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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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의 한 연립주택 반지하, 방 하나짜리 작은 집에서 홀로 거주하는 71세 공정식(가명)씨가 혼자가 된 것은 2~3년 전이다. 사실 공씨는 혼자가 된 것이 언제인지 명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2년이라고 했다가 3년이라고 정정하기도 하고, 다시 2년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정확히 언제부터 혼자 살았느냐’는 질문에 급기야 “혼자 사는 내가 우스워 보이느냐”며 화를 버럭 냈다. 그러다가 곧바로 사과를 했다.

“요즘 감정 조절이 잘 안 돼서 혼자 있을 때도 갑자기 화가 나곤 합니다.”

2년 혹은 3년 동안 머무른 공씨의 한 칸짜리 집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한구석에 적당히 개켜 있는 이불, 텔레비전과 서랍장을 제외하면 살림은 몇 없었다. 서랍장 앞에는 작은 냄비가 얹어진 휴대용 가스버너가 있었다.

“집에서는 라면을 종종 끓여 먹습니다. 동사무소에서 갖다준 김치를 조금씩 꺼내 먹고 이 앞에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사올 때도 있습니다.”

공씨가 혼자 살게 된 것은 이혼 때문이다. 그의 전 부인은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고 그의 곁을 떠났다. 공씨의 전 부인은 이혼을 하고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한두 달에 한 번 연락이 오는 외동딸에게서 전해듣기로는 여행도 자주 다닌다.

“딸내미가 처음에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고 하더니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전화할까 말까 해요. 마지막으로 설날에 얼굴을 봤어요. 이 방에 데리고 오고 싶지 않아서 밖에서 밥 먹고 얼른 들어가라고 했지요.”

공씨의 주변은 어두워졌다.

“집사람이 떠나고 나니 그때서야 내가 정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밥물을 못 맞춰서 이상한 밥이 만들어지더라고요. 밥솥은 그래서 버린 지 오래고, 요즘은 마을 경로당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고 저녁은 라면을 먹어요.”

15년도 전에 은퇴를 하고 그럭저럭 유지되던 사회 관계도 거의 끊겼다.

“이혼했지, 일도 없지, 그러니까 그냥 누워만 있게 돼요. 하루 종일 TV만 보다가, 경로당에 잠시 나가서 밥 먹고 또 TV만 보다가, 집에 들어와서 TV 보다가 잠이 들어요. 사실 잘 못 자요.”

들어보니 공씨는 만성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잠도 자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뉴스를 보면 60대, 70대 노인 고독사가 나오는데 내가 딱 그럴 거 같아요. 나 살아 있는지 들여다볼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보통 독거노인을 떠올리면 여성 독거노인의 모습을 그릴 때가 많다. 노인 정책의 대부분도 여성 독거노인 중심으로 짜여 있다. 남성 독거노인은 눈에 잘 안 띄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 결과를 보면 만 65세 이상 여성 독거노인의 수는 99만명으로 만 65세 이상 남성 독거노인(33만명)의 딱 세 배다.

남성 독거노인은 사회적 활동도 지극히 적다. 많은 사회복지와 노인복지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남성 독거노인은 여성 독거노인보다 활동반경이 좁고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가 제한적이다. 원래 독거노인 자체가 다른 환경의 노인보다 사회적 활동반경이 좁다.

남성 독거노인 자살률 여성의 3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주변과 연락을 하지 않는 독거노인이 꽤 많다. 독거노인의 4.8%는 아예 자녀와도 연락이 끊겼다. 부부가 함께 사는 노인의 단 1%만이 ‘그렇다’고 답한 것과 차이가 난다. 친구·이웃·지인과 연락을 전혀 하지 않는 독거노인도 18.6%나 된다. 지난 1년간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독거노인은 29%에 그친다.

그런데 남성 독거노인은 이 중에서도 더 고독한 존재다. 노인자살률을 성별로 따져봤을 때 남성 노인의 자살률이 여성에 비해 훨씬 높다. 70대 남성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90.3명이었는데 여성은 26.5명이다. 80대 이상으로 가면 남성은 150.5명, 여성 노인은 45.7명이다. 고독사의 사례를 봐도 2015년을 기준으로 신고된 만 65세 이상 남성 고독사 사례 건수는 260건이지만 여성은 125건으로 절반에 그친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거의 모든 독거노인 관련 연구에서 동일한 결과를 보인다. 왜 남성 독거노인은 고독한가.

