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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08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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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한반도 역사, 환경으로 다시 보기]고대 천문지도에 한반도 역사가 새겨져 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세월과 사실 왜곡을 뚫고, 진정한 역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엔 기록이 남지 않아 알 수 없었던 과거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첨단 과학 기술이 다양하게 발달했다.
   
   그중 한반도 역사에 관해서 지금까지 가장 잘 알려져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건 아마도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가 제시한 방법일 것이다. 박 교수의 2002년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는 한반도 고대 천문관측지도가 나오는데, 그는 고(古)천문학이라는 첨단의 과학기술적 방법론을 이용해 역사적 사실을 분석해내는 방법을 제시한다.
   
   
▲ 박창범 교수의 ‘삼국사기’ 기록 일식 관측지 지도 및 실제 지형에 의거해서 대략 추정해본 당시 한민족의 영토 범위 출처: 이진아

   이 지도는 고천문학의 과학적 계산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고천문학은 과거의 천체 상태를 알아낼 수 있는 학문이다. 지구에서 관측 가능한 천체의 여러 주기를 컴퓨터에 입력, 통합 계산해서 몇백 년 전, 몇천 년 전,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과거에는 어떤 천문 현상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
   
   박 교수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 권위를 갖는 고천문학자로, 이 지도는 그가 우리 역사서 ‘삼국사기’에 나타난 일식 현상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이 작업을 한 것은 삼국사기가 중국의 역사서를 베낀 게 아니라 우리 고유의 기록을 모은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박 교수 팀은 일식 현상이 관측된 지역을 역추적해서 지도에 표시했다. 그 결과가 바로 위의 지도다. 지도에서 동심원의 중심 부분으로 갈수록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 현상을 관측한 곳이었을 확률이 높은 곳을 말한다.
   
   이 지도가 의미하는 게 뭘까. 아래의 지도를 보자. 아래의 지도에서 주황색 사선으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위의 지도 네 개가 보여주는 동심원의 중심부를 중심으로 해서 실제 지형·지리를 반영, 국가가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범위다. 그러니까 고구려, 백제, 신라의 주인이었던 한민족은 한때 주황색 사선이 차지한 영역에 걸쳐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먼 과거도 아니다. 기원 원년부터 서기 500년 정도까지, 즉 지금으로부터 불과 1500년 이전의 일이다.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관측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 출처: 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2002)

   이렇게 해석을 하려면 앞서 전제해야 하는 게 있다. 고천문학이 역사 복원에서 갖는 의미다. 우리는 흔히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 역사 기록을 찾아본다. 이 역사 기록이란 글로 분명히 쓰여 있어서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역사 기록을 조작하기란 생각보다 쉽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 집권 세력에 따라 역사의 기술이 달라져온 경험은 무수히 많다. A라는 집단이 아주 파워가 커서 B라는 집단은 거기 눌려 살았는데 상황이 바뀌면서 A가 B보다 약해졌다면, 이번엔 B가 A를 정복하고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이럴 때 강자가 된 자가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약자가 된 이전 강자의 역사 기록을 없애거나 바꿔서, 옛날부터 자기가 제일 잘나서 잘 살았던 것처럼 기록에 남기는 것이다. 이처럼 환경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기록은 왜곡되고 뒤틀릴 수 있다.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로 사실을 180도 다르게 전달할 수도 있는 역사 기록에서, 긴 세월이 흘러도 사실이 그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천문 현상에 대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농사를 비롯한 삶의 기초가 되는 기후변화를 알기 위해서 천문 현상을 대단히 중시했다. 천문 현상을 관측하고 그 주기에 입각, 예견해서 대중에 알리는 것은 그 사회 최고권력자의 임무였으며 권력의 원천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천문 현상에서 특이한 변화가 발생하면, 국가의 기록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이런 성격의 기록이었던 만큼, 일어나지도 않은 천문 현상을 굳이 지어서 사실처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대에 정치적으로 세력 판도가 바뀌었다 해도 천문 현상에 대한 기록까지 굳이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역사서의 천문 현상 관련 기록을 고천문학의 과학적 연구방식으로 분석한 것은 그 역사서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근거로 간주된다.
   
   원거리 통신 시설이 지금 같지 않았던 과거, 일식에 대한 기록이 남았다는 것은 바로 왕궁이 있는 도성에서 일식을 볼 수 있었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지 위치 표시 지도는 당시 권력 중심지의 위치를 보여준다고 해석할 여지가 크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박 교수의 지도를 다시 보면, 우리의 역사가 새롭게, 아니 심지어 황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고구려의 일식 관측이 주로 행해졌던 곳은 두 군데다. 한 곳은 만주평야에서도 북서쪽으로 위쪽이다. 이곳만 하더라도 지금의 주류 역사학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 이 지도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더 북서쪽으로, 바이칼호수도 지나서 지금의 몽골과 카자흐스탄 접경 지역까지 고구려의 세력 범위였다고 말한다.
   
   백제의 관측지 중심은 요하(遼河·랴오허강) 유역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껏 백제가 한반도 중부에서 호남지방을 영토로 하던 나라라고 배웠다. 컴퓨터에 고천문학 데이터를 입력한 결과 나온 지도는 한반도 최북단인 압록강보다 훨씬 더 저편의 만주평야를 흘러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강, 요하의 중류 정도에 백제의 정치 중심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상대(上代) 신라다. 상대 신라, 즉 삼국사기에 있는 서기 201년까지 신라 기록에서 일식이 관측된 곳은 중국의 장강, 즉 양쯔강 중류다. 하대(下代) 신라, 즉 신라의 통일 이후의 일식 기록은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 이뤄졌다. 4개의 지도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 가장 부합하는 설명이다.
   
   기존의 상식과 역사적 지식을 뛰어넘는 지도. 박창범 교수는 이 지도를 소개하고 난 후 이런 말로 마무리한다. “이 지도가 보여주는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모른다. 이 부분을 해명하는 것은 아마 인문사회과학자의 몫일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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