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둥펑혼다 제3공장. ⓒphoto 신화·뉴시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둥펑혼다 제3공장. ⓒphoto 신화·뉴시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 시장의 지각변동이 점쳐진다. 특히 중국의 4대 국유자동차 회사 중 하나로 일본(혼다·닛산), 프랑스(르노·푸조·시트로엥), 한국(기아)의 주요 자동차 회사와 합작관계를 맺고 있는 둥펑(東風)차의 본사가 위치해 있는 후베이성 우한(武漢)은 사실상 회복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지난 2월 20일 오전 8시 기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전체 사망자 2119명 가운데 후베이성에서만 사망자가 2029명이 나왔다. 이 중 1585명이 후베이성의 성도(省都) 우한의 수치다. 우한을 비롯 후베이성 16개 도시에서 이동통제가 실시되고 있어서 당분간 산업시설을 재가동할 여력 자체도 없다.

일본계 혼다와 닛산 타격 극심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일본계 자동차 기업인 혼다와 닛산이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 일본계 자동차 중 가장 많은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는 혼다는 직격탄을 맞았다. 혼다는 중국 현지에서 둥펑차, 광저우차와 각각 합작관계를 맺고, 후베이성 우한과 광둥성 광저우 등지에 주력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혼다의 양대 합작사인 둥펑혼다와 광치혼다는 지난해 중국에서 각각 80만대와 75만대씩 모두 155만대를 팔아 중국 시장에서 140만대를 판매하는 데 그친 도요타(이치도요타·광치도요타)를 제쳤다. 하지만 이번에 혼다의 중국 시장 주력 생산기지가 있는 후베이성과 광둥성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성 1, 2위를 기록했다.

특히 둥펑혼다의 경우 우한 시내 한복판에 연산 6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1~3공장을 두고 있다. 우한이 지난 1월 23일 이후 외부와의 출입이 전면 차단된 상태라서 자동차 생산을 가까스로 재개한다 해도 당분간 외부로 실어나를 방법이 없다. 특히 혼다는 지난해 4월 연산 12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제3공장을 준공하고 양산에 돌입한 지 1년도 채 안 돼 조업차질을 빚게 됐다. 2010년 혼다차의 대규모 파업사태 이후 최대 위기다.

둥펑혼다는 현재 조업재개 시점조차 정확히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당초 2월 17일 조업을 재개하려 했으나, 후베이성 당국의 방침에 따라 2월 21일 이후로 늦춘 상태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우한을 중심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고 있어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 116만대를 판매해 중국 자동차 시장 5위에 오른 닛산도 피해가 막대하다. 닛산 역시 우한에 본사를 둔 둥펑차와 합작관계를 맺고 광둥성 광저우를 비롯해 허난성 정저우, 후베이성 상양(襄陽), 랴오닝성 다롄 등지에 주력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닛산의 소형 세단 실피(한국명 SM3)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차다.

공교롭게도 닛산의 주력 생산기지가 있는 후베이성, 광둥성, 허난성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온 성 순위 1, 2, 3위에 들어갔다. 특히 지난해 중국에서 3만대가량을 판매한 닛산의 고급차인 인피니티를 생산하는 후베이성 상양공장의 경우 후베이성 당국의 방침에 따라 조업재개 시점이 2월 21일 이후로 계속 늦춰지고 있는 상태다.

반면 후베이성이나 광둥성 등지에 생산기지가 없는 현대기아차는 이번 사태를 가까스로 비껴갔다. 중국 전체 자동차 시장 위축에 따른 피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직접 타격은 간신히 면했다는 평가다. 현대차가 주력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베이징(1~3공장)과 허베이성(창저우), 충칭 등은 코로나19의 발원지인 후베이성이나 일본계 기업인 혼다와 닛산, 도요타의 거점인 광둥성에 비해서는 비교적 사정이 양호하다. 베이징과 허베이성의 지난 2월 20일 오전 8시 기준 확진자는 각각 395명과 307명으로 후베이성(6만2031명)이나 광둥성(1331명)에 비해서는 월등히 양호하다. 기아차 생산기지가 위치한 장쑤성도 확진자가 631명이나 나왔지만 최악은 비껴갔다.

현대차의 경우 베이징에 본사를 둔 ‘베이징차’와 합작관계를 맺은 터라, 생산기지와 딜러망이 지나치게 북방(베이징)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 그간 최대 약점이었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 서부 충칭과 쓰촨에 생산기지를 마련했는데 모든 생산기지가 후베이성 바깥에 위치한 덕분에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번 사태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후 중국 시장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현대기아차가 10위권 내로 재진입할 기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차의 중국 합작사인 베이징현대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모두 68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제조사 기준 13위에 머물렀다. 2018년 74만대에 비해서도 5.7%나 감소한 수치로, 중국 전체 자동차 시장점유율은 3.4%에 머물렀다.

둥펑차와 합작관계를 맺고 있는 기아차 역시 합작사 내 비중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우한에 본사를 둔 둥펑차는 일본계 혼다와 닛산을 비롯 프랑스계 르노, 푸조, 시트로엥 등과 합작관계를 맺고 있는데, 한국 측 파트너는 기아차다. 반면 기아차의 지난해 중국 시장 판매량은 28만대에 그쳐 전년(37만대)에 비해서도 9만대나 감소했다. 연간 판매 65만대로 정점을 찍은 2016년에 비해서는 판매량이 거의 3분의 1 토막 난 상태다.

둥펑차의 합작사 가운데 기아차의 위상은 중국 시장 판매량 10위권 내에 들어가는 둥펑혼다(9위)나 둥펑닛산(5위)에 비해 절대 열세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후베이성에 생산기지를 둔 탓에 직격탄을 맞은 둥펑차의 일본·프랑스계 합작사와 달리 기아차는 장쑤성 옌청에 생산기지를 둔 덕분에 가장 빠른 지난 2월 10일부터 조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르노·푸조·시트로엥 퇴출설도

반대로 우한에 생산기지를 둔 둥펑차의 프랑스계 합작사인 르노, 푸조, 시트로엥 등은 최악의 경우 이번 사태로 중국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둥펑차가 PSA그룹(푸조·시트로엥)과 합작한 둥펑푸조, 둥펑시트로엥은 지난해 각각 6만3000대와 5만대, 르노와 합작한 둥펑르노는 지난해 판매량이 1만8000대에 그쳤다. 올해는 조업 차질과 자동차 수요 감소로 이 정도 판매량도 기록하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도 코로나19 사태를 ‘사드 사태’ 이후 실추된 이미지 개선의 기회로 삼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28일, 코로나19가 창궐한 우한에 방호복과 마스크 등 500만위안(약 8억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한 데 이어, 중국에 1500만위안(약 25억원) 규모의 의료물품과 지원금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물품지원에는 베이징현대, 둥펑위에다기아, 쓰촨현대 등 중국 현지 합작사들이 모두 동참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후베이성에서 부품이 많이 넘어오는 쓰촨현대 상용차공장 한 곳을 제외하고는 베이징현대, 둥펑위에다기아 등은 100%는 아니지만 모두 정상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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