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서울 관악구의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 이 동네에서만 30년 넘게 살았다는 72살 A씨에게 옆집에 사는 가족은 ‘미스터리’였다.

“내가 이 건물에 산 게 5년이 넘는데 얼굴을 한번도 못 봤어. 이사 오고 얼마 안 돼서 인사하고 그런 적은 있었는데 그 이후로 한번도 못 봤어.”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이면 매일 집 밖에서 동네 주민들과 둘러앉아 화투를 치곤 하는 마당발 A씨가 모르는 동네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옆집 가족의 일만 모른다.

A씨의 옆집에 사는 가족은 이제 60대에 접어든 아버지 허정수(가명)씨, 20대인 아들과 딸, 세 가족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쉽지 않았다. 5~6년 전부터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근근이 먹고산다”는 허정수씨는 담배와 술을 살 때만 집 밖으로 나오는 편이었다. 동네 편의점에서 즐겨 피는 담배와 술을 사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딸과 아들이 사달라고 한 듯한 라면과 군것질거리가 봉지 안에 조금씩 담겨 있기도 했다.

살짝 문이 열려 들여다본 허씨의 집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허씨는 조금 민망한 듯이 “음식물쓰레기를 잘 안 버려서”라고 말했다. 주로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허씨네 가족 중 아들과 딸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다. 특히 아들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몰라요. 게임을 하는지, 뭐를 하는지. 여름에는 하도 냄새가 나서 뭐라고 하긴 했어요. 딸이 남은 방 하나를 쓰고 저는 거실에서 잡니다.”

허씨는 집 앞에 서서 줄담배를 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못 배우고 못 먹여서 애들 엄마가 옛날에 도망갔어요.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 나요. 기술이 없으니까 여기저기 다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제 앞으로 보험금이 조금 나오더라고요. 빚이 조금 있었는데 갚고 나니 맥이 탁 풀려서 그냥 일 그만두고 좀 쉬려고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일과가 끝나면 매일 술잔을 기울이던 술친구들이 있었는데 허씨가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좀처럼 만나지 못하게 됐다. “귀찮아서” 약속을 몇 번 취소했더니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아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군대에 갔다가 제대 후 별다른 직업 없이 게임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딸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지만 허씨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 사람 모두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집 안에 틀어박혀서 각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딱히 연락을 취하는 친구도 없고, 안부를 물어오는 친지도 없다. “이웃에서 얼굴을 본 적 없다고 궁금해한다”고 말을 전하자 아버지 허씨는 도리어 “왜 궁금해하느냐”며 물어왔다. “알아서 잘 살고 있다”며 자못 당당하게 말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문제는 돈이다.

허씨네 집 우편함에는 여러 고지서가 담긴 봉투가 빛이 바랜 채로 꽂혀 있었다. “생각나면 남는 돈 긁어 모아서 세금을 내는데 이제 남은 돈도 없다”는 허씨는 그러나 막상 구직활동을 한다거나 사회복지 시스템을 찾아보는 일에는 부정적이었다.

“폐지를 주우면 주웠지 이제 누가 저에게 일을 하라고 하겠어요. 사지 멀쩡히 붙어 있는 애들 보고 공짜 돈을 줄 사람도 없고. 굶어 죽기 전에는 뭐든 하겠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보면 하루가 지나가고, 일 년이 지나가고 그래요.”

기자와 함께 동행했던 사회복지사 B씨는 허씨의 심리 상태를 두고 “온 가족이 우울증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이 우울증에 빠져 있든, 경제적 곤란에 빠지든 간에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허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닐 뿐더러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복지혜택에 대한 정보도 없고, 받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B씨는 “하다못해 직업훈련이라도 받으라고 권하고 싶은데, 이 가족이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어 도와줄 수가 없다”며 “이런 가족들이 진짜 ‘사각지대’”라고 표현했다.

빈곤에는 여러 차원이 있다

지난 11월 19일,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과 딸, 딸 친구 등 네 명이 한꺼번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가족의 극단적 선택이었다. 11월 2일에는 서울 성북구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숨진 지 한참 후에나 발견된 네 모녀는 유서만을 남겼다.

