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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다른 인류사]  ‘마지막 수업’의 무대 알자스 로렌과 우한, 그리고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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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34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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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마지막 수업’의 무대 알자스 로렌과 우한, 그리고 가야

이진아  환경생명저술가 

우한(武漢).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불편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도시다. 하지만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특성을 가진 지역 중 하나다.
   
   이 글에서 다룰 지역은 우한에서 시작되어 서북 방향으로 펼쳐져 있는 평야지대다. 중국 대륙에서 제일 긴 양쯔강과 5번째로 긴 한수(漢水)가, 서북 산지의 영양물질을 풍부하게 실어 내리면서 합쳐져 이루는 비옥한 땅이다. 바로 이곳이 박창범 교수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담겨 있는 일식에 관한 기록을 컴퓨터로 분석,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201년까지의 기록은 실제로 일어난 것임을 확인하며, 동시에 그것이 관측되었던 자리라고 확인해준, 그 위치에 부합되는 것이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된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201년까지 신라(가야)에서 관측할 수 있었던 일식 현상의 관측 중심지(왼쪽)와 우한 인근 지형도(오른쪽) 제공: 이진아

   지금 우한은 구성통구(九省通衢), 즉 9개의 성(省)이 서로 이어지는 큰 거리라는 별칭을 가진 중국 최대의 교통 허브다. 중국 영토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만큼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웬만한 곳은 터널을 뚫고 다리를 놓으며, 비행기까지 일반적인 교통수단이 된 현대에 와서야 가능해진 상황이다.
   
   예전에는 이 지역이 탐난다 해서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외부의 침입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새와 같은 지형 때문이다. 서쪽은 고산지대이며 남쪽과 동쪽은 양쯔강 너머로 역시 고산지대가 막고 있다. 중국 대륙 세력의 주축이었던 황하 유역으로 향하는 동북쪽은 회하(淮河)라는 큰 강이 천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 우한 인근 실링 협곡(왼쪽)과 우한 양쯔강 다리(오른쪽). 험한 산과 넓은 강은 우한 일대를 외부로부터 적절히 차단하는 경계가 되어 왔다. 사진 출처: Wikipedia Creative Commons

   이런 지형은 고대 온난기에 훌륭한 해양국가의 토대가 될 만하다. 산과 강의 천연 경계가 육지 쪽의 다른 국가들을 차단해주며, 넉넉한 식량과 튼튼한 목재를 제공해주는 배후지를 자체적으로 갖고 있고, 앞으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큰 강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지형구조를 가진, 아마도 규모 면에서는 훨씬 작았을 해양소국들을 파트너로 해서 황해를 통해 다른 동아시아 해양 국가들과 교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한랭기에는 강폭이 좁아지고, 좋은 배를 만들 수 있는 조건도 열악해지므로, 수상활동이 위축되면서 인근의 육지 기반 집단이 이 지역을 장악하기 쉬워진다.
   
   많은 가치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지형적으로 독립된 땅, 이런 조건에서는 풍족하게 살 수는 있었겠지만 대신 이곳을 노리는 집단들이 각축하는 전장이 되는 일이 상대적으로 잦았을 것이다. 아무리 천혜의 요새라 하더라도 새로운 강자 집단이 나타나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결국 주인이 바뀌게 마련이다.
   
   여기서 세계사적으로 연상되는 지역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에 위치한 알자스-로렌 지방, 19세기 후반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유명한 단편소설의 무대다. 1871년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이 지역을 독일에 빼앗겼을 때,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프랑스어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수업을 진행한다. 열정을 다해 가르치던 선생님은 수업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격한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한다. 칠판에 “프랑스 만세! 알자스 만세!”라고 크게 쓰고 나서는 솟구치는 눈물을 억누르며 아이들에게 가라고 손짓하는 걸로 글이 끝난다.
   
