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촬영한 정선군립병원의 모습. 왼쪽이 신관, 오른쪽이 본관이다. 본관은 현재 철거한 상태이고, 곧 새로 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2018년 촬영한 정선군립병원의 모습. 왼쪽이 신관, 오른쪽이 본관이다. 본관은 현재 철거한 상태이고, 곧 새로 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국내 1호 군립병원인 정선군립병원이 약 3년간의 민간 위탁을 끝내고 군 자체 운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법인을 새로 설립하고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그간 근무한 인원들의 퇴직금을 정산하지 않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국민 혈세로 리모델링한 건물을 다시 철거하고 새로 건물을 짓겠다고 밝히면서 혈세 낭비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정선군립병원을 둘러싼 논란은 2018년 주간조선의 ‘세금 먹는 하마 정선군립병원 가보니…’라는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정선군립병원은 2016년 문을 열었다. 본래 탄광 지역 환자들을 진료했던 사북한국병원을 정선군이 인수해 약 30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하고 인력을 채용해 개원했다. 군 단위 지자체가 병원을 직접 운영하는 사례는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하지만 병원은 개원 직후부터 적자에 시달려 왔다. 환자가 없기 때문이다. 정선군 인구는 지난 3월 기준 3만7044명이다. 2016년에도 4만명이 되지 않았지만 그나마도 매년 줄고 있다. 정선군은 군립병원이 적자에 허덕이자 민간 의료법인인 강릉동인병원에 이 병원을 위탁했다.

약 2년간 동인병원의 위탁경영 끝에 올해부터 정선군이 정선의료재단을 새로 설립해 자체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위탁해지 통보를 받은 뒤 6개월간의 인수인계 작업을 했고, 지난 1월 20일 정선군이 새로 설립한 정선의료재단을 통해 자체 운영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위탁 당시 일한 직원들의 고용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정선군은 직원들에게 “법인을 새로 설립했기 때문에 새로 공개채용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초 고용승계를 원하던 대다수의 직원들은 새로 공채에 지원해야 했다. 22명 중 새로 채용되지 않은 직원 7~8명은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새로 채용된 전체 직원들은 약 40명 규모다.

하지만 위탁 당시 일한 직원들은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한 한 직원은 주간조선에 “정선군은 위탁 당시 병원을 강릉동인병원이 운영했으니 퇴직금을 동인에 받으라 하고, 동인병원은 정선군에 받으라며 서로 책임을 미뤘다”고 했다. 이들이 받지 못한 퇴직금 규모는 의사 월급부터 해서 3억4000만~3억5000만원 수준이다. 의사인 내과 과장, 소아과 과장과 원무, 간호 직원들의 퇴직금이다. 이에 대해 정선군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고용노동부가 강릉동인병원에 지급 권고를 했는데 수용하지 않아 노동부가 동인병원을 고발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진료 수입 이외의 적자에 대해 50%까지 정선군이 보전을 해줬으면 동인병원도 운영을 잘해야 하는데 여러 부분이 아쉬워 위탁해지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한 직원들은 최승준 군수에게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계속 거절당했다고 한다. 한 직원은 “퇴직한 직원들끼리 모여 5월 7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법적 도움을 받으러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퇴직금 미지급, 사무장병원 운영까지

문제는 또 있다. 손님이 없어 적자에 허덕이는 병원에 또 세금을 들여 새 병동을 짓는 것이다. 정선군립병원에는 직원들이 ‘본관’으로 부르는 건물과 ‘신관’으로 부르는 건물 등 총 2동이 있었다. 이 중 본관이 낡아 진료시설들을 신관으로 옮기고 본관을 리모델링한 뒤 신관에 있는 시설을 다시 옮기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신관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요양병원으로 꾸밀 계획이었다. 정선군립병원에서 최근까지 일한 한 의사는 주간조선에 “처음에는 40년 된 건물에 리모델링을 하더니 공사를 한참 멈추고 나서는 리모델링한 건물을 철거하고 옆에 또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국민혈세를 땅바닥에 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진료시설은 없는데 주차장하고 산책로만 근사하게 꾸며 놓았다. 멀쩡히 있는 기숙사는 직원들을 다 나가게 하고 새 직원들은 오피스텔에 묵게 한다. 병원 운영을 정말 방만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선군립병원의 운영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 직원들은 지적한다. 병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법인을 설립한 뒤 이 법인체가 병원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법인 설립도 하지 않고 급히 개원하려다 보니 운영의 난맥상이 발생한 것이다. 병원에서 일한 한 의사는 “군은 법인 설립을 차일피일 미루고 당분간 개인 이름을 빌려서 하자고 하다가 강릉동인병원에 위탁을 주고는 마지막에는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섰다”며 “그런데 똑같은 건물에서 같은 인원들이 근무하는데 법인체를 새로 만들었다고 고용승계가 안 된다고 한다. 3개월짜리 단기계약 시켜놓고 퇴직금도 안 주고 약품값 등 지불해야 하는 금액들도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송 당사자가 정선군에 강릉동인병원까지 있다 보니 문제가 복잡하다”며 “나를 포함한 일부 의사들은 변호사라도 선임해서 대응할 수 있지만 힘없는 직원들은 고용승계만 바라보다가 직장도 잃고 퇴직금도 지급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군립병원이 합법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운영을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는 또 있다. 최근까지 정선군립병원 원장을 맡았던 우모 원장은 직함은 원장이었지만 실제 병원 운영은 정선군 보건소 출신의 행정 공무원인 김 전 실장이 주도했다고 한다. 우 전 원장은 2018년 주간조선과 만나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병원이 생긴 이유도 나는 잘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의료법은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이 병원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사무장병원’으로 운영된 것이다. 정선군립병원 운영을 사실상 총괄하던 김모 실장은 지난 4월 27일부로 아예 공무원직을 사직했다. 이에 대해 정선군 관계자는 “아직 사표 수리는 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정선군립병원은 적자 때문에 당초 6개이던 진료과목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현재 남은 과목은 일반외과, 내과, 소아과 세 개뿐이다. 병원에서 일한 의사는 “개원 초에는 하루 100여명, 한창 때는 내과만 해도 100여명씩 왔는데 점점 줄어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올 초에는 전부 합쳐서 70~80명까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소아과는 아이가 없다 보니 하루에 4~5명 올까 말까 한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 진료를 보고 운영하더라도 흑자를 낼 수 없는 구조의 병원이라는 것이다. 이 의사는 “군이 원하는 병원은 소아과도 있고 산부인과도 있고 24시간 운영하는 응급실도 있어야 하는데, 아주 콤팩트하게 운영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 인구 규모로는 절대 흑자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선군 관계자는 “당초 리모델링을 하려다가 안전진단 등급이 낮게 나와 철거를 한 것”이라며 “40병상 규모로 올해 설계하고 내년 착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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