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세기 말 어느 때, 새로운 제철기지의 후보지를 찾아 지금의 일본 규슈 야쯔시로시(市) 앞 바다에 도착한 가락국 사람들. 이들은 배에서 말을 타고 내려 해변을 가로질러 달려왔을 것이다. 기마민족인 한반도 북부 부여국 출신 사람들이 한반도 해안 및 중국 해안 지역에 접근할 때 통상 그랬듯이 말이다.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말이 가장 먼저 서식했던 지역의 하나지만, 일본 열도에는 서기 4세기 이전에 한반도로부터 말이 처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마민족이었던 가락국 사람들이 2세기 말 일본 열도에 처음 왔을 때,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이들의 모습은 일본 원주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락국인들은 이곳에 당시로선 상당한 규모의 제철기지를 구축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북으로 구마모토 북부의 비옥한 지역, 남으로 카고시마 만 인근의 비옥한 지역과 산지로 차단된 야쯔시로 일대는 당시 그리 풍요롭거나 규모가 큰 사회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락국 사람들이 도착해서 대규모로 철을 생산해서 가락국으로 보냈다면, 생태계〮경관〮인프라〮소득수준〮사회관계 등 이 지역의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왼쪽) 가락국 제철기지 흔적이 남아 있는 가와하라 다이진구 위치. (가운데) 현재 이 위치에서 토목공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구글 어스 사진을 통해 확인된다. (오른쪽) 비밀작업장으로 추정되는 동굴 안에는 북방계 복장에 고깔모자를 쓴 화강암 인물상이 있으며 1979년 당시 누군가 재를 올린 흔적이 남아 있다. 출처: (왼쪽부터) 지도 원본-Google map data @2021. 사진 원본-Imagery @2021 Airbus. 사진 원본-이종기(2007),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왼쪽) 가락국 제철기지 흔적이 남아 있는 가와하라 다이진구 위치. (가운데) 현재 이 위치에서 토목공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구글 어스 사진을 통해 확인된다. (오른쪽) 비밀작업장으로 추정되는 동굴 안에는 북방계 복장에 고깔모자를 쓴 화강암 인물상이 있으며 1979년 당시 누군가 재를 올린 흔적이 남아 있다. 출처: (왼쪽부터) 지도 원본-Google map data @2021. 사진 원본-Imagery @2021 Airbus. 사진 원본-이종기(2007),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외부로부터의 강압적 침입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또 국토의 75% 이상이 산지여서 좁은 면적으로 독립된 지형이 산재해있다. 19세기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적 통일국가를 형성하기 이전에는 이런 골짜기마다 작은 나라들, 혹은 영지들이 요즘 개념으로 말하자면 자급자족적인 지방자치단체로서 존재해왔다. 따라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으로서 잘 전승되고 있는 편이다.

야쯔시로 사람들이 겪었을 그 옛날 경천동지했던 체험에 대한 집단 기억도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가락국 사람들이 배로 도착해 말을 달리며 들어와서 온 세상을 뒤집어놓았던 때의 일 말이다. 이 일대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바다를 건너 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거북을 타고 뱀의 인도를 받아, 깊은 눈, 긴 손, 빠른 발의 모습으로 왔다. 이들의 우두머리는 한 여성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묘켄(妙見)’이라고 불렀다. 사물들 꿰뚫어보는 신통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한 사람이 그녀를 보좌하여 사람들을 지휘했다. 수하 중에 ‘방향을 보는 자’가 있어, 높은 산에 올라 방향을 보고 터를 잡아 궁전을 세우고, 그곳을 중심으로 8개의 성을 지었다. 궁전 인근에 사당을 세우고 북극성과 북두칠성으로 상징되는 신, 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天御中主神)를 모셨다. 묘켄은 야쯔시로에서 70~80년 동안 머물다가 사망했는데 그녀의 사후 큰 무덤이 지어졌다.”

이 이야기는 이 지역 토박이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고문헌인 ‘비후국지(肥後國志)’와 ‘신찬사적통고(新撰事蹟通考)’ 등에도 기록으로 담겨 있다. 시기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사실적 디테일이 살아 있어, 설화라기보다는 역사기록에 가까운 서술이다.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고대 역사기록에서 비현실적인 서술은 대개 과거의 현실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현실을 대놓고 말하지 못할 때나 과장할 때, 또 화자가 그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 채로 전달할 때, 애매하게 상징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도 두 군데 비현실적 대목이 나온다.

우선 거북의 등에 타고 뱀의 인도를 받았다는 부분이다. 배의 앞 머리에 용이나 거북의 머리 형상을 다는 것은 고대의 해양족들이 흔히 했던 관행이다. 뱃머리에서 해수면에 이르는 부분까지 휘어진 부분을 뱀이나 용, 혹은 여신의 모습으로 장식하여 배의 수호신으로 간주하는 관행 역시 마찬가지다. 야쯔시로 일대의 원주민들이 본적이 없었던 큰 배가 제대로 거북과 뱀의 장식을 갖추고 나타났다면, 그 사건은 후대에 전해지면서 그렇게 상징화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두 번째로 깊은 눈, 긴 손, 빠른 발의 형상으로서 왔다는 부분이다. 언뜻 황당무계한 설화적 요소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북방계 기마민족’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면 상당부분 이해가 된다.

