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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담 자판기’ 최재형 감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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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08호] 2020.05.18

‘미담 자판기’ 최재형 감사원장

원전 감사에서 사냥개 같은 야성 보여줄까?

▲ 최재형 감사원장이 2018년 10월 22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2018 국정감사에 참석,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원전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 내부에 쓴소리를 던진 최재형 감사원장은 ‘미담 자판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의 과거를 파고들어가 보면, 그에게 왜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가 잘 드러난다.
   
   2014년 2월 그가 서울가정법원장에 임명되었을 때 법조계에서 “(자리와)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는 2남2녀를 두고 있는데 여기에는 입양한 아들 두 명이 포함돼 있다. 1984년생, 1988년생 두 딸을 키우다가 2000년과 2006년 각각 9개월, 11살 남자 아이를 입양했다. 아이들을 입양해 정성껏 키운 그가 가정사를 주관하는 가정법원장 자리에 오른 것이 자연스럽다는 덕담이었다.
   
   그가 입양할 아이를 선택하는 과정도 남달랐다. 입양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그는 언론에 이렇게 밝혔다. “입양은 진열대에 있는 물건을 고르듯이 고르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대해서 입양해서는 안 된다. 입양은 말 그대로 아이에게 사랑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그는 입양한 두 아이에게도 입양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거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입양으로 인한 통과의례와도 같은 고통이 있다. 입양 사실이 알려졌을 때 부모와 아이가 함께 겪어야 하는 고통이다. 그런데 그 고통에는 총량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고 한다. 입양 사실을 아이에게 미리 알려주면 입양에 대한 충격을 나눠서 받아들여 아이가 입양 사실을 감당해낼 수 있다.”
   
   그는 가정법원장이 되면서 입양 사실이 크게 화제가 되자 멋쩍었는지 “아이를 입양했다고 해서 더 (업무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겸손의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정법원은) 당사자가 헤어지더라도 최대한 상처를 덜 받게 노력해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아들 둘 입양해 키워
   
   그는 전형적인 법관 스타일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가 토로한 ‘법관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을 보면 이런 면이 잘 드러난다. “상이군인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참전한 기록도 있고 이후 장애가 남은 것도 틀림없었다. 하지만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었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인정해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엄격했다.” 이런 아쉬움을 밝히면서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잘못 재판한 사건도 많을 것이다”라며 “평생 감당해야 할 짐”이라고 했다.
   
   그의 과거를 조금 더 파고들어가 1972년 입학한 경기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더 따뜻한 일화가 있다. 그는 고교 2학년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던 친구를 등에 업고 졸업할 때까지 2년 내내 등하교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만난 친구가 수술 후유증으로 1년 늦게 경기고에 입학하자 등교를 도운 것이다.
   
   이는 경기고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로 두 친구는 1975년(최 감사원장), 1976년 각각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이후 대학 시절에도 최 원장은 친구의 등하교를 도왔고, 결국 1981년 사법시험에 나란히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 출퇴근할 때도 친구를 업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호사로 활동 중인 그의 친구는 “신이 보낸 천사이며, 법조인의 양심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최 원장을 평했다.
   
   2017년 12월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되자, 사법연수원 13기 동기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그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도 화제가 됐다. “사법연수원 한 반이었어요. 말씀이 없으시고, 조용히, 드러내지 않고, 선의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윤리의 실천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한결같이 해내며 곧은길을 걸어가시는 분, 인격과 삶이 일치하는 분.”
   
   
   해군 예비역 대령인 부친을 가장 존경
   
   최 원장 집안은 3대가 군복무를 이행한 ‘병역 명문가’다. 본인은 육군 중위로 복무했고, 최 원장의 아버지는 해군 예비역 대령이며, 최 원장의 형 역시 해군 대위로 전역했다. 최 원장의 장남 역시 해군에 입대했다.
   
   감사원 직원들에 따르면, 최 원장은 유독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군인(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다. 그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로 “‘청렴하고 강직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승진이나 보직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사시는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고 감사원 내부 직원들은 전했다.
   
   그의 아버지는 최근에도 감사원 내부에서 다시 회자됐다. 최 원장은 ‘4·15 총선’ 전날(4월 14일) 돌연 나흘간의 휴가를 떠나 ‘왜 하필 총선일에 휴가를 썼을까’라는 의문이 일었다. 최 원장의 휴가 시점은 감사원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감사’ 결과를 감사위원회에 올려 4월 9일과 10일, 13일 세 차례 논의를 거치고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보류결정이 난 다음 날이었다. 4월 18일 휴가에서 복귀하고 이틀 뒤 단행한 인사를 보면, 그의 휴가 이유가 나온다.
   
   ‘원전 감사’를 진행해온 이준재 공공기관감사국장을 산업금융감사국장으로 전보하고, 유병호 심의실장을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발령 내 ‘원전 감사’를 맡겼다. 이 국장이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발령 난 지 넉 달도 채 되지 않았기에 문책성 인사로 받아들여진다.
   
   
   감사원에 회자된 최 원장의 아버지 일화
   
   그런데 최 원장이 이 인사 당일 감사원 실·국장 등 30여명의 간부들 앞에서 “성역 없는 감사”를 강조하며 다시 자신의 아버지 관련 일화를 얘기했다고 한다. 최 원장이 밝힌 부친의 스토리는 이랬다. 1999년 6월 우리 해군이 NLL을 침범한 북한 함정을 선체를 충돌하는 방법으로 밀어내면서 긴장이 고조돼 있을 때 최 원장은 아버지가 갑자기 인천 제2함대로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고 한다. 당시 제2함대 사령관은 부친의 해군사관학교 생도대장 시절 제자였는데, 부친이 2함대 사령관에게 “대원들 사기는 어떠냐”고 물었다. 사령관은 “맹렬히 짖으면서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려고 하는 사냥개들의 끈을 잡고 있는 기분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부친은 “그러면 됐다”라며 돌아왔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이 아버지 관련 일화를 전하면서 감사원 간부들에게 “그 당시 사령관이 느꼈던 그러한 분위기가 우리 감사원에도 필요하다”며 “원장인 제가 사냥개처럼 달려들려 하고 여러분이 뒤에서 줄을 잡고 있는 모습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감사관 한 사람 한 사람이 감사관으로서의 야성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나아가 최 원장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취지로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馴致·길들이기)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며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검은 것을 검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정치권에 눈치를 보는 감사원 내부 풍토를 비판한 것이다.
   
   물론 최 원장이 감사원 직원들에게 어떠한 감사 결과를 요구하며 질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최 원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공수처도 감사를 할 것인지 묻자 “감사원은 모든 국가기관 회계를 감사한다. 검찰과 비슷하다”며 거리낌 없이 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졌기에 그의 질책이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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