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경동건설 추락사’ 국감대에… 아버지의 죽음 밝힌 아들의 1년 싸움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사회/르포
[2628호] 2020.10.12

‘경동건설 추락사’ 국감대에… 아버지의 죽음 밝힌 아들의 1년 싸움

▲ 정석채씨가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보여주며 아버지 정순규씨의 사고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정석채(35)씨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유명 연예인들의 스타일링을 도맡았던 17년 차 스타일리스트였다. 그는 대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패션 트렌드 강연을 진행했고 한때는 지상파 주말 쇼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의 관심을 사기도 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 모든 일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아버지 정순규씨가 경동건설이 발주한 부산시 남구 문현동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추락사한 것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아들 정석채씨는 경동건설과 고용노동부가 밝힌 아버지의 추락사고 경위에 의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고 봤다.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축소·은폐됐다는 것이 그와 가족들의 입장이다.
   
   
   경찰 조사와 다른 건설사 진술
   
   최근 주간조선과 만난 정씨는 “수십 년간 쌓아올린 경력이었지만 아버지 죽음의 진위를 밝히는 게 더 우선이었다. 모든 커리어를 중단하고 부산법원, 건설현장만 벌써 수십 번째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경동건설 관련 정보와 최신 기사를 모니터링했다. 진상규명을 위해 관계기관에 청구한 정보공개 건만 44건이다. 지역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은 3000~4000통에 이른다. 하지만 부산의 대표적 향토기업인 경동건설에 맞서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거는 건 10월 정기국회 국정감사다. 국회 여야 의원은 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경동건설과 사건 조사를 도맡았던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등을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다. 정씨는 “경동건설의 진심 어린 사과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등 관계기관의 사건 재조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씨와 그의 가족들은 정순규씨를 성실하고 근면했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기억한다. 그는 건설업계에서만 25년간 일했다. 정씨가 소속됐던 경동건설 하청업체 J사는 지난 2017년 그에게 “안전관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정석채씨는 “아버지는 늦둥이 중학생 딸이 생기면서 더 열심히 일했고 건강관리에도 힘썼다”며 “매일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건설현장 사진을 찍어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돌연 처참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운 건 2019년 10월 30일이었다. 서울에서 일하던 정씨는 친누나로부터 아버지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대병원 중환자실에서 맞닥뜨린 아버지의 모습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정씨는 “아버지는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머리와 목엔 피 묻은 흔적과 피멍이 가득했고 작업복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고 회상했다.
   
   병원 진단 결과 아버지 정씨의 오른팔 뼈는 모두 으스러졌고 머리 위쪽엔 각각 5~6㎝, 10~14㎝ 길이의 서로 다른 상처가 났다. 뇌가 다 보일 정도의 자상이었다. 경추골절도 발생했다. 아버지는 당시 아파트 뒤편에 옹벽을 설치하는 외부 비계(건축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한 임시가설물)에서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어머니와 친인척들은 허망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사고 당일 병원을 찾은 경동건설과 아버지가 소속했던 하청업체 직원들은 정씨와 가족들에게 “수직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중 2m 높이에서 떨어졌다”라는 일관된 진술만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는 “5년 전에도 아버지가 5~6m 높이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는 발목이 골절되는 정도의 부상으로 그쳤다. 근데 2m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이런 상해를 입었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아버지 정순규씨는 결국 사고 다음 날 오후 11시30분 사망했다. 사인은 ‘척수 손상에 따른 저산소성 뇌손상’이었다.
   
   
▲ 2019년 10월 30일 정순규씨가 추락사한 건설현장 비계(임시가설물). photo 정석채

   “노동청 조사는 건설사 설명만 반영”
   
   정씨는 이때부터 직접 아버지 사고 경위 확인에 나섰다. 정씨에 따르면, 사측 설명과 대비되는 관계기관의 진술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출동했던 경찰 측은 “4m 높이에서 떨어졌고 추락하는 중에 일부 철근에 튕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부산지방경찰청의 재해 경위서는 ‘발판이 없는 2단 비계 위에서 추락방지용 안전고리 없이 그라인더로 철심제거 작업을 하던 중 4.2m 아래 바닥으로 추락’으로 정리돼 있다. 2m 높이의 수직사다리에서 떨어졌다는 사측 직원들의 설명과는 다르다.
   
