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본소득’을 이슈화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3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재난기본소득’을 이슈화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3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로 전국 기초지자체들이 ‘재난기본소득’이란 명목하에 묻지마 돈뿌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1일 기준, 전 시민에게 4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경기도 포천시를 필두로 강원도 홍천군 30만원, 경기도 안성시 25만원, 경기도 화성시와 경기도 연천군, 강원도 정선군이 20만원, 경기도 이천시 15만원, 경기도 성남시, 용인시, 여주시, 과천시, 양평군 등이 10만원, 경기도 안양시와 의왕시, 의정부시 등이 5만원씩 제공하기로 하는 등 금액도 5만원부터 4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표 참조>

경기도 포천시민의 경우, 광역지자체인 경기도가 재난기본소득 명목으로 주는 10만원에 더해 포천시가 주는 40만원까지, 1인당 최대 5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수령하게 됐다. 4인가구 기준으로 200만원의 가외 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오는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묻지마식 돈뿌리기에 나선 기초지자체 중에는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51.35%)에도 못 미치는 곳들이 수두룩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자립도 10%대도 돈뿌리기

기초지자체 중 가장 고액인 1인당 4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포천시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26.81%에 불과하다. 전국 평균(51.35%)에도 못 미치지만, 그나마 포천시는 다른 기초지자체에 비해서는 사정이 양호한 편이다. 1인당 30만원씩 지급하는 강원도 홍천군의 경우 재정자립도는 16.70%, 1인당 5만원씩 지급하는 부산광역시 서구와 동구는 각각 16.32%, 18.93%로 10%대의 재정자립도를 기록 중이다. ‘자치단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한 수준의 재정자립도를 갖고도 전 주민을 상대로 돈을 뿌리는 전례 없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불과 20%대의 재정자립도를 기록하고 있는 기초지자체 가운데 전 시민 또는 군민을 대상으로 100% 재난지원금을 제공하는 지자체도 경기도 연천군(20.50%)을 비롯해 경기도 양평군(22.10%), 부산시 부산진구(22.88%), 부산시 수영구(22.91%), 부산시 사상구(23.22%), 경기도 포천시(26.81%), 강원도 정선군(27.29%), 경기도 여주시(28.73%), 부산시 해운대구(29.12%) 등 4월 1일 현재 모두 9곳에 달한다. 이 밖에 경기도 의정부시(30.02%), 부산시 남구(31.02%), 경기도 양주시(32.48%), 경기도 안성시(33.94%), 부산시 기장군(39.60%) 등도 30%대의 재정자립도로 전 주민을 상대로 5만원에서 최대 25만원까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미래통합당 지자체장도 가세

전 주민 대상 재난지원금을 제공하는 기초지자체 중에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51.35%)을 웃도는 곳은 경기도 과천시(54.93%), 이천시(56.81%), 용인시(60.81%), 성남시(64.58%), 화성시(68.86%) 정도에 불과하다. 이 중 전 도민을 대상으로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제공하는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의 재정자립도(68.35%)를 웃도는 기초지자체는 화성시가 유일하다.

전 주민을 상대로 ‘묻지마 지원’을 결정한 기초지자체장 대부분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각각 민주당 소속 도지사와 시장이 있는 경기도와 부산광역시 산하 기초지자체는 경쟁적으로 돈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재명 지사가 있는 경기도의 경우, 관내 31개 시군 가운데 이미 21곳이 전 주민을 상대로 경기도와 별도로 소위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오거돈 시장이 있는 부산광역시도 관내 16개 자치구와 자치군(기장군) 가운데 절반인 8곳이 전 주민을 상대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심지어 전 주민을 상대로 돈을 뿌리는 기초지자체 중에는 야당인 미래통합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곳도 있다. 이는 ‘피해 정도, 소득 수준에 따라 선별적·선택적 핀셋 지원’이라는 미래통합당의 기존 입장과도 배치된다. 미래통합당 소속 지자체장이 있는 경기도 연천군은 20.50%의 재정자립도에도 무려 20만원씩을 전 주민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부산 서구와 수영구 역시 구청장이 모두 미래통합당 소속이지만 전 주민을 상대로 5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부산 서구와 수영구는 재정자립도가 각각 16.32%와 22.91%로 부산시(59.69%)는 물론 전국 평균(51.35%)에도 못 미친다.