북방계 아시아인은 남방계에 비해 눈이 가늘고 우묵한 편이다. 또한 아시아 북부 대평원에서 말을 달리며 살아왔던 사람들은 시력이 좋아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목심(目深)’, 즉 눈이 깊다는 것은 이런 외형적〮기능적 특성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발이 빠르다는 것은 말을 타고 달리는 속도를 말하는 것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왼쪽) 복원된 9세기 바이킹족의 배. 선두에 용머리가 달려 있다. (가운데) 야쯔시로 묘켄 마쯔리에서 사용되는 거북 모형. 묘켄이 타고 왔다는 거북을 상징한다. (오른쪽) 몽고인들이 말을 포획할 때 사용하는 도구 우르가. 전통사회에서 이런 도구들은 종종 전투시 인간에 대해서도 사용됐다. 출처: (왼쪽부터) Wikipedia Creative Commons, 2019년도 야쯔시로 묘켄마쯔리 녹화영상 캡쳐, Flickr 이미지
(왼쪽) 복원된 9세기 바이킹족의 배. 선두에 용머리가 달려 있다. (가운데) 야쯔시로 묘켄 마쯔리에서 사용되는 거북 모형. 묘켄이 타고 왔다는 거북을 상징한다. (오른쪽) 몽고인들이 말을 포획할 때 사용하는 도구 우르가. 전통사회에서 이런 도구들은 종종 전투시 인간에 대해서도 사용됐다. 출처: (왼쪽부터) Wikipedia Creative Commons, 2019년도 야쯔시로 묘켄마쯔리 녹화영상 캡쳐, Flickr 이미지

손이 길다는 부분은 지금도 몽고와 만주 일대에서 쓰는 전통적 마구(馬具)인 우르가(uurga)를 연상시킨다. 버드나무처럼 탄력 있는 긴 나무 막대기에 가죽끈을 달아서 쓰는 이 도구는 보통 빠르게 달리는 말을 포획할 때 쓴다. 미국의 목장 같은 데서 쓰는 올가미, 라쏘(lasso)와 쓰임새가 비슷하지만, 훨씬 튼튼하고 표적을 잡기 쉬우며 말에게 심한 타격을 주지 않고 포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통 사회에서 전투를 할 때 사람을 낚아채는 도구로도 충분히 쓰일 수 있었을 것이다. 북방 부여국 출신 가락국 사람들도 이 도구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나무로 만든 것이니만큼 금방 썩어 유물로 남겨지지는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거북을 타고 뱀의 인도를 받아 목심(目深), 수장(手長), 족조(足早)의 형상으로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은 가락국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두 부분 이외에는 묘켄에 대한 비교적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서술이다. 그녀의 궁전은 현재 그녀를 모시는 야쯔시로 신사가 되어 있다. 신을 모셨던 사당은 ‘레이후샤(靈符社)’라는 작은 신사로 남아 있다. (이 신사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라는,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현판이 붙어 있으며, 그 안에 모신 신상은 이 시리즈 앞 기사 “규슈의 가락인 석상은 왜 얼굴이 사라졌을까”에 나왔던 석상과 비슷하게 북방계 복장을 하고 있다. 또한 그 안에 모신 부적은 태극기와 대단히 유사한 형상을 하고 있다.)

(왼쪽) 야쯔시로 신사 전경. 왼쪽 끝 부분에 보이는 건물은 한 눈에 한반도의 기와집을 많이 닮아 있다. (가운데) 묘켄이 모신 사당 레이후샤에 보존되어 있는 태상왕의 부적. 뚜렷이 태극기를 닮은 이미지가 보인다. (오른쪽) 역시 레이후샤에 보존되어 있는 태상왕 석상 출처: (왼쪽부터) Wikimedia Commons, 이종기(2007),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왼쪽) 야쯔시로 신사 전경. 왼쪽 끝 부분에 보이는 건물은 한 눈에 한반도의 기와집을 많이 닮아 있다. (가운데) 묘켄이 모신 사당 레이후샤에 보존되어 있는 태상왕의 부적. 뚜렷이 태극기를 닮은 이미지가 보인다. (오른쪽) 역시 레이후샤에 보존되어 있는 태상왕 석상 출처: (왼쪽부터) Wikimedia Commons, 이종기(2007),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무형 문화유산 측면에서도 ‘묘켄’은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구전과 기록으로 남은 콘텐츠 외에도,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왔다고 하는 전통 축제인 ‘묘켄 마쯔리’가 매년 열린다. 규슈 3대 마쯔리 중 하나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묘켄에게 지내는 제사, 거북뱀을 형상화한 퍼레이드, 지난 기사에서 소개했던 천마 퍼포먼스 등 메인 이벤트만 4시간 반에 걸쳐 진행되는, 상당히 견고한 콘텐츠를 자랑하는 마쯔리다.

그런데 ‘묘켄’의 존재감은 단순히 옛날이야기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야쯔시로 일대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 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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