   정씨의 아버지가 생전에 휴대폰으로 찍은 건설현장 사진, 경찰 현장 검증 사진 등엔 안전장치 미비점도 수두룩했다. 정씨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가 일했던 곳엔 기본안전장치인 비계 안쪽 난간대와 안전망, 생명줄, 추락주의 타포린, 벽이음, 발끝막이판 등이 설치되지 않았고 쌍줄비계 등 구조물은 이상 현상을 보였다. 비계와 옹벽 간 폭은 45㎝가량 벌어져 건설노동자가 근무 중 안쪽으로 떨어질 위험성도 있었다. 당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재해조사 의견서를 통해 정씨의 아버지는 약 3.8m 전후 높이에서 떨어졌으며 벽면과 비계 간 거리는 45㎝ 떨어져 있다는 내용의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정씨는 “아버지가 수직사다리가 아니라 안전장치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비계 안쪽에서 떨어지면서 철근 등에 부딪혔을 거란 의심이 든다”며 “사고 직후 사측이 미비했던 안전장치를 급하게 설치한 정황도 보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목격자와 주변 CCTV, 차량 블랙박스는 찾을 수 없었다. 정씨는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기 위해 당시 사고를 조사했던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을 비롯해 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대검찰청 등 관계기관에 사고 내용과 관련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정씨가 1년 동안 받아든 자료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의 산업재해조사표, 경동건설 및 하청업체의 직원을 산업안전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노동청의 기소의견서, 부산지방검찰청 공소장이 전부였다. 정씨는 “그렇게 얻은 자료도 결국은 건설사 측 입장만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설명했다.
   
   정씨가 받아든 노동청의 산업재해조사표는 경찰과 산업안전보건공단 측 조사결과와 달리 아버지가 ‘2m’ 높이의 수직사다리에서 떨어진 것으로 정리돼 있다. 노동청은 이를 근거로 건설현장 책임자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 공소장엔 일부 안전관리 미흡 행태만이 적시됐다. 정씨는 “수많은 안전관리 미비점이 있었음에도 공소장엔 미끄럼 방지 장치, 안전고리 연결구, 경고판, 안전난간 미설치 등 일부 방호조치 불이행만이 적시됐다”고 비판했다.
   
   산재 사건을 전문으로 대리해온 법률사무소 ‘마중’의 김용준 대표변호사는 “대부분의 산재 사건은 사업주가 모든 정보를 갖고 있고 사업주에 종속돼 있던 근로자나 유족은 그 어떤 정보도 갖지 못한다. 이때 산업재해조사표 등 각종 자료는 사측에서 말하는 내용만 반영돼 구성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든 정보는 은폐, 조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산재 사건의 특징이다”라고 지적했다.
   
   경동건설 측은 유족들에게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 11월 정씨의 유족들이 빈소를 찾은 건설사 임직원을 폭행·감금했다며 정씨의 친인척 등을 폭행 혐의로 부산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검찰 측은 올 7월 이를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주간조선은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경동건설 측 입장을 듣고자 담당자와의 연락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끝내 회신은 오지 않았다.
   
   
▲ 고 정순규씨가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항상 안전하게 일하고 있다”며 보냈던 셀카 사진. photo 정석채

   늘어나는 산업재해, 미약한 기업 처벌
   
   국회는 이번 10월 정기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미 정씨와 그의 가족들을 만났고 일부 필요 자료를 수집했다. 강은미 의원 측은 10월 15일 경동건설과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등을 상대로 불분명한 사고 경위, 안전관리 미흡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적어도 사고원인에 대해선 정확히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 관계기관들의 조사결과도 상이하다. 이 사건 외에도 경동건설의 사건·사고가 다수라는 점에서 안전 문제 등을 지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성준 의원실 관계자는 “강 의원실 측에 도울 수 있는 건 돕고 이외 우리가 짚어야 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국회가 이번 국감에서 정순규씨 사건을 재조명하는 이유는 이와 유사한 산재 사고가 적지 않아서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산업재해자 수는 2015년 9만129명에서 2019년 10만9242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고·질병 사망자 수는 1810명에서 2020명으로 늘었다.
   
   이처럼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원인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한 미미한 법적 처벌 탓이라는 것이 건설업계의 주된 목소리다. 이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전체(3574건)의 0.4%(16건)에 불과하다. 벌금형 선고 비중은 69.4%(2479건)인데 많아야 수백만원 징수로 그치는 처벌이었다. 나머지는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등으로 종결됐다.
   
   정석채씨는 “10월 16일 두 번째 재판도 열리지만 수백만원의 벌금, 집행유예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라며 “아버지 사건을 계기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재정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다”라고 설명했다. 중대 재해 발생 기업의 경우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는 건설현장 안전관리자나 현장소장만 처벌되는 식인데, 이들 또한 산업재해자와 동일한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석채씨의 어머니는 “곧 있으면 남편이 죽은 지 1년이 다 된다. 매일 보고 싶고 그립다. 옆에 있던 사람이 남긴 상실감과 빈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제도 개선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