이 밖에 무소속 지자체장(군수)이 있는 부산 기장군 역시 39.60%의 재정자립도에도 불구하고 전 군민을 상대로 1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기장군은 전국 지자체 중에 가장 빠른 지난 3월 27일부터 관내 16만7000명의 군민들을 상대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기장군에 따르면,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170억여원이다.

관내에서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거나, 확진자가 한 자릿수인 기초지자체에서 전 주민을 상대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전 주민을 상대로 20만원씩 지급키로 한 경기도 연천군을 비롯해 10만원씩 지급하는 경기도 양주시, 여주시, 양평군은 4월 1일 현재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청정지역’이다. 4월 1일 기준 누적확진자가 각각 6704명, 1302명에 달하는 대구, 경북 산하 기초지자체에 비해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지난 3월 27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공무원들이 재난기본소득 신청서 우편물 발송 작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7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공무원들이 재난기본소득 신청서 우편물 발송 작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확진자 한 자릿수 지역도 지급

전 주민을 상대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경기도 이천시(9명), 시흥시(7명), 포천시(6명), 과천시(6명), 파주시(5명), 의왕시(5명), 안성시(1명) 등도 4월 1일 현재까지 누적확진자가 한 자릿수에 그친다. 역시 10만원씩 지급하는 울산 울주군도 3명, 부산 기장군은 1명에 불과하다. 전 주민을 상대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경기도 내 기초지자체 중 4월 1일 현재 누적확진자가 100명을 넘는 곳은 성남시(112명) 한 곳에 불과하다.

재난지원금 마련을 위한 재원 마련도 논란거리다. 스스로 재정자립이 안 될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마당에, 전 주민을 상대로 재난지원금을 배포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른 지역 주민들이 낸 세금을 당겨오는 것이 불가피하다. 전 주민을 상대로 40만원씩 지급하는 포천시의 경우, 관내 주민 14만7700명에게 1인당 40만원씩 지금하려면 약 59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윤국 포천시장은 지난 3월 31일 “재난기본소득의 재원은 2019년도 순세계잉여금(잔여 예산) 512억원을 주 재원으로 하고 일부를 예비비로 충당할 것”이라며 “포천시 재정안정화 기금 2800억원을 그대로 유지해서 재정건전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 주민을 상대로 지원금을 주는 기초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16.32%로 가장 낮은 부산 서구청 측은 “예비비, 행사성 경비 등을 절감하여 긴급지원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짜 점심은 전염병보다 위험해”

일부 지자체의 무차별 재난지원금 살포에 재정 사정을 감안해 주민들의 피해 정도나 소득 수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기초지자체들 입장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은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역에서 거둔 세금으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 주민들을 지원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금융IT학과)는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기 때문에 결국은 지방교부금으로 메워야 한다”며 “중앙 정부에서 계속 교부를 해주겠거니 기대하고 지자체가 막 쓰며 생색을 내는데,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지자체 파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나 민간기업과 달리 해고나 월급감소 위험이 없는 공무원에까지 재난지원금이 일괄적으로 돌아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나마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되자 주민 1인당 2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강원도 정선군은 군수 이하 5급 이상 간부들은 지원금을 받지 않기로 결의한 상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과)는 “시나 군에 해당하는 ‘팬데믹(대유행)’이 아닌 지자체까지 나설 경우 국가 사업과 중복될 수밖에 없다”며 “공짜점심(Free Lunch) 바이러스는 전염병보다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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