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한 클라이밍 센터 내 볼더링벽에 오른 모습. ⓒphoto 이성진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한 클라이밍 센터 내 볼더링벽에 오른 모습. ⓒphoto 이성진

훤칠한 키에 우람한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 몸을 사랑했다. 술 마시고 기억을 종종 잃긴 하지만 그건 술이 문제일 뿐, 내 몸이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부터 내 몸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아침에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근육들이 아팠다. ‘전신을 두들겨 맞았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클라이밍이란 스포츠는 그렇게 내 몸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겼다.

클라이밍을 접한 건 우연이었다. 지난 3월 반복된 데이트에 무료함을 느끼던 나와 여자친구는 신박한 데이트 코스를 궁리했다. “활동적인 걸 해볼까?” “땀을 내보자.” “멀리는 가지 말고.” 그때 바로 눈에 들어온 게 ‘스포츠 클라이밍’이었다. 내가 사는 인천 지역에만 10개가 넘는 클라이밍 센터가 검색됐는데 이들 센터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씩 일일 클라이밍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클라이밍을 ‘이색 데이트’로 추천했다. 무릎을 쳤다. 나는 곧장 운동복을 챙겨 여자친구를 데리고 인천 미추홀구의 한 클라이밍센터로 향했다.

이색 데이트 코스로 시작

처음 마주한 클라이밍 센터는 어색했다. 온 사방에 갖가지 색깔의 홀드가 박혀 있었고 사람들은 이를 손과 발로 짚은 채 벽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저 정도면 나도 하겠는데!’라는 오만함이 머릿속을 지배하던 순간이었다.

체험은 센터장의 클라이밍 개괄 설명으로 시작됐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크게 리드(15m 높이에 다양한 홀드로 구성된 벽을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 대결)와 스피드(15m 높이 벽을 누가 가장 빨리 오르는지 대결), 볼더링(4~5m 높이 벽에 4~5개 홀드로 구성된 과제를 누가 더 많이 푸는지 대결) 등 총 3가지 종목으로 나뉘는데, 보통 중소규모 센터에는 지구력(리드)벽과 볼더링벽만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이들 벽은 모두 시작점과 끝점이 정해져 있으며 그 사이에 놓인 정해진 홀드만을 짚어 완등해야 한다.

이날 센터장은 가장 쉬운 난이도인 노란색 홀드들로 이뤄진 지구력벽에 오를 것을 권유했고 나는 5분 만에 이를 완등했다. 20여개의 홀드를 넘나드는 일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우쭐해진 나는 “한 번 등반 후 10~15분씩 휴식하세요”라는 센터장의 말을 무시한 채 또 다른 색상의 홀드를 집기 시작했다. ‘클라이밍 별거 없네?’

체력이 바닥을 드러낸 건 세 번째 코스에 오르면서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팔목은 뻣뻣하게 굳었다. 근육이 일시적으로 부풀어오르는 펌핑(Pumping) 현상이 나타난 거다. 몸은 맥락 없이 매트 위로 고꾸라졌다. 처음 완등에 성공한 노란색 홀드에조차 제대로 오를 수 없었다. 센터장은 “클라이밍은 손과 팔만으로 하는 운동 같지만 다리, 코어 등 전신을 사용하기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며 “중간중간 휴식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클라이밍 체험은 2시간가량 지속됐고 그 사이 나의 오만함은 겸손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클라이밍 일일 체험 후 지쳐 쓰러진 모습 ⓒphoto 이성진
클라이밍 일일 체험 후 지쳐 쓰러진 모습 ⓒphoto 이성진

녹초가 됐지만 잊지 못할 성취감

그날 저녁 온몸은 녹초가 됐다. 다음날 아침에는 몸이 신호를 보냈다.

“다신 해선 안 돼.”

그러나 역시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는 조상들의 말은 틀린 적이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손은 유튜브에서 ‘클라이밍’ ‘암벽 타기’ 등을 검색하고 있었다. 코스 하나를 10~15분 내로 완등하면서 느끼던 첫 성취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였다.

돌아오는 주말 나는 홀로 또 다른 클라이밍 센터를 찾아 일일 체험을 신청했다. 급기야 가격과 시설 등을 고민해 그날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한 클라이밍 센터에서 1개월 시설 이용권까지 끊었다. 클라이밍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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