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문미옥 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김혜애 전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문미옥 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김혜애 전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 ⓒphoto 뉴시스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기존 수사 대상으로 알려진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외에도 김혜애 전 기후환경비서관, 문미옥 전 과학기술보좌관에 대한 조사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가 채 전 비서관 외에 당시 청와대 같은 직급 인사들로도 뻗어나갈 경우 수사의 최종 종착지는 더 윗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산업통상비서관)과 기후환경비서관은 각각 경제수석과 사회수석 아래 있으며, 두 수석은 모두 정책실 산하에 있다. 과학기술보좌관은 정책실장 직속으로 편성되어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청와대 정책실 전반으로 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정책실장은 장하성 현 주중 대사였다.

취재를 종합하면 이 사건을 수사하는 대전지검은 채 전 비서관 외에도 청와대 정책실 내 여러 인사가 탈원전 정책에 개입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정부·여당이 전방위적 탈원전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경제성 조작’이 이뤄졌고, 결국 그 배후에 청와대 여러 인사들이 한꺼번에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의 기본적인 시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진행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검찰이 채 전 비서관이 소속된 청와대 경제수석실뿐만 아니라 사회수석실 산하 비서관들의 연루 의혹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안다”며 “대표적 인물이 당시 김혜애 기후환경비서관”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 출신인 김 전 비서관은 2017년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당시 문 대통령의 ‘탈핵 국가 출발 선언’ 선언문의 초안을 마련한 인물로 꼽힌다. 당시 사회수석은 이후 정책실장이 된 김수현 수석이었다. 김혜애 전 비서관은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 가능성에 대해 “소환(조사)될 이유가 전혀 없다. 사회수석실 소관 업무가 아니었다”며 “(에너지 정책은) 우리 정부 초기 경제수석실이 세팅되기 전에 사회수석실 쪽의 소관업무였다가 이후 경제수석실로 넘어갔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은 그 이후에 진행된 걸로 안다”고 해명했다. 그는 경제수석실로의 업무이관 시기에 대해 “정확하진 않은데 2018년 말 정도로 기억한다. 야당이 국회 운영위에서 문제 제기를 했었고, 그 영향을 받아서 다시 업무분장을 했던 걸로 안다”고 했다.

경제수석실 외에 사회수석실도 타깃

검찰 내부에서는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문미옥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의 조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문 전 보좌관은 2018년 4월 2일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 청와대 내부 보고망을 통해 ‘(월성 1호기) 외벽에 철근이 노출돼 있었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보고 참모들에게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물었고, 대통령의 질문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을 통해 당시 백운규 산업부 장관 등에게 전달됐다.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정책실장 직속으로 일반 수석실과는 별개 직제로 편제돼 있고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2017년 하반기와 2018년 초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인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때 청와대에서는 채희봉 전 비서관과 함께 문 전 보좌관이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것이 원전업계의 설명이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조용하고 신중한 채 비서관에 비해 문 보좌관이 전문성 없이 신문에서 본 상식 수준으로 나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정권 초인 2017년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원자력장관회의에 문 전 보좌관이 대표로 참석했는데, 원전 세일즈를 하는 70여개국 앞에서 느닷없이 ‘우리나라는 탈원전한다’며 나서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문 전 보좌관은 20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에 입성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과학계 출신이지만 사실상 정치권 인사”라고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지내던 시절 영입된 인사로, 포항공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다금속간 초전도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와대에서 나온 2018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을 지냈다.

현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 후보로 이름이 언급되는 문 전 보좌관은 그간의 정치적인 행보로 인해 과학기술계에서 여러 번 규탄받은 적이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들로 구성된 공공연구노조는 “문 전 보좌관은 인사 선임 문제 등 문재인 정부 과학기술정책의 총체적 실패의 주범”이라며 “스스로 차관 재직 시절을 더듬어본다면 자신이 결코 STEPI 원장으로 적절치 않다는 걸 금방 알아챌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공공연구노조는 2018년 12월 문 전 보좌관이 청와대에서 나와 과기부 1차관으로 전면배치될 때도 비판 성명을 낸 바 있다. 문 전 보좌관은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관련 내용을 묻는 주간조선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속도 내는 검찰 수사

검찰은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자료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 산업부 문모 국장과 서기관을 지난 12월 5일 구속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원전업계 인사들은 이 중에서 문 국장이 탈원전 정책 당시 산업부 간부 중 가장 적극적으로 임했던 인물이라고 말한다. 원전산업정책관을 지낸 문 국장은 당시 백 전 장관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통했다는 것이 원전업계의 설명이다. 문 국장 구속 후 검찰의 칼날이 향하는 인물은 백 전 장관과 현재 한국가스공사 사장인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이다. 검찰은 이미 지난 11월 채 전 비서관의 집무실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당시 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희봉 사장은 행시 출신으로 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 등에서 공직생활을 해온 전형적인 관료 출신 인사다. 후임 강성천 산업부 차관보에게 비서관 업무를 넘기고 가스공사 사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3월 한국가스공사가 사장직 공모를 했는데 조석 전 한수원 사장과 김효선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에너지분과위원장이 공공기관 운영위 의결을 거쳐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탈락했다. 채 사장은 김영두 사장 직무대리와 경합해 사장에 선임됐는데, 청와대가 비서관 출신 채 사장을 이미 내정해 놓고 공모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채 전 비서관이 가스공사 사장직에 오르자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답정너’ 인사 임명을 위해 주요 에너지공기업 사장 자리를 10개월이나 비워둔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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