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일 새벽에 끝난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박준식·사진) 전원회의에서 오는 2020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됐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2일 새벽에 끝난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박준식·사진) 전원회의에서 오는 2020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됐다. ⓒphoto 뉴시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87% 오른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됐다. 월 단위로 환산하면 179만5310원으로 전년 대비 5만160원 인상된 금액이다.(주 40시간 근로기준 유급주휴 포함, 월 209시간) 최저임금위원회 측은 “2020년 적용되는 최저임금안의 인상률은 역대 3번째로 낮고, 인상액(시간당 240원) 기준으로는 14번째로 높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린 결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33%에 달하게 됐다.

최저임금을 업종별, 기업 규모별, 지역별로 차등화하자는 제안 역시 결국 이번에도 불발로 끝났다. 특히 일본, 중국 등에서 이미 채택한 지 오래인 지역별 차등화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앞서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서 이번에도 논의로만 그쳤다.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는 각 지역별로 상이한 물가수준을 최저임금에 반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업종별 차등화에 비해 구분 쉬워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는 최저임금법 조문(제2장 4조)에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이론적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실시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조건이 여럿 있다. 임승순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은 “업종 선정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 최저임금위원 간에도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다”며 “같은 소매업이라 하더라도 잘되는 곳이 있고 안되는 곳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지역별 차등화는 업종별 차등화와는 달리 업종별 세부 분류 작업이 필요없다는 장점이 있다.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이 속한 지역이나 세금을 내는 곳에 따라 일괄 적용해 업종별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이점 때문인지 일본과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최저임금을 지역의 경제 수준에 맞춰 차등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역별 생활물가 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전국 단일 최저임금 체계를 고집스럽게 고수해 고용주와 피고용자 모두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최저임금은 전국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지역별 물가수준은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이는 행정안전부가 공표하는 지방물가정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행안부는 매월 공공요금을 비롯 외식비, 서비스비, 농축산품 등을 대상으로 각 지방별로 세부적인 물가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행안부 지방물가정보에 따르면,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은 항목별로 천차만별 수준의 극명한 물가 차이를 보여준다.

일례로, 공공요금 항목에 속하는 택시비(기본요금)의 경우 서울과 경기가 3800원으로 가장 비쌌고, 제주는 2800원으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저렴했다. 반면 도시가스요금의 경우 제주가 1만1790원으로 광주광역시(7863원)에 비해 2배 가까이 비싸다는 결과가 나왔다. 상수도와 하수도 요금의 경우 부산이 각각 1만6200원과 1만300원으로 제주(7600원)와 경북(4771원)에 비해 역시 2배 이상 비쌌다.

지방별 천차만별 생활물가 수준

외식비 역시 지역별·품목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냉면의 경우 가장 비싼 곳은 서울(8962원)로 가장 저렴한 제주(7000원)보다 2000원가량 비쌌다. 반면 김치찌개백반과 자장면, 칼국수는 모두 제주가 전국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조사됐다. 제주의 김치찌개백반은 7625원으로 가장 저렴한 전남(6222원)에 비해 1000원 이상 비쌌고, 자장면 역시 제주가 5750원으로 경남(4750원)에 비해 1000원이 더 비쌌다. 칼국수도 제주가 7500원으로 대전(5600원)에 비해 2000원 가까이 비쌌다.

서비스 요금 역시 지역별로 상당한 편차를 보였다. 여관을 기준으로 한 숙박요금의 경우 여름철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강원도가 4만3889원으로 가장 비쌌고, 광주광역시가 3만5000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미용료는 대구가 2만원으로 제일 비쌌고, 전북이 1만2500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목욕료의 경우 서울이 7077원으로 제주(5125원)에 비해 2000원 가까이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밥상 물가를 좌우하는 농축산품의 경우 대부분의 농산물을 타지에 의존하는 서울이 대부분 품목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은 닭고기를 비롯해 무, 감자, 콩, 쌀 등 품목에서 가장 비싼 물가수준을 보여줬다. 반면 달걀은 경남이 2779원으로 가장 비쌌고, 배추는 부산(2975원), 고춧가루는 울산(4680원)이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주거비다. 공시지가 등을 정하는 한국감정원에서는 매월 단위로 아파트를 비롯한 다세대, 단독주택들의 매매가와 전세가, 월세가 동향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7억9700만원으로 가장 저렴한 경북(1억3800만원)에 비해 7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실제 사용가치를 반영하는 전세가 역시 서울이 가장 높았다. 서울 지역의 평균 전세가는 4억3800만원으로 역시 가장 저렴한 경북(1억700만원)에 비해 4배 이상 비쌌다. 월세의 경우도 서울 지역의 아파트 평균 월세가는 109만원으로, 가장 낮은 경남(40만9000원)에 비해 2배 이상 비쌌다. 생활물가와 주거비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데 전국 동일의 최저임금을 책정하다 보니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한국에서도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주장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배진한 충남대 명예교수(경제학과)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충청권(대전·세종·충남·충북), 호남권(광주·전남·전북·제주), 영동권(대구·경북·강원), 영남권(부산, 울산, 경남)으로 전국을 크게 5개 권역으로 나눠 별도 최저임금을 책정하자는 주장을 폈다. 이는 대구경북과 강원, 호남과 제주를 한데 묶어 기존의 영호남식 지역 구분보다 생활물가나 주거비 등을 현실에 가깝게 반영하는 장점이 있다.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화가 어려운 몇 가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선 지역별 최저임금을 결정할 관련 통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계급여(공적부조)가 전국 단일기준으로 책정되는 문제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찬임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따로 주는 나라는 생계급여도 지역별로 따로 나간다”며 “한국은 생계급여 역시 전국 단일 기준으로 나가는데, 지역별 차등화는 통일이 된 후에야 논의해볼 문제”라고 했다.