이들 두 가족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다른 공통점도 있었다. 바로 외부로부터 ‘고립된 가족’이었다는 점이다. 먼저 인천 계양구의 아파트를 찾아가봤다. 가족의 흔적을 서서히 지우고 있는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들은 숨진 채로 발견됐던 가족들과 교류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게 ‘아파트 살이’라지만 눈인사 정도만 했지, 말 한번 섞어본 적 없었어요.”

숨진 가족은 언뜻 평범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집 앞에는 택배가 자주 쌓여 있었고, 공과금은 미루지 않고 내는 편이었다. 외출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러나 확연하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 가족은 지난해 9월 어머니가 실직한 이후 한부모가정으로 주거 지원을 받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 주민센터 등에 문의한 적은 있지만 이혼한 전 남편에 대한 부양의무자 조회가 필요하다는 얘기에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성북구 네 모녀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함께 운영하던 인터넷 쇼핑몰이 판매 부진을 겪으면서 건강보험료나 월세를 체납하기 시작했다. 주민센터에 복지 지원을 받는 방법을 문의한 적은 있었지만 수급을 받지 못했다. 인근 주민 중에는 이들 모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이들 가족이 빠져 있는 빈곤의 늪은 경제적인 것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 문제는 절대적 기준으로 봤을 때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언론에서 잇따라 ‘징후가 없었다’며 사망원인에 대한 추측 기사를 내어놓는 이유다. 억대의 빚을 지고 있다거나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절대적 빈곤에 시달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빈곤은 소득과 같은 물리적인 차원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다차원적 빈곤’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간 ‘빈곤하다’는 기준은 소득 수준으로만 결정돼왔다. 그러나 빈곤은 다양한 차원에서 진행된다. 예를 들면 주거 문제가 있다.

아동이나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청년들의 주거 문제는 최근 들어 부각되는 문제다. 단칸방에 여러 명의 가족이 모여 살거나 반지하·옥탑방 같은 공간, 심지어 건물이 아닌 컨테이너 같은 허름한 곳에서 사는 ‘주거빈곤 아동’은 국내에서만 94만명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수는 전체 아동인구의 9.7%에 달한다. 이들 주거빈곤 아동은 소득이나 자산을 기준으로 판별할 수 없는 빈곤 계층이다.

성인 중에서도 최소한의 소득을 거두고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주거지를 찾지 못해 쪽방이나 ‘고시텔’을 전전하는 사람도 많다. 통계청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찜질방 같은 다중이용업소에 거주하는 사람만 14만가구가 넘고, 모텔 같은 숙박업소의 객실에서 머무는 가구도 3만가구나 된다.

건강이나 의료 분야에서도 빈곤은 발생한다. 소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의료비를 지출하는 사람도 많다. ‘재난적 의료비’란 가구 지출의 2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김경휘 예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빈곤층 노인인구의 39.6%는 이런 재난적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는 의료 빈곤 계층으로 드러났다.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고용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도 빈곤층을 파악할 수 있다. 2011년의 한국복지패널조사를 보면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한 학생 중에 저소득층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중 상당수는 취업 활동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경제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1월 21일 서울 성북구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부근에 ‘성북구 네 모녀’를 추모하는 시민 분향소가 차려졌다. 이들 모녀의 장례는 무연고로 처리될 예정이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21일 서울 성북구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부근에 ‘성북구 네 모녀’를 추모하는 시민 분향소가 차려졌다. 이들 모녀의 장례는 무연고로 처리될 예정이다. ⓒphoto 뉴시스

‘부양의무자’ 규정의 문제

빈곤의 다양한 이유 중에서도 간과되기 쉬운 것은 ‘관계’에 대한 것이다. 지금은 당장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먹고살 정도의 소득이 있어도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되어 있다면 빈곤 가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빈곤에 대해 연구해온 김안나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김안나 교수는 여러 논문을 통해 빈곤의 유형을 다양하게 살펴본 적이 있다. 이 중 사회적 관계망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은 일자리에 대한 정보 같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지인이 없거나 어려울 때 물리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척·친구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조손가구, 한부모가구, 다문화가구처럼 사회 취약 계층에서 소득 문제를 겪을 위험보다 관계망에서 배제될 위험이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취약 계층은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도 높게 배제되어 있다. 단지 전통적인 경제적 빈곤층만 위험 계층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접근하기 힘든 빈곤층도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천과 성북구에서 각각 숨진 가족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들이 경제적으로 보낸 신호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성북구 네 모녀는 건강보험료나 월세를 여러 달 체납하기는 했지만 지역사회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인천의 가족들은 그마저도 없었다.

