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 폭설이 내린 인천공항 주기장에 B737(왼쪽), B747(오른쪽) 여객기가 나란히 주기해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16일 폭설이 내린 인천공항 주기장에 B737(왼쪽), B747(오른쪽) 여객기가 나란히 주기해 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인천공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일본 노선 축소에 이어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중국 노선이 속속 감편 또는 운항중단되면서 공항에서 쉬는 비행기가 급증하면서다. 하늘에 떠있어야 할 비행기 상당수가 공항 주기장에 발이 묶이면서 주기장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주기장을 잡기 위한 자리싸움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인천공항의 경우 1·2여객터미널(탑승동 포함)과 화물터미널에 각각 163곳과 47곳의 주기장을 확보하고 있다. 인천공항 계류장(주기장) 운영팀의 한 관계자는 “아침 피크시간 때는 주기장이 포화상태가 되고 나머지 시간대는 아직까지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며 “화물터미널 쪽에 조금 여유가 있어서 장기 주기하는 비행기들은 그쪽으로 돌리고 있다”고 했다.

동절기에 코로나19도 겹쳐 포화

코로나19가 동절기에 발생한 계절적 요인도 인천공항의 주기장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의 경우 163곳의 주기장 외에 별도로 40개가량의 다목적 주기장을 추가 확보하고 있다. 다목적 주기장의 경우 겨울철 폭설 시에 이륙 전 항공기 동체에 쌓인 눈과 얼음을 치우는 제빙주기장(방빙장)으로 쓰인다. 날씨가 따듯할 때는 이 다목적 주기장을 모두 활용할 수 있어 주기장 부족에 숨통이 트이는데, 동절기에는 제빙주기장을 절반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해 주기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인천공항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인천공항 주기장이 부족한데 폭설이라도 내리면 결빙제거용 주기장을 따로 확보해야 해 주기장 부족 현상이 더 심해진다”며 “남는 비행기를 미국 네바다사막에 가져다놓을 수도 없고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항공사들 역시 주기장 사용에 따른 비용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인천공항의 경우 비행기 최대이륙중량(톤수)을 기준으로 30분 단위로 주기장 사용료를 부과한다. 국내선을 비롯 중단거리 노선에 많이 투입하는 B737(65t)이나 A320(74t) 등 100t 이하 항공기의 경우 30분마다 톤당 118원을, B747(395t), B777(352t) 등 200t 이상 대형항공기의 경우 30분마다 200t 초과 톤당 80원의 정류료를 징수한다. 인천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비행기를 하루(24시간) 동안 주기장에 세워둔다고 가정할 때 B737의 경우 대략 약 32만원, B747의 경우 약 157만원의 정류료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공항을 기점으로 중국과 일본 노선에 주로 취항해온 저가항공사(LCC)들의 비용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기존에 저가항공사들은 항공기 회전율을 극대화해 공항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정류료 부담을 덜어왔다. 가령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의 경우 3시간, 나머지 공항의 경우 6시간 내로 주기할 경우 정류료를 면제해왔다.

하지만 일본 노선에 이어 중국 노선마저 지난 1월 초 주 546회 운항에서 코로나19 창궐 후 주 126회(2월 셋째 주 기준)로 77%가량 감소하면서 비행기를 돌릴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고민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중국 노선의 여객감소는 전년 동기대비 64.2%에 달한다. LCC의 주력 기종인 B737로는 미주나 유럽 노선은 날아갈 수조차 없다.

대형기 주기장까지 소형기가 차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중·일 노선 의존도가 절대적인 LCC보다는 타격이 덜하다고 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천공항에 주기장이 부족하다 보니 저가항공사들이 A380(F급), B747·B777(E급) 대형항공기를 세워둬야 하는 주기장에까지 B737과 같은 중소형항공기(C급)를 세워두면서다. 마치 대형트럭용 주차장에 경차가 장기 주차돼 있는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항공기를 많이 보유한 대한항공을 비롯한 스카이팀 전용터미널인 인천공항 2터미널의 경우, 기존에도 대형기종의 수요에 비해 주기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인천공항 2터미널의 F급(A380)과 E급(B747·B777)을 수용할 수 있는 여객주기장은 모두 22곳으로, 1터미널(탑승동 포함)의 F급과 E급 여객주기장(48개)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원격 주기장 제외) 이마저 운항중단과 감편 사태로 더욱 부족한 상황이 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대한항공의 경우, 인천공항 외에 김포공항에도 격납고 등을 확보하고 있어서 소형기종이 대다수인 저가항공사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이에 일부 항공사들은 정류료가 비싼 인천공항 대신 상대적으로 정류비용이 저렴한 김포공항이나 여유공간이 많은 지방공항 등으로 비행기를 옮겨서 주기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스타항공의 경우 지난해 결함이 발견돼 국토부가 운항중지 명령을 내린 B737 맥스8 2대를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 장기 주기해왔으나 비용부담 문제로 정류료가 다소 저렴한 김포공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김포공항의 경우, 국제선 기준으로 100t 이하 항공기의 경우 톤당 110원, 200t 초과 항공기의 경우 톤당 70원의 정류료를 30분 단위로 부과한다. 인천공항보다 조금 저렴한 수준이다. 부산 김해공항이나 제주공항의 국제선 정류료는 B737 기준 하루 9만원가량으로 김포공항의 3분의 1 정도다. 이 밖에 인천, 김포, 김해,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공항의 경우 7만원가량에 불과하다. 청주, 양양공항(국제선 기준) 등은 2019년 공항시설 사용료(정류료 등 포함) 50% 감면조치도 실시하고 있다.

다만 항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항공기 정비 등의 여러 문제가 걸려 있어 현실적으로 지방공항을 주기장으로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비상경영을 선포한 항공사들은 항공스케줄을 조정하는 식으로 정류료 부담 최소화에 나서고 있다. 국적항공사 8곳 중 아시아나항공 등 6곳은 임직원 급여반납,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 비상경영에 착수한 상태다.

항공사들의 어려움 호소에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정류료를 비롯해 공항시설 사용료 전반을 조정할지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17일 ‘코로나19 대응 항공분야 긴급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최대 3개월간 공항시설 사용료 납부유예를 발표했다. 국토부 항공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오는 4~5월 중 공항시설 사용료 가운데 항공사에 가장 부담이 큰 착륙료를 감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LCC업계 1위 제주항공의 한 관계자는 “비행기를 마냥 세워놓을 수 없어 스케줄을 조정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각 항공사들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에서 비용절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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