   알자스-로렌은 서유럽의 라인강과 뫼스강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산지 쪽으로는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평야지대는 비옥한 농토다. 북쪽 룩셈부르크와 독일 방면으로는 산지가, 서쪽은 뫼스 강, 남쪽은 알프스 산지가 막고 있으며 동쪽에는 라인강이 흐르는 지형으로, 고대 사회에서는 천혜의 요새로서 독립성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독일로 봐서는 프랑스로 진입, 유럽 서남부로 나아갈 수 있는 관문이며, 프랑스로 봐서는 독일을 견제해서 국토를 지키는 성문과 같은 곳이다.
   
   
▲ 알자스-로렌 위치 및 지형(왼쪽)과, 1920년대 이 지역의 자치를 주장하는 정당인 알자스-로렌 지역당의 선거 포스터 (오른쪽)

   근현대기 기록을 보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결과 프랑스령, 1871년 보불전쟁 후 독일령,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잠시 알자스-로렌 독립 공화국,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령, 1940년 나치 독일에 의해 다시 독일령, 1945년 종전 후 다시 프랑스령이 되는 식이다. 위 오른쪽 포스터에서 엿볼 수 있듯이 토착세력 자주권 운동의 역사도 만만치 않다.
   
   풍부한 자원과 전략적 지리의 이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한은 알자스-로렌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패권을 쥐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야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라도 눈독을 들일 만하다. 역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근현대기를 보면, 그 정치적 격랑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를 가진 집단들이 경쟁적으로 이곳의 주도권을 노렸다.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운동 주체들은 이곳을 손에 넣음으로써 일약 세력을 증폭했고, 서구 열강도 눈독을 들여 1858년 텐진조약이 강행된 뒤 이곳의 주요 포구 한커우(漢口)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항했다. 20세기 초 개혁파가 청나라를 타도하고 민주공화국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1911년 이곳에서 일어난 우창 봉기를 도화선으로 신해혁명이 본격적인 추진력을 갖게 된다. 1927년에는 중국국민당 좌파 왕조명이 장개석에 대항, 우한 국민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 1930년 일본 화가가 그린 우한 도시부. 오른쪽 강 윗부분이 당시 개항했던 한코우로 가장 번영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그 이전의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우한의 역사는 유물과 기록이 남아 있는 것만 봐도 3500년이 넘는다. 그건 문명시대의 역사고, 인간이 정주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몇 십만 년 전일 수도 있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주인이 갈리는 것이 몇 번이었는지 역사가 다 기억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눈에 띠는 예로 삼국시대가 있다. 서기 208년 한창 승승장구하던 조조가 넘보다가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 참패했던 유명한 ‘적벽대전’ 장소가 바로 이곳에 있다. 그런데 당시 이 지역의 지배권을 가졌던 손권 역시 새로운 세력이었다. 서기 200년에 전사한 그의 형 손책이 죽기 직전에 이 부근을 정복했고, 임종의 자리에서 손권에게 자신이 일군 영토를 이어받도록 했다. 그러니 그 이전에는 누군가 다른 세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새로운 주인 손씨 일가가 등장하는 시점은 가야가 남겼다고 추정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일식 기록이 끝나는 시점인 201년과 거의 일치한다.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201년까지는 로마기후최적 온난기의 상승기에 해당한다. 동아시아 대표 해양국가인 가야가 한껏 뻗어나가고 있었던 시기다. 가야도 육지로는 천연의 경계가 있는 해양국가였고, 그런 해양국들은 비슷한 조건에서 발달한 다른 해양국들과 대체로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형성했었다. 그렇다면 우한에 자리잡고 있었던 집단 역시 가야와 긴밀히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육지형 국가인 중원의 패권자 한나라는 당시 서북부 흉노족을 제압하는 데 많은 힘을 들이고 있었으므로, 손대기 어려운 조건인 우한 같은 곳까지 견고하게 통제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박창범 교수의 삼국사기 일식기록 관측지도가 선명하게 제시하는 의문부호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박교수의 말대로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여기서부터 많은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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