일본, 47개 도도부현별 차등화

하지만 우리의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은 비슷한 행정적·기술적 어려움에도 오래전부터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적용을 하고 있다. 1959년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지방행정의 기초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별로 각기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도쿄도(都)가 985엔으로 1위이고, 요코하마가 포함된 가나가와현(縣)이 983엔으로 2위, 오사카부(府)가 936엔으로 3위에 올라 있다. 홋카이도(北海道)는 835엔으로 13위에 올라와 있다.

한국과 가까운 규슈(九州) 지방의 경우 대부분 최저 수준의 최저임금을 채택하고 있다. 규슈 지역 7개 현 가운데 후쿠오카현(814엔)을 제외한 나머지 6개현이 모두 762엔 이하의 최저임금을 채택하고 있다. 이 중 가고시마현(鹿兒島縣)은 761엔으로 일본에서 가장 낮은 최저임금이 책정돼 있다.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현 역시 762엔의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이 지역별 최저임금을 바탕으로 ‘특정최저임금’으로 불리는 업종별 최저임금을 추가 적용하는 구조다. 파견근로자에게는 파견처가 속한 지역의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정신 또는 신체 장애에 의해 현저히 노동능력이 낮은 자, 시용(수습) 기간 중인 자, 직업훈련을 받는 자, 가볍고 쉬운 업무에 종사하는 자’는 ‘특례대상 근로자’로 묶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지역과 업종, 근로자 개개인에 따른 맞춤형 최저임금으로 기업 경쟁력을 유지 중이다.

중국, 도입 늦어도 지역별 차등화

한국보다 최저임금 도입 역사가 늦은 중국 역시 33개 성(省)급 행정구역별 최저임금제를 실시 중이다. 중국은 1993년 최저임금제를 최초 도입한 이래 2004년에야 시짱자치구(티베트)가 최저임금 기준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제도가 정착됐다. 1986년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한국에 비해 18년이나 늦다. 지방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의 신뢰성마저 의심되는 중국이지만 지방 스스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자율권을 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상하이시가 2420위안(이하 월 단위)으로 중국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높고, 선전시가 2200위안으로 2위, 베이징시가 2120위안으로 3위다. 서부 칭하이성(靑海省)의 경우 1500위안으로 가장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중국의 대부분 성은 같은 성 안에서도 최대 5등급의 차등화된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푸젠성의 경우 최고 1700위안에서 최저 1280위안으로 5등급의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선전의 경우 광둥성에 속한 일개 시(市)에 불과하지만 별도의 최저임금(2200위안)을 적용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가장 잘사는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에 속하고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임을 감안한 조치다. 결과적으로 광둥성은 최저임금을 최고 2100위안과 최저 1410위안의 4등급으로 구분하지만 선전(2200위안)까지 포함하면 5등급의 세밀한 최저임금 구분을 실시하는 셈이다.

성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나뉘는 최저임금으로 인해 1급지 기준 최저임금이 가장 낮은 곳은 칭하이성(1500위안)이지만, 지역별 최저임금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랴오닝성의 가장 낮은 최저임금(4급지 1120위안)이 칭하이성보다 더 낮다. 이 밖에 후난성과 안후이성의 경우도 가장 낮은 등급(4등급)의 최저임금이 각각 1130위안과 1180위안으로 1100위안대에 속해 있다. 그야말로 지역이 처한 각기 다른 경제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갱신하는 시기 역시 최저 2년에서 3년까지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단일 직할시지만 넓은 면적과 3000만명이 넘는 인구를 감안해 각각 1800위안과 1700위안의 2단계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충칭의 경우 지난 1월 결정된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허베이성은 2016년 7월 시행한 최저임금(1급지 1650위안)을 여전히 사용 중이다. 허베이성 인민정부 측은 “2~3년에 한 번만 갱신하면 된다”고 밝혔다.

최저임금법 법조문 개정이 우선돼야

중국은 성(省) 하나의 면적이나 인구 규모가 한국과 거의 비슷하거나 크다. 저장성의 경우 면적이 약 10만4141㎢로 남한(10만210㎢)과 거의 흡사하고 인구도 약 5600만명으로 한국(약 5100만명)과 비슷한 규모다.

하지만 최고 2010위안에서 1500위안의 4단계로 구분된 최저임금을 성 내에서 지역별로 차등적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성들은 한국과 비슷한 면적과 인구 규모에서도 차등화된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경우 국토 크기와 인구가 적어서 지역별 최저임금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화 문제는 업종별 차등화 문제와 함께 향후 설치될 예정인 최저임금 제도개선위원회에서 포괄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워낙 민감한 주제라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인 전인 영남대 교수(경영학과)는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화 도입을 묻는 질문에 “공익위원들은 외부와 별도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아직 논의 주제가 특정되지는 않았다”며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부(고용노동부) 측 공익위원인 임승순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은 “지역별 차등화가 업종별 차등화에 비해 쉽다는 주장이 있는데, 최저임금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며 “일본이나 베트남 같이 길쭉한 나라나 연방제 국가 같은 경우는 지역별로 하기가 손쉬운데, 한국은 처음부터 단일체제로 시작한 터라 실제 적용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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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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