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시스템의 국내 최대 근접전계 측정용 안테나 시스템 시험장.
한화시스템의 국내 최대 근접전계 측정용 안테나 시스템 시험장.

“앞에 보이는 시설은 국내 최대 규모의 근접전계 안테나(레이더) 시스템 시험장입니다.”

지난 2월 1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에 있는 한화시스템 용인연구소 박준영 해상레이더팀장은 연구소 안의 거대한 시설 앞에서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안테나 시스템 시험장은 가로 32m, 세로 33m, 높이 22.5m 규모로, 가로 18m, 세로 12m의 국내 최대 스캐너가 설치돼 있었다. 근접전계 시험장은 위상배열(AESA) 안테나 최종 통합 시험을 하는 곳이다. 조립이나 튜닝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테나 방사 패턴의 불량을 출하 전 단계에서 판정, 안테나의 생산품질을 보장해준다.

2018년 3월 완공된 안테나 시스템 시험장은 장비 조립과 점검을 위한 전실, 안테나 방사가 이뤄지는 전자파 측정실, 최신 장비 컨트롤을 위한 제어실로 구성돼 있다.

한화시스템이 이런 시설을 만든 것은 주력 분야인 첨단 레이더를 독자 기술로 본격 개발하기 위해서다. 한화시스템은 35년간 기술 도입과 국산화를 시작으로 육·해·공 전 분야에서 레이더 개발 역량을 쌓아왔다. 현재 한국형전투기(KF-X)의 핵심인 AESA레이더를 비롯,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인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용 다기능(MFR) 레이더, 차기 호위함 배치3급(FFX-Ⅲ) 탑재용 다기능 레이더, 지뢰탐지 레이더, 드론탐지 레이더 등 다양한 레이더를 개발 중이다. 다기능 레이더는 탐지 및 추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첨단 장비다. 종전엔 탐지 및 추적 레이더가 분리돼 있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한화시스템은 최신 안테나 시스템 시험장 구축을 통해 해외 선진 업체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레이더 개발 환경을 갖추고, 자주국방을 위한 첨단 레이더 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화시스템은 연구개발 및 기술 인력이 전체의 67%에 달하고 석·박사 이상 고학력자도 34%에 이른다. 한화시스템 연구개발의 상징이자 본산이 370명이 근무하는 용인연구소다. 현재까지 용인연구소의 대표 상품은 KF-X AESA레이더다. 미국이 기술 제공을 거부, 독자 개발이 결정돼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시스템이 개발 중이다. 오는 2026년까지 총 3658억원을 투자해 개발한다. 한화시스템이 우선 맡은 것은 KF-X AESA레이더용 입증시제(안테나장치·전원공급장치)와 시험장치를 제작하고, 연동 및 기능 성능을 확인하는 것이다. 2016년 시작해 지난해 완료됐다. 지난해 3~6월엔 이스라엘 엘타사 현지에서 보잉 737기를 개조한 시험비행기로 비행시험(10차례)을, 10~11월엔 국내 인천공항에서 시험항공기에 레이더 시제품을 장착해 비행시험(6차례)을 했다. 한 소식통은 “인천공항에서의 시험 결과는 이스라엘 엘타사 관계자들도 놀랄 만큼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는 시험 결과에 고무돼 내용 공개도 검토했지만 이스라엘 측이 비밀로 분류해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KF-X AESA레이더의 특징은 적 항공기는 물론 지상·해상의 이동 표적까지 탐지·추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형을 따라 낮게 비행할 수 있는 지형회피·추적 능력도 갖출 예정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전투기 외부에 장착됐던 항법 포드를 따로 달 필요가 없게 된다.

한화시스템 용인연구소의 ‘대표상품’인 한국형 전투기(KF-X) AESA레이더 시제품.
한화시스템 용인연구소의 ‘대표상품’인 한국형 전투기(KF-X) AESA레이더 시제품.

KF-X AESA 탐지거리 200㎞ 이상?

KF-X AESA레이더의 핵심 부품은 모듈이라 불리는 물건이다. 수 ㎝ 크기의 잠자리 홑눈처럼 생겼는데 레이더 시제품에는 모두 1088개가 들어간다. AESA레이더는 모듈을 원형판에 박아놓은 형태다. 모듈 하나가 레이더파를 보내 각각 표적을 탐지, 종전 기계식 레이더보다 다수의 표적을 먼거리에서 탐지할 수 있다. 모듈 숫자가 많을수록 탐지거리 등 탐지능력이 뛰어나다. 우리 공군도 도입 중인 F-35 스텔스기는 1200여개의 모듈을, 세계 최강 전투기로 꼽히는 F-22는 약 2000개의 모듈을 갖고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오는 2023년부터 KF-X에 장착돼 시험될 AESA레이더는 현재보다 20% 커지고 모듈 숫자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모듈 숫자가 1200여개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F-35와 비슷한 수준이다. 수십 개의 목표물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KF-X AESA레이더는 KF-16 성능개량 전투기에 탑재된 AESA레이더보다 우수한 성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F-16 성능개량 전투기의 AESA레이더 탐지거리는 약 200㎞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듈을 비교적 작은 레이더 원형판에 가급적 많이 집어넣으려면 크기를 줄여야 한다. 여기에도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용인연구소에는 2005년 처음 만든 모듈부터 2016년 개발된 모듈까지 함께 전시돼 있는데 크기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용인연구소가 의욕적으로 개발 중인 첨단 레이더에는 KF-X AESA레이더 외에도 L-SAM용 다기능 레이더, 차기 호위함 배치3급(FFX-Ⅲ) 탑재용 다기능 레이더 등이 있다.

L-SAM용 다기능 레이더는 적 항공기나 탄도미사일을 탐지해 국산 장거리 요격미사일인 L-SAM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수십 개의 적 항공기·미사일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오는 2024년까지 개발된다. L-SAM의 요격고도는 50~9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기 호위함 배치3급(FFX-Ⅲ) 탑재용 다기능 레이더는 수백㎞ 떨어진 적 함정과 항공기를 탐지한다. 지상 목표물도 탐지할 수 있고 전자전도 수행한다. 2024년까지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신형 레이더들은 완전 디지털 레이더로 개발 중인데 국내 최초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지뢰탐지 레이더와 머신러닝 기반 표적탐지 추적 레이더, 메타 표면구조물, 드론탐지 레이더도 눈길을 끄는 존재다. 지뢰탐지 레이더는 금속 지뢰는 물론 골치 아픈 존재인 플라스틱 대인지뢰까지 탐지할 수 있다. 머신러닝 기반 표적탐지 추적 레이더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탐지거리 등을 늘린 것이다. 드론탐지 레이더는 0.01㎡ 크기의 소형 드론을 2㎞ 이내에서 탐지한다. 메타 표면구조물은 전자파 특성을 변환시켜 스텔스 성능을 강화한 것이다. 차기 호위함과 차기 구축함(KDDX)의 다기능 레이더 구조물 표면에 활용될 전망이다. 용인연구소는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의 스텔스기도 잡을 수 있는 스텔스탐지 레이더 개발에도 상당 수준 진척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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