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병원 의료진이 원격진료로봇을 활용해 코로나19 의심환자 진료를 시연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명지병원 의료진이 원격진료로봇을 활용해 코로나19 의심환자 진료를 시연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 내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여기선 환자가 의료진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성인 키 높이의 의료로봇을 활용한 진료방식 덕이다. 개인신상 정보를 작성, 제출한 환자들은 진료 접수와 예진을 마친 뒤 의료진이 아닌 로봇과 마주한다. 기기에 설치된 화면에 등장한 주치의는 환자의 증상과 동선 등을 체크하고 보건소 연결 등을 시도한다. 현장에 상주하는 응급의학과 소속 의료진은 기계 뒤에서 타 전문의와의 협진 시도 등 화상 진료를 보조할 뿐이다. 명지병원 관계자는 “감염 위험성을 줄이고 검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 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의료기관들의 원격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 확대하면서 나타난 병원의 비대면 진료 시도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자 “2월 24일부터 환자가 병·의원 등에 방문하지 않고도 전화 등으로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가족 등 보호자의 대리처방을 가능토록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팩스와 이메일 등을 활용한 처방전 전송, 환자·약사 간 협의를 통한 약 수령도 가능토록 했는데 사실상 원격의료를 허용한 셈이다. 이전까진 현행법상 의료인과 의료인 간의 원격의료만이 허용되고, 의료업은 의료기관 내에서만 이뤄져야 했다.

정부의 이런 결정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병상 부족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거나 검진 대기 중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한 데 따른 조치다. 대구만 해도 지난 3월 8일 기준 자택에서 입원 대기 중인 환자는 총 2252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병원 방문이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 원격의료로 감염 위험성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 26일 기준 조사에 참여한 상급종합병원의 50%(42개 중 21개), 종합병원·병원의 56%(169개 중 94개), 의원의 72%(707개 중 508개)가 원격의료를 시행 또는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대만 10년, 코로나 사태로 한시 허용

그럼 이들 병원 모두가 명지병원처럼 진료시스템의 가시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을까. 원격진료가 허용된 지 2주가 다 돼 가지만 대부분은 시도만 한 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명지병원도 기존 내원 환자와 대구·경북 코로나19 의심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원격 검진, 면회를 계획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이를 시행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시도 중인 진료시스템도 진정한 의미의 원격의료라고 보기는 애매하다”는 것이 병원 측 설명이다. 현재 진료소에서 로봇을 활용해 검진을 받는 환자도 극히 드물다.

현장에선 의료진과 환자에게 원격의료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이를 위한 인프라나 교육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다 보니 한시적 원격진료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본다. 수도권 소재 한 내과병원 의사는 “실제 원격진료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당뇨 환자가 스스로 혈액을 측정할 줄 아는 등 환자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문진만으론 원격진료가 의미가 없다. 시스템이 갖춰져야 병원, 약국 간 유기적 협력도 되지 않겠나. 이렇게 한시적으로 진행할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종합병원 소속 간호사는 “지금도 그렇고 과거도 그렇고 원격이란 말을 현장에서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지금 같은 시국에 의료진 커뮤니티에 들어가도 원격의료와 관련한 문의나 불만 등의 게시물은 단 1건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이번 방침에 동참하기엔 현실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중국 등 해외 국가들이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국내외 의료진 등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것과 비교하면 정부의 이번 원격진료 한시 허용은 그 내용부터 협소하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게 된 데에는 현 정부와 여당 탓이 적지 않다.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 필요성은 2003년 의료인 간의 원격의료를 허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부터 거론돼 왔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이를 골자로 한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18대 국회에 발의했고, 19대 국회에선 박근혜 정부가 이를 이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법안 폐기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은 원격의료가 결국 의료민영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법안에 반대했다.

국회 미래통합당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2018년 2월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그해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한 차례 논의된 이후 특별한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에도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가 컸다”고 설명했다. 실제 제363회 2차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록 내용에 따르면 보건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원격의료가 제기된 기본적인 계기는 소위 대기업들이 호시탐탐 의료 영리화를 노리면서다.”