가장 큰 요인이 ‘일상생활’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손상준 아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다른 연구진과 함께 연구한 바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자살 사고 수준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소는 ‘일상생활 수행능력’이다. 쉽게 말하면 밥하고 정리하고 자고 일어나는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기초적인 생활습관의 수행 여부다. 손상준 교수는 “일반적으로 노인이 될수록 신체기능이 저하돼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라며 “일상생활을 잘 하지 못함으로써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 있고 나아가 정신적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남성 독거노인에게 일상생활은 문제가 된다. 1950년대 이전에 태어난 이들의 가사노동 참여율은 ‘0%’에 가깝다. 밥 하나 제 손으로 지어본 적 없는 가부장적인 남성 노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일상생활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의 암담함은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서 무력감에 이를 정도다.

올해 칠순을 맞은 유민권(가명)씨는 6년 전 슬하의 남매를 모두 결혼시키고 나서 부인에게 이혼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시작된 그의 생활기는 ‘투쟁기’에 가깝다.

“평생 혼자서 운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군요. 밥 하나 놓고 김 하나 놓은 상차림을 보다가 눈물이 나와서 혼자서 밥상을 엎고 휴지를 꺼내들고 한참 울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지경이 됐나, 뭘 잘못했나 그런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유씨는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내기 위해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자영업을 했다. 경기도 수원시와 평택시, 오산시 일대에서 치킨집이며 술집을 “마구잡이로” 운영했다. 바쁘게 살면서 돈을 버는 것만이 가장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과 멀어졌다. 평생 가족을 지킨다는 한 가지 목표만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남은 것은 “밥 하나 제대로 못하는 외로운 노인네”라는 서글픈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석희정 경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남성 독거노인은 가부장제에서 자의·타의적으로 강요되었던 남성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나서 더 큰 상실감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그간 가사노동에서 남성은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 갑자기 닥친 가사노동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남성 독거노인은 생활 수준을 예전처럼 유지할 수 없다. 빨래를 하거나 옷을 개는 것, 청소를 하는 일마저 서투르기 때문에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현실적으로도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독거노인들이 동네 경로당이나 복지관을 찾는 이유 중 손꼽히는 것이 바로 ‘밥’이다. 밥상을 차릴 줄 모르는 남성 독거노인에게 균형 잡힌 식사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경제 능력까지 부족하니 경로당이나 복지관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집 안으로만 숨어드는 남성 독거노인

가부장으로서 역할을 잃어버린 남성 독거노인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오랜 시간 생계유지를 위해 집 밖에서 활동을 해오던 남성 독거노인 중에는 원래부터 가족들과 소원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많다. 업무와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일도 서투르다. 가족·이웃·친구로부터 멀어진 남성 독거노인에게 남은 것은 열외감, 버려짐, 상실 같은 감정이다.

그래서 남성 독거노인은 좀처럼 집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성 노인들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런저런 취미생활을 시도해보지만 남성 독거노인은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 제2 보병사단이 주둔하던 경기도 동두천시는 서울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 미군을 상대로 하는 자영업자의 비율 등으로 인해 노인인구가 많은 고령화 지역이다. 경제적인 문제로 이주해온 노인들이 많아 저소득 독거노인의 비율이 높다. 손용민 동두천시노인복지관 관장의 설명이다.

“남성 독거노인의 삶은 단조롭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머무르다가 잠시 복지관 나왔다가 별다른 유대감을 쌓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요. 반면 여성 노인들은 활동적입니다. 남성들은 집에 가면 할 일이 없거든요. 집안일도 할 줄 모르니 그냥 이불만 덮고 누워 있습니다. 그로부터 오는 상실감, 낮은 자존감 때문에 유독 남성 독거노인 중에는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구에 사는 77세 조영태(가명)씨는 하루의 대부분을 홀로 보낸다. 거의 매일 경로당에 가서 장기를 두거나 바둑을 두곤 하지만 기껏해야 서너 시간 외출하는 것일 뿐 집에 돌아오면 혼자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만한 친구는 없다.

“친구를 사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뉴스에 보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도 많다는데 저는 아직도 스마트폰을 잘 다룰 줄 몰라요.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가는데 저는 혼자 남겨진 것 같네요.”

