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묵정동에 위치한 ‘제일병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중구 묵정동에 위치한 ‘제일병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제일의료재단(이사장 이재곤)이 최근 서울 충무로에 있는 제일병원 토지와 건물을 1300억원에 일괄 매각하기로 했다. 제일의료재단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제일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법원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이번 매각 결정은 재단이 내린 것으로 법원도 이를 허가한 상태다. 재단은 부동산 매각이 제일병원 정상화를 위한 과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병원 안팎에선 이번 매각 결정이 사실상 병원 자체를 청산하려는 정지작업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제일병원 정상화가 어렵다고 보는 사람들은 기존 병원 매각 후 이전이라는 재단의 정상화 방안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일병원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사촌지간인 고 이동희 박사가 1963년에 설립한 국내 최초 여성전문병원이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삼성그룹에 편입·운영돼 ‘삼성제일병원’으로 불렸다가, 1981년 의료법인으로 변경하면서 현재는 비영리의료법인 제일의료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초기 제일병원 재무구조는 우량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채무가 늘기 시작, 2016년 부채비율이 1100%를 넘어섰고 당기순손실은 170억원 이상이었다.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재단은 결국 올 1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재단은 최근 회생 방안으로 서울 중구 묵정동 일대에 위치한 제일병원 건물과 토지를 파빌리온자산운용(옛 아시아자산운용)에 일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매각대금은 1300억원이다. 재단은 지난 5월 27일 파빌리온자산운용과 예비적 우선매수권자 계약(스토킹호스)을 체결했고 매각 주관사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통해 5월 28일부터 9일간 부동산 매각 본입찰을 진행했다. 스토킹호스는 공개입찰 전 인수의향자와 수의계약을 먼저 맺고 본입찰에 경쟁자가 없을 시 기존 인수의향자에게 매수권을 부여하는 계약이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채권단 동의와 법원 인가절차 등을 고려했을 때 7월 중으로 부동산 매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파빌리온자산운용은 부동산을 인수하는 대로 부지용도를 상업용지로 변경해 오피스텔, 상가 등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제일의료재단은 2~3년 내로 타 지역에 병원을 새롭게 설립, 이전할 방침이다.

커지는 ‘청산’ 우려

하지만 병원 내부에선 재단이 사실상 병원 청산 절차를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동산 매각 추진에 앞서 병원 공개입찰 추진 시도 등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제일병원은 경영난으로 지난해 말 직원 임금 삭감은 물론 입원실·분만실 폐쇄, 응급실 축소 운영 등을 단행해야만 했다. 전국보건의료노조 제일병원지부에 따르면, 당시 내부에선 병원을 지자체나 정부기관 등에 기부해 운영을 이어가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병원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병원은 자율 구조조정 기간을 포함해 지난 1년 동안 일부 인수 후보자들과 물밑 협상을 진행했지만 모두 결렬됐다는 입장이다.

제일병원 한 직원은 “병원 운영 의지가 있었다면 환자를 내보내거나 병원 운영을 축소하지 않고, 그전에 어떻게든 손을 쓰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재단은 인수 후보자들과의 협상 기준이 무엇이었으며 이들과 협상이 결렬된 이유가 어떤 것이었는지 밝히지 않고 곧바로 부동산 매각에 나섰다”며 “병원 공개입찰 공고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밟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재단의 속내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과거 인산의료재단, 늘푸른의료재단 등 여타 의료재단의 경우 운영하던 병원이 경영난에 빠지자 회생절차 단계에서 곧바로 병원 공개 경쟁입찰을 추진, 적정 인수자를 찾기도 했다.

병원 내부에선 이재곤 제일의료재단 이사장이 그동안 보여온 경영 행태 등을 이유로 청산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고 이동희 박사의 뒤를 이어 2005년에 취임한 이재곤 이사장은 병원 부채가 높은 상황에도 병원 증개축을 무리하게 추진하며,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금융권으로부터 1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대출받았다. 이때 병원 토지와 건물이 공동담보로 잡혔고 부채비율도 대폭 늘었다. 직원들 사이에선 공사 진행과 관련한 이사회 결의 부재, 회의록 조작, 특정 건설사와의 지속된 수의계약 등을 근거로 공사대금 관련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 이 이사장의 부인이자 병원 상임이사로 근무하는 김모씨와 일부 경영진은 업무상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병원이 직원들 월급에서 원천징수한 4대 사회보험료를 일정 기간 동안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직원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재단이 직원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간 것에도 석연치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병원 회생을 위한 동의서’에 따르면, 재단은 지난 5월 직원들에게 ‘2019년 4월 급여 기준의 3개월분’을 병원에 기부할 것을 권유했었다. 재단 입장에선 끊임없이 제기되는 비판 등으로 병원 운영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병원 부동산이 매각되기만 하면 이 이사장 측은 적지 않은 이득을 챙길 수 있다. 현재 본관 건물의 절반 등 일부 병원 부동산이 이 이사장 형제가 운영하는 부동산업체 ‘동삼기업’ 소유이기 때문이다.

병원 이전도 쉽지 않아

재단은 부동산 매각 후 병원 이전을 계획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안진회계법인이 채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발표 내용에 따르면, 총 부동산 매각대금 1300억원 중 300억원은 이 이사장 등 재단 특수관계자에게 넘기고, 50억원은 병원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는 계획안이 검토 중이다. 결과적으로 950억원이 남지만, 제일의료재단의 총 채무액 규모는 1428억원이다. 병원 이전은커녕 부채변제도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이전을 위한 행정적 절차도 만만치 않다. 이전하려는 지역 관할 보건소로부터 허가를 받은 후 법인 정관을 변경해야 하는데, 비영리의료법인의 정관 개정은 일부 특수한 경우에만 허가된다. 보건복지부는 ‘농어촌지역 등 의료 이용이 어려운 경우, 진료과목이 적어 의료기관 이용이 불편한 경우, 특정 전문치료 개설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정관 개정을 허가하고 있다. 서울 한 지역구 보건소 관계자는 “제일병원의 경우 의료시설이 적거나 산부인과에 특화된 병원을 필요로 하는 지역을 찾아야만 그나마 이전에 승산이 있을 것”이라며 “유력 이전 후보지로 떠오르는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도 두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부동산이 매각된 상황에서 이전 지역을 찾지 못하면 제일병원의 존립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인수합병(M&A) 전문가들은 제일병원의 회생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M&A업계 한 관계자는 “제일병원은 다시 재벌그룹에 편입하고자 일부 대기업들과 접촉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메리트가 없으니 협상이 잘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제일병원 부지는 노른자 땅으로 부동산 개발업자 입장에선 매력도가 높아 재단이 매각 방안을 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법원이 공익채무(직원 급여, 퇴직적립금 등)를 제외한 나머지 채무의 60~70%는 제로화해준다. 병원 이전 등 회생 방안이 터무니없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제일병원 전 경영진이자 현 법정관리인은 “채무가 많아 공개입찰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채무 변제 후 금융기관, 특수관계인 등과 힘을 합쳐 병원 이전을 차차 계획하고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곤 이사장에게는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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