“(원격의료가)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의료산업 발전을 도모한다고 생각을 하는 건데, 어떤 의미에서 의료산업 발전이 이뤄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가장 효과가 있는 건 원격의료가 아닌 대면 진료이며 이것이 1차 진료의 핵심이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 의료계 안팎의 지적이다. 전염병 사태가 터지자 땜질 처방만 이어간다는 원성이 가득한 것이다. 당정청은 2019년 보건복지부 주요업무추진계획에서 원격진료를 ‘스마트진료’로 칭하고 의료 사각지대에 한해 이를 시행하자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지만, 원격의료 자체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 시민사회단체가 강원도 규제자유특구 내 원격의료 허용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 시민사회단체가 강원도 규제자유특구 내 원격의료 허용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photo 뉴시스

의료·시민사회단체 눈치 보기

정부와 민주당이 원격의료에 대해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이유는 사실 의료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 붕괴’ ‘대형병원 쏠림, 동네병원 전폐’ ‘대면 진료 불가에 따른 오진 위험성’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파악 어려움’ 등을 근거로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해왔다. 20대 국회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유기준 미래통합당 의원은 “결국 이들이 이렇게 반대하니 민주당도 거기에 따라서 그렇게 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바꿔 말하면 기존 업계 종사자들의 눈치만 보다 업계 성장과 혁신을 또다시 놓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일선 의료 현장에선 이번 기회에 아예 원격의료 도입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전염병이 확산될 때마다 원격의료 허용 필요성이 지속해서 대두되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 당시엔 강북삼성병원 등 일부 병원에 한해서만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었다.

서울 소재 한 외과병원 의사는 “원격진료가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의사 소견만으로 대처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 환자 입장에선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고 동일 질환으로 병원을 내원하던 환자, 만성질환 환자 관리엔 효율적이다. 이번에 이를 논의할 기회가 다시 생겼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정봉근 서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위해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협진 체제나 원격진료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꼭 비관적일 이유는 없다”며 “더 충분한 시간에 전문의와 상담을 하고 충분한 설명을 듣고 싶은 환자들을 고려하면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은 더 커진다”고 분석했다.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원격의료 시범사업 현황을 고려하면 도입 논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는 것이 의료계 현장의 시선이다. 보건복지부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의료취약지 거주 주민들을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이어가는 중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9개 시도와 45개 시군, 총 419개 의료기관이 이 시범사업에 참여하며 관심을 보였다. 올해엔 2개 시군과 16개 기관이 추가 참여를 결정했다. 원격의료 검진 대상자와 협진 건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상자는 2017년 2042명에서 지난해 8590명으로, 협진 건수는 4811건에서 4만13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는 “현재는 법 제한으로 의료진의 직접적인 진료, 처방이 불가하다 보니 환자 자문이나 모니터링 정도로 그치는 수준이다. 만약 국회에서 원격의료법이 통과돼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와준다면 사업 효율성과 도서산간 지역 의료서비스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원격의료 시행 지역을 일부로 한정하고, 의료사고 책임 과실을 분명히 할 수 있는 표준진료지침과 임상지침 등을 제작하면 원격의료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대안도 제시한다.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을 수 있는 질환만 규정해도 의료전달체계는 붕괴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소재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사실 의료계가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원격의료를 시행할 경우 진료비를 받을 거냐 말 거냐, 처방의 유효성을 어떻게 볼 것이냐 등의 문제 때문이다”라며 “이 부분을 합리적으로 논의한다면 마냥 반대하는 목소리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제는 정부나 정치권이 찬반 논리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직접 논의의 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찬반 진영의 논리 모두 일리가 있고 그 와중에 밥그릇 싸움이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세부적인 내용을 조정하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원격의료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정책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가 풀어가야 할 때다”라고 주장했다.

인천 소재 한 종합병원 관계자의 말은 더욱 구체적이다. “성공 혹은 실패 사례가 나와야 무엇이 문제이고 개선점은 무엇인지, 정말 불필요한 사업인지 등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다. 의료보험체계나 의사당 대면 환자 수가 다른 해외 사례를 끌어와 이를 가늠할 뿐이다. 이젠 대립하고 싸울 때가 아니라 국내 실정에 맞게 시행해보고 적절성을 검토할 때다. 시행 여부는 이후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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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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