결국 남성 독거노인은 “나이가 드는 일은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고 분노하게 된다. 조영태씨는 “혼자 산 지 10년이 넘으니 얼른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아를 잃어버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는 남성 독거노인이 여성 독거노인이나 다른 유형의 노인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높고, 자살 사고와 시도율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처럼 남성 독거노인만의 문제가 따로 있다면 그들을 위한 서비스도 별도로 제공돼야 한다. 지금껏 독거노인, 특히 남성 독거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는 물질적인 지원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반찬을 배달해준다거나 빨래를 해주는 것 등이다. 그러나 손용민 관장은 이런 방식은 남성 독거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성 독거노인의 역량을 길러줘야 합니다. 반찬을 가져다주는 것은 일시적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서비스에 의존하게 만들거든요. 스스로 밖으로 나와 자신의 역량을 기르고 자립할 수 있게,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예전과 같은 수준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능력을 키워주고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하는 것,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독거노인 힐링센터 전국 8곳

동두천시노인복지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지난 6월 11일 복지관 4층, 생명보험재단의 도움을 받아 설립된 ‘생명숲 100세 힐링센터’에서는 7명의 남성 독거노인이 모여 소고기장조림을 만들고 있었다. 이 힐링센터는 남성 독거노인만의 자립과 성장을 돕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전국 각지 복지관으로도 확산 중이다. 전국 노인복지관의 협조를 받아 잉여 공간을 개조해 조리실, 운동실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 프로그램을 구성해 남성 독거노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이날 진행된 프로그램은 자신이 먹을 반찬을 직접 만들어보는 요리교실이었다. 이 지역에서 유일한 요리학원을 30여년간 운영해온 최숙자 동두천요리학원 원장이 지도했다.

“소고기는 어르신들 입에 들어갈 만큼 작게 썰어주세요. 함께 들어가는 메추리알은 마트에서 살 수 있어요. 삶아서 껍데기를 깐 메추리알을 팔거든요. 그걸 사면 돼요.”

최 원장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재료를 어디서 구입하는지, 어떻게 다듬어 쓰는지부터 차근차근히 설명했다.

“어르신들 중에는 아예 칼을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도 많아요. 개수대를 비우는 방법을 모르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러나 요리교실에 다니고 나서 노인들이 변했다. 행주를 어떻게 빨아 쓰는지, 조리도구는 어떻게 보관하고 다루어야 하는지도 잘 안다. 수업시간에 만든 요리를 집에 들고 가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고, 다시 요리를 만들어보면서 냉장고를 채워나가기도 한다.

“몰라서 그랬지 막상 배우고 나면 어르신들이 더 요리에 적극적입니다. 집에 가서 혼자서 만들어보고는 ‘그 맛이 안 나와요’ 질문하러 오는 분들이 매우 많아요.”

최숙자 원장의 말처럼 남성 독거노인에게는 이런 방식의 수업이 필요하다. 김효진 생명보험재단 팀장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남성 독거노인을 위한 복지사업은 반찬을 배달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소극적 복지에 그쳤습니다. 물고기를 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제는 직접 밑반찬을 만들고 친구를 사귀게 만드는 적극적 복지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물고기를 잡게 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성 독거노인들을 위해서는 우선 자립할 수 있게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옷을 개고 정리·수납하는 요령, 요리하는 방법을 일일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가르칠 필요가 있다. 수업을 들으면서 저절로 친구가 생기겠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성을 증진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꽃꽂이를 직접 해본다든가 스트레칭을 배우면서 남성 노인의 사회적 관계망은 훨씬 넓어진다.

힐링센터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78세 신광식씨가 그 효과를 증명한다.

“저는 혼자 산 지 5년이 넘었는데 제 인생을 통틀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인 것 같아요. 나를 위한 행복이라는 게 뭔지 비로소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반찬을 들고 가는 날에는 일부러 친구들을 불러요. 불러서 같이 나눠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를 잊고 살았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는 힐링센터에 오게 되면서 더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집에 혼자 있으면 할 일이 없었어요. 내가 뭐 하고 살다가 죽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매일매일 배우는 것이 있고, 사람들도 만납니다. 그걸 또 집에 가서 되새김질 할 수 있으니까 바빠요. 하루하루가 기대돼요.”

손용민 동두천시노인복지관 관장은 “가장 놀라운 일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난 어르신들이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내가 먹는 밥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얼마나 많은 손길을 받아서 나온 것인지를 몰랐던 거죠. 직접 자신이 밥을 만들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 사람들의 노동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 단순히 밥할 줄 아는 능력만 기르게 된 것이 아니죠. 세상을 보는 눈, 가치관까지도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이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남성 독거노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동두천시노인복지관만 해도 힐링센터에 참여하려는 대기인원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2016년 말 처음 개설된 남성 독거노인을 위한 힐링센터는 전국적으로 아직 8곳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힐링센터를 거쳐간 노인은 겨우 445명에 그친다. 전국의 남성 독거노인 인구는 33만명이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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