그러나 관계의 차원에서 이들은 매우 빈곤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성북구의 네 모녀는 숨진 이후에 이들의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연이 닿은 친지들도 시신을 인도하는 것을 거부해 무연고 고독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자체에서 화장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인천의 경우에는 이들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려 노력했던 정황이 있지만 ‘부양의무자’ 규정 때문에 발길을 돌렸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려면 부양의무자, 즉 함께 살지 않는 이혼한 배우자나 직계가족까지 부양능력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인천의 가족의 경우에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이혼한 전 남편에게 부양능력을 입증해달라고 연락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이 ‘부양의무자’ 규정은 빈곤이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것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항목이다. 비록 신청자 본인은 소득이 없고 근로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부양해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 항목이다. 그런데 빈곤층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회적 관계가 끊긴 경우가 많다. 성북구나 인천의 가족이 그랬고, 함께 목숨을 끊었는데도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발견된 많은 빈곤 가정이 그렇다.

서울 관악구의 허씨 가족은 관계의 빈곤에 빠진 가정이다. 겨우 생계를 이어나갈 자산은 있지만 이들은 점차 경제적 빈곤의 늪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곳이 하나도 없다. 물리적인 도움은 물론 정서적으로 도와줄 친척과 친구가 없다. 고용 정보나 사회복지 지원 제도를 알려줄 사람도 없다. 얼핏 그저 고립되어 있을 뿐으로 보이는 허씨 가정은 사실 실질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다.

가족이 함께 고립될 때의 위험

이렇게 관계의 빈곤에 빠질 때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것이 ‘가족’이다. 보통은 가족이 함께 살고 특별한 장애가 없을 경우에는 경제적 능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고립될 경우에는 매우 빠르게 위기 상황을 맞기 마련이다.

일본에서는 가족 단위의 고립에 대해 조금 더 인식하고 있는 편이다. 미혼 성인 자녀와 함께 사는 부모와 그 부모를 돌보는 자녀 간에 생기는 일이 여러 형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고령의 부모를 혼자서 간호하다가 ‘간병살인’을 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함께 목숨을 끊는 사건도 많다.

한국의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 체제가 성립된 일본에서도 고령의 부모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녀를 돌보는 일은 거의 전적으로 가족의 책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족의 형태가 예전과 다르다는 점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아버지’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 ‘돌봄을 받다가 독립하는 자녀’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사회복지 시스템은 이런 가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면서 가족 내의 문제는 가족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치 한국의 ‘부양의무자’ 규정처럼 가족 구성원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은 다른 가족 구성원이 먼저라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고립되어 있을 경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고립된 가족’이라는 개념을 주목해야 한다. 경제적 공동체로 묶여 있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돼 있으면서 위기에 처할 가능성 높은 가족이다. 비록 절대적 빈곤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들은 심리적으로 더 위험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가족이 서로 의지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심리적 불안감을 공유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복지 위기가구 발굴대책’ 등을 통해 사회적 관계망을 확보하는 데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다만 그 정책이 ‘SNS 일촌 맺기’ ‘주민 스스로 해결’ 같은 기초적인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이 문제다. 고립된 가족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오래된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 그래서 단순한 접근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정책이다.

우리 사회에 ‘고립된 가족’은 얼마나 될까. 왜 이들은 가족만을 의지한 채 사회로부터 고립을 선택했을까. 이 고립이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인가. 이제는 빈곤을 가족 단위 관계의 차원에서도 살펴볼 때다.

키워드

#심층취재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