 진보가 갈 길이 아니겠나.”
   
   - 작년 5월에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나왔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우려의 시각이 있다. “전략연구원에서 나온 후에 오히려 자유롭다. 나는 자유를 느끼려고 왔는데 국책기관에 들어가 있으면 자유가 없다. 자본주의의 맛을 못 느낀다. 광야에 나와 고립무원해야 돈을 어떻게 벌까, 조직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며 자본주의의 스펙트럼을 느끼지 않나. 조직에서 하라는 것만 하면 자유를 못 누린다.”
   
   ‘3층 서기실의 암호’ 책은 그에게 영영 못 만났을 수도 있을 혈육을 찾아줬다. 5촌당숙이다. 책에 적힌 가족사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 그의 안부를 물었다. 인터뷰 중 처음으로 태 전 공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돌아가셨다. 만나뵙고 얼마 후였다. 원래 5촌당숙이 저를 만나기 전까진 운동을 열심히 하셨다더라. 통일을 보고 고향에도 가겠다며. 저를 만난 후에 ‘이젠 여한이 없다’며 갑자기 맥을 놓으셨다. 살아계실 때 자주 찾아뵐 걸…. 저를 만나면 어린 시절 얘기를 끝이 없이 하셨다.”
   
   - 북한을 나온 걸 후회한 순간이 있나. “순간적인 결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생각해서 한 탈북이었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 탈북 당시 영국 주재 북한대사였던 현학봉 대사 소식을 들은 적이 있나. “못 들었다. 아마 나 때문에 어디 지방으로 강제노역 가지 